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부정적 기류에도 주총서 90%대 연임 찬성
시장은 정치 프레임보다 실적·경영 연속성 중시
3연임 금지 법제화는 과잉처방이자 경쟁력 훼손
성과없는 장기집권 막되 성과내면 리더십 인정해야
지난해 말 이재명 대통령의 ‘부패한 이너서클’ 발언 이후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탔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배구조 선진화 태스크포스를 가동했고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말 모범관행을 입법 내용으로 상향하는 형태를 검토 중이라며 4월 중 결론, 10월쯤 시행 가능성까지 언급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금융지주 대표이사의 연임을 1회로 제한해 총임기를 6년으로 묶는 이른바 ‘3연임 금지’ 법안까지 발의됐습니다. 현행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는 대표이사의 연임 횟수나 총임기를 직접 제한하는 규정은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올해 3월 금융지주사들의 정기 주주총회가 보여준 것은 정부와 정치권의 문제의식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우리금융 임종룡 회장은 99.3%, 신한금융 진옥동 회장은 88.0%, BNK금융 빈대인 회장은 91.9%의 찬성률로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진옥동 회장의 경우 과거 신한은행장 재임 시절 ‘라임 사태’로 인해 기업가치를 훼손했다며 국민연금(지분율 9%)이 반대했음에도 높은 지지를 얻어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제도와 CEO를 바꾸려 하지만 시장은 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숫자로 확인된 셈입니다.
이 결과를 이상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주주는 정치의 언어보다 실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주요 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은 40~70%대에 이르고,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올해 4대 금융지주 주총 안건에 일제히 찬성 의견을 냈습니다. 외국인 지분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의 찬성 권고가 나오면 실적과 배당이 좋은 현직 CEO를 굳이 바꿀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작동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이번 주총은 시장이 ‘이너서클’이라는 정치적 프레임보다 실적과 배당, 경영 연속성을 더 중시한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이너서클’ 프레임보다 더 중시하는 것
그래서 금융당국이 유력하게 검토하는 ‘연임 시 주총 특별결의’는 실효성이 제한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특별결의는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동의를 요구하지만 이번 주총의 찬성률은 이미 그 문턱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88%, 91.9%, 99.3%라는 숫자 앞에서 66.7% 장벽은 제도적 상징은 될 수 있어도 실제 저지선은 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특별결의가 도입된 뒤에도 현직 회장이 그 문턱을 넘는다면 그는 단순히 연임한 CEO가 아니라 더 엄격한 심판을 통과한 CEO가 됩니다. 연임을 어렵게 만들겠다며 세운 장벽이 현실에서는 연임의 정당성을 더 강화하는 ‘훈장’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물론 특별결의가 늘 무력한 것은 아닙니다. 바로 그 점이 오히려 더 우려스럽습니다. 과거에는 일반결의였기 때문에 통과됐지만 특별결의였다면 문턱을 넘기 어려웠을 사례가 있습니다. 2020년 조용병 당시 신한금융 회장 연임안의 찬성률은 56.43%였고, 2022년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선임안의 찬성률도 60.4%에 그쳤습니다. 두 경우 모두 당시 채용비리나 라임·DLF 관련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ISS가 반대 권고를 냈고, 실제 표심도 크게 흔들렸습니다.
그 뒤 조용병 전 회장은 채용비리 사건에서 대법원 무죄가 확정됐고, 함영주 회장은 DLF 문책경고 취소가 대법원에서 확정됐으며, 채용 사건의 업무방해 혐의도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단을 받았습니다. 결국 특별결의 체제에서는 최종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제재와 재판 리스크만으로 연임이 좌절되고, 경영 연속성이 끊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더 걱정스러운 대목은 이 구조가 자칫 규제와 정치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키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외국인 지분이 높은 구조에서 금융당국의 중징계, 장기 재판, 검찰 수사 같은 리스크가 붙으면 ISS 같은 글로벌 자문사의 판단이 곧 연임 여부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특별결의는 ‘성과 없는 장기집권’을 막는 장치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최종 결론이 나기도 전에 금융당국이나 정치권력이 유력 후보를 탈락시키는 장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연임 특별결의의 역설과 위험성
대통령과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회장 연임에 대해 거듭 부정적 신호를 보냈음에도 진옥동·임종룡·빈대인 회장이 주총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아 연임하면서 금융당국은 특별결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범관행의 법제화, 사외이사 임기 제한, 총임기 상한, 심지어 3연임 금지까지 논의가 확장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부 설계 하나에 따라 시장 충격이 달라질 수 있는 민감한 국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금융회사 CEO의 총임기까지 법으로 일률 제한하는 방향으로 가면 그것은 지배구조 개선을 넘어 민간기업 경영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로 읽힐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3연임 금지 법제화는 구호에 비해 실익이 크지 않습니다. 금융지주에서 실제 3연임 이상 장기 재임은 애초에 흔한 일이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 김정태 전 하나금융 회장, 김기홍 현 JB금융 회장 정도인데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장기 재임의 명분이 될 만한 뚜렷한 성과를 냈습니다.
윤종규 전 회장은 리딩뱅크 탈환과 비은행 강화, 증권·보험 인수 등을 통해 KB를 다시 리딩 금융그룹 반열에 올려놓았고, 김정태 전 회장은 외환은행 통합과 체질 개선으로 하나금융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김기홍 회장은 JB금융의 수익성을 업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최근 5년간 주가 수익률도 은행계 금융지주 최고 수준입니다. 3연임 사례가 많지도 않은 데다 대부분 성과가 뚜렷하다면 굳이 법으로 일률 금지하는 것이 얼마나 실익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오히려 성과 있는 장기 리더십까지 함께 잘라내 금융산업의 발전을 제약할 우려가 더 큽니다.
더구나 금융업은 본질적으로 장기 전략 산업입니다. 인수·합병, 비은행 포트폴리오 확장,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디지털 전환은 오늘 결정해서 내년 주총 전에 성패를 입증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글로벌 대기업들도 CEO에게 그렇게 짧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미국 S&P500 기업 CEO의 평균 재임기간은 7.6년입니다. 대한민국 금융지주 CEO만 법으로 총 6년을 넘지 못하게 묶는다면 장기 전략을 짜고 실행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3년짜리 단기 성적표만 맞추라는 것인지 모순이 생깁니다. 이렇게 되면 금융지주 회장은 전략가가 아니라 임시 관리자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사례 드물고 실익 없는 3연임 금지법
정치적 부작용도 가볍지 않습니다. 연임이 사실상 봉쇄되거나 3연임이 법으로 금지되면 3년 또는 6년마다 회장 선임이 정권과 정치권의 이벤트가 될 가능성이 더 커집니다. 내부와 외부의 잠재 후보들은 경영 실력보다 권력과의 거리, 관료 네트워크, 정권과의 관계에 더 민감해질 수 있습니다. 조직 안에서는 후계 구도와 파벌 관리가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금융산업의 경쟁력뿐 아니라 시장의 신뢰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흐름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에서는 실적이 좋아도, 배당을 늘려도, 주주가 원해도 정치권력과 규제가 CEO 임기를 정한다는 신호로 비칠 수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또 다른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현 체제를 그대로 두자는 것은 아닙니다. 참호 구축, 회장과 사외이사 간 유착,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의 폐쇄성, 승계 절차의 불투명성은 분명히 손봐야 합니다. 다만 개혁의 목표는 연임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성과 없는 장기집권’을 막는 것이어야 합니다. 아울러 해법도 상식적이어야 합니다. 첫 연임까지는 일반결의를 유지해 최소한의 전략 임기를 보장하고 장기 재임이 되는 3연임 단계에서만 특별결의를 적용하는 절충이 훨씬 합리적입니다.
동시에 회추위 독립성, 사외이사 검증과 평가, 승계 프로그램 공시, 장기 성과 중심 보수체계, 내부통제 실패 시 보수 환수 같은 실질 장치를 강화해야 합니다. 사람을 겨냥해 임기를 잘라내는 규제가 아니라 구조를 고치는 규제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올해 3월 주총이 보여준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주주는 정치적 구호보다 실적과 배당을 택했습니다. 그 선택은 ‘비상식’이 아니라 ‘상식’입니다.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혁도 결국 그 상식 위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박종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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