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기업’ 찍히면 매출·이미지 휘청…글로벌 여론 흔드는 ‘노사관계’ 화두
노동기구·소비자·사법부 ‘원만한 관계 노력’ 공감대…국내 ‘SPC 노조파괴 논란’ 후폭풍 촉각
기업 ‘노사관계’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가 그 어느 때 보다 엄격해지고 있다. 국제 노동기구와 세계 각국의 정부, 사법부까지 나서 해당 기업에 회초리를 드는 추세다. 이러한 조치가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라는 후폭풍을 부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원만한 노사관계가 단순히 사법 리스크 회피 목적이 아닌 기업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한국 비롯한 세계 각국에 감시망 펼친 국제 노동기구들…어긋난 노사관계에 강력 회초리
세계 각 나라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늘면서 국제 노동기구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고 있다. 특히 해외 진출을 시도하는 기업들의 ‘노사관계’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국내 기업들 역시 이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다. 특히 ‘노사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사건이 등장했을 땐 관심을 넘어 사태 해결을 위한 직접적인 개입을 시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례로 올해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angization·ILO)는 한국 정부에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에 대한 세부사항을 요청했다. ILO는 노동문제를 다루는 유엔의 전문기구다. 1969년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을 정도로 남다른 국제적 위상을 지니고 있다. 이런 ILO가 법개정안의 세부사항을 요청했다는 의미는 일부 기업의 악화된 노사관계에 대한 우려와 압박이 섞여 있다는 분석이다.
ILO는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금지 △차별금지 △아동노동금지 등 4개의 핵심가치를 내세우고 있는데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결사의 자유’ 부분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ILO는 한국의 노동환경에 대해 “반노조 차별·간섭 행위를 멈추고 결사의 자유를 보장해야한다”며 “어떠한 제재도 결사의 자유와 불합치하지 않아야한다”고 지적했다.
‘원만한 노사관계’를 추구하는 노동기구의 행보에 국제사회 여론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나라를 막론하고 ‘노사관계’가 기업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로 여겨지는 추세다. 심지어 소비자들의 구매 결정 과정에서 ‘노사관계’가 영향을 미치는 사례도 등장했다. 일례로 아일랜드 국적의 LCC(저비용 항공사) ‘라이언에어’는 CEO의 노조탄압 행위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앞서 2018년 마이클 오리어리(Michael O’Leary) CEO가 근로자들의 고용 계약을 대거 종료하는 방식으로 노조 결성을 방해한 사실이 알려져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결국 소비자 불매운동을 비롯해 대규모 파업까지 벌어졌으며 같은 해 국제노동조합 총연맹(International Trade Union Confederation·ITUC)이 뽑은 최악의 CEO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당시 오리어리 CEO는 노조를 인정하며 한 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으나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노조파괴를 시도하고 임금 협상에 응하지 않아 논란을 키웠다.
오리어리 CEO는 지금도 ‘노사관계’ 관련 이슈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자국(아일랜드)뿐 아니라 스페인, 미국 등 타국에서도 오리어리와 라이언에어에 대한 고소장이 제출돼 여러 국가에서 재판을 진행 중이다. 스페인에선 노동부가 라이언에어를 승무원 파업권 침해 및 작업 안정 규정 위반 혐의로 벌금을 부과하는 일도 있었다.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의 노동장관들도 라이언에어에 노동법 준수를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관계 악화 행위에 엄격한 잣대” 글로벌 여론 흐름에 편승한 세계 각국의 사법부
노사관계를 악화시킨 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도 엄격해지고 있다. 올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 항소 법원은 미국 이동 통신사 T-Mobile의 미국 커뮤니케이션 노조(Communications Workers of America·CWA) 탄압 사건에 대한 재검토 요청을 기각했다. 사건은 T-Mobile이 만든 T-Voice 조직이 노조의 활동 반경을 제한하는 식으로 노동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이 골자다. 앞서 컬럼비아 법원은 활동반경 제한을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는 ‘편법’으로 규정하고 국가 노동 관계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T-Voice는 2015년 T-Mobile이 만든 특수 조직이다. 해당 조직의 처음 취지는 직원들의 불만사항을 보고 받고 이를 개선한다는 것이었다. 다만 직원들의 불만 및 개선 사안을 꼭 해당 조직을 통해야만 하도록 한 것이 문제였다. 소속 근로자들은 회사 불만에 대해서 해당 조직을 제외하고는 공유하거나 제기할 수 없었다. 결국 2016년 전국노동관계위원회(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NLRB)이 T-Voice의 존재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을 진행했고 법원은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T-Voice 설립 직전 T-Mobile은 노동법 위반 가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게 판결의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T-Mobile은 노조원이란 이유로 휴가를 취소시키거나 해고하는 등 불이익을 주고 반대로 탈퇴 시 포상하는 방식으로 노조 와해를 시도한 사실이 알려져 노동법 위반 혐의 재판을 받았다. 당시 판결을 맡은 크리스틴 디블(Christine Dibble) 판사는 ‘직원의 권리를 제한하는 행위’라며 불법 판결을 내렸다.
경제계 안팎에선 나라를 막론하고 노동단체·소비자·사법부까지 합세해 ‘원만한 노사관계’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우리나라 또한 국제사회 흐름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원만한 노사관계를 해치는 행위를 저지른 기업과 제품에 대한 불신은 물론 사법적 판단에 있어서도 기업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현재 국내에서 노동법 위반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대표적 기업으로는 SPC가 꼽힌다.
상급 노동단체 한 관계자는 “현재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한 쪽으로 과도하게 권력이 치우친 관계 보단 서로 상생을 추구하는 균형적인 관계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우월적 관계를 내세워 원만한 노사관계를 해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소비자나 사법부 모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SPC가 노조파괴 혐의를 받고 있는데 그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며 “당장 해외 진출은 물론이고 국내 재판 결과도 긍정적인 상황을 장담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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