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R에서만 카메라 300대 동원…5R 심사받을 순서 사다리탔다
━
‘흑백요리사’ 진두지휘, SLL 김학민·김은지 PD
지난 9월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흑백요리사)’이 한국에서 선보인 예능 최초로 3주 연속 글로벌 톱 10 TV 비영어 부문 1위를 기록했다. 국내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흑백요리사 출연자 식당 가봤냐?”는 질문으로 화제성 톱이다. 침체됐던 외식업계가 모처럼 훈풍을 맞은 것도 ‘흑백요리사’ 덕분이다. 무엇이 시청자의 마음을 이토록 흔들었을까. ‘흑백요리사’를 진두지휘한 김학민·김은지 PD를 만나 현장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잘 만든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내외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이처럼 큰데, 그 인기 요인이 뭘까. 중앙그룹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SLL(에스엘엘중앙) 산하 레이블 ‘스튜디오 슬램’이 제작한 ‘흑백요리사’는 기획 단계부터 기존 요리 서바이벌에선 볼 수 없었던 ‘새로움’이 목표였다. 김학민·김은지 PD는 “시작에 앞서 기존 요리 프로들을 보고 4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그 이유가 기존 것들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서였다”며 “그동안 보지 못한 미션, 본 적 없는 그림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고 했다. 덕분에 어떤 요리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압도적인 스케일과 심사위원의 눈을 가리는 ‘블라인드 테이스팅’ 같은 파격적인 룰이 탄생했다. 또 20명의 유명 요리사와 80명의 무명 요리사가 계급장 떼고 붙는 전쟁이라는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전개됐다.
메인 주방의 규모감을 충분히 보여주기 위해 축구 경기나 대형 콘서트·페스티벌에서나 사용하는 4축 스파이더 캠과 속도감을 보여주는 FPV드론(레이싱 드론) 등도 적극 활용했다. 1라운드에서만 거치 카메라 포함 300대가 넘는 카메라가 동원됐다.
“촬영 때마다 엄청난 양의 식자재를 준비하고 뒤처리까지 담당했던 푸드팀과 진행팀은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먼저 퇴근하면서 정말 고생이 많았다. 셰프들이 어떤 요리를 할지 전혀 모르니까 어떤 식재료를 어느 정도 준비해야 할지 가늠하는 게 정말 어려웠다. 촬영 준비 때마다 미리 리스트가 나오는데 살면서 허브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웃음)”(김학민)
사실 제작진은 그를 섭외할 때만 해도 큰 기대가 없었다. 2010년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 우승자이자 ‘요식업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상 후보에도 여러 번 올랐고, 지난해 4월에는 미국 백악관이 개최한 한미 국빈 만찬에 초청돼 음식을 만든 바 있는 그에게 섭외 요청을 했다가 민망한 답을 들을까 망설였다. “결국 공식 섭외보다 팬심에 호소하기 위해 영어 잘 하는 막내 PD에게 조심스레 메일을 보내보라 했는데 너무 흔쾌히 줌 미팅을 하자는 답이 와서 깜짝 놀랐다. 막내 PD에게 심사위원 아니고 참가자라고 얘기한 거 맞는지 재차 확인했다. 줌 미팅 때도 서바이벌이라 1라운드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 거듭 얘기했는데 그가 ‘와이 낫?’ 하더라.”(김학민) “한국과 한식에 대한 애정을 한 번은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있었다면서 한국에서 만드는 쇼에 참가할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미국에서 하는 쇼였다면 절대 안 했을 거라고. 현장 프리젠테이션도 한국어로 하고 싶다며 과외 선생님을 따로 두고 공부하셨다. 정말 하늘이 주신 인연이었다.”(김은지)
에드워드 리 셰프가 주방이 없는 호텔방에서 간이 조리도구로 요리연습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제작진에게 ‘불공정한 처사’라는 화살이 쏟아졌는데 실제 상황은 달랐다. “멀리서 오는 분인데 필요한 준비를 안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요리 연습이 필요하시다면 스튜디오를 제공하겠다고 사전에 말씀드렸고 셰프님이 쿨하게 괜찮다고 하셨던 부분이다.”(김학민)
“서바이벌이다보니 다양한 모습을 담으려고 여러 가지 기획을 했는데 시청자들이 불편함을 느꼈다면 의도를 잘못 전달한 게 맞다. 다음 시즌에선 시청자들의 의견을 더 잘 반영하겠다.”(김학민)
“5라운드 ‘인생을 요리하라’ 편이 끝나고는 심사위원에게 음식을 맛보이는 순서가 공정했는가 하는 질문도 받았다. 이 문제는 셰프들도 예민하게 생각한 부분이라 촬영 전 단톡방에서 사다리타기로 순서를 정했다.(웃음)”(김은지)
“막연하게 주방 안에선 위계질서가 확실하고, 각자 예민해서 신경전이 많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 안에 음식을 차려야 한다는 ‘목표’가 있으니까 갈등이 낄 자리가 없더라. 이게 프로정신구나 감동하면서도 제작진 입장에선 일반적인 서바이벌에 비해 갈등 양상이 너무 점잖은 게 아닌가 아쉽기도 했다.(웃음)”(김학민)
현재 ‘흑백요리사’는 시즌2 제작이 결정된 상태다. 영국의 유명 셰프 고든 램지 섭외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돈다.
“희망사항이다(웃음). 시즌2는 룰이나 인원 등 모든 걸 0에서 시작한다. 시즌 1에서 못 모신 숨은 진주들을 더 많이 모시고 싶다.”(김은지)
“한국 외식업계 문제는 수요가 너무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외국인들이 많이 와줘야 한다. 흑백요리사를 통해 ‘한국에 맛있는 요리를 하는 셰프들이 이렇게 많구나’ 화제가 되고 그걸 지켜본 외국인들이 몰려온다면 진짜 큰 시장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한다.”(김학민)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