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 한명은 '사망'…사람잡는 '조류독감', 한국 뚫렸다

정심교 기자 2024. 10. 1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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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호아=AP/뉴시스] 3일(현지시각) 베트남 비엔호아의 동쏘아이 동물원에서 관계자들이 조류 인플루엔자 A형(H5N1)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은 호랑이 사체들을 방역하고 있다. 2024.10.04. /사진=민경찬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조류인플루엔자(AI·조류독감) 중에서도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고병원성 바이러스인 'H5N1형'이 국내에서도 발견되면서 새로운 감염병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 바이러스가 변이를 거듭해 조류에서 포유류를 거쳐 사람에게까지 전파되면 '걸린 사람의 둘 중 한 명은 사망'에 이를 정도로 치명률이 높다. 하지만 국내에선 아직 AI 백신을 대량 생산할 여건을 마련하지 못해 대규모 유행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이 지난 14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청미천에서 포획된 원앙 한 마리를 정밀 진단한 결과, H5N1형 바이러스가 최종 확인됐다. 우리나라에서 H5N1형 바이러스가 발견된 건 올해 동절기(올해 9월~내년 4월) 들어 처음이다. 일본에선 지난달 30일과 이달 8일 등 두 차례 야생조류에서 H5N1형이 검출됐다.

닭·오리·칠면조·야생조류 등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인 AI(Avian Influenza)는 병원성(감염체가 전염을 통해 숙주 개체로 전파된 후, 감염을 통해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에 따라 △고병원성 △약병원성 △비병원성으로 구분한다. 그간 조류에서 가금류(오리·닭 등)와 야생 조류, 포유류까지는 감염됐어도 사람에게까지는 잘 전파되지 않았다.

(산호세두노르테 로이터=뉴스1) 정지윤 기자 = 11월21일(현지시간) 브라질에 조류독감이 창궐하는 가운데 남부 산호세두노르테 지역 해안가에 돼지와 펭귄의 시체가 보인다. 2023.11.21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산호세두노르테 로이터=뉴스1) 정지윤 기자


(산호세두노르테 로이터=뉴스1) 정지윤 기자 = 브라질에 조류독감이 발병한 가운데 남부 산호세두노르테 지역 해안가에 죽은 쇠돌고래의 시체가 놓여있다.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산호세두노르테 로이터=뉴스1) 정지윤 기자

하지만 최근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하는 고병원성의 H5N1형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파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립부산검역소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22년 10월까지 18개국(아시아·중동·미국·영국 등)에서 H5N1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868명이었는데 그중 무려 456명이 목숨을 잃었다. 치명률이 52.5%에 달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H5N1은 지금까지 300종 이상의 조류와 40종 이상의 포유류를 감염시켰고, 우리나라에서도 고양이쉼터에서 고양이들이 AI에 감염된 냉동닭을 먹고 폐사된 사례가 있다.

H5N1이 동물에게 사람에게 전파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감염된 사람의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에게 전파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될 것이란 게 의학계의 경고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AI는 아직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전파 사례까지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몇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최근 동물에서 사람에게 전염되는 인수공통 감염 사례가 잦아졌다"며 "학계에서는 AI가 코로나19 다음으로 찾아올 넥스트 펜데믹(범유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우려했다.

AI 바이러스는 혈청 아형(subtype)이 매우 많고 변이가 쉽게 일어난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사람 간 전파'가 없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소·돼지 등에서 사람으로 전파된 후 언제든 사람 간 전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며 "유전자 변이로 인해 사람 간 변이까지 발생한다면 새로운 팬데믹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료=국립부산검역소

이런 가운데 지난 7월 미국 12개 주에서 젖소 140여 마리가 H5N1 AI에 잇달아 걸린 이후 젖소에서 사람으로 전파하는 사례가 잇따랐는데 모두 농장 근로자란 점에서 AI에 감염된 젖소의 젖을 짜다가 전파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핀란드 등 유럽에서도 AI에 감염된 사람이 10명을 넘었다.

AI는 주로 '직접 접촉'을 통해 전파되며, 사람이 AI에 감염된 조류를 직접 접촉하거나 호흡기를 통해 한꺼번에 많은 바이러스가 체내 들어올 때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AI에 감염된 닭의 분변 1g에는 10만~100만 마리 닭을 감염시킬 수 있는 고농도의 바이러스가 들어있다. 오염된 물, 기침할 때의 침(비말) 등으로 전염될 수 있고, 공기 중의 오염된 부유물이 바람을 타거나 야생 철새의 이동에 따라 장거리로 전파되기도 한다. 오염된 냉동 닭고기나 오리고기, 생계란 등 수입 등으로 국가 간에 전파될 수도 있다.

AI 바이러스에 사람이 감염되면 평균 3~7일간, 최대 10일간 잠복기를 거친 후 38도(℃ ) 이상의 발열, 오한, 근육통을 동반한 기침, 인후통 등 감기와 비슷한 호흡기 증상이 나타난다. 이후 폐렴이 발생했다가 호흡부전으로 진행해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결막염, 구역·구토·설사를 수반한 소화기 증상, 신경학적 증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AI에 감염된 질환 즉, AI 인체감염증으로 진단받으면 '타미플루', '리렌자' 같은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해 치료한다. 살처분에 동원된 관계자 등에게는 예방적으로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AI 백신 연구·개발이 활발하다. 우리나라에선 AI 백신이 일부 개발·생산되긴 했지만 '면역증강제'가 없다는 게 한계점으로 꼽힌다. 면역증강제가 있으면 백신의 재료인 '항원'을 적게 쓰고도 백신을 만들 수 있는데, 감염병 대유행 시 백신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접종하기 위해 항원을 아껴야 할 때 필요하다. 이재갑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백신은 '유정란 백신'과 '세포배양 백신'이 있는데, 면역증강제가 없어 이를 확보한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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