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화 3남 김동선, 승마협회 좌지우지한다”

“김동선 위해 아시안게임 승마 대표 선발전도 취소”
피해 본 승마 선수들, 단체소송 준비 중

(시사저널=조해수·김현지·공성윤기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이 대한승마협회를 사실상 장악하면서 승마계에서 전횡을 일삼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 승마협회장은 김동선 본부장의 소송을 맡았던 박서영 변호사(국내 법무법인 삼율, 싱가포르 법무법인 운앤바줄)다. 전임 박남신 승마협회장은 음주폭행 등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이유로 김동선 본부장에 대한 학생승마협회장 인준을 취소했다.

이에 반발해 김동선 본부장은 '인준취소결정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때 김동선 본부장의 변호사 중 한 명이 박서영 신임 회장이다. 재판 도중 박남신 전 회장이 승마협회 임시총회에서 갑자기 해임됐고, 보궐선거를 통해 박서영 변호사가 승마협회 차기 회장에 오른 것이다.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임시총회 당시 대의원 간 전화통화 녹취파일에는 '한화가 승마협회를 지원해 주는 대가로 박남신 전 회장을 몰아내고 김동선 본부장이 원하는 사람을 신임 회장으로 뽑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마장마술 개인전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김동선 선수가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뉴스1

김동선의 변호사, 대한승마협회장 당선

'승마 문외한'인 박서영 신임 회장이 당선되면서 승마협회 지도부는 학생승마협회 임원, 한화 관계자 등 김동선 본부장의 측근으로 채워졌다(표 참조). 승마협회에 '김동선 친정체제'가 구축되면서 김동선 본부장은 해임될 위기였던 학생승마협회장 자리를 지키게 됐다.

또한 올해 초 예정돼 있던 항저우아시안게임 승마대표 선발전이 돌연 취소됐다. 승마협회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를 두고 '지난해 대표로 선발된 김동선 본부장을 위한 꼼수'라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승마선수는 "승마계의 모든 일이 김동선 본부장 한 사람을 위해 돌아가고 있다"면서 "김동선은 승마계에 군림하는 제왕"이라고 토로했다.

이 모든 문제는 '한화그룹 승계'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동선 본부장은 최근 본격적으로 승마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김동선 본부장은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승마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해 '한화넥스트'를 설립했고, 독일 에슈보른에 승용마 법인(Sportpferde Galleria GmbH)을 세우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재계 관계자는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1남)이 방산·에너지·화학,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2남)이 금융, 김동선 본부장(3남)이 유통·레저 부문을 승계하는 것으로 정리됐다"면서 "승마사업은 김동선 본부장의 역점 분야다. 각종 사건·사고로 경영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김동선 본부장은 승마사업을 통해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켜야만 한다. 이 때문에 김동선 본부장이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임 위기' 김동선, 학생승마협회장 지켜

지난해 11월30일 제40대 승마협회장으로 박서영 변호사가 당선됐다. 후보가 박서영 변호사뿐이었다.

그동안 승마협회장은 대부분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맡아왔다. 승마협회장에 오르면 통상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출연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기업 출신이 많았다.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34~35대, 차남규 한화생명 대표이사가 33대 회장이었다. 당시 삼성과 한화는 '회장사'로서 승마협회를 지원했다.

반면, 박서영 신임 회장은 최초의 법조인 출신 승마협회장이다. 당연히 회장사가 없다. 42세(1981년생)로 역대 최연소인데, 승마와 특별한 인연도 없다. 스스로 밝힌 "동호인 출신" 정도가 전부다.

이 때문에 승마협회 안팎에서 "박서영 신임 회장은 김동선 본부장의 '대리인'에 불과하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왔다. 박남신 전 회장이 물러나고 박서영 신임 회장이 선출된 과정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좀 더 잘 알 수 있다.

김동선 본부장은 2021년 4월 제38대 학생승마협회장에 올랐다. 그러나 박남신 당시 승마협회장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은 임원으로 앉히지 않는다(26조 임원의 결격사유: 폭력 등 징계처분, 사회적 물의)'는 정관에 근거해 지난해 6월 김동선 본부장에 대한 학생승마협회장 인준을 취소했다.

김동선 본부장은 2010년 서울 용산구의 한 술집에서 폭행 사건을 일으켰으나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아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2017년 1월에는 서울 청담동 한 유흥주점에서 종업원을 폭행하고 순찰차를 파손한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았다. 한화 측에서 보석을 포기해 김동선 본부장은 형 확정까지 약 3개월간 구치소 신세를 졌다. 재판 과정에서 김동선 본부장의 음주운전 전력이 드러나면서, 검찰은 징역 1년의 실형을 구형하기도 했다.

같은 해 9월 김동선 본부장은 서울 종로구의 한 술집에서 대형 로펌 김앤장의 신입 변호사들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술에 취한 채 변호사들의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은 혐의를 받았다. 변호사들에게 "존댓말 써라" "허리 펴고 똑바로 앉아라" 등의 폭언을 한 혐의도 함께 받았다.

이때는 집행유예 기간이었기 때문에, 김동선 본부장은 가중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대한변호사협회는 "전형적인 재벌 갑질"이라며 "진상조사 후 형사고발할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피해자인 변호사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혀 불기소 처리된 적이 있다. 

승마협회 역시 '솜방망이' 징계에 그쳤다. 2018년 12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한승마협회가 김동선씨의 음주난동에 대해 '품위 훼손'을 이유로 견책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의 승마협회 감사 결과,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 징계 기준에 따라 '폭력'에 해당하는 1년 이상 3년 미만의 출전정지 또는 자격정지 처분을 내려야 했음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김동선 본부장은 음주폭행 사건의 여파로 2018년 자카르타아시안게임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2019년부터 공식 대회에 재출전했다. 2021년 도쿄올림픽 때는 유일한 한국 승마선수였다.

박남신 전 대한승마협회장 ⓒ연합뉴스

"승마협회장으로 '바지' 세우겠다는 얘기네"

김동선 본부장은 학생승마협회장 인준 취소와 관련해 승마협회를 상대로 '인준취소결정 무효확인' 소송을 지난해 6월 제기했다. 그런데 재판 도중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9월30일 승마협회 임시 대의원 총회에서 '승마 지원이라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며 박남신 전 회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해임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시사저널은 당시 대의원 간 전화통화 녹취파일을 단독 입수했다. 박남신 전 회장 지도부가 해임된 다음 날인 지난해 10월1일자 통화녹취로, 대화 당사자 중 한 명은 현 승마협회 부회장인 A씨다.

녹취파일에는 "김동선이 '(차기 승마협회장으로) ○○○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럼 '바지(대리인)' 하나 세우겠다는 얘기네" "김동선이 (승마협회에) 6년 동안 연간 11억~15억원을 주기로 했다" 등의 대화 내용이 생생히 담겨 있다.

이와 관련해 A씨는 "승마협회의 재정난이 심각하다. 대기업이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승마협회를) 도와줄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승마선수 B씨는 "당시 김동선 학생승마협회장이 박남신 승마협회장을 몰아내고 새로운 회장을 세우려고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면서 "선수들도 한화의 자금 지원에 눈이 멀어서, 박남신 회장을 쫓아내기 위해 승마협회가 개최한 대회를 단체로 '보이콧'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박남신 전 회장은 "내가 김동선 본부장을 학생승마협회장에서 해임하려고 하자 김동선 본부장이 '한화의 자금 지원'을 앞세워 나를 내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박남신 전 회장은 승마협회장 해임무효 소송을 제기해놓은 상태다.

박남신 전 회장이 실각하면서 '김동선 학생승마협회장 해임' 건은 자연스럽게 흐지부지됐다. 지난해 10월 김동선 본부장은 학생승마협회장 인준취소결정 무효확인 1심에서 '무변론' 승소했다. 피고인 승마협회가 소장을 받은 30일 내에 답변서를 제출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 지도부 없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였던 승마협회는 항소를 포기했고, 김동선 본부장은 학생승마협회장직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마지막으로, 이 소송에서 김동선 본부장의 법률 대리를 맡았던 박서영 변호사가 차기 회장에 오르면서 확실한 '마침표'를 찍었다. 승마계에서 김동선 본부장을 위협할 수 있는 어떠한 요소도 남지 않게 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 승마협회 임원 C씨는 "학생승마협회장은 초·중·고·대학교의 승마사업은 물론 승마선수 교육을 관리하는 자리다. 음주폭행을 반복적으로 저지른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인가"라면서 "박서영 신임 회장이 '꼭두각시'가 아니라면, 김동선 본부장을 학생승마협회장에서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승마협회 제공

사상초유의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 취소

박서영 신임 회장은 '승마협회 정상화'와 '항저우아시안게임 지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승마계에서는 박서영 신임 회장 당선으로 한화그룹의 지원을 기대했다. 그러나 승마협회에 대한 한화의 지원은 없었다. 승마협회의 재정난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박서영 신임 회장은 올해 초 열릴 예정이던 항저우아시안게임 승마 대표 선발전을 취소하기까지 했다. 박남신 전 회장 당시 승마협회는 대표 선발전을 올해 3~5월 개최할 예정이었다. 지난해 열려야 했던 항저우아시안게임이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올해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서영 신임 회장은 2월20일 갑자기 '대표 선발전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뽑은 대표를 올해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이 취소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지만, 지난해 국가대표가 해가 바뀐 후에도 선발전 없이 대표를 이어간 전례도 없다. 김동선 본부장의 경우, 지난해에 선발된 아시안게임 대표 중 한 명이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전 승마협회 경기력향상위원 D씨는 "지난해 9월1일 경기력향상위원회에서 올해 3, 4, 5월 3차례에 걸쳐 대표 선발전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선수들도 이 스케줄에 맞춰 준비를 하고 있었다"면서 "승마에서는 선수뿐만 아니라 말의 컨디션이 중요하다. 특히, 말의 컨디션은 1년 새 크게 변한다. 그런데 지난해 선수-말 컨디션으로 올해 아시안게임에 나간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선수는 대표 선발전 취소와 관련해 단체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승마선수 B씨는 "말 가격은 보통 억대를 호가한다. 선발전을 위해 말을 새롭게 구입하거나 지난해 말을 팔지 않았던 선수들은 선발전 취소로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선발전이 없어지면서 쓸모없는 말이 됐기 때문"이라면서 "승마선수에게 아시안게임은 '꿈의 무대'다. 대표 선발전 취소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분노했다.

사실, 김동선 본부장에게는 아시안게임보다 올림픽이 더 중요하다. 김동선 본부장은 2006년 도하, 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 대회에서 이미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기 때문이다. 김동선 본부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죽기 전에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 남은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다.

내년에 열리는 파리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서는 국제승마연맹(FEI)이 승인하는 국제대회에 출전해 점수를 따야 한다. 현재 김동선 본부장은 미국 플로리다 웰링턴에서 열리는 승마대회에 출전 중이다. 2월에 시작해 4월에 끝나는 일정이다. 

전 승마협회 임원 C씨는 "3~5월에 예정돼 있던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이 취소되면서, 김동선 본부장이 올림픽 출전을 위해 국제 승마대회에 나갈 수 있게 됐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인가"라면서 "김동선 본부장의 말들은 미국과 독일 등에 체류하고 있어, 우리나라에 들어오려면 검역·운송에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대표 선발전이 취소되면서 이런 모든 문제가 사라지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동선은 대한승마협회와 전혀 무관"

이와 관련해 승마협회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은 승마협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서 "대표 선발전이 취소된 것이 아니라 올해 새 집행부의 경기력향상위원회가 투표로 선발전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학생승마협회 측은 "따로 밝힐 만한 입장이 없다"고만 했다. 한화넥스트 고위 임원은 "김동선 본부장과 관련한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면서 "김동선 본부장의 승마계 활동은 회사와는 관계가 없는, 개인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승마협회는 '정유라 승마 게이트'로 치명상을 입었다.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정윤회 부부는 승마 선수였던 딸 정유라씨를 위해 전횡을 일삼았다. 시사저널은 2014년 4월8일자 라는 기사를 통해 당시 승마협회의 실상을 최초로 보도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승마협회 관계자 E씨는 "정유라 승마 게이트가 터진 지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한단 말인가"라면서 "문체부든 대한체육회든 상급기관은 승마협회에 대해 철저한 감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