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싶은 황희찬의 진심…“다쳐도 좋으니 뛰겠다”

황민국 기자 2022. 11. 3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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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국가대표 황희찬과 조유민이 29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도하|권도현 기자

벤치라는 작은 울타리에 갖힌 황소는 뛰고 싶다. 자신이 녹빛 그라운드에 뛰어 들어야 마지막 희망이 생긴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다.

성이 황씨로 저돌적인 돌파가 강점이라 황소라 불리는 국가대표 골잡이 황희찬(26·울버햄프턴)은 “내 몸이 어떻게 되더라고 이젠 뛰겠다”고 말했다. 12월 3일 0시 카타르 도하 인근의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릴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포르투갈과 최종전을 앞둔 그의 출사표다.

황희찬은 최근 기자와 만나 “월드컵은 모든 국민들이 응원해주는 무대다. 내 몸에 신경쓰지 않은 채 뛰고 싶다”고 말했다.

벤투호의 핵심 전력인 황희찬은 이번 대회 내내 출전 여부로 관심을 받았다. 폭발적인 스프린트가 강점인 그가 하필이면 햄스트링 부위(허벅지 뒷근육)를 다쳤기 때문이다. 결국 황희찬은 훈련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우루과이전(0-0 무)과 가나전(1-2 패)을 건너 뛰었다. 특히 가나전은 대한축구협회가 사회환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우리 황소 달립니다’고 알려 기대감을 모았던 터라 아쉬움이 더욱 컸다.

황희찬은 “처음에는 통증만 있을 뿐 문제가 없었다. 훈련하다 아프기 시작해 멈춘 것”이라며 “다른 선수들이 열심히 뛰는 걸 보면서 나도 뛰고 싶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황희찬은 자신이 뛰지 못하는 사이 벤투호가 1무1패에 그치면서 아쉬움이 더욱 커졌다. 실제로 그의 빈 자리는 통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제공하는 데이터 플랫폼에 따르면 한국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 2차전까지 크로스만 65개로 32개국 가운데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빌드업 축구로 공격의 주도권을 잡았다는 증거이지만 경기당 득점은 1골에 머물렀다. 공격 루트가 측면에 치우쳐 단순하고 효율적이지 못했다. 상대 수비를 흔드는 과감한 드리블이 4개(31위)에 불과했다. 저돌적인 드리블 돌파가 강점인 황희찬이 뛰었다면 달라졌을 그림이다.

다행히 황희찬은 햄스트링 부상 회복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 햄스트링 부상은 전력 질주에서 멈출 때 통증이 없어야 완벽히 회복한 것으로 간주한다. 황희찬은 지난 29일 대표팀 훈련에서 70m를 8초에 뛰었는데, 3일 전 같은 거리를 15초에 뛴 것보다 확연히 몸 상태가 올라왔다.

황희찬은 “아직 전력 질주는 안 했다. 80~90% 수준까지 달려본 상태”라고 설명한 뒤 “한 번에 올리면 무리가 올 수도 있다는 만류에 시간을 두고 있다. 난 솔직히 마음이 급하다”고 말했다.

황희찬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은 채 출전을 서두르는 것은 역시 팀 동료들의 부상 투혼이 영향을 미쳤다. 얼굴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던 주장 손흥민(30·토트넘)이 마스크를 쓴 채 매 경기 풀타임을 소화하고, 동갑내기 친구 김민재(나폴리)가 근육 부상에도 출전하는 것을 벤치에서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황희찬은 “같은 선수지만 뛰는 걸 보면서 너무 자랑스럽고, 감동을 받았다”면서 “나도 내 몸에 신경쓰지 않고 3차전은 뛰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황소의 질주는 벤투 감독의 결단에 달렸다. 사실 그는 지난 28일 가나와 2차전에서도 “감독님에게 옵션을 드리고 싶다”고 출전 의지를 내비쳤지만 거절 당했다. 당시를 떠올린 황희찬은 “코칭스태프는 의무팀과 계획이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하더라. 아무래도 경기 중 내가 더 다칠 수 있는 리스크를 걱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전을 앞둔 자리에서도 “황희찬은 부상이라는 리스크를 안고 이번 대회를 시작했다”며 “마지막까지 상태를 지켜본 뒤에 출전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황희찬은 자신의 부상 여부는 이제 상관이 없다는 각오다. 벤투호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뛴다는 생각뿐이다. 20년 전인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보면서 축구를 시작한 황희찬으로선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마침 마지막 상대인 포르투갈에는 소속팀 동료만 3명(후벵 네베스·마테우스 누누스·조제 사)이 뛰고 있어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 황희찬은 “이젠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뛰고 싶다. 그 각오로 포르투갈전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도하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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