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부러워할 한국 농업의 혁신, 모를 덜 심는데 쌀 생산량은 20% 늘어"

전북 김제 백산농협 강원구 조합장
백산농협 강원구 조합장. /더비비드

40여년 전만 해도 소로 논을 갈고, 바짓단을 추켜 올린 채 논에 들어가 모내기를 해야 했다. 이제는 경운기, 트랙터, 콤바인 등 농기계 없는 농사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심지어 드론이나 헬기를 띄워 약을 치기도 한다.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농협 강원구(66) 조합장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산 증인이다. 지켜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김제시 최초’ 타이틀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농기계 활용, 육묘장 설치, 드론·항공 방제를 모두 직접 주도했다. ‘전국 최초’로 도입한 농법도 있다. 모를 조금씩 띄엄띄엄 심는 이른바 ‘드문모 재배’를 전국 최초로 시도해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강 조합장을 만나 농사의 진화 과정을 들었다.

◇적게 심어도 많이 나와

김제시 백산면 어느 논의 풍경. 이제 막 모내기를 마쳐 마치 작은 호수를 보는 듯하다. /더비비드

전북 김제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평야 지역이다. 2022년 기준 김제시의 논 면적은 약 2억㎡로 전체 논 면적 대비 비율은 2.68%다. 충남 당진시(2.75%)에 이은 2위다. 같은 해 김제시의 논벼 생산량은 9만9676t을 기록했다. 이를 쌀로 바꿔보면 약 93만4000가마에 달하는 양이다.

드문모 심기로 이앙한 모의 간격을 확인하기 위해 손을 펼쳐봤다. 모 간격은 약 21㎝다. /더비비드

김제시 백산면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드문모 심기 농법을 도입한 지역이다. 기존 이앙 재배 기술은 약 4000㎡의 면적에 약 120개의 육묘 상자가 필요한 반면, 드문모 심기의 경우 같은 면적에 약 40개의 상자면 충분하다. 한 주에 심기는 모의 개수를 기존 15개에서 3~5개로 줄이고, 모의 간격도 10㎝정도 넓혀 21㎝ 정도로 띄워 심는다. 주당 간격이 넓기 때문에 바람이 잘 통하고 모든 벼가 볕을 골고루 받을 수 있다. 넓어진 공간만큼 가지를 더 쳐서 생산량이 증가하고 미질이 뛰어나다는 장점도 있다.

◇’밀묘 소식’에서 ‘드문모 심기’로

육묘장에서 칸칸이 쌓인 모를 바라보는 강 조합장. /더비비드

강 조합장은 마흔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조합장이 됐다. 올해로 27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합원들의 신망도 두텁다. 2011년 백산농협이 큰 적자를 봤을 때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3억원을 모아 자금을 마련해 위기를 넘긴 일도 있다. 신뢰 관계의 주춧돌은 ‘농사’다. 강 조합장은 2006년 육묘장을 설치하고 2007년 항공 방제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농법을 선도적으로 시도해 농가 소득 확대에 기여했다.

2016년에는 한국농수산대학 식량작물학과 박광호(67) 교수의 제안으로 드문모 심기에 도전했다. 일본에서는 한 필지(약 4000㎡)의 논에 육묘 상자 30판을 심고 있다는 말이 도화선이 됐다. 당시 백산면에서는 한 필지에 120판을 심고 있었다. 강 조합장은 “그때까지만 해도 정확한 명칭도 없어서 ‘밀식으로 적게 심는다’는 뜻으로 ‘밀묘 소식’이라 불렀다”고 설명했다.

2018년 5월 강 조합장이 직접 이앙기를 몰고 드문모 심기를 시연하고 있다. /백산농협

강 조합장과 일부 임원진의 땅 약 13만2231㎡(약 4만평)를 실험실 삼아 드물게 모를 심었다. 휑한 논을 보며 주위 농민들 사이에서는 “농사 망쳤다”, “지금이라도 갈아엎고 다시 심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예상과 달리 20여 일뒤 드물게 심은 논과 기존 논은 거의 같은 모습이 됐다. 수확량은 기대 이상이었다. 더 적게 심었는데도 기존 방식보다 10~20% 가량 수확량이 늘었다.

소문은 김제시는 물론 인근 지역까지 금세 퍼졌다. 한국농수산대 학생들, 충남·전남 지역 농민들이 찾아와 구경할 정도였다. 강 조합장은 이 노하우를 조합원에게 그대로 전수했다. 새로운 농법을 시도한 지 2년 만에 농촌진흥청의 제안으로 ‘드문모 심기’라는 이름이 정해졌다.

◇매출이 줄어도 손해는 아냐

드문모 심기 방식으로 이앙하는 모습. /더비비드

현재 김제시 백산면의 농지 규모는 약 800만㎡다. 이중 약 90%의 면적에서 드문모 심기 방식으로 벼를 재배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원가 절감’이다. 약 4000㎡의 논에 심어야 할 육묘판이 120개에서 40개로 줄었기 때문이다. 육묘판 하나에 4000원으로 계산하면 한 필지에 32만원을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역설적으로 ‘드문모 심기’가 백산농협의 경제사업 실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매출로 분류되는 육묘 판매량이 2014년 18만장에서 2024년 7만장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최근 육묘장 두 곳을 폐소하고 창고로 용도를 변경하기도 했다. 강 조합장은 “육묘를 많이 파는 것보다 훨씬 큰 이익을 얻었다”며 “모를 적게 심어도 되니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수 있고 인건비도 절약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손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4000㎡를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아낄 수 있는 비용은, 육묘값 20만원, 인건비 8만원, 이앙 비용 3만원, 농업 경영비 31만원이다. 수확량은 기존 농법 대비 평균 5가마니(약 40만원 상당)가 증가했다. 백산면 전체로 따졌을 때 농가 소득 순 증가액은 약 14억9100만원에 달한다.

◇다시 태어나도 농부가 될테다

드문모 심기의 유일한 단점은 2모작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더비비드

김제시는 전국 최대 논콩 생산지이기도 하다. 2024년 기준 논콩 재배 면적은 5981만㎡로 전국 논콩 생산량의 26%를 차지하고 있다. 드문모 심기의 유일한 단점은 2모작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논벼를 재배했다면 같은 해에 콩을 재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강 조합장은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올해부터 실험해볼 계획”이라며 “1만5000~3만㎡ 정도의 농지에 콩 심을 준비를 마쳤다”고 말했다.

백산농협은 2014년부터 ‘직영 농작업’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농촌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농협이 농작업을 대신 해주는 서비스다. 백산농협에는 육묘·항공방제를 담당하는 전문 인력도 있다. 강 조합장은 “드론·항공 자격증이 있는 전무, 상임이사가 방제하러 다니고, 일손이 부족하면 나도 직접 모를 심으러 다닌다”고 설명했다.

강 조합장은 다시 태어나도 농사를 짓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더비비드

강 조합장의 원동력은 ‘농민’이라는 자부심이다. 지금도 약 20만㎡(약 6만평)의 땅에 직접 농사를 지으며 각종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강 조합장은 “농민들이 조금이라도 경비를 아끼고, 손쉽게 농사를 짓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다시 태어나도 농사를 짓고 싶다”며 웃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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