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조각이 ‘일탈 회계’·계약자 배당 이슈화
삼성생명 보유 삼성전자 지분 매각으로 비화도
사업지원TF 역할 못해…“밸류업 헛발질” 지적도
삼성전자·화재 추가 자사주 소각 실행 큰 부담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차원에서 앞으로 1년 내 10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는 상속세 납부로 주식담보대출이 많아 삼성전자 주가를 유지하는 게 대단히 중요한 오너 가문의 입장도 반영됐습니다. 자사주 매입 발표 후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각각 3조 원어치를 매입했고, 나머지 4조 원은 오는 10월 초까지 매입할 예정입니다. 삼성전자는 매입한 자사주 가운데 지난 2월 3조 원 어치를 소각했고, 2조 5천억 원 어치 주식도 곧 소각할 예정입니다. 상반기 실적이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지난해 말 발표한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서두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매입·소각하면서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겼습니다. 삼성전자의 지분 소유 구조를 보면 삼성 계열사 가운데 삼성생명이 8.5%로 가장 많고, 다음이 삼성물산 5%, 이재용 회장을 포함한 오너 일가 4.92%(이 회장 개인 지분은 1.65%), 삼성화재 1.5% 등입니다. 현행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비금융 계열사 주식을 최대 10%까지만 보유할 수 있습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지분 합계가 이미 10%이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소각하면 소각분의 10%만큼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도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해야 합니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자사주 3조 원 어치를 소각하자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대략 3000억 원에 가까운 삼성전자 주식을 팔았습니다. 두 회사는 삼성전자 주식 보유 비율(8.5대 1.5)에 따라 주식을 판 것으로 전해집니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 밸류업의 ‘그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3000억 원어치 주식을 삼성생명이 아닌 삼성화재가 모두 팔았다면 괜찮았을 텐데, 두 회사가 보유 비율에 따라 고르게 판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요즘 재계와 금융권의 이슈로 떠오른 ‘삼성생명 회계 논란’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논란은 단순히 회계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보험 계약자 보호 문제 등과 맞물려 있습니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일부 처분한 것이 왜 논란거리가 되는지는 199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보험사들은 주로 유배당 보험상품을 팔았고, 보험계약자들이 낸 보험료로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해 큰 수익을 올렸습니다. 유배당 상품은 보험사가 초과수익을 얻으면 계약자에게 당연히 배당해야 합니다. 삼성생명은 당시 삼성전자 주식을 대거 사들였기 때문에 이를 매각해 초과수익이 발생하면 일부를 계약자에게 돌려주는 게 상식입니다. 삼성생명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삼성생명 보유 삼성전자 지분 8.5%는 삼성그룹 전체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핵심 자산이었기에 매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금융당국도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재무제표에 ‘계약자 지분조정’이라는 모호한 항목을 두어 예외를 인정했습니다. 일종의 ‘일탈 회계’를 허용한 것인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일탈 회계는 2023년 1월 IFRS17(새 국제회계기준) 도입으로 다시 논란이 됐습니다. 새 기준은 유배당 보험계약에서 발생한 배당금을 보험부채 평가에 반영하도록 규정합니다. 그러나 삼성생명은 기존 입장을 유지한 채 금융당국에 해석을 문의했습니다. 당시 윤석열 정부 이복현 원장이 이끄는 금융감독원은 기존과 마찬가지로 일탈 회계를 인정했고, 이 결론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올해 초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자 회계 논란이 불거진 것입니다.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일탈 회계가 허용된 것인데 삼성전자 지분을 팔아버렸으니 당연히 문제가 됩니다.
회계 논란, 특히 보험사 회계 문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예외적으로 인정된 일탈 회계 체제를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IFRS17이 도입됐음에도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국제 기준을 지키지 않는 것이 되고, 회계 투명성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IFRS17 도입과 더 커진 회계 논란
삼성전자만이 아니라 그렇게 치밀하다는 삼성화재도 논란을 키웠습니다. 삼성화재는 밸류업의 일환으로 지난 4월 5126억 원 규모의 자기주식을 소각했습니다. 이로써 자사주 비중이 15.9%에서 13.4%로 줄었고, 2028년까지 5% 미만으로 낮추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주주환원 강화와 기업가치 제고라는 점에서 상식적인 조치였으나 삼성생명에는 곤혹스러운 나비효과를 불러왔습니다.
보험업법에는 이른바 ‘15% 룰’이 있습니다. 보험사가 계열사 지분을 15% 이상 보유하면 자회사로 편입해야 합니다. 삼성화재의 자사주 소각으로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율이 14.98%에서 15.43%로 상승해 자회사 편입 의무가 발생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정례회의에서 삼성화재의 삼성생명 자회사 편입을 승인했습니다. 그러나 삼성화재의 자회사 편입에도 불구하고 삼성생명 회계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복현 당시 금감원장은 “기업 밸류업 과정에서 기계적으로 지분율이 늘어난 것일 뿐 다른 것은 문제될 게 없다”며 일탈 회계에 이어 또다시 관대하게 넘어갔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관대함과 달리 시장과 학계 시각은 다릅니다. 삼성전자 자사주 소각에 대응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하면서 일탈 회계 논란이 확산된 상황에서, 삼성화재 자회사 편입과 관계회사 미분류는 불신을 더 키웠습니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를 자회사로 편입하고도 지분법 평가 대상인 ‘관계기업’으로 분류하지 않았습니다. 올 상반기 결산에서도 삼성생명은 “삼성화재에 유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이 명백히 입증되지 않았으므로 지분법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지분율이 15.43%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삼성화재 지분을 지분법이 아닌 FVOCI(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 측정 금융자산)로 분류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 판단이 합당한 것인지 의문이 잇달아 제기됩니다.
자회사 편입에도 관계사 분류는 안 해
한국회계기준원과 회계 전공 교수들, 시민단체와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삼성화재의 삼성생명 자회사 편입 이후 지분율이 20% 이하라도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에 ‘유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삼성화재 지분을 FVOCI가 아닌 지분법으로 회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디지털 플랫폼 공동 투자, 보험상품 연계와 채널 통합, 경영진 교류, 정보기술 및 고객정보 공유 등을 유의적 영향력 사례로 지적합니다.
삼성생명이 삼성화재를 지분법 평가 대상인 ‘관계회사’로 분류하느냐 아니면 자회사 편입에도 불구하고 기존처럼 FVOCI로 처리하느냐가 중요한 이유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화재 주식의 미실현 평가차익을 유배당 상품 계약자들에게 배당으로 지급해야 하는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삼성화재 지분에 대해 지분법 평가가 이뤄진다면 삼성생명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 역시 평가차익을 계약자에게 일부 배당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집니다. 이는 보험계약자 및 소비자 보호 문제와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삼성전자와 삼성화재의 자사주 소각이 촉발한 삼성생명 회계 논란을 두고 한국회계기준원, 진보 성향의 학자들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연이어 삼성그룹과 삼성생명을 압박합니다. 국회에서 토론회를 잇달아 열고, 금융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는 이찬진 신임 금융감독원장을 향해서도 강하게 목소리를 냅니다. 이에 금감원은 전문가들을 불러 삼성생명의 일탈 회계 문제와 삼성화재 자회사 편입에 따른 지분법 회계 적용 여부에 대해 의견을 들었습니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가능한 빨리 결론을 내겠다는 입장입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일탈 회계나 삼성화재 지분법 적용을 넘어 이번 기회에 국회 계류 중인 ‘보험업법 일부 개정안’, 이른바 ‘삼성생명법’을 통과시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되면 삼성생명은 보유 지분 8.5% 가운데 3%를 초과하는 5.5% 이상을 매각해야 하고, 유배당 상품 계약자들에게 배당을 해야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경우 이재용 회장을 포함한 오너 가문의 삼성전자 지배, 나아가 그룹 지배구조 전체가 흔들린다는 점입니다.
회계 논란이 삼성 지배구조 리스크로
삼성생명 회계를 둘러싼 일련의 논의를 보면서 이해되지 않는 점은 삼성전자와 삼성화재의 자사주 매입·소각이 대단히 어설프게 진행된다는 사실입니다. 한 회계학자는 “삼성 사업지원TF의 밸류업 헛발질”이라고까지 비판합니다. 삼성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3조 원 규모 자사주를 소각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금융산업 구조개선법을 지키기 위해 3000억 원어치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야 했다면, 두 회사가 보유 비율에 따라 나눠 팔 것이 아니라 삼성화재가 보유한 1.5% 지분(약 6조 원 규모) 중에서 3000억 원 어치만 팔았더라면 회계 논란은 확전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삼성화재의 밸류업도 중요하지만 자사주 소각으로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율이 15%를 넘으면 자회사 편입 문제가 발생하고, 이 경우 회계 논란이 증폭될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왜 삼성화재의 입장만 생각하고 자사주 소각을 강행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혹시 이를 미리 금융감독원에 문의했을 때 당시 이복현 원장이 “걱정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삼성화재는 큰 사고를 쳤습니다. 전혀 삼성화재답지 않는 경영 판단입니다.
삼성전자는 10월 초까지 10조 원 자사주 매입을 마친 뒤 이미 소각한 3조 원 어치 외에 임직원 성과 보상분을 제외한 5조~6조 원 어치를 추가 소각할 계획입니다. 삼성화재도 2028년까지 자사주를 5% 미만으로 낮추려면 약 2조 원 어치를 더 소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양사가 앞으로도 계속 대규모 자사주를 소각하고 이에 부응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삼성전자 지분을 팔고,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율은 20%에 점점 근접한다면 삼성생명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연히 여러 회계 논란은 더 증폭될 것이고, ‘삼성생명법’ 개정 같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매각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삼성화재는 자사의 밸류업만 생각해 자사주 소각을 밀어부칠 수 있을까요. 이재용 회장은 그룹 지배구조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을 제대로 알고나 있을까요.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뭅니다.
‘관리의 삼성’은 어디로 갔나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된 듯합니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사업지원TF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업지원TF는 한동안 삼성전자 위기와 관련해 ‘빈 카운터(콩알 세는 사람)’라며 비난받더니 이제는 치밀하지 못한 계열사 자사주 소각으로 문제를 더 키우고 있습니다. 사업지원TF는 이제 그 역할을 다한 듯합니다. 어느 기업에도 영원한 조직은 없습니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과 회계 문제는 언젠가 풀어야 할 숙제임이 분명합니다. 일탈 회계와 관계사 미분류, 유배당 보험상품에 대한 계약자 미배당, 시가가 아닌 장부가에 따른 삼성전자 지분 평가 등은 이제는 그 존재조차 희미한 ‘삼성공화국’의 마지막 남은 잔재들입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진보 진영이 이들 이슈에 대해 기를 쓰고 나서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비상계엄’과 ‘내란 사태’로 사상 유례없는 초강력 진보정권 출범이 예고된 상황에서, 단지 주식 밸류업만 생각해 자사주를 소각해 파문을 일으키고 그룹을 위기로 몰아가는 사업지원TF와 삼성전자, 삼성화재 수뇌부의 경영 판단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처럼 이재명 정부에서도 뒷일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입니다.
고전 '서경'에서는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은 피할 길이 없다”고 했습니다. 삼성생명 회계 논란과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 진영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과 계약자 배당 압박 등은 삼성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입니다. 개인도 그렇지만 기업도 스스로 모욕하기에 남들로부터 업신여김과 모욕을 당합니다.

박종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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