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가 2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에 나선다. 대표 취임 이후 처음으로 회사 주식을 직접 매입하는 것으로, 실적 부진과 주가 약세로 누적된 주주 불만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익잉여금 감소와 자사주 활용 제한으로 기존 주주환원 수단이 막힌 상황에서 책임경영에 나선 대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호텔신라의 마지막 주주 달래기 카드
27일 호텔신라에 따르면 이 대표이사는 약 200억원 규모 보통주를 장내에서 매수할 계획이다. 거래 개시일은 4월27일이며 약 30일간 분할 매입 방식으로 진행된다. 매입 규모는 총 47만주로, 보고서 제출일 전일 종가 기준 약 200억6900만원 수준이다.
호텔신라 운영총괄을 맡고 있는 한인규 사장도 2억원 규모 보통주 약 4800주를 매입하며 경영진 차원의 책임경영에 동참했다.
이 대표가 호텔신라 주식을 직접 매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1년 대표이사 취임 이후 6연임에 이르기까지 자사주 매입에 나선 적은 없었다. 그동안 배당 유지와 자사주 취득 등 간접적인 방식의 주주환원을 이어왔지만, 이번에는 개인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접근을 바꿨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 같은 변화 배경에는 확대된 주주 불만이 자리하고 있다. 호텔신라는 지난해 매출 4조700억원, 영업이익 135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는 성공했지만 수익성 회복 속도는 더딘 상황이다. 특히 면세(TR) 사업은 중국 소비 위축과 여행 수요 회복 지연 영향으로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주주환원 여력 자체도 크게 줄었다. 인천공항 면세점 DF1 구역 철수 과정에서 약 2302억원 규모 비용이 반영되며 별도 기준 당기순손실이 2000억원대를 기록했고, 이익잉여금은 2024년 말 2093억원에서 지난해 말 11억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과거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확보했던 자사주 역시 교환사채(EB) 담보로 활용되며 사실상 묶여 있어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 등 추가적인 환원 정책을 단기간 내 추진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진의 자사주 매입은 현실적으로 활용 가능한 거의 유일한 대응 카드로 꼽힌다. 회사 차원의 환원 수단이 제한된 가운데 이 대표 개인 자금을 활용한 지분 확대를 통해 시장 신뢰를 보완하려는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상속세 종료 맞물린 ‘매도→매수’ 전환
이번 매입은 삼성가 상속세 납부 일정과도 맞물린다.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 삼성가 유족들은 2021년부터 연부연납 방식으로 상속세를 납부해왔으며, 다음달 이를 마무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이 대표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 계열사 지분을 매각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해왔다. 이번 호텔신라 지분 매입은 개인 자금을 활용한 것으로, 상속세 납부 종료 이후 지분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책임경영 의지를 강화하는 행보로 해석된다.
또한 이번 매입은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이 대표가 사내이사로 재선임된 직후 이뤄졌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연임 이후 첫 자금 투입이라는 점에서 단순 메시지를 넘어, 경영 성과에 대한 이해관계를 직접적으로 높이는 조치로 평가된다.
매입해도 1%대…지배력 영향은 제한적
다만 이번 매입이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이번 거래로 확보 가능한 지분은 약 1.18% 수준이다. 기존 삼성생명(7.3%), 삼성전자(5.1%), 삼성증권(3.1%) 등을 포함한 특수관계인 지분은 약 16.9%에서 18% 수준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다만 소액주주 비중이 70%를 웃도는 점을 고려하면 의결권 구조에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일정 부분 긍정적 신호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호텔신라 주가는 과거 10만원대를 상회하던 수준에서 최근 3만~4만원대까지 하락하며 장기 약세 흐름을 이어왔다. 이러한 구간에서 경영진이 직접 매입에 나선 만큼 현 주가 수준에 대한 저평가 인식이나 바닥 신호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는 평가다.
관건은 이번 매입이 일회성에 그칠지 여부다. 현재 재무 구조를 감안할 때 배당 재개나 자사주 소각 등 추가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향후 추가 매입이나 중장기 주주환원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핵심 변수로 꼽힌다.
한편 27일 호텔신라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0% 이상 상승하며 4만6000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경영진의 자사주 매입이 투자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경영진의 주식 매입은 주주가치 제고와 책임경영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며 “주주 신뢰를 강화하고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석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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