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전쟁으로 원유 공급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국제유가가 4년 만에 최대 폭으로 급등했다. 핵심 해상 운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차단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형 정유시설이 이란의 드론 공격을 받으며 중동 지역의 공급 위협이 부각됐다.

2일(이하 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이날 장 초반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했다. 디젤 선물은 한때 20% 이상 급등했다.
이날 미군 연료 공급 프로그램을 위해 중동에서 운항하는 미국 국적 유조선 한 척이 공격을 받았고 전날에는 최소 4척의 선박이 공격 대상이 됐다. 미 해군은 위협 수준을 “치명적”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사우디 국영 에너지기업 아람코는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라스타누라 정유공장 가동을 중단했다고 발표했다. 사우디 국영 통신사는 해당 시설을 겨냥한 이란의 드론 두 대가 요격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파편으로 정유공장에 “제한적인” 화재가 발생했지만 불은 “즉시 진화됐다”고 보도했다. 사우디 에너지부는 성명을 통해 해당 시설 가동 중단이 피해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예방 조치라고 설명했다.
라스타누라 공장은 유럽에 디젤 등 운송용 연료를 공급하는 핵심 시설이며 휘발유도 소량 생산한다. 인근에는 원유 및 석유제품 수출을 위한 아람코 최대 터미널이 있고 저장 탱크와 항만 접안시설, 해상 적재 설비 등이 갖춰져 있다.
다만 인근 항구에서의 수출용 원유 수송은 지속됐다. 블룸버그의 유조선 추적 자료에 따르면 라스타누라 해상 터미널과 인근 주아이마 계류시설을 통한 원유 수출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 6개의 계류시설이 모두 가동 중이며 초대형 유조선 두 척과 중형 아프라막스 유조선 한 척이 해상 터미널에서 원유를 선적하고 있다.
사우디의 에너지 시설은 과거에도 공격 대상이 된 바 있다. 지난 2019년 9월에는 드론과 미사일 공격으로 아브카이크와 쿠라이스 시설이 피해를 입어 사우디 원유 생산의 절반 이상이 일시 중단됐다. 라스타누라 역시 2021년 이란과 연계된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을 받은 바 있다.
이란은 지난달 27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중동 각국을 향해 수백 기의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했다. 현재 전 세계 해상 수송량의 약 20%를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번 유가 급등 폭은 2022년 초 이후 최대 수준이지만 향후 흐름은 불확실하다. 유가 상승 폭이 더 크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지난 1년간 석유 공급량이 높은 수준이 유지됐다는 점이 꼽힌다. 이날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러시아의 핵심 원유 터미널에서 선적 작업이 중단된 점도 또 다른 공급 리스크로 작용했다.
리스크 정보 업체 베리스크메이플크로프트의 토르비요른 솔트베트 중동 담당 수석 애널리스트는 “사우디 라스타누라 정유공장 공격은 중대 긴장 고조를 의미하며 걸프 지역 에너지 인프라가 이제 이란의 직접적인 표적이 됐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번 공격은 사우디와 인접 걸프 국가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 작전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날 대이란 공습이 4~5주 이어질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에너지 시장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유조선 운항 재개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JP모건은 해협 폐쇄가 25일 지속될 경우 산유국들의 저장 탱크가 가득 차 생산 감축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A/S글로벌리스크매니지먼트의 아르네 로만 라스무센 수석 애널리스트는 “전쟁과 해상 봉쇄가 길어질수록 시장에는 점점 더 큰 불안이 스며들 것”이라며 “오늘 추가 상승 여지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씨티그룹은 이날 개장 전 “기본 시나리오에서는 최소 향후 일주일 동안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80~90달러 범위에서 거래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이란 지도부 교체, 또는 정권 변화로 전쟁이 1~2주 내 종료되거나 미국이 이란의 미사일 및 핵 프로그램을 약화시킨 뒤 긴장을 완화하는 시나리오를 기본 전망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모건스탠리는 2분기 브렌트유 전망치를 기존 배럴당 62.50달러에서 80달러로 상향조정했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우드맥킨지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유조선 운항이 빠르게 재개되지 않을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전날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는 4월부터 하루 20만6000배럴을 증산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우드맥킨지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상태라면 증산으로 인한 추가 공급 물량이 시장에 투입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장기간 지속되면 전 세계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위험이 있다. 이는 물가 상승과 고용 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포함해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셈법을 한층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최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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