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다채로운 홍콩의 맛

A Taste of Hong Kong

화려한 빌딩숲과 옛길이 공존하는 홍콩은 미식도 럭셔리 파인다이닝과 허름한 노포가 모두 건재함을 뽐내며 다채로움이 빛나는 곳이다. 홍콩에서 3년간 신혼을 보내며 도시 구석구석을 탐방해온 부부 셰프 티케이, 클레어가 소개하는 홍콩의 ‘찐’ 매력.


서울숲 골목에 자리한 ‘플레이버 타운’은 셰프 티케이(이태규), 클레어(김정숙)가 “주소만 한국”이라는 슬로건 아래 세계 곳곳에서 경험한 맛을 아시안 퀴진 베이스로 풀어놓는 곳이다. 업장명은 부부가 오래 생활했던 호주에서 요리사들이 ‘맛집’이란 의미로 쓰던 슬랭을 따온 것. 뼈를 발라낸 족발을 튀긴 뒤 코코넛 캐러멜과 고추를 넣고 볶아낸 ‘족발튀김’, 광둥식 생선찜 요리를 응용해 청고추와 할라페뇨를 이용한 삭힌 고추로 매콤한 감칠맛을 더한 ‘삭힌 고추 우럭술찜’ 등 이국적이면서도 한국인의 입맛에 착 달라붙게 설계한 메뉴가 즐비하다. 단골들 사이에서 이곳이 ‘서울숲의 맛동산’으로 통하는 이유다.

두 사람은 시드니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아직 한식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던 2011년, 시드니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셰프들끼리 의기투합해 열었던 한식 팝업 ‘SOS(Seoul of Sydney)’의 멤버로 만난 것이다. 프렌치를 전공한 티케이와 프렌치 페이스트리를 배운 클레어는 각기 다른 파인다이닝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팝업을 통해 한식의 가능성을 엿본 티케이는 2013년 시드니에 코리안 다이닝 레스토랑을 오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마음이 맞았던 둘은 호주에서 지내는 동안 유럽 출신 동료 요리사들의 초대를 받아 1년에 한 번 한 달의 휴가를 얻어 유럽을 여행하곤 했다.

그런 두 사람에게 요리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여행지를 한 곳만 꼽으라 하면 단연 홍콩이다. 홍콩, 마카오에 직장을 얻어 그곳에 3년간 정착했던 특별한 추억 덕분이다. 호주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린 부부는 2018년부터 홍콩의 중심가인 셩완 지역에 신혼 살림을 꾸린다.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가 경험했던 놀라운 맛들을 다 모아놓은 공간을 만들자”고 다짐하고, 홍콩을 구석구석 열심히 탐험했던 시간이었다.

“홍콩은 보통 2~3일 짧은 일정으로 오는 여행객이 많아 쇼핑 후에 딤섬을 먹고 야경을 보는 뻔한 코스로만 알려져 있잖아요. 홍콩의 매력은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호주에 있을 땐 6시간 이상 장거리 비행을 해야 타 지역으로 여행을 갈 수 있었는데 홍콩은 30~40분만 이동하면 색다른 매력을 지닌 마을을 만날 수 있고, 걸어서 중국 여행도 가능해요. 광둥 지역 선전에 여행 갈 때 처음으로 국경을 두 발로 넘어가며 떨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클레어)

©Daniel_Ferryanto / shutterstock.com

소박함과 럭셔리가 공존하는 도시

“럭셔리한 여행을 추구한다면 정말 끝도 없이 돈을 쓸 수 있는 곳이 홍콩이에요. 반면, 저렴하고 맛있는 식당이 정말 많아서 돈을 힘들게 아끼지 않고도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죠. 허름한 가게에서도 맛있게 식사를 하는 홍콩 부자들을 쉽게 볼 수 있고, 특급 호텔들도 접근성이 좋아 반바지 차림의 편한 복장으로 가도 이상하게 보지 않아요.”(클레어)

두 셰프는 홍콩의 가장 큰 매력을 묻는 질문에 거침없이 ‘반전 매력’이라고 답했다. 과거와 현재, 화려함과 소박함, 럭셔리와 험블함이 공존하는 도시라는 것. 홍콩의 대표 먹거리인 딤섬만 보더라도 미쉐린 3스타의 화려한 딤섬과 골목 한구석에서 수십 년을 만들어온 노포 딤섬이 저마다의 건재함을 뽐내는데, 이런 모습이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같은 하가우(잘게 다진 새우살을 넣고 조개 모양으로 쪄낸 딤섬)라도 겉모양은 로컬 식당이나 미쉐린 3스타가 똑같은데, 맛은 확실히 차별화되는 포인트가 있어요. 옛날부터 먹어왔던 요리를 이렇게 고급화하고 다른 스타일로 재창조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죠. 그래서 홍콩에서 최대한 다양한 맛집을 다니면서 익숙한 음식을 좀 더 다이닝스럽게 꾸밀 수 있는 포인트가 무엇인지 탐구했어요.”(티케이)

홍콩의 마을들도 팔색조 같은 매력을 품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홍콩섬 이외에도 230여 개의 수많은 섬으로 이뤄진 곳이 홍콩이다. 페리를 타고 조금만 가면 빌딩이 빼곡한 도심에서 벗어나 한적하고 여유로운 어촌을 만나게 된다. 클레어는 “현지인이 타는 페리는 느리고 불편하지만 비용이 굉장히 저렴하기 때문에 주말마다 새로운 섬을 탐방하는 재미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중 가장 추천하는 섬은 청차우. 현지인들이 즐겨 나들이를 가는 아기자기한 섬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로 온 듯한 풍경을 조우할 수 있다. 만을 따라 늘어선 해산물 식당에서는 홍콩섬이나 침사추이보다 저렴한 가격에 다채로운 메뉴를 판매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영감을 주는 맛들

대부분의 홍콩 사람들은 집에서 거의 요리를 해먹지 않는다. 외식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새벽 3시부터 문을 여는 딤섬집에서는 나이 지긋한 로컬이 신문을 읽으며 딤섬 한두 개로 아침 식사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저녁 나절 소호와 란콰이펑 일대에는 해피아워에 맞춰 술 한잔 걸치러 온 직장인들이 빼곡하다. 티케이, 클레어는 일상 속 홍콩에서의 식사를 어떻게 즐겼을까?

“아침은 주로 파인애플 번이나 에그타르트를 밀크티와 함께 먹었어요. 홍콩식 에그타르트는 마카오와는 조금 다른데요. 마카오식은 표면을 구워 거뭇거뭇한 반면, 홍콩식은 노란색 커스터드입니다. 쌉쌀한 밀크티와 천상의 궁합이죠. 청펀(쌀피로 재료를 감싼 기다란 딤섬)도 자주 먹었어요. 보통은 새우를 넣고 말아주는데, 여기에 좀 더 신선한 재료로 식감을 살려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멘보샤 스타일의 새우 토스트에 한국인이 좋아하는 숙주와 쪽파, 청양고추를 가미해서 ‘새우 토스트 청펀’이라는 메뉴를 만들었어요. 플레이버 타운의 스테디셀러 중 하나입니다.”(클레어)

킹크랩을 웨이스트 없이 3가지 코스로 요리해주는 플레이버 타운의 인기 메뉴 ‘게임 오버’에도 홍콩에서의 다이닝 경험이 녹아들었다. 원하는 해산물을 골라 요리 방식을 주문하면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홍콩의 라이브 시푸드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손님이 원하는 대로 킹크랩을 요리해준다. 그래서 자주 오는 단골들도 질리지 않고 매번 색다르게 요리를 즐긴다.

갖가지 식재료를 파는 홍콩의 시장도 이들 부부에겐 좋은 놀이터였다. 집에서 가까웠던 센트럴 마트에는 부유층이 많은 소호 지역과 연결된 덕분인지 품질 좋은 외국 식재료가 넘쳐났고, 로컬 시장에선 훨씬 저렴한 가격에 식재료를 만날 수 있었다. 특히 과일이 다양했는데 모두 수입산이어서 “홍콩은 사람 빼고 다 수입한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구입한 과일을 씻어서 먹기 좋게 다듬어주고 즉석에서 주스로 갈아주는 서비스도 활성화되어 있어 자주 애용했다.

“홍콩은 식재료를 푹 익히거나 끓이는 것보다는 웍을 활용해 센불에 빨리 볶아 먹는 방식을 선호해요. 그러다 보니 셀러리와 레터스(상추)를 혼합한 셀터스나, 콩잎의 새순(Pea Tendrills) 등 식감이 독특한 재미난 채소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티케이)

하이킹과 보트 트립의 천국

홍콩 하면 복잡한 도시 풍경만 떠올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 멋진 녹지 공간이 보물처럼 숨어 있다. 티케이, 클레어 부부는 쉬는 날이면 근교의 산을 찾아 하이킹을 즐겼다. 클레어의 한글 이름을 딴 ‘정숙 투어’를 SNS에 공지한 후 참여를 원하는 동료 셰프들과 함께 간식을 싸 들고 새벽같이 산을 올랐을 정도로 하이킹에 푹 빠져 지낸 시간이었다. 특히 추천하는 코스는 ‘아시아 최고의 트레킹 코스’로 꼽힌 바 있는 드래곤스 백. 용의 등처럼 굽이친 산길을 따라가면 푸른 바다와 숲이 만나는 절경을 보게 되고, 섹오 피크의 정상에선 섹오반도의 해안선이 파노라마 뷰로 펼쳐진다.

“단체 여행을 한다면 정크 보트 트립도 강력 추천합니다. 10여 명이 보트를 한 대 빌려서 홍콩 바다를 떠다니며 다양한 섬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어요. 해변에 정착해서 물놀이를 하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죠. 한국의 요트 트립에 비해 가격이 훨씬 저렴하고 로컬들도 자주 즐길 정도로 접근성이 좋아요.”(클레어)

두 사람에게 여행이란 무엇일까? 여행 일정을 빡빡하게 잡고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탓에 늘 녹초가 되지만 마음만은 즐겁다는 클레어는 “휴식이자 고행”이라고 답했고, 여행 중 생각 없이 지나칠 수 있는 풍경도 사진으로 기록하길 즐기는 티케이는 “아이디어가 넘치는 보물 창고”라고 말했다. 얼마 전에도 두 사람이 영감을 받았던 곳들과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스태프들과 함께 홍콩 여행을 떠나 하루 열 곳씩 맛집 탐방을 했다는 부부. 홍콩은 이들에게 여전히 삶의 에너지와 영감을 주는 원천으로 자리 잡고 있다.


티케이, 클레어 셰프가 추천하는 홍콩 음식 레시피

삭힌 고추 우럭술찜

재료 통우럭 1마리, 청고추·할라페뇨 각각 100g, 소금 5g, 샤오싱주(요리용) 30ml, 말린 표고버섯 2개, 다시마 1장, 진간장 100ml, 설탕 10g, 식초 10g, 쪽파 3쪽, 생강 2쪽, 식용유 100ml

1 청고추와 할라페뇨를 다진 후 소금을 첨가하여 상온에서 이틀 이상 삭힌다.

2 표고버섯, 다시마, 진간장에 설탕과 식초를 섞고 한소끔 끓여 맛간장을 만들어놓는다.

3 다진 생강과 3등분한 쪽파에 식용유를 충분히 부어준 후 약불에 1시간 끓인다. 냉장고에서 하루 숙성시켜 체에 거르면 향신유 완성.

4 우럭을 반으로 갈라 뼈를 발라내고 샤오싱주에 30분 이상 마리네이드한다.

5 우럭 위에 삭힌 고추를 펴 바르고 찜기에서 약 15분간 쪄낸 뒤, 뜨거운 맛간장과 뜨거운 향신유를 우럭 위에 붓는다.

TIP. 우럭은 냉장고에 하루 숙성시킨 뒤 조리해야 강한 수축이 일어나지 않는다.


새우 토스트 청펀

재료 감자전분 20g, 쌀가루 30g, 타피오카 전분 20g, 물 20g, 새우 150g, 달걀흰자 10g, 식빵 1개, 소금 2g, 숙주 10g, 쪽파 10g, 즈마장 30g, 청양고추 30g, 식용유 1L

1 새우의 껍질을 까서 칼로 다져 소금으로 간을 한 후, 달걀흰자와 함께 치대 빵 위에 올려 멘보샤 모양으로 만든다.

2 세 가지 전분을 물과 함께 섞고 평평한 스테인리스 판에 얇게 부어 2분 정도 쪄낸 뒤, 납작한 음식용 스크래퍼로 긁어 청펀을 만는다.

3 ②의 청펀 위에 길게 썬 쪽파와 숙주를 넣고 다시 한번 쪄내고, 7분간 식용유에 튀긴 새우 토스트 위에 올린다.

4 쪽파, 참깨, 청양고추를 청펀 위에 올리고 즈마장을 곁들인다.

TIP. 새우 믹스는 빵에 최대한 평평하게 발라야 타지 않고 균등하게 익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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