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의 공동개발, 유지되지만 축소된 참여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함께 진행 중인 차세대 전투기 KF-21 보라매 공동개발 사업에서 발을 완전히 빼지 않았다. 2021년 이후 분담금 미지급 문제로 협력 관계가 흔들리면서 사업 탈퇴설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지난 6월 양국은 분담금을 일부 조정하는 방식으로 합의점을 찾았다. 그 결과 인도네시아는 공동개발 지분을 축소하되 최소한의 참여를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인도네시아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크게 줄었고, 기술 이전 범위 역시 일부 축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공군 조종사가 직접 KF-21 시제기 시험비행에 참여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양국 협력 관계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인도네시아가 완전히 발을 빼지 않고 전투기 개발 경험과 기술 축적을 동시에 노리는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터키 KAAN 전투기 48대 도입 확정
그러나 불과 한 달 뒤, 인도네시아는 또 다른 결정을 내놓아 국제 사회를 놀라게 했다. 한국과의 공동개발을 이어가면서도 동시에 터키가 개발 중인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KAAN 48대 도입 계약을 확정한 것이다. 단순 구매를 넘어 기술 협력과 일부 현지 생산까지 포함된 이번 계약은 인도네시아 국방 전략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준다.
인도네시아 국방부는 “국방 자립과 장기적 안보 강화를 위한 필수적 선택”이라고 강조했지만, 전문가들은 한국과 터키 사이에서 전략적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인도네시아가 KAAN을 도입함으로써 단기간 내 전투기 전력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정 부담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왜 두 가지 선택을 동시에 했나
인도네시아의 이중 선택은 리스크 분산 전략으로 풀이된다. KF-21은 현재 시제기 단계에서 비행시험을 진행 중이며 안정성을 입증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양산과 실전 배치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반면 KAAN은 터키가 서방과 독자적 노선을 걷기 위해 집중 투자 중인 프로젝트로, 인도네시아가 빠르게 전력화를 시도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올랐다.
또한 두 개의 공급망을 동시에 확보하면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협상 과정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방산 외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다리 전략’의 전형적인 사례다. 인도네시아는 이를 통해 단기적 전력 공백을 KAAN으로 메우고, 중장기적으로 KF-21 개발 참여를 통해 기술 이전 효과를 얻으려는 것이다.

KF-21과 KAAN의 차별성
KF-21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 중인 4.5세대급 전투기로, 이미 안정적인 시험비행에 성공해 기본적인 성능을 입증했다. 특히 합리적인 가격과 업그레이드 가능성, 그리고 동맹국과의 연합 작전 호환성에서 장점을 지닌다. 반면 KAAN은 완전한 5세대 스텔스 전투기를 목표로 설계되어 스텔스 성능과 장거리 작전 능력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다만 KAAN 역시 아직 양산 단계에 도달하지 않았고, 유지비와 신뢰성 측면에서는 검증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KF-21은 실용성과 안정성을, KAAN은 미래지향적 기술과 스텔스 성능을 강조하는 상반된 강점이 있다”고 분석한다. 인도네시아 입장에서는 두 기체를 동시에 활용해 안정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방산 외교 경쟁 구도 속 인도네시아의 선택
이번 인도네시아의 결정은 단순한 무기 구매가 아니라 방산 외교의 경쟁 구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KF-21을 통해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를 발판 삼아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려 한다.
반면 터키는 KAAN을 앞세워 독자적 기술력과 자국 중심의 방산 생태계를 구축하며 새로운 고객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이 두 강국 사이에서 모두와 협력하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기술 이전, 현지 생산, 외교적 협상에서 최대 이익을 얻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무기를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 국가 전략 자산으로서 방산 외교를 활용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운영 효율성과 유지비다. 서로 다른 기종인 KF-21과 KAAN을 동시에 도입하면 정비 체계, 부품 공급, 훈련 시스템 등에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이러한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국방 자립이라는 장기 목표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두 기종을 병행 운용하면서 기술적 경험을 축적한다면, 인도네시아 항공산업이 독자적 성장을 이루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외교적 리스크도 존재한다. 특정 시점에 한국이나 터키와의 관계가 악화된다면, 관련 무기체계의 안정적 운용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가 양다리 전략을 통해 당장은 이득을 얻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효율성과 일관성 확보가 관건”이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