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가 수원에서 아쉬운 패배를 했다. 점수는 2대4. 더 아쉬운 건 내용이다. 시즌 내내 철벽 같던 코디 폰세가 드디어 첫 패를 적었다. 개막 후 17연승을 달리던 흐름이 멈췄다. 상대도 하필 폰세에게 강했던 KT였다. 초반 한 방을 맞고, 중반 쐐기점을 허용했고, 끝내 따라잡지 못했다. 그래도 완전히 우울한 밤만은 아니었다. 문동주가 불펜에서 올라와 최고 161.4㎞를 찍으며 3이닝 무실점으로 막았다. 패배 속 작은 희망이었다.
경기는 시작부터 꼬였다. 1회말, 허경민 안타에 스티븐슨 볼넷이 겹치며 무사 1·2루 위기가 왔다. 여기서 ‘신인왕 0순위’ 안현민의 방망이가 나왔다. 폰세의 143㎞ 슬라이더가 높게 들어갔고, 안현민은 지체 없이 잡아당겨 좌측 담장 바깥으로 보냈다. 비거리 130m. 0-3. 폰세의 올 시즌 첫 스리런 허용이었다. 그 한 구가 경기 흐름을 바꿨다. 폰세는 2회에도 두 개의 볼넷으로 흔들렸고, 전반적으로 제구가 낮게 깔리지 않았다. 직구 최고 157㎞, 탈삼진 6개로 구위는 나쁘지 않았지만, 초반 볼넷이 투구수를 늘렸고, 결정적일 때 실투가 나왔다.

그래도 한화는 쉽게 주저앉지 않았다. 3회초 최재훈의 안타로 불씨를 살리더니, 리베라토가 좌익수 키를 넘기는 2루타로 1점을 냈다. 이어 문현빈의 타구가 1루 베이스를 맞고 튀어 오르며 행운의 적시타가 됐다. 순식간에 2-3. 한 점 차까지 좁혔다. 여기서 동점까지 밀어붙였으면 판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KT 선발 고영표가 노시환을 삼진으로 잡으며 이닝을 닫았다. 고영표는 체인지업 위주의 노련한 승부로 7이닝 2실점. 한화 타선은 공을 길게 보지 못했고, 결정적 찬스에서 한 번 더 묶지 못했다.
승부의 두 번째 갈림길은 5회였다. 스티븐슨이 2루타를 치고 나가자, 안현민이 다시 등장해 몸쪽 변화구를 밀어 좌전 적시타로 연결했다. 2-4. 폰세에게는 이날 두 번째 치명타였다. 폰세는 5이닝 4실점, 시즌 평균자책점이 1.70에서 1.85로 올랐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내용이 아쉬웠다. 초구 승부가 소극적이었고, 볼넷이 많아 위기를 불렀다. KT 벤치는 경기 전부터 “작게 점수를 쌓겠다”고 했고, 타자들은 초반부터 번트 대신 과감한 스윙으로 높은 공을 노렸다. 한화 배터리의 계획을 읽고 들어온 느낌이었다.

한화 쪽에서 밝은 면은 분명히 있었다. 6회부터 올라온 문동주가 3이닝을 1피안타 무사사구 4탈삼진, 무실점으로 꽁꽁 묶었다. 7회 강백호를 루킹 삼진으로 돌려세운 네 번째 공이 161.4㎞. 개인 최고, KBO 최고 구속도 새로 썼다. 볼 끝이 살았고, 직구·슬라이더 모두 스트라이크 존 가장자리를 정확히 때렸다. 불펜에서 던진 문동주가 이 정도 구위를 보여준 건, 남은 시즌과 가을야구를 생각하면 큰 호재다. 선발로 쓸지, 하이레버리지 롱릴리프로 쓸지 선택지가 넓어졌다.
타선은 전체적으로 묶였다. 리베라토, 문현빈이 타점을 올렸지만, 상·하위 타선 연결이 좋지 않았다. 고영표의 느린 공과 구속 차, 스트라이크에서 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계속 속았다. 초구 방망이가 너무 빨랐고, 카운트 싸움에서 주도권을 내줬다. 이런 유형의 투수에게는 초구부터 크게 휘두르기보다, 스트라이크를 두 개는 보고 들어가는 인내가 필요하다. 한두 타자만 바꿔선 안 된다. 라인업 전체가 첫 두 타석은 ‘길게 본다’는 같은 약속이 있어야 한다.

수비와 주루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지만, 세밀함이 부족했다. 5회 수비 전 아웃카운트 관리, 마운드 방문 타이밍이 조금만 빨랐어도 실점은 줄었을 수 있다. 벤치의 미세한 템포 조절이 내일은 필요하다. 반대로 KT는 8회 2사 1·2루에서 박영현을 조기 투입해 불을 껐다. 이 한 박자 빠른 결단이 이겼다. 박영현은 34세이브로 구단 기록을 새로 썼다. 가을야구권 팀의 마무리는 이 정도로 단호해야 한다는 걸 보여줬다.
이 패배로 선두 추격에는 숨이 조금 찼다. LG의 매직넘버는 5로 줄었다. 하지만 시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화가 강한 이유는 연패를 길게 하지 않는 탄력과, 젊은 투수들의 파워다. 오늘도 그 힘을 문동주가 증명했다. 필요한 건 두 가지다. 폰세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초반 실점을 줄이는 경기 운영. 그리고 고영표 타입의 기교파를 만났을 때의 집단 대응법 정리다.

구체적으로 내일은 이렇게 가보자. 첫째, 1회 리드오프 출루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초구 스트라이크를 한두 개 공짜로 주지 말고, 바깥쪽 낮게 체인지업·포크 성향 공으로 땅볼 유도부터 시작하자. 둘째, 타선은 초구 자동 스윙을 잠시 멈추고, 최소 2구는 보자는 팀 약속을 하자. 볼넷 하나가 이닝을 바꾸고, 투수의 투구수를 늘린다. 셋째, 7~8회엔 오늘처럼 문동주를 과감히 씌우는 플랜B를 계속 가져가자. 최고 구속이 올라온 지금, 상대 중심 타선에 던지는 가장 좋은 답안이다. 넷째, 대주자·대수비 카드의 타이밍을 한 타자 앞당겨보자. 1점 싸움에서 그 한 발이 승패를 가른다.
팬들 입장에선 폰세의 첫 패가 충격일 수 있다. 하지만 길게 보면 한 번은 올 일이었다. 오히려 지금 겪은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약점이 드러났고, 그 약점은 고칠 수 있는 종류다. 초반 볼넷, 높은 슬라이더, 같은 코스 반복. 폰세는 충분히 조정 가능한 베테랑이다. 다음 등판에 초구 포심과 낮은 체인지업 비율을 조금만 바꿔도 전혀 다른 경기가 나온다. 무엇보다 타선이 초반에 한 점이라도 먼저 보태주면, 폰세의 리듬은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오늘 패배를 길게 끌 필요는 없다. 문동주의 구속, 불펜의 뎁스, 상위권의 탄탄한 수비와 주루, 그리고 노시환을 중심으로 한 중심타선의 장타력은 여전히 한화의 무기다. KT가 필요한 날에 완벽한 플랜으로 나왔을 뿐이다.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하다. 초반 한 방을 막고, 찬스를 한 번 더 이어가는 것. 그 기본만 지키면, 다시 연승의 흐름은 온다. 오늘은 KT가 더 잘했다. 내일은 한화가 다시 보여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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