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다! 공간 컴퓨팅의 세계

유명 가수와 함께 무대 위를 걸어 다니고, 관광지의 금지된 구역을 들어가 본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이 있다. 바로 공간 컴퓨팅이다.
우리 일상 공간 전체가 컴퓨팅 무대가 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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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의 마법, 공간 컴퓨팅
공간 컴퓨팅이란 모니터를 벗어나 현실 속 모든 공간을 활용하는 컴퓨터 기술이다. 일반적인 컴퓨터 작업은 키보드를 두드려 입력한 내용이 화면에 표시된다. 즉 키보드와 화면, 두 가지 장치를 사용하는 2차원적 작업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대부분 디지털 장치는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실제든 가상이든 키보드와 모니터를 중심으로 작업이 이뤄진다.

반면 공간 컴퓨팅은 키보드와 모니터를 벗어나 사람을 중심으로 생활 공간 전체를 컴퓨터 작업에 활용한다. 한마디로 컴퓨터 작업이 3차원으로 바뀐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대신 허공에 손짓을 하면 컴퓨터가 동작을 인식하고, 눈으로 쳐다보면 화면이 바뀌는 식이다. 또 실제 공간을 걸어가면 주변 환경이 바뀐다. 언뜻 보면 마술 같은 일을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혼합현실(XR) 기술과 공간 인식 기술을 이용해 현실로 바꿔놓은 것이 공간 컴퓨팅이다.

가상현실은 세상에 없는 것들을 디지털로 만들어 사실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고, 증강현실은 실재하는 현실에 컴퓨터 정보를 덧입힌 것이다. 혼합현실은 실재와 가상현실이 하나로 섞인 결합체다. 여기에 사람의 손짓 발짓과 몸짓, 눈동자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읽어내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는 공간 인식 기술이 결합돼 공간 컴퓨팅을 가능하게 만든다.

애플 비전 프로. ⓒApple

애플이 선보인 컴퓨팅의 미래
그동안 공간 컴퓨팅은 고가의 장비와 대용량 컴퓨터 기술이 필요해 특수한 산업 현장에서 주로 쓰였다. 모의 조종실에서 비행기 조종 훈련을 하거나 의료 현장에서 가상의 수술 실습을 하고 군대에서 가상 전투 훈련을 하는 식이다.

그런데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 개인도 사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이를 현실화한 것이 미국의 애플이다. 애플은 2024년 7월 공간 컴퓨터 ‘비전 프로’를 내놓았다. 비전 프로는 VR 기기처럼 머리에 쓰는 장치로 구성된 혼합현실 헤드셋이다. 헤드셋 앞부분에 달린 거대한 안경 같은 디스플레이는 2300만 화소의 초고화질(UHD) 해상도를 지원하는 마이크로 OLED로 구성됐다. 컴퓨터의 두뇌, 즉 중앙처리장치(CPU)는 애플이 자체 개발한 M2 칩을 사용한다. 여기에 고해상도 카메라와 자율주행자동차에 쓰이는 라이다 기술을 적용해 방향과 위치, 사람의 눈 움직임을 읽어낸다.

처음에 비전 프로를 사용해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우선 머리에 헤드셋을 쓴 뒤 전원을 넣으면 눈앞에 아이폰 같은 바탕화면이 가득 펼쳐진다. 눈에 보이는 모든 세상이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를 재생하면 극장처럼 거대한 영상이 눈앞에 떠오른다.

이 상태에서 눈으로 쳐다보기만 하면 각종 앱이 선택된다. 마우스를 움직이거나 키보드를 입력할 필요 없이 눈으로 쳐다보면 선택되고, 이 상태에서 엄지와 검지를 가볍게 붙였다 떼면 앱이 열린다. 마우스 클릭에 해당하는 작업이 손가락 접촉만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화면을 옆으로 느끼고 싶으면 허공에 손을 대고 옆으로 쓸어 넘기면 된다. 허공에 떠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나 작업 창을 확대하거나 줄이고 싶으면 허공에서 손으로 모서리를 잡는 동작을 취한 뒤 잡아 늘리거나 좁히면 된다. 그만큼 직관적 사용이 가능하다.

애플이 비전 프로용으로 공개한 메탈리카 공연 콘텐츠. ⓒApple

공연부터 관광까지,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공간 컴퓨팅의 위력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애플이 지난 3월 비전 프로용으로 공개한 미국의 록 밴드 메탈리카의 공연 콘텐츠를 보면 된다. 이 콘텐츠는 메탈리카가 2024년 9월 멕시코시티에서 개최한 공연을 14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촬영했다.

비전 프로를 머리에 쓰고 이 콘텐츠를 실행하면 마치 공연장 한복판에 와 있는 것처럼 눈앞에 180도 영상이 펼쳐진다. 영상이 좌우로 넓게 펼쳐질 뿐 아니라 공연장 천장과 바닥 등 위아래로 확대돼 현장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특히 다른 가상현실과 달리 8K 초고화질로 재생되는 20여 분의 공연 영상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압권이다. 고개를 돌려 무대 위 밴드 구성원들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데 드럼 연주자의 땀방울, 기타 연주자가 지판을 누르는 손가락, 마이크 스탠드에 꽂아놓은 기타 피크까지 보일 정도로 세세하다.

놀라운 것은 다채로운 화면 이동 앵글이다. 마치 무대 위를 걸어 다니는 것처럼 밴드 멤버들의 다양한 연주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객석 맨 앞줄에서 무대를 쳐다보는 것처럼 밴드의 공연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다가 어느 순간 공연장 맨 위쪽으로 순간 이동해 무대 전체를 내려다볼 수도 있다. 실제 공연장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놀라운 체험을 눈앞에 펼쳐 보인다. 만약 무대 위 다른 모습과 객석이 보고 싶으면 고개를 자연스럽게 돌리면 된다. 한마디로 공간 컴퓨팅이 영상과 결합했을 때 얼마나 경이로운 영상을 보여줄 수 있는지 증명하는 콘텐츠다.

공간 컴퓨팅을 이용한 체험형 콘텐츠 ‘쿠푸왕의 피라미드’. ⓒExcurio

비전 프로가 눈앞의 공간 컴퓨팅을 펼쳐놓는다면 몸으로 움직이며 느낄 수 있는 이색 공간 체험 콘텐츠도 있다. 프랑스 엑스큐리오에서 만든 ‘쿠푸왕의 피라미드’다. 이 콘텐츠는 한군데에 가만히 앉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VR 헤드셋을 머리에 쓴 채 100평이 넘는 공간을 걸어 다니며 약 45분간 이집트 피라미드의 내외부를 둘러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방문해 전시회 형식으로 선보인 이 콘텐츠는 3월 27일 한국을 찾아 서울 용산전쟁기념관에서 4월 30일까지 공개됐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피터 마뉴엘리언 이집트학 교수의 연구를 바탕으로 피라미드를 실물 그대로 재현한 이 콘텐츠는 현장감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HTC에서 만든 VR 헤드셋을 착용하는 순간 눈앞에 산처럼 거대한 146m 높이의 피라미드가 나타나 깜짝 놀라게 된다. 360도 영상으로 제작해 고개를 돌리면 전후좌우, 위아래 풍경을 모두 볼 수 있다.
가상 캐릭터인 안내자의 우리말 설명을 들으며 따라가다 보면 좁은 통로에서 허리를 굽히고 피라미드 꼭대기나 나일강에서 배를 탈 때 절로 발을 들어 올리게 된다. 실제 피라미드에 가도 볼 수 없는 내부 공간 일부를 재현했고, 미라 제작 및 왕의 장례식 과정을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구경할 수 있다. 실제 같은 생생한 영상 덕분에 높은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절로 긴장해 오금이 저리다. 그렇게 45분을 걸어 다니면 어느새 다리가 아파온다.

공간 컴퓨팅 기술, 대중화될 수 있을까?
공간 컴퓨팅은 놀라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우선 편안하지 않은 착용감이 문제다. 애플 비전 프로는 착용하려면 안경을 벗어야 한다. 이 경우 안경 렌즈에 맞춰 시력을 조절한 별도 렌즈를 비전 프로에 장착해야 한다. 다른 VR 헤드셋은 안경 위에 쓸 수 있지만 묵직한 무게 때문에 30분 이상 착용하면 얼굴이 눌려 불편하다.

장시간 착용하면 가상공간에 대한 이질감으로 어지러울 수도 있다. 특히 빠른 시야 이동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어지러운 증상이 두드러질 수 있다. 더불어, 최대 걸림돌은 높은 가격이다. 애플 비전 프로의 경우 국내 출시 가격이 저장 용량에 따라 499만~559만원이다. 따라서 공간 컴퓨팅이 대중화하려면 지금보다 가격이 더 낮아져야 한다.

ㅣ 덴 매거진 2025년 5월호
글 최연진(한국일보 IT 전문기자)
에디터 김보미 (jany6993@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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