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액티브] 반지하 집에 불이 나면 어디로 탈출하면 될까
(서울=연합뉴스) 김연수 인턴기자 = "집에 불이라도 나면 꼼짝없이 죽겠구나 생각했어요. 내가 방범창을 뜯고 나갈 수도 없으니…"
지난 2일 오후 1시께 서울 광진구의 한 골목 주택가. 반지하 주택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반지하 주택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창문을 빽빽하게 채운 방범창.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와 창문이 맞닿아 있어 치안에 취약한 반지하 주택에 방범창은 도둑으로부터 집주인을 지켜주는 안전장치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 설치한 방범창은 화재 시 탈출을 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런 반지하 주택에 불이 나면 어디로 탈출해야 할까. 직접 반지하 주택 안으로 들어가 봤다.
집 안으로 들어서면 현관문을 마주 보고 작은 주방이 있다. 주방과 분리된 방 하나와 화장실이 전부인 작은 원룸이다. 이 집에서 밖으로 통하는 창구는 현관문과 창문뿐이다. 하지만 창문에는 쇠로 만들어진 방범창이 촘촘하게 설치돼있어 위급상황 발생 시 현관만이 유일한 탈출구다.
현관 바로 옆 주방에서 불이나 현관으로 갈 수 없다면 화재 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집 안에는 방범창을 뚫고 탈출할만한 도구도 없었다. 방범창을 흔들어 봤지만, 철로 고정되어 있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을 끌 수 있는 가정용 소화기도 없었다.
이 집에 사는 함모(27)씨는 "주방에 인덕션과 가스가 있는데 (주방에서) 불이라도 나면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며 "불이 나면 꼼짝없이 죽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른 반지하 주택도 사정은 비슷했다. 지난 7일 오후 4시께 서울 광진구의 또 다른 반지하 주택에 찾아갔다. 이 집의 유일한 탈출구는 현관과 화장실 안에 작게 난 창문뿐이었다. 창문이 좁을 뿐만 아니라 방범창이 설치돼있어 탈출구로 사용할 수조차 없었다. 이 집에도 가정용 소화기는 없었다.
이 집에 6년째 살고 있다는 김모(24)씨는 "화장실은 씻는 공간이라 창문이 작고 방범창이 설치돼 있는 편이 안심이 된다"면서도 "평소에는 안심이 되지만 불이 나거나 위험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창문으로 탈출할 수 있다고 해도 또 하나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창문 앞을 가로막고 있는 담장이다. 방범창이 설치된 창문 밖으로 좁은 틈을 두고 담장이 설치된 곳도 있었다. 창문과 담장 사이는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큼 좁았다. 창문을 뜯고 나왔다고 해도 좁은 틈을 두고 설치된 담장이 길을 가로막아 탈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담장이 없는 곳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주차된 자동차가 창문을 가로막고 있거나 큰 화분과 킥보드가 놓여있었다. 탈출 통로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반지하 주택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방범창이 설치된 반지하 주택에서 불이 나 대피하지 못한 이가 죽은 일도 있었다. 지난 2022년 10월 마포구 다세대 주택 지하에서 불이 나 30대 남성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 사고 당시 남성은 화장실 창문에 설치된 방범창에 막혀 탈출하지 못했다. 범죄예방을 위해 만들어진 방범창이 위기 상황에 대피로를 차단하는 창살이 됐다.
이렇게 반지하 주택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탈출 통로 확보와 초기 진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반지하의 방범창을 (여닫을 수 있는) 개폐식 방범창으로 교체한다면 안전 확보에 뚜렷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한 "재난 시 창문과 현관으로 탈출해야 하기 때문에 열리는 방범창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개폐식 방범창은 평상시에는 평범한 방범창 역할을 하다 침수·화재 등 재난 시 현관문 탈출이 불가능할 경우를 대비하여 집 내부에서만 여닫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개인이 설치할 경우 5만원 이내 비용이 들며 지자체에서 설치를 무상으로 지원해주기도 한다.
개폐식 방범창 외에 집 안에 단독 경보형 감지기(연기로 화재를 감지해 경보가 작동하는 장치)와 소화기를 설치할 경우 소방서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y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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