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벤지펜 자가토, 독일 기술과 이탈리아 감성이 빚어낸 단 하나의 그랜드 투어러
2025년 5월, 세계적인 클래식카 행사인 ‘콘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Concorso d’Eleganza Villa d’Este)’에서 자동차 애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새로운 그랜드 투어러가 공개됐다. 전 세계 자동차 디자이너와 수집가들이 모이는 이 자리에서 베일을 벗은 차량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름을 달고 등장했다. 바로 ‘보벤지펜 자가토(Bovensiepen Zagato)’다.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BMW 8시리즈의 변형 모델이나 커스텀 머슬카 정도로 오해할 수 있지만, 실상은 완전히 다르다. 이 차량은 BMW M4 쿠페를 기초로 제작된, 전혀 새로운 차원의 코치빌트 GT 모델이다. 독일의 고성능 브랜드를 이끌었던 보벤지펜 가문과, 이탈리아 디자인 명가 자가토가 협업해 만든 이 차량은 그 자체로 자동차 문화에 대한 하나의 선언이기도 하다.


브랜드의 부활, ‘보벤지펜’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
‘보벤지펜(Bovensiepen)’이라는 이름은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BMW 팬들에게는 낯익은 이름이다. 이는 바로 고성능 브랜드 ‘알피나(ALPINA)’를 만든 창립 가문이기 때문이다. 알피나는 수십 년간 BMW와 협업하며 고급스러움과 퍼포먼스를 조화시킨 차량들을 만들어왔고, 2022년 BMW가 알피나를 공식 인수하면서 브랜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자동차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은 보벤지펜 가문은 BMW 브랜드를 떠나 독자적인 브랜드를 출범시키며, 새로운 출발점에서 첫 번째 프로젝트로 ‘보벤지펜 자가토’를 선보였다. 이번 차량은 과거 알피나가 보여주었던 정교한 퍼포먼스와 장인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디자인 언어와 제작 방식으로 탄생한 모델이다. 이 차량은 BMW의 로고도 달지 않고, 오히려 독립적인 정체성을 부여받은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가토와의 협업, 코치빌트의 정수
보벤지펜 자가토는 단순히 성능 좋은 BMW M4를 기반으로 만든 튜닝카가 아니다. 이 프로젝트는 독일의 엔지니어링과 이탈리아 디자인의 만남으로, 각각의 가문이 지닌 철학과 미학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다. 자가토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이탈리아 코치빌더로, 페라리, 애스턴 마틴, 알파로메오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과 함께 유서 깊은 리미티드 모델을 제작해온 장인들의 집단이다.
이들은 자사의 시그니처 요소인 ‘더블 버블 루프’와 독창적인 차체 라인을 통해 차별화된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번 보벤지펜 프로젝트에서도 그 기조는 그대로 이어졌다. 자가토는 M4라는 강력한 스포츠카의 뼈대 위에 전혀 새로운 조형을 입혀, 브랜드의 정체성을 완전히 재정립했다. 이는 외형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차량의 구조와 성격까지 바꾸는, 진정한 의미의 코치빌트 차량이라 할 수 있다.

외형 변화, BMW의 흔적을 지운 독립적 조형
보벤지펜 자가토의 외관은 BMW M4를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을 알고 보지 않는 이상,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전면 디자인에서 BMW 특유의 더블 키드니 그릴은 과감히 제거되었고, 그 자리를 절제된 수평형 그릴이 대신하면서 전혀 다른 인상을 만들어냈다. 전면부와 측면 라인은 전기차 BMW i8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유려한 형상이지만, 전체적으로 훨씬 더 단단하고 클래식한 비율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후면 디자인에서는 얇은 LED 스트립 형태의 리어램프가 인상적이며, 이 부분은 알피나 모델에서 볼 수 있었던 디자인 요소를 계승한 것이다. 차체 전반은 고급 카본 파이버로 제작되어 시각적인 고급스러움을 더함과 동시에, 전체 중량을 줄이는 데도 기여했다. 다만, 커스텀 차체 구조와 복합 소재의 사용으로 인해 최종 중량은 1,875kg으로 M4보다 약간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내는 수제작의 품격으로 완성된다
차량 내부는 기본 구조상 BMW M4의 구성을 일부 공유하지만,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고급스러움이 감지된다. 보벤지펜 자가토는 고객이 원하는 소재, 색상, 패턴 등을 기반으로 완전히 맞춤형으로 실내를 제작하며, 이 작업에는 무려 250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공개된 차량의 경우 짙은 블루 계열의 가죽과 알칸타라 소재가 고급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고객은 총 16가지 가죽 색상과 45가지 알칸타라 색상 중에서 원하는 조합을 선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맞춤형 자수나 도어 패널 장식, 금속 트림까지 전부 개인화가 가능하다. 이러한 고도의 커스터마이징은 이 차량이 단순한 스포츠카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오너의 취향을 반영한 ‘주문형 GT’임을 보여준다.


성능, M4를 넘어서다
보벤지펜은 공식적으로 어떤 M4 트림을 기반으로 했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탑재된 파워트레인은 기존 M4의 3.0리터 직렬 6기통 트윈터보 엔진을 대대적으로 튜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엔진은 최고출력 611마력, 최대토크 700Nm를 발휘하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3.3초면 충분하다. 이는 기존 M4 컴페티션이나 M4 CSL을 뛰어넘는 수치로, 단순히 외형만 바꾼 차량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배기 시스템은 티타늄으로 제작된 아크라포비치 제품이 적용되어 기존 대비 40% 더 가벼운 22kg의 무게를 갖췄고, 고속 주행 시에도 섬세한 사운드를 유지한다. 서스펜션은 빌슈타인과 공동 개발한 댐프트로닉 시스템이 적용되어, 컴포트,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등 다양한 주행 모드를 지원하며, 그랜드 투어러로서의 안락함과 퍼포먼스를 모두 만족시키는 주행 특성을 제공한다.


한국 시장에서 만날 수 있을까?
보벤지펜 자가토는 현재로서는 한국 시장에서 공식적으로 출시될 가능성이 극히 낮다. 브랜드 자체가 BMW와 별개의 독립 브랜드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번 모델은 매우 한정된 수량만 생산될 예정이다. 게다가 BMW 본사와 연계된 글로벌 인증 시스템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정식 수입 절차를 거쳐 국내에 들어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가장 현실적인 가능성은 해외 컬렉터가 차량을 구매해 개인 통관을 통해 한국에 반입하는 경우지만, 이 역시 인증과 유지 관리의 어려움으로 인해 대중적인 구매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공식 출고는 2026년 2분기 말로 예정되어 있으며, 구체적인 가격과 생산 수량은 2025년 하반기에 공개될 예정이다. 다만, 차량의 성격상 수억 원대를 훌쩍 넘는 가격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보벤지펜 자가토가 보여주는 고급 GT의 새로운 방향
보벤지펜 자가토는 튜닝카도, 단순한 리미티드 모델도 아니다. 이 차량은 고급 자동차 문화가 추구하는 ‘코치빌트’ 정신을 가장 정통적으로 구현한 사례이며, 브랜드 철학, 디자인 유산, 성능, 장인정신이라는 네 가지 요소가 고르게 융합된 진정한 의미의 그랜드 투어러다.
한국 도로에서 이 차량을 볼 일은 드물겠지만, 자동차 산업의 다양성과 고급화 흐름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 모델은 매우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과거 알피나가 보여줬던 고성능과 품격의 공존, 그 정체성을 이제는 보벤지펜이라는 이름 아래, 자가토와 함께 더욱 예술적인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다.
세상에 몇 대밖에 존재하지 않을 코치빌트 GT. 그것이 바로 보벤지펜 자가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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