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대의 사랑 이야기가 현재도 유효한 이유
(시사저널=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러시아가 소련으로 불렸던 시절. 소년은 소련이 점령한 에스토니아에서 태어났다. 소련 제트기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소년은 자라면서 자신의 성적 성향이 사회가 정상이라 규정한 것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었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터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훗날 아들의 성적 취향을 알게 된 소년의 어머니는 동성애를 병으로 간주하고 치료하려고 했다. 그것은 그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았다.
성인이 된 소년은 우연히 러시아 작가이자 배우인 세르게이 바실리에비치 페티소프가 쓴 회고록 《로만 이야기(A Tale about Roman)》를 접한다. 1970년대, 에스토니아 소련 공군기지 안에서 사랑에 빠진 두 남자 이야기였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있었던 실제 이야기라고?' 그 시절을 통과하며 권위적인 사회의 억압에 마음고생을 했던 소년은 이것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직감했다. 감독이 된 소년의 이름은 피터 리베인.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파이어버드》다.
냉전 한복판에서 피어오른 사랑
1977년 소련 치하 에스토니아 내 소련 공군기지. 전역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징집병 세르게이(톰 프라이어)의 군 생활은 전투기 조종사인 로만 중위(올렉 자고로드니)가 오면서 180도 달라진다. 사진을 매개로 인연을 맺은 세르게이와 로만은 예술에 대한 공감대로 더욱 가까워지고, 위태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그러나 당시 소련 형법 121조엔 이런 규정이 있었다. '동성 간의 성적 관계는 5년간 수용소에 수감되어 처벌받을 수 있다.' 마침, 누군가로부터 로만이 불경하다는 투서를 받은 KGB가 로만을 의심하며 압박한다.
군을 떠나 둘이 함께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는 세르게이. 그러나 로만은 현실을 버리고 사랑을 택하는 게 쉽지 않다. 아직 인생의 다양한 것을 모색할 기회가 있는 세르게이와 달리 로만에게 군대는 단순한 직업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사명감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결국 엇갈린 선택을 한다. 그리고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로만이 세르게이의 절친인 루이사(다이애나 포자르스카야)와 결혼하면서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앞에 선다. 그러나 세르게이에 대한 미련을 지우지 못한 로만이 시간이 흘러 그의 앞에 나타나면서 이들의 사랑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른다.
이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이자 원작자인 세르게이가 《파이어버드》 제작진에 요구한 건 하나였다. "정치가 아닌, 사랑에 관한 영화로 만들어 달라." 그러나, 어떤 영화의 운명은 태생적으로 정치·사회적 외투를 입는다. 이는 러시아가 동성애에 관해 상당히 보수적인 국가라는 점과 깊게 결부된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13년 '동성애 선전 금지법'을 제정해 이를 동성애자들의 권리 요구 시위를 막고, 동성애자 권리 운동가들에게 벌금을 물리는 데 활용하며 국제사회의 비난을 산 바 있다. 이 문제는 2013년 소치올림픽에 대한 보이콧 움직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러시아는 2020년 개헌안에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는 조항을 추가하며 동성 결혼을 원천 봉쇄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온, 소련 시대 배경의 실화 퀴어 영화를 러시아가 반길 리 만무하다. 2021년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파이어버드》는 러시아 정부의 방해로 티켓 예매가 중단되면서 관객 없는 상영을 감내해야 했다. 극단주의 단체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그리도 의도치 않게 이 영화의 정치성에 더하게 된 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로만을 연기한 배우 올렉 자고로드니는 러시아 TV 쇼와 무대에서 경력을 쌓아온 배우로,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그는 현재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러시아의 공습을 목도하며 전 세계에 우크라이나 상황을 알리고 있다. 역사란 반복되는가.
피터 리베인 감독은 말했다. "우리는 기본적인 인권, 평등, 자유가 전 세계적으로 다시 공격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파이어버드》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진정한 사랑을 따르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 메시지를 공유해야 할 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과 정권에 맞서 싸우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의 지지와 사랑을 보낸다." 참고로 1991년 소련 해체 뒤 독립한 에스토니아는 나토 회원국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오고 있다.
다소 아쉬운 정서적 섬세함
이처럼 《파이어버드》엔 동성애가 터부시되던 1970년대 시대상과 국가의 체제 유지 앞에 던져진 개인의 행복 추구권에 대한 의미 있는 물음이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치가 아닌 사랑에 관한 영화로 만들어 달라는 원작자의 기대와 달리 《파이어버드》는 정치적 의미를 빼고 나면 조금 심심해진다.
수많은 러브스토리가 그렇지만, 퀴어 멜로는 특히나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서의 감정선이 애틋해지는 장르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발견하는 것도 관문이지만, 내가 보내는 신호를 저 사람이 알아채고 응답할 것인가라는 더 큰 관문을 뚫어야 한다. 대개의 훌륭한 퀴어 영화들은 이러한 인물들의 심리를 밀도 있게 그리며 호평받았다. 시선의 깊은 응시가 교차했던 토드 헤인즈의 《캐롤》(2016)이 그랬고, 탐색의 제스처가 충만했던 루카 구아다니노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이 그랬으며, 두 남자의 20여 년 사랑을 절절하게 그린 이안의 《브로크백 마운틴》(2006)도 그랬다.
그런 수작들에 비하면 《파이어버드》는 두 남자가 서로의 의중을 알아가는 과정에서의 섬세한 결이 부족하다. 사랑보다 국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로만의 선택도 덜 설명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데, 인물들을 추동하는 동기가 조금씩 새어나가다 보니 정서적 호소력도 경감됐다. 무엇보다 두 남자 사이에 놓인, 어쩌면 그들 사랑의 최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여성 루이사에 대한 묘사가 얕아서 이들이 그리는 삼각관계가 투박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 모든 게 실화라고 하니 '사랑의 본디 속성이 통속'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이런 통속적인 부분을 커버하지 못한 연출이 사뭇 아쉽게 다가온다.
영화의 제목인 '파이어버드(불새)'는 세르게이와 로만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하는 날 함께 관람한 공연 제목이기도 하다. 이 공연은 세르게이가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두 남자의 불같은 사랑에 대한 거대 예고로 기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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