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력히 추진해온 ‘관세·반이민’ 정책이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경제적 현실과 충돌하면서 정책을 잇달아 번복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극우 강경 지지층은 물론 투자 기업들까지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한국 기업 700조원 투자했는데… “쇠사슬로 묶여 끌려간” 충격 현실
지난 9월 4일,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사건이 트럼프 정책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은 한국인 317명을 포함해 총 475명을 불법 체류 혐의로 체포했다.
문제는 단속 과정이었다. ICE는 체포된 한국 근로자들을 쇠사슬과 케이블 타이로 허리와 손목, 발목을 묶어 중범죄자처럼 연행했다. 이 장면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면서 국제적 파장이 일었다.
한국 기업들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약 5000억 달러(약 70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미국 내 일자리 80만 개가 한국 기업 덕분에 직간접적으로 창출됐지만, 정작 투자 기업의 전문 인력들은 ‘불법 체류자’ 취급을 받은 것이다.
“투자는 하라, 인력은 안 된다”… 모순된 트럼프 정책에 기업들 ‘멘붕’
트럼프 행정부는 외국 기업들에게 막대한 투자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현장에 필요한 전문 인력의 취업 비자 발급은 엄격히 제한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였다.

미국이 연간 발급하는 H-1B 전문직 비자 8만5000개 중 한국은 고작 2000명 내외만 승인받고 있다. FTA를 체결한 캐나다·멕시코는 무제한이고, 호주는 1만500명의 쿼터가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 기업들은 공장 건설을 제때 완료하기 위해 B-1 비자나 ESTA 등 ‘우회로’를 통해 전문 인력을 파견할 수밖에 없었다. 바이든 정부 시절 묵인됐던 이런 관행이 트럼프 2기 들어 강력한 단속 대상이 된 것이다.
경제 앞에 무너지는 반이민 정책… “미쳤다” 지지층 격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인 구금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하고 입장을 바꿨다. 9월 14일 트루스소셜에 “다른 국가 기업들이 대미 투자를 겁먹길 원치 않는다”며 외국인 전문 인력의 미국 체류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의 첫 번째 정책 번복이 아니다. 최근 몇 주 동안 반이민 정책이 경제를 위협할 때마다 정책을 철회하거나 모순된 발언을 내놓았다.
중국인 유학생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5월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중국 유학생 비자를 “적극적으로 취소”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두 달 뒤 트럼프는 오히려 60만 명의 중국 학생 입학을 허용하겠다고 발언해 보수 진영을 충격에 빠뜨렸다.
극우 강경 지지층인 마가(MAGA) 진영의 반발이 거세다.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은 “60만 명의 중국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의 기회를 빼앗게 두어서는 안 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농업·호텔업계도 “이민자 없으면 망한다” SOS
6월에는 농업과 요식업 등 이민자 노동력에 의존하는 업계의 타격을 우려해 해당 업종 단속을 잠정 보류했다가, 강성 지지층의 반대에 부딪혀 수일 만에 다시 단속을 재개하는 우왕좌왕을 보였다.
트럼프는 당시 “농부와 호텔·레저 업계가 수년간 함께해온 숙련 이민 노동자가 사라지고 있으며, 그 자리를 대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실상을 토로하기도 했다.
“사업가 트럼프” vs “민족주의자 트럼프”… 커지는 내부 갈등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정책 번복이 그의 ‘사업가적 본능’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케네스 쿠치넬리 전 국토안보부 차관보는 “대통령은 기업인이기에 ‘이 정책 때문에 사업을 못 하겠다’는 목소리에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카토연구소 데이비드 J. 비어 이민연구국장도 “트럼프는 행정부의 다른 인사들처럼 민족주의적 ‘정화’에 진심인 것은 아니다”라며 “경제적 필요성에는 늘 유연성을 보여왔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 번복은 정책 실행 부처에도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이 주도하는 연간 100만 명 추방 계획과 경제적 현실 사이에서 ICE 등 실무 부서들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도 계속될 ‘트럼프 딜레마’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제조업 투자를 유치하려면 전문직 비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액시오스도 “트럼프 행정부가 공장을 지으라고 압박하면서도 동시에 이민 단속을 강화해 고숙련 엔지니어 부족을 초래했다”며 “이번 사태가 다른 해외 제조업체들의 대미 투자 계획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분간 ‘미국 우선주의’라는 정치적 슬로건과 경제적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계속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강경 정책과 경제 성장을 위한 실용적 접근 사이의 딜레마가 트럼프 2기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주요 출처:
– 머니투데이
– 헤럴드경제
–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