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배신했지만 한국은 다르다", 사우디가 한국 잠수함에 반한 이유

출처: 중앙일보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한 2025 국제해양방위산업전에서 놀라운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하얀 해군 군복을 차려입은 중동인들이 한화 부스로 몰려왔고,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 바로 모하마드 알 가리비 사우디아라비아 해군참모총장이었습니다.

그가 한화오션의 3600톤급 장보고-III 배치-II 잠수함 모형을 유심히 살펴보며 던진 질문은 단도직입적이었습니다.

"이 잠수함을 우리한테 수출할 수 있는가?" 정승균 한화오션 특수선해외사업단장의 긍정적인 답변에도 불구하고, 모하마드 총장은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독일에서 잠수함을 도입하려다 좌초된 적이 있다. 다시 묻겠다. 수출 가능한가?" 이 질문 속에는 사우디의 복잡한 속사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정 단장이 "당연히 가능하다"고 재차 확답하자, 그는 밝은 얼굴로 정 단장의 두 손을 붙잡았습니다.

이 순간은 사우디가 왜 한국 잠수함에 주목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한국산 잠수함에 이렇게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배경에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습니다.

사우디는 단순히 좋은 무기를 사고 싶다는 차원을 넘어서, 지정학적 변화와 기술적 요구, 그리고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모두 얽혀 있는 상황입니다.

독일과의 계약 좌초, 뼈아픈 교훈


사우디 해군참모총장이 언급한 "독일에서 잠수함을 도입하려다 좌초된 적"은 사우디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사건입니다.

사우디는 2014년 독일 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스(TKMS)와 최대 20억 유로 규모의 209급 잠수함 도입 계약을 추진했지만, 독일 정부의 수출 승인 거부로 무산되었습니다.

209급 잠수함

당시 독일은 사우디의 예멘 개입과 인권 문제를 이유로 무기 수출을 제한했고, 이로 인해 사우디의 해군 현대화 계획은 큰 차질을 빚었습니다.

더욱 치명적이었던 것은 이미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계약이 취소되면서 사우디가 입은 손실이었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사우디는 이제 정치적 조건 없이 확실하게 수출해줄 수 있는 파트너를 찾고 있는 상황이죠.

독일의 거부는 사우디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나라라도 정치적 이유로 언제든지 약속을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사우디는 무기 도입에서 정치적 안정성을 최우선 고려 요소로 삼게 되었고, 이런 맥락에서 한국이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한국 잠수함 기술의 놀라운 발전


한국이 사우디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잠수함 기술력입니다.

장보고-III 배치-II는 3600톤급 대형 잠수함으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한 최신형 디젤-전기 추진 잠수함입니다.

장보고3 배치2

이는 기존의 납산 배터리보다 용량이 크고 충전 시간이 빠르며, 무엇보다 수중 지속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된 혁신적 기술입니다.

특히 한국이 자체 개발한 수중발사 탄도미사일 현무-4-4와 수중발사 순항미사일 현무-3C 등을 탑재할 수 있어, 사우디가 원하는 전략적 억제력 확보에 매우 적합합니다.

더욱이 한국의 잠수함은 독일이나 프랑스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성능 면에서는 전혀 뒤지지 않는 뛰어난 가성비를 자랑합니다.

정승균 단장이 전 해군 잠수함사령관 출신이라는 점도 사우디에게는 큰 신뢰 요소였을 것입니다.

실제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전문적인 조언과 기술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사우디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었습니다.

한국의 잠수함 기술은 이제 단순히 '아시아의 기술'이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로 인정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홍해와 페르시아만, 새로운 해양 전략의 필요성


사우디아라비아가 잠수함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변화하는 지역 안보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홍해와 페르시아만이라는 두 개의 중요한 해역을 끼고 있는 사우디에게 해양 안보는 국가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특히 최근 후티 반군의 홍해 상선 공격이 빈발하면서 해상 교통로 보호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란과의 지역 패권 경쟁도 사우디의 해군력 강화 의지를 자극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란이 페르시아만에서 비대칭 전력으로 다양한 위협을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우디는 수중에서 은밀하게 작전할 수 있는 잠수함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잠수함은 단순한 공격 무기가 아니라 적의 해상 활동을 견제하고 자국의 해상 교통로를 보호하는 전략적 억제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또한 사우디의 '비전 2030' 계획에 따라 홍해 연안에 대규모 관광 개발 프로젝트인 네옴시티가 건설되고 있어, 이 지역의 해상 보안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잠수함은 사우디의 새로운 해양 전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치적 조건 없는 파트너, 한국의 매력


한국이 사우디에게 매력적인 무기 공급국으로 떠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조건을 걸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독일이나 다른 유럽 국가들이 인권 문제나 지역 분쟁 개입을 이유로 무기 수출을 제한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계약 이행에 대한 신뢰성이 높습니다.

이는 사우디 같은 국가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입니다.

더욱이 한국은 사우디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양국 간에는 에너지 협력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이익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사우디가 한국의 주요 원유 공급국이고, 한국이 사우디의 산업 다각화에 기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산 협력은 자연스러운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한국의 방산업체들이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도 사우디에게는 큰 장점입니다.

사우디는 '비전 2030'의 일환으로 방산업 자립도를 높이려 하고 있어, 단순한 완제품 수입보다는 기술 이전을 통한 현지 생산 능력 확보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 기업들의 이런 개방적 태도는 사우디의 장기적 목표와 완벽하게 부합합니다.

중동 방산 시장의 새로운 판도


사우디의 한국산 잠수함 도입 검토는 중동 방산 시장의 지형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전통적으로 미국과 유럽 제품이 주도했던 중동 방산 시장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급속히 커지고 있습니다.

이미 UAE에 천궁-II 방공 시스템을 수출하고, 사우디에도 32억 달러 규모의 천궁-II 수출 계약을 체결한 상황에서 잠수함까지 더해진다면 한국은 중동의 핵심 방산 파트너로 자리잡게 됩니다.

천궁2 방공시스템

특히 사우디는 중동 지역에서 가장 큰 국방비를 지출하는 국가 중 하나로, 이들의 선택은 다른 중동 국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만약 사우디가 한국산 잠수함을 도입하고 성공적으로 운용한다면, 이는 다른 아랍 국가들에게도 강력한 참고 사례가 될 것입니다.

또한 사우디의 잠수함 도입은 지역 군비 경쟁을 더욱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란이 이미 상당한 잠수함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우디의 잠수함 도입은 페르시아만 지역의 수중 전력 균형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 방산업의 글로벌 도약 신호탄

사우디 해군참모총장이 정승균 단장의 손을 붙잡았던 그 순간은 단순한 관심 표명을 넘어서 한국 방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습니다.

잠수함은 방산 분야에서 가장 복잡하고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이런 첨단 무기 체계에서 사우디 같은 주요국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한국의 방산 기술이 이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음을 의미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 접촉이 일회성 관심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사우디의 해군 현대화 계획은 이제 시작 단계에 있으며, 향후 10년간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예상됩니다. 한국이 이 시장에 발판을 마련한다면, 그 파급효과는 상상 이상일 것입니다.

결국 부산 마덱스에서 벌어진 이 만남은 한국 방산업이 이제 글로벌 무대에서 진정한 플레이어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탄이었습니다.

사우디가 한국 잠수함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좋은 제품 때문만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한국의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