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값에 화들짝, 눈도 침침 그래도 정성을 한땀 한땀…뜨개질, 이건 사랑이었네
- 코로나 거치며 인기 높아진 취미
- 여친 선물 주려고, 병 이겨내려고
- 다양한 이유로 남녀노소 공방 찾아
- 처음엔 굵은 실 부터 시작해야 수월
- 하루 1시간, 2주 걸려 목도리 완성
- 쓸모있는 물건 만들었다는 성취감
- 만만찮은 비용에도 선물하고픈 맘
‘겨울’ 하면 으레 떠오르는 몇 가지가 있는데, 뜨개질도 그중 하나다. 보송보송한 털뭉치로 상징되는 뜨개질은 따뜻함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나이 많은 여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뜨개질이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남녀노소의 취미로 자리잡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바늘과 털실을 집어 든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데다 성취감까지 따라오는 뜨개질을 도저히 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번 시작하면 ‘무아지경’에 빠져든다는 뜨개질, 그래서 한 번 도전해 봤다.
▮뜨개질을 시작하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20년도 더 전인 대학생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목도리를 뜨는 엄마 옆에서 나도 한 번 해보겠다고 몇 번 떠본 게 뜨개질에 얽힌 기억의 끝이다. 중학생 시절 앞뜨기, 뒷뜨기 정도 들어본 적 있는 ‘쌩초보’가 어느 정도 수준의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목표는 직장인이 2주 안에 실제 쓸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잡았다.
유튜브에서 뜨개질을 검색하면 수백 개 영상이 튀어나온다. 처음엔 이걸 참고해 가며 도전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정신 차려, 넌 쌩초보라고!’ 수소문 끝에 부산 동구에 위치한 뜨개방 ‘니트 아뜨리에’의 문을 두드렸다.
“저기, 제가 뜨개질 완전 처음인데요. 뭐 하나 만들어보고 싶습니다만.”
처음 찾은 날. 수강생 15명이 빼곡히 앉아있었다. 언뜻 둘러보니 대부분 대바늘로 니트 상의를 뜨고 있었다. ‘취미반이라고 들었는데… 설마 나도 바로 옷을 짤 수 있나?’
뜨개질 종류는 대체로 바늘로 구분할 수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뜨개질은 대바늘뜨기다. 실로 만든 고리와 고리를 이어 사슬 같은 편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이에 비해 코바늘뜨기는 실에 실을 감아 실기둥을 만드는 형태로, 대바늘로 만든 것보다 두껍고 쫀쫀해 생활소품 만드는 데 주로 활용된다. 이 밖에 대바늘과 코바늘을 혼용한 아프간(아후강) 뜨기도 있다.
뜨개방에 걸려있는 완성품을 후루룩 훑어봤다. 목도리 니트 가방 모자까지 각양각색이다. 옷을 만들어보고 싶어 슬쩍 이야기를 꺼내봤지만 한두 달은 꼬박 매달려야 한다는 말에 즉시 포기. 눈높이를 낮추고 낮춰 간단한 목도리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목도리도 실 굵기나 무늬에 따라 난이도가 천차만별이다. 일본수예협회 보그 과정 사범인 니트 아뜨리에 최선영 대표는 “임신부들이 태교하러 오는 경우가 있는데 가는 실로 시작하면 태교하러 왔다가 스트레스만 받고 간다”며 “처음엔 비교적 굵은 실로 시작하는 게 수월하다”고 조언했다. ‘어떻게든 완성’에 방점을 찍고 뒷뜨기만 하면 되는, 가장 무난해 보이는 미니 목도리를 택했다.
▮그야말로 남녀노소
뜨개질을 배우기 전, 뜨개방 ‘동료들’이 궁금해졌다. 오전엔 30·40대가 대부분이었는데 오후가 되니 60·70대가 주축이 됐다. “코로나 시기 이전과 비교하면 뜨개방 찾는 사람들 나이가 훨씬 젊어졌어요. 외부 활동을 못 하니 뜨개질에 관심을 갖더라고요. 고등학생도 있고, 20대 남자 수강생은 여자친구 따라와서 여기서 데이트해요. 여자친구 몰래 선물하고 싶다고 뜨개질 배우는 친구도 있죠.”
최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뜨개방을 찾는 사연은 다양하다. 가까운 사람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어서, 추억을 잊지 못해서, 우울증에 걸려 병원 추천으로 오는 경우도 있단다. 뜨개방에서 만난 40대 A씨는 학창 시절 기억을 잊지 못한 경우다. 중학생 때 처음 느낀 대바늘뜨기의 즐거움을 마음속에만 품고 있다가 2개월쯤 전 큰맘 먹고 다시 시작했다. 오전반 수강생인 A 씨는 가디건을 열심히 뜨다가 점심시간 즈음이 되자 “일하러 가야 한다”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오후반에서 만난 한옥희 할머니는 1941년생. 올해 83세로, 일흔을 앞둔 2010년 처음 바늘을 들었는데, 2주면 니트 상의 하나를 완성할 정도로 수준급이다. “나는 이 나이에도 심심할 틈이 없어. 안 아프냐고? 이제는 뜨개질 안 하면 팔도 아프고 어깨도 아파. 남한테 선물 주면 기분도 좋고, 일단 재밌잖아.” 최 대표는 “뜨개질을 하다 보면 마약처럼 빠져든다”며 웃었다.
▮내 손으로 완성하다

가장 쉬워 보였고, 이 정도면 1주일 안에 완성하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시작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2주 꽉 채워 겨우 완성했다. 기본기 연습을 반나절쯤 한 뒤 실전 투입, 8번에 한 번씩, 직물 면적을 좌우하는 코를 늘리거나 줄여 마름모꼴을 만들어야 하는데, 처음엔 그 8번을 제대로 못 셌다. 잠깐 딴생각을 하면 흐름을 놓쳤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나도 모르게 갑자기 코 하나 사라지거나 실이 꼬여 엉망이 된 적도 여러 번. 혼자 수습해보겠다고 호기롭게 풀었다가 결국은 처치 곤란 상태로 뜨개방에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도와주세요!!” 정규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인데, 그 주엔 두 번 갔다. 분명히 제대로 알아들었다고 여긴 것도 집에 와서 해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헷갈렸다. 내 기억력에 극심한 회의감이 들었다.
그렇게 좌충우돌 일주일쯤 하고 났더니 드디어 ‘느낌’이 왔다. 손에 익으니 속도가 붙고, 무늬도 제법 일정하게 나왔다. 내가 뭔가를 만들고 있긴 하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몇 배로 재미있어졌다. 밥 먹다가도, 운전하다가도 뜨개질 생각이 떠올랐다. 집중해서 하다 보면 정말 어느 순간 잡생각이 다 날아갔다. 수강생들이 말하던 ‘무아지경’의 상태가 바로 이거구나!
‘이상해도 괜찮다. 난 초보니까’ 하며 스스로를 세뇌하며 겨우 길이 1m 목도리를 완성했다(사진). 하루 평균 30분~1시간가량 투자했으니 직장인도 충분히 할 만하다. 목도리에는 누가 봐도 이상해 보이는 데가 ‘천지빼까리’였지만 해냈다는 성취감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와, 드디어 다했어요!”를 외치자 뜨개방 동료들이 “처음인데 진짜 잘했네” “잘 어울려요” 한마디씩 칭찬을 보탠다.
▮가성비와 성취감 사이
사실 뜨개질은 가성비를 따지면 답이 없다. 목도리 재료비를 들으면 십중팔구 “그냥 사지?”라는 말을 가장 먼저 했을 정도. 실값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니트 상의 하나 만드는 데는 10만~20만 원 정도 든다. 목도리도 3만 원부터 10만 원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실뭉치 하나가 대략 4000원부터 시작하지만 긴 시간과 노동력을 투입하다 보니 대부분 ‘괜찮은’ 수준의 실을 택한다는 것이 최 대표의 설명이다.
군대에서 배운 뜨개질에서 얻은 삶의 지혜를 풀어낸 에세이집 ‘오늘도 한껏 무용하게’를 펴낸 이성진 작가는 뜨개질 가성비 논란을 무찌를 무기로 희소성을 꺼내 든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커스터마이즈드 리미티드 에디션’. 10만 원 들여 어머니께 목도리를 만들어 선물한 뒤 본 어머니의 미소를 생각하면 가성비는 백 점짜리라는 게 이 작가의 대답이다.
직접 해보니 성취감이 장난 아니다. 쓸모 있는 무언가를 완성했다는 즐거움이 제법 크다. 물론 주머니는 홀쭉해진다. 최 대표는 “누군가 뜨개질은 방구석 골프라고 했다. 비용이 만만찮게 들지만 그만큼 즐거움이 크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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