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마을·땅·집] 시골엔 ‘부자 동네·가난한 동네’ 따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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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선 어느 지역, 어떤 브랜드 아파트 단지에 사느냐가 곧 그 사람의 경제적·사회적 위치를 대변하는 명함이 된다.
그 마을 인심이나 풍토를 따질 것 없이 같은 문중이나 정치적 견해, 학파가 같은 사람들 틈으로 가야만 인간 대접을 받고 살 수 있다는 조언이다.
그곳에 입주한 사람 가운데 도시 아파트 브랜드를 자랑하듯 자신의 마을에 강한 자부심을 가진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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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원주민과 단절 … 고립 자처
고급 단지 우월감은 도시식 잣대

“스스로 섬이 되고 싶은 건 아닌지요?”
도시에선 어느 지역, 어떤 브랜드 아파트 단지에 사느냐가 곧 그 사람의 경제적·사회적 위치를 대변하는 명함이 된다. 고급 단지에 입성해 살면 은근한 우월감을 가진다.
시골은 도시처럼 부자만 따로 모여 사는 마을은 없다. 마을 안에 누구네 집이 부자인지 손꼽을 수는 있어도 동네 자체를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로 선을 긋지 않는다.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역사에서 ‘배타적 거주’의 유전자가 강했던 시기도 있었다. 조선시대 사대부는 문중끼리 집성촌을 이루며 철저히 외부인을 경계했다. 다른 성씨가 그 틈에 끼어 살려다 텃세와 왕따를 견디다 못해 떠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이중환의 인문지리서 ‘택리지(擇里志)’에 이런 분위기를 소개한 글이 있다.
“향촌에 살려 할 때 인심이나 풍토가 잘 맞지 않더라도 도리 없이 ‘색목(色目)'이 같은 이들이 많은 곳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남과 어울려 담소를 나누고 학업을 닦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색목’이란 당파를 뜻한다. 그 마을 인심이나 풍토를 따질 것 없이 같은 문중이나 정치적 견해, 학파가 같은 사람들 틈으로 가야만 인간 대접을 받고 살 수 있다는 조언이다. 조선의 마을은 학문과 이념의 ‘섬’이었던 셈이다.
우리의 시골 마을도 속속 전원마을이 생기고 전원주택 단지가 조성되면서 ‘색목’을 따져 사는 집성촌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근래에 경치 좋은 시골 마을에는 ○○빌리지, ○○전원마을처럼 근사한 이름을 내건 새로운 마을이 우후죽순 생겼다. 주로 개발업자가 분양하며 붙인 이름인데, 이런 마을을 대할 때면 기존 원주민이 사는 곳과는 물리적·심리적으로 단절됐다는 느낌이 든다.
그곳에 입주한 사람 가운데 도시 아파트 브랜드를 자랑하듯 자신의 마을에 강한 자부심을 가진 이들도 있다. 자신을 스스로 마을 속 특수한 계급, 특별한 부류로 규정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시골에 직접 예쁜 전원마을을 조성해 친구나 친척을 불러들이고, 일부는 모르는 사람에게 분양해 이웃을 만들어 사는 사람을 안다. 그는 동네일에 앞장서 목청을 높이는 성향도 아니고, 원주민과 유난스레 어울리지도 않는다. 주민 대다수가 이 아름다운 마을을 일군 주인공이 그라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산다. 누가 봐도 탐나는 풍경을 가진 마을이지만 특이하게도 이 마을에는 그 흔한 ‘이름표’, 간판이 없다.
그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마을이 참 예쁜데 멋진 이름 하나 지어 붙이지 왜 마을 이름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입주민 중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극구 말렸다”면서 마을 이름을 짓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미 수백년 전부터 내려오는 마을 이름이 있는데 새로 지으면 마을 속에 따로 노는 하나의 섬이 될 것 같아 싫었어요.”
그러고 보면 귀농·귀촌해 살며 스스로 섬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김경래 OK시골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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