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옆집 애는 ㅇㅇ의대 갔대”…우울한 강남 아이들 [입시N년생③]

<편집자주> 강남(江南)은 ‘강의 남쪽’ 지역으로, 서울에서는 한강 이남 지역을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 강남을 한강 이남 동쪽에 있는 강남 3구 지역으로 떠올린다.
부유한 자산가들이 사는 그곳, 평당 2억의 상상을 초월하는 집값, 이외에도 강남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교육열’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입시 경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갈수록 경쟁은 더 정교해지고 기형적인 모습이 돼가고 있다.
이 아이들은 행복할까? ‘입시 N년생’을 사는 우리 아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글 나가는 순서>

1화 기저귀 차고 ‘4세 고시’…강남엔 ‘영어유치원’이 더 많다 [입시N년생①]

2화 대치동 아이들이 먹는 ‘똘똘이약’, 3년 만에 2배 ‘껑충’ [입시N년생②]

3화 “옆집 애는 ㅇㅇ의대 갔대”…우울한 강남 아이들 [입시N년생③]

영국 런던의 한 건축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박가희(39)씨. 올해로 10년 차 건축가다.

20년 전 영국으로 처음 왔을 때 박씨는 한국과 다른 영국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가장 큰 차이는 입시를 대하는 태도와 관점이다.

박씨는 “시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속상하지만, 그렇다고 좌절까지 하지는 않는다”며 “원하는 대학에 꼭 가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란 믿음, 또 다른 길에 도전할 수 있다는 신뢰가 깔려있다”고 했다.

영국에서 일하고 있는 건축가 박가희씨(오른쪽)와 박씨가 다닌 영국 건축학교 AA 스쿨(왼쪽). AA 스쿨 홈페이지 캡처

우리나라는 입시 결과에 따라 미래를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경쟁 교육에서 실패하면 낙오될 것이라는 불안감과 공포감이 큰 것이다.

대학생 10명 중 8명 이상은 고등학교 시절을 ‘사활을 건 전장’으로 표현(2017년 KDI)하고, 초중고생 4명 중 1명은 학업 스트레스로 자해나 자살을 생각해 봤다고 응답(2022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할 정도다.

유혜진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은 “우리나라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학업 스트레스”라며 “부모와 친구, 선생님 간의 관계 문제도 결국 학업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래픽= 양혜정 기자

◆ 우울한 강남3구 아동·청소년, 5년 연속 상위권

세계일보가 서울연구원에 의뢰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울 등의 기분정동장애와 불안 등 신경증성 및 스트레스 관련 장애를 호소해 병원을 찾은 서울 아동·청소년은 2018년 1만1635명에서 2022년 2만1367명으로 4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강남과 서초, 송파 지역이 5년 연속 상위 3위권을 유지했다.

소득이 높은 강남3구 지역일수록 병원을 찾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압도적인 규모다.

유혜진 소장은 “학군지일수록 등수가 하나만 떨어져도 굉장히 실패자가 된 것 같은 기분, 큰 좌절감을 느낀다”며 “가족이나 친구에게조차 성적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는 아이들 중에는 아예 사회와 단절하는 ‘히키코모리(회피성 성격장애)’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강남 지역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운영하는 박성열 서울마음숲클리닉 원장도 “중고등학생의 경우 반 이상이 우울증으로 온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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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심한 입시 경쟁...‘대학 서열화’가 원인

전문가들은 경쟁 과열의 원인을 ‘대학 서열화’에서 찾는다.

실제 우리나라는 ‘SKY’(스카이, 서울대·고려대·연세대)인지, ‘인서울’(서울 소재 대학)인지에 따라 순위가 매겨진다.

또 이 대학 서열화는 사교육을 양산하고 경쟁을 더 부추긴다.

공교육은 무너진 지 오래다.

신소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는 “초등교사 얘기를 들어보니, 한 초등학교 3학년생이 거의 매 순간 학교 수업을 듣지 않고 교과서 밑에 다른 것을 깔아놓고 공부한다고 하더라”며 “영어유치원, 영재반, 초등의대반 등 입시 경쟁이 틈 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두고 진로를 정하는 게 아니라 의사처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만 꿈꾸게 된다”고 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게티이미지뱅크

해외의 경우엔 어떨까. 5000여개의 대학이 존재하는 미국은 매해 대학별 순위를 공개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 순위보다는 대학별 특성과 전문성을 고려해 지원한다.

프린스턴 대학교(Princeton University)가 순수 수학, 물리학, 철학 분야에 강점을 두고 있고,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이 언어학, 인공지능(AI), 컴퓨터 공학 등으로 유명한 것처럼 대학 특성을 고려해 지원한다는 것이다.

교육 선진국으로 꼽히는 영국도 마찬가지다.

해당 대학이 어떤 분야에 강점을 두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건축가 박씨는 “건축학의 경우 본질적인 질문을 중시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비즈니스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곳 등 대학마다 강점을 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런 전공별 특성을 파악하고 지원한다.

영국에도 옥스퍼드(Oxford)나 케임브리지(Cambridge) 등 세계 순위권에 드는 명문대학이 있지만, 모두가 그 대학을 목표로 시험을 준비하지는 않는다.

박씨는 “지방에도 얼마든지 훌륭한 명문대학이 많아서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고민할 수 있다”고 했다.

해외 대학 학생들. 게티이미지뱅크

◆ 다양성·개별성 중시하는 해외 교육 선진국들

해외에서 ‘대학 순위’는 절대적인 의미가 없단 얘기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결국 다양성과 개인 특성을 존중하는 대학입시제도에 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해외 교육 선진국들은 대부분 대학 선발 과정에서 성적이 아니라 개인이 가진 재능을 더 중시한다.

다양성이 있는 학교가 가장 이상적인 교육의 장소이고, 엘리트만 있는 환경에서는 인재가 나오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미국 하버드 대학은 점수가 높지 않아도 다녔던 학교, 출신지, 가족의 평균 소득, 접근할 수 있는 자원을 고려해 주어진 상황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 인재인지 평가한다.

해외 대학 학생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의 한 사립대를 졸업한 김모(36)씨는 “우스터 공과 대학(Worcester Polytechnic Institute)은 공학 중심의 수업과 높은 취업률로 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교 중 하나인데, 학생 선발에 SAT(대학입학시험) 점수를 보지 않는다.

대신 프로젝트 수업에 도움이 되는 인재인지를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회계학에 강점을 둔 뉴욕 버룩 칼리지(Baruch College)를 석사 졸업한 송모(28)씨도 “미국 입시는 수능 시험 점수가 무조건 높다고 되는 게 아니다.

평균 점수만 있으면 되고 그밖에 동아리 활동이나 삶의 스토리, 목표, 리더십 스킬 등이 중요하다”고 했다.

송씨는 “한국 교육이 남을 짓밟고 올라서야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줄 세우기식 경쟁’이라면, 미국 교육은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실패도 해보고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는 과정,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체계”라고 전했다.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 게티이미지뱅크

프랑스에서는 입학 자격만 되면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다.

일단 일반대학은 바칼로레아(Baccalaur?at·논술형 대학입학시험)를 통과하면 원하는 전공에 지원할 수 있다.

만약 한 학교 학과에 인원이 몰리면 추첨하는 식이다.

올해 바칼로레아 합격률은 91.4%. 모두 절대 평가다.

이 때문에 사교육의 역할도 우리나라와 다르다.

프랑스에서 10년간 한국어 강사로 일해 온 김소영(50)씨는 “일반적으로 사교육은 선행학습이 아니라 보충수업의 의미”라며 “학업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과외를 통해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려는 의도”라고 했다.

물론 해외 교육제도도 학업 성취도와 공정성 면에서 꾸준히 논란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경쟁보다 개인의 적성을 발견하고 키우는 데 집중하는 교육 방식이 아이들에게 삶의 행복감을 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21년 한국은 세이브더칠드런의 ‘국제 아동 삶의 질 조사’에서 35개국 중 31위. 같은 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중 ‘주관적 행복’은 79.5점으로 OECD 22개국 중 22위로 꼴찌를 기록했다.

위태롭고 슬픈 통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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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쟁 기회를 줄이고 좋은 대학 많이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이 대학 서열화로 비롯된 기형적인 경쟁의 굴레를 하루빨리 끊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해법 중 하나가 ‘절대 평가’다.

현재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때부터 일부 과목을 중심으로 상대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내년부터는 사회과학 융합, 예체능, 교양과목을 제외하고 모든 과목이 상대 평가로 바뀐다.

서울 영등포 지역의 한 중학교 교사 박모(39)씨는 “공식적으로 중학교 때는 절대 평가이지만, 절대 평가한 평균 점수를 학생에게 비공식적으로 알려주는 게 현장 관행”이라며 “자기와의 경쟁이 아니라 옆자리 친구를 밟고 올라가는 출혈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신소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는 “대학 서열화로 인한 과잉된 경쟁 구도를 완화하려면 결국 시험 빈도를 줄인다든지, 상대 평가를 절대 평가로 바꾼다든지 하는 등 경쟁의 기회를 줄이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신 대표는 이와 함께 전국적으로 좋은 대학이 많아질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중요하다는 조언을 내놨다.

이진우 기자 realstone@segye.com, 국윤진 기자 sou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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