1R에서만 카메라 300대 동원…5R 심사받을 순서 사다리탔다

서정민 2024. 10. 2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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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진두지휘, SLL 김학민·김은지 PD
지난 9월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흑백요리사)’이 한국에서 선보인 예능 최초로 3주 연속 글로벌 톱 10 TV 비영어 부문 1위를 기록했다. 국내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흑백요리사 출연자 식당 가봤냐?”는 질문으로 화제성 톱이다. 침체됐던 외식업계가 모처럼 훈풍을 맞은 것도 ‘흑백요리사’ 덕분이다. 무엇이 시청자의 마음을 이토록 흔들었을까. ‘흑백요리사’를 진두지휘한 김학민·김은지 PD를 만나 현장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사진 넷플릭스]
흑수저와 백수저 간의 ‘계급전쟁’이라는 새로운 컨셉트로 시청자를 사로잡은 ‘흑백요리사’ 후폭풍이 거세다. 출연자들이 운영하는 식당 예약 잡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최종 우승자 ‘나폴리맛피아’ 권성준 셰프의 식당 ‘비아톨레도 파스타바’ 예약은 지난 10일 오전 10시 오픈하자마자 11만 명이 몰려 서버가 20분간 마비됐다. 심사위원 안성재 셰프가 진행하는 한 호텔 미식행사는 1인 가격이 70만원이나 하지만 예약 오픈 10여분 만에 모두 마감됐다. ‘이모카세 1호’ ‘만찢남’ ‘일식간편왕’ ‘철가방요리사’ ‘나폴라맛피아’ 등의 출연자들과 협업하는 편의점 1, 2위 브랜드 GS25와 CU간의 전쟁도 시작됐다.
넷플릭스 화제작 ‘흑백요리사’에서 격돌한 20인의 유명 요리사와 80인의 무명요리사. 이름하여 ‘백수저’와 ‘흑수저’ 간의 계급전쟁이다. 계급을 증명할 것인가, 계급을 넘어설 것인가. 오직 ‘맛’ 하나에 올인한 재야의 고수들과 레전드 스타 셰프들의 한판승이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사진 넷플릭스]
전해웅 한식진흥원 이사장 직무대행은 22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진행된 국정감사에 참석해 이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넷플릭스에서 상영되고 있는 흑백요리사가 인기를 끌고 있고 해외에서도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다. 재직 중에 한식 세계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겠는가”를 묻는 질문에 “지금 물이 들어오고 있는데 배의 노를 한번 힘차게 저어보겠다”고 답했다.

잘 만든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내외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이처럼 큰데, 그 인기 요인이 뭘까. 중앙그룹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SLL(에스엘엘중앙) 산하 레이블 ‘스튜디오 슬램’이 제작한 ‘흑백요리사’는 기획 단계부터 기존 요리 서바이벌에선 볼 수 없었던 ‘새로움’이 목표였다. 김학민·김은지 PD는 “시작에 앞서 기존 요리 프로들을 보고 4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그 이유가 기존 것들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서였다”며 “그동안 보지 못한 미션, 본 적 없는 그림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고 했다. 덕분에 어떤 요리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압도적인 스케일과 심사위원의 눈을 가리는 ‘블라인드 테이스팅’ 같은 파격적인 룰이 탄생했다. 또 20명의 유명 요리사와 80명의 무명 요리사가 계급장 떼고 붙는 전쟁이라는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전개됐다.

최종 우승 권성준 셰프 식당 서버 마비
‘흑백요리사’를 진두지휘한 김은지(왼쪽) PD와 김학민 PD. 1000평 규모의 스튜디오에 40명이 동시에 요리할 수 있는 주방 시스템을 만드는 게 이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이었다. 최기웅 기자
‘1000평 규모의 스튜디오에 40명이 동시에 요리할 수 있는 주방을 만들어라.’ 제작진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인 1라운드 세트는 제작 기간만 1달 정도 걸렸다. “음악 서바이벌(김학민·김은지 PD는 JTBC ‘싱어게인’ ‘슈가맨’ 등을 연출했다)과 다르게 돈을 썼는데도 티가 안 나서 속상했다.(웃음) 세트 바닥에 상하수도, 전기, 가스 시설을 까느라 정말 돈을 많이 썼는데 카메라에는 안 잡히니까.”(김은지)

메인 주방의 규모감을 충분히 보여주기 위해 축구 경기나 대형 콘서트·페스티벌에서나 사용하는 4축 스파이더 캠과 속도감을 보여주는 FPV드론(레이싱 드론) 등도 적극 활용했다. 1라운드에서만 거치 카메라 포함 300대가 넘는 카메라가 동원됐다.

“촬영 때마다 엄청난 양의 식자재를 준비하고 뒤처리까지 담당했던 푸드팀과 진행팀은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먼저 퇴근하면서 정말 고생이 많았다. 셰프들이 어떤 요리를 할지 전혀 모르니까 어떤 식재료를 어느 정도 준비해야 할지 가늠하는 게 정말 어려웠다. 촬영 준비 때마다 미리 리스트가 나오는데 살면서 허브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웃음)”(김학민)

심사위원으로 활약한 국내 유일 미쉐린 가이드 3스타 셰프 안성재. [사진 넷플릭스]
회를 거듭하면서 출연자들의 스토리가 뒷받침 돼준 것도 인기 요인이다. 특히 에드워드 리 셰프에 대한 팬덤은 결승전이 끝나고도 “진짜 우승자는 에드워드 리”라고 할 만큼 충성도가 높다. 한 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내 안에는 미국, 한국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가 혼합돼 있다”면서 “나의 정체성을 찾는 방법으로 한식에 대한 애정을 키워왔다”고 고백했고 그의 진정성은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뉴욕대 영문학과 출신답게 식재료 하나를 표현할 때도 남다른 표현력을 보여준 그에게서 ‘셰프의 품격’을 느꼈다는 팬들이 많다. 두 PD 역시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분”이라며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촬영하느라 시차극복 등 힘든 점이 많았을 텐데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진심과 애정으로 쇼에 참가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사실 제작진은 그를 섭외할 때만 해도 큰 기대가 없었다. 2010년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 우승자이자 ‘요식업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상 후보에도 여러 번 올랐고, 지난해 4월에는 미국 백악관이 개최한 한미 국빈 만찬에 초청돼 음식을 만든 바 있는 그에게 섭외 요청을 했다가 민망한 답을 들을까 망설였다. “결국 공식 섭외보다 팬심에 호소하기 위해 영어 잘 하는 막내 PD에게 조심스레 메일을 보내보라 했는데 너무 흔쾌히 줌 미팅을 하자는 답이 와서 깜짝 놀랐다. 막내 PD에게 심사위원 아니고 참가자라고 얘기한 거 맞는지 재차 확인했다. 줌 미팅 때도 서바이벌이라 1라운드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 거듭 얘기했는데 그가 ‘와이 낫?’ 하더라.”(김학민) “한국과 한식에 대한 애정을 한 번은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있었다면서 한국에서 만드는 쇼에 참가할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미국에서 하는 쇼였다면 절대 안 했을 거라고. 현장 프리젠테이션도 한국어로 하고 싶다며 과외 선생님을 따로 두고 공부하셨다. 정말 하늘이 주신 인연이었다.”(김은지)

에드워드 리 셰프가 주방이 없는 호텔방에서 간이 조리도구로 요리연습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제작진에게 ‘불공정한 처사’라는 화살이 쏟아졌는데 실제 상황은 달랐다. “멀리서 오는 분인데 필요한 준비를 안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요리 연습이 필요하시다면 스튜디오를 제공하겠다고 사전에 말씀드렸고 셰프님이 쿨하게 괜찮다고 하셨던 부분이다.”(김학민)

“외국인들 많이 와줘야 큰 시장 열려”
최고의 외식 경영인이자 국민 요리 멘토 백종원. [사진 넷플릭스]
제작진으로선 방송에 다 담을 수 없어 억울한 소리를 듣는 일이 꽤 있었다. 대표적인 게 3~4라운드 팀 미션과 레스토랑 미션에서 진행된 팀원 방출이다. ‘맛으로만 평가하겠다더니 왜 리더십을 보는 거냐’ ‘재료손질만 하던 한식대첩, 급식대가, 이모카세님이 안스러웠다’ ‘사람 수도 적은데(대한민국요리명장, 철가방요리사, 만찢남 3명이 뒤늦게 방출돼 팀을 이뤘다) 시간도 적게 주다니 불공평하다’ 등등의 댓글이 달렸다.

“서바이벌이다보니 다양한 모습을 담으려고 여러 가지 기획을 했는데 시청자들이 불편함을 느꼈다면 의도를 잘못 전달한 게 맞다. 다음 시즌에선 시청자들의 의견을 더 잘 반영하겠다.”(김학민)

“5라운드 ‘인생을 요리하라’ 편이 끝나고는 심사위원에게 음식을 맛보이는 순서가 공정했는가 하는 질문도 받았다. 이 문제는 셰프들도 예민하게 생각한 부분이라 촬영 전 단톡방에서 사다리타기로 순서를 정했다.(웃음)”(김은지)

“막연하게 주방 안에선 위계질서가 확실하고, 각자 예민해서 신경전이 많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 안에 음식을 차려야 한다는 ‘목표’가 있으니까 갈등이 낄 자리가 없더라. 이게 프로정신구나 감동하면서도 제작진 입장에선 일반적인 서바이벌에 비해 갈등 양상이 너무 점잖은 게 아닌가 아쉽기도 했다.(웃음)”(김학민)

현재 ‘흑백요리사’는 시즌2 제작이 결정된 상태다. 영국의 유명 셰프 고든 램지 섭외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돈다.

“희망사항이다(웃음). 시즌2는 룰이나 인원 등 모든 걸 0에서 시작한다. 시즌 1에서 못 모신 숨은 진주들을 더 많이 모시고 싶다.”(김은지)

“한국 외식업계 문제는 수요가 너무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외국인들이 많이 와줘야 한다. 흑백요리사를 통해 ‘한국에 맛있는 요리를 하는 셰프들이 이렇게 많구나’ 화제가 되고 그걸 지켜본 외국인들이 몰려온다면 진짜 큰 시장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한다.”(김학민)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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