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로 넘어간 공…‘재난 대응 실패’ 탄핵 사유 되는지가 쟁점

엄지원 2023. 2. 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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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8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56차 중앙통합방위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103일째를 맞은 8일 국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면서 이 장관 책임을 둘러싼 공방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맡겨졌다. 탄핵소추를 주도한 야권은 이 장관이 159명의 희생을 야기한 참사 대응에 실패해 헌법과 재난안전법·국가공무원법 등을 위반한데다 국정조사에서의 위증 혐의까지 있어 탄핵 사유가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전례 없는 국무위원 탄핵소추로 정치적 폭발력이 큰 만큼, 재난 대응실패 책임이 탄핵사유에 해당하느냐를 두고 헌재 탄핵심판에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그날, 그 장소에서 못다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금 우리는 결단의 시간 앞에 있습니다. 2022년 10월29일, 그날 그 장소에서 우리가 못 다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 장관 탄핵안 제안설명에 나선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김 의원은 희생자들의 이름을 차례로 호명하며 이 장관을 탄핵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의원 176명이 공동발의한 탄핵안에서 야권은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조정해야 하고 이를 통해 재해와 재난을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것이 피소추자(이상민)의 직에 부여된 임무의 핵심”이라며 “그 어느때보다도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 적절한 직무수행이 강력하게 요청되는 위기 상황에서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이 장관이 참사 직후 재난대책본부·수습본부 신속 설치 등 재난안전법상 행안부 장관에게 요구되는 책임을 방기해 적절한 구조·구급 활동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고 피해를 확대시켰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야권은 이 장관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도 위반했다고 적시했다.

아울러 이 장관이 참사 당일 윤석열 대통령보다 늦게 보고를 받고도 집에서 운전기사를 기다리느라 참사 현장에 80분 이상 허비하는 등 의무를 저버리고, 부적절한 발언들을 반복하며 유가족에게 상처를 준 데 대해서도 야당은 국가공무원법의 성실·품위유지 의무 등에 위배된다고 봤다. 국정조사에서 유족 명단 확보 등을 놓고 위증을 한 혐의도 탄핵안에 담겼다. 김 의원은 “이같은 총체적인 대응 실패로 피소추자 이상민 장관은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의 직책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국민의 신임을 상실했다”고 밝혔다.

헌재 심판 험로 예상

헌재는 국회로부터 탄핵소추 의결서를 넘겨받아 조만간 심리에 착수할 예정이다. 그러나 헌재 탄핵심판 과정에서부터 험로가 예상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이 장관 탄핵을 주장해야 하는 소추위원이 되는데 김도읍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 소속이다. 김 의원은 이날 국회 본회의 전 기자들과 만나 “소추위원이 법적 지위이기 때문에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활동할 수밖에 없고 (탄핵 사안이) 아닌 걸 맞다고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내용면에서는 이 장관이 재난 대응 주무장관으로서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을 했는지가 탄핵 여부를 가르는 핵심이다. 헌법을 전공한 한 법학과 교수는 “(위반했다는 규정으로는) 헌법보단 구체적인 법률을 적용돼야 하는데, 재난안전법의 책임도 직접적으로 행안부 장관 책임이라고 하기엔 조금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부분을 국회 소추위원이 증명해야 하는데, 김 위원장이 성실하게 나설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논쟁적인 사안인 만큼 헌재가 좀 더 폭넓게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10조는 국가의 책임, 의무와 연결되는 조항으로 이를 선언에 불과하다고 여기면 헌법은 사문화될 수밖에 없다”며 “실질적 법 위반도 따져야 하지만 헌재 입장에서도 헌법이 추구하는 ‘국가적 책임’과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 이 문제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헌재 연구관 출신인 한 변호사는 “탄핵은 일종의 ‘징계 절차’ 속성을 지니고 있다. 형사기관의 무혐의 처분과는 속성이 다르다”며 “결국 이 장관이 중징계에 해당할 정도로 ‘중대한 불성실’을 저질렀는지 여부가 쟁점이 될 것이다. 재판관 사이 상당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탄핵안이 인용되려면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며 이런 전례는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유일하다.

이 때문에 야당에게도 이 장관 탄핵심판의 향배는 큰 정치적 부담이다. 헌법재판소법에 규정된 탄핵심판 기간은 180일이지만 강행규정은 아니다. 기각 결정이 나올 경우 민주당으로서는 ‘윤석열 정부를 흔들기 위해 무리한 탄핵에 나섰다’는 정치적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되면 민주당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며 “내년 선거에서 국민들이 민주당의 이러한 행태에 다수 의석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는지 분명히 심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우리는 향후 본회의, 법사위원장 탄핵소추위원, 헌법재판소 인용이라는 세개의 벽을 넘어야 한다”며 “하나하나가 무척 높고 단단할 수 있지만 인간으로서의 양심, 국민의 상식, 국가의 책임이라는 세개의 힘으로 넘어서겠다”고 밝혔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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