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People] LG 트윈스 오지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지난 1월 19일, LG 팬들이 간절하게 기다리던 소식이 전해졌다. LG 트윈스의 주장 오지환이 구단 최초로 다년 계약을 체결한 것. 작년 시즌이 끝난 이후에 적지 않은 선수들이 이적하는 걸 지켜봐야 했던 LG 팬들로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는 소식이었다. 어린 나이부터 구르고 까지면서도 변함없이 팀의 내야 한 자리를 꿋꿋하게 지킨 15년이라는 시간. 그 시간을 거쳐, 오지환은 어느새 그가 없는 LG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의 유니폼 가슴팍에는 변함없이 ‘트윈스’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Mingyu Kim Location San Francisco Giants Baseball Complex
#모든 것이 오랜만
진짜 오랜만에 만납니다. 독자분들에게 인사 한마디 부탁해요. (2월 10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LG 트윈스 오지환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꼭 다시 나와서 인터뷰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제 차례가 됐네요.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마지막 인터뷰가 무려 10년 전인데, 그때랑 비교하면 어떤 점이 달라진 것 같나요?
그때는 너무 어렸어요. 그래서 제 얘기를 깊게 하기보단 항상 야구선수로서 해야 할 기본적인 얘기를 주로 했던 기억이 나요.
3년 만에 해외 스프링 캠프에 왔어요. 한동안 국내에서 캠프를 했는데, 요즘 느낌은 어때요?
정말 좋아요. 이렇게 따뜻한 곳에 와서 훈련할 수 있다는 거는 선수들한테 정말 큰 복이잖아요. 몸이 잘 만들어진다는 느낌도 많이 들고요. 또 한국은 지금 춥다 보니, 기본적으로 한국보다는 여기가 운동하기에는 확실히 좋다고 느껴요.
해외 캠프를 처음 경험한 후배가 여럿 있잖아요. 애리조나에 오면서 본인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궁금한 걸 물어보는 선수는 없었나요?
글쎄요? 다들 자기 훈련하느라 바쁘기도 하고, 캠프가 워낙 긴 기간이다 보니 아직 저한테 뭔가를 물어보는 선수는 없었어요. 뭔가를 궁금해한다기보다는 많이 설레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몇 년 만에 해외로 오거나, 처음 해외에 나오다 보니까 “긴장돼요”, “설레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던 거로 기억해요. 당장 (정)우영이 같은 친구들도 몇 년 전에 호주에 간 뒤로 애리조나에 온 거는 처음이거든요. 또 (문)보경이 같은 경우도 해외 캠프가 처음이라 많이 설레하더라고요.
#주장의 이름을 달고
지난 시즌 얘기를 안 해볼 수 없죠. 2022시즌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는데, 작년이 본인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개인적으로는 많이 발전된 느낌이 들어서 좋았던 한 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런데 팀적으로는 끝맺음이 별로 좋지 않아서 아쉬운 부분이 많았어요. 팬분들이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저희가 달성하지 못했는데, 그게 아직도 아쉬워요.
시즌 전에 엘튜브에서 이호준 코치님이 “20홈런 한 번 더 쳐보자”라고 했는데, 그게 진짜로 이뤄졌어요. 코치님의 지도 스타일이 본인과 잘 맞았다고 느끼나요?
여러모로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이호준 코치님도 현역 때 정말 많은 홈런을 치신 분이라, 어떻게 해야 장타를 잘 칠 수 있을지 잘 알려주셨어요. 강하게 치고, 투수를 상대할 때의 노림수 같은 것들이요. 그런 것들이 저한테 효과적으로 다가온 것 같아요.
개인 성적만큼이나 ‘주장 오지환’이 빛난 한해이기도 했어요. 주장으로 낙점됐을 때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나요?
아무래도 분위기를 밝게 가고 싶었어요. 기존에 (김)현수 형이 주장으로서 정말 잘해주셨고 저는 그걸 이어서 그대로 가면 되는 거였는데, 막상 투수랑 야수가 운동을 따로 하다 보니까 자주 만날 일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조금이나마 팀원 모두가 모이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서 팀 훈련을 하거나 경기를 시작할 때는 다 같이 모이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어요. 또 주장으로서 팀원들과 소통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직전 주장이었던 김현수 선수와는 ‘캡틴즈’로 불리면서 더그아웃 리더 역할을 함께 수행했어요. 김현수 선수와 비교했을 때 본인은 주장으로서 어떤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현수 형은 확실히 저보다 밝고 더 약간 전투적인 성향이라고 느껴요. 그리고 후배들이 현수 형을 되게 잘 따라가는 것 같고요. 저 같은 경우는 그전에 현수 형이 그런 면모가 있었으니 조금 더 부드러운 스타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선택한 거는 많은 팀원의 조언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거였고, 그 전만큼 분위기를 밝게 가져가려고 했어요.
주장의 시선으로 봤을 때, 나중에 주장 역할을 잘할 것 같은 후배가 있을까요?
저는 평소에 주장은 야수가 하는 게 낫다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최근에는 고우석 선수가 주장을 맡으면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생각도 깊고, 팀 상황을 이해하는 부분이나, 자기가 어떤 걸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차기 주장감으로 우석이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가족이 있었기에
시즌을 마치고 결혼식을 올렸어요. 이런저런 준비로 되게 바빴을 텐데, 결혼식 준비 과정은 수월했는지 궁금해요.
그동안 코로나19 시국이다 보니 결혼식을 계속 미루게 됐어요. 그래도 한 번뿐인 결혼식이니까, 와이프와는 정말 제대로 된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얘기를 나눴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서 준비했어요. 일단 둘 다 뭘 제대로 먹지를 못했어요. 시즌이 끝났는데, 이왕이면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래도 결혼식 끝나고 여행도 다녀오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습니다.
팬분들도 가족들에게 큰 관심을 보내곤 해요. 특히 두 아들인 세현이랑 세하가 야구장에서 인기가 폭발하던데, 아들들이 야구장에 오면 기분은 어때요?
사실 저는 좀 불안해요. 아무래도 제가 경기를 뛰면서 파울 타구에 관중분들이 맞는 것도 종종 봤거든요. 또 제가 워낙 걱정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와이프한테 이왕이면 애들을 집에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을 해요. 그런데 와이프는 집에만 있는 게 싫으니까 자주 야구장으로 나오고요. 그래서 항상 조마조마하긴 해요.
세현이랑 세하는 야구장에 가는 걸 좋아하는 편인가요?
아이들은 되게 신나 해요. 또 제가 나오는 영상을 많이 보다 보니, 이제는 야구장에서 저를 정확하게 알아보더라고요.
SNS 영상 속에서 아들들이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 종종 보이다 보니 육아 난이도가 높을 거라는 반응이 많아요. 실제로도 그런 편인가요?
진짜 높고요. 흔히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건 특히나 힘든 것 같아요. 팬분들에게 이게 정말 쉽지 않다고 얘기를 드리고 싶고, 혹시라도 봐줄 의향이 있으신 분들은 와이프한테 연락 주세요. 저희 집으로 초대하겠습니다. (웃음)
본인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사는 이유죠. 운동선수라는 직업이 자신감이나 노력만큼이나 어느 정도는 이기적인 면이 분명히 필요해요. 그런데 항상 이기적이었던 제 삶에 가족이라는 존재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앞으로 제가 사는 거는 그 무엇도 아닌 가족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계약, 그리고 이별
지난 1월, LG 구단 최초로 다년 계약을 맺었어요. 시즌 끝나고부터 본인의 계약에 관한 기사도 많이 나왔는데, 그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시즌이 끝나고부터 여기저기서 얘기가 많았어요. 저도 기대가 되기도 했고요. 그리고 구단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얘기가 나온 건 시즌 끝나고 한 달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어요. 처음에 한두 번 단장님을 찾아뵙고, “구단에서 이런 계획을 갖고 있다, 지환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에이전트를 통해서 자세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어요. 또 저는 이왕이면 빨리 계약을 하고 싶었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계약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캠프 가기 전까지는 무조건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는데, 그게 잘 끝나서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왔습니다.
그 과정이 짧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계약을 마치고 ‘종신 LG’라는 타이틀까지 얻었어요. 계약을 마쳤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시원하게 좋았을 법도 한데, 사실 막연히 좋은 것보다 욕심이 더 많이 생겼어요. 저보다 앞서 영구결번을 단 선배들처럼 되려면 어느 정도까지 해내야 할까, 어느 만큼의 기록을 남겨야 할까, 어느 목표에까지 이르러야 할까, 오히려 더 잘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축하 연락은 누구한테서 가장 먼저 왔었나요?
아무래도 와이프에게서 연락이 먼저 왔죠. 그리고 친구들한테도 많이 왔어요. (허)경민이, (정)수빈이, (박)건우 같은 친구들이 연락해준 거로 기억해요.
예전에 박용택 선배가 자신을 이을 LG의 프랜차이즈로 오지환 선수를 뽑았는데, 그게 이제 현실이 됐어요. 계약 전후로 박용택 선배와는 어떤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궁금해요.
진짜 공교롭게도 계약하기 전날에 박용택 선배님과 같이 밥을 먹었어요. 그때는 얘기를 못 드렸거든요. 어떻게 계약 직전에 저녁 같이 먹자고 연락을 주셨는데, 저 혼자서는 되게 신기해하고 있었어요. (다음날 계약 직후에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일단 정말 축하한다고 해주셨고, 또 고맙다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반대로 팀 동료이자 절친인 채은성 선수는 한화로 이적하면서, 이제는 상대 팀 선수로 만나게 됐어요. 수비를 보고 있을 때 채은성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면 기분이 어떨 거 같아요?
계약하기 전까지는 진짜 슬프고 아쉬웠어요. 은성이 뿐만 아니라 (유)강남이랑 (이)형종이 형 모두 10년을 넘게 같이 지내왔고, 가족보다도 더 오래 알고 지내 온 선수들이니까요. 근데 이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이번에 이적한 선수들이 못 해서 나간 게 아니라 다 인정을 받고 나갔어요. 그래서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저희는 프로야구 선수잖아요. 저희에게는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으니까 은성이, 강남이, 형종이 형 타구는 제가 다이빙을 해서라도 무조건 잡겠습니다. (웃음) 절대 봐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친구 채은성한테 메시지를 남겨볼까요?
은성아. 15년 동안 진짜 고생 많았다. 그리고 좋은 대우를 받고 간 거에 대해서 정말 축하해. 비록 우리가 오랫동안 같이 지내면서 꼭 LG의 레전드로 남자고 했던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앞으로 야구를 계속할 날이 아직 있으니까 계속해서 큰 부상 없이 각자의 팀에서 공헌도가 높은 선수로 남았으면 좋겠다. 잘하자. 파이팅!
#국가대표 유격수
곧 WBC 대표팀 소집일이네요. 재작년에 올림픽을 나가보긴 했지만, WBC는 훨씬 큰 규모의 대회인 만큼 소감이 남다를 텐데요.
대표팀은 항상 어렵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10개 구단 전체에서 선발됐다는 것만으로도 제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거니까 영광스럽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다른 팀에 비해 대표팀의 전력이 어렵다는 얘기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어느 강팀보다 응집력이 강한 팀이잖아요. 그래서 이번 대회에 대한 기대가 커요. 그리고 저 또한 대표팀이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시즌 직전에 대회가 치러지니까 평소보다 몸 상태를 빨리 끌어올려야 하잖아요. 다른 시즌이랑 비교했을 때 컨디션은 어떻다고 느끼나요?
당장 경기를 뛰고 싶을 정도예요. 거의 90~100%까지 찼다고 느껴질 정도로 몸 상태가 빨리 올라왔어요. 결혼식 끝나고 나서도 한 10일 정도밖에 안 쉬고 바로 운동 시작했고, 애리조나 캠프도 제가 선발대로 먼저 들어와서 그런지 컨디션은 굉장히 빠르게 올라온 상태입니다.
이번 대회에 워낙 세계적인 선수들이 많이 출전할 예정이에요. 혹시 개인적으로 상대해 보고 싶거나 만나보고 싶은 선수가 있나요?
글쎄요. 따로 생각한 적은 없는데, 그래도 같은 타자로서 미국의 마이크 트라웃 같은 선수를 만나고 싶어요.
LG에서 10개 구단 최다인 6명이 선발됐어요. 특히 김윤식 선수와 정우영 선수는 첫 국가대표 선발인데, 선발 이후에 이번 대회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지 궁금해요.
그냥 잘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요. 워낙 진중한 친구들이라 특별하게 말한 부분은 없었어요. 또 야수랑 다르게 투수는 경기장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거든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운드 위에서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걸 다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그 친구들은 이번에 중요한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다 잘할 거예요.
이번 대회에 임하는 각오 한마디 부탁해요.
오로지 우리나라의 승리만 바라고 있고, 무엇보다 감동적인 드라마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번 대회가 야구에 대한 관심이나 인기가 올라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거기에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등번호가 많이 바뀌었죠. (9-7-52-2-10) 나중에 본인의 야구 인생을 돌아볼 때 어떤 번호가 가장 기억에 남을까요?
단연 10번이요. 사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제 의지로 번호를 바꾼 적이 없었어요. 입단했을 때는 9번을 달았는데, 당시에는 그게 LG의 전설 같은 번호라는 걸 몰랐어요. 그러다가 이병규 코치님(현 삼성 라이온즈 코치)이 돌아오시면서 자연스럽게 번호를 7번으로 바꿨어요. 그런데 7번도 LG에서는 상징적인 캐넌 히터(김재현)의 번호잖아요. 그리고 작은 이병규 선배(현 롯데 자이언츠 코치)가 달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양보했고요. 그다음으로 단 게 52번인데, 원래 가장 애착하는 번호였어요. 당시 봉중근 선배님이 51번이었고, 팀에서 내로라하는 도루왕이었던 이대형 선배가 53번이라, 그 중간에만 들어가면 뭐라도 되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김기태 전 감독님이 “너는 대한민국에서 데릭 지터 같은 선수가 돼야 한다”라고 하셔서 1년 만에 2번으로 바꾸게 됐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 의지대로 단 번호가 없었어요. 하지만 팬분들은 오해를 하시죠. “선수가 등번호를 이렇게 자주 바꿔도 되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딱 첫 FA를 하자마자 제가 진짜 달고 싶은 번호를 달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이후로 중·고등학교 때 쓰던 10번을 달고 뛰고 있어요. 사실 원래도 10번을 제일 좋아했는데, 그 전에 권용관 선배님처럼 10번을 다는 선배님들이 계셔서 못 달았거든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10번을 달고 나서 성적도 많이 좋아졌어요. 바로 첫해에 3할을 치더라고요. (웃음) 만약에 은퇴 후에 제 등번호가 영구결번이 될 수 있다면, 꼭 10번으로 정해졌으면 좋겠어요.
본인의 야구 인생을 야구 경기로 비유를 해볼게요. 지금 몇 회까지 왔나요?
저는 딱 반 정도? 5회 정도 된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5이닝은 어땠나요?) 진짜 엎치락뒤치락했어요. 정말 야구가 진짜 알 수 없다는 걸 느낀 5회였어요. (남은 4이닝은 어떻게 전개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젠 나머지 이닝을 어떻게 깔끔하게 막느냐가 관건이겠죠. 하지만 지금까지 경기를 잘 끌고 왔고, 우리가 승리하는 방식을 알기 때문에 옳은 방향대로 정확히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해온 대로 잘 흘러갈 겁니다.
얼마 전 정우영 캐스터와의 인터뷰에서 ‘철인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라고 했어요. 실제로도 데뷔 이후로 쉼 없이 달려왔는데, 큰 부상 없이 몸 상태를 유지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책임감, 의무감, 그리고 습관을 강조하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주전을 하다 보니까 경기에 절대 빠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몸에 뱄어요. 그리고 주전이라면 144경기, 9이닝을 전부 소화할 능력을 갖추는 게 당연하고, 그게 프로 선수라고 생각해요. 그 정도로 튼튼해야 준비가 돼 있다고 할 수 있고, 그래야만 저한테 기회가 찾아오는 거거든요. 그래서 평소에 훈련할 때도 긴장을 잘 늦추지 않아요. 언제든지 아래로 내려갈 수 있으니까요. 어떤 방식으로든 제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계속해서 노력할 거예요. 그리고 제 마음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야구는 계속 늘어갈 거예요.
‘야구선수 오지환’과 ‘사람 오지환’을 비교하면 어떻게 표현하고 싶어요?
진짜 많이 달라요. 야구선수로서의 오지환은 되게 예민해요. 플레이 하나하나에 집중도도 높고, 되게 힘든 스타일이에요. 반대로 사람으로서의 저는 굉장히 편한 느낌? 전 말 그대로 시골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여기 애리조나처럼 조용한 곳을 좋아해요. 처음에 집을 구할 때도 서울에 안 구하고 경기도권에 구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한 주에 6일씩을 항상 수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곳에 있잖아요. 정말 선택받은 삶이고, 그분들이 보내주시는 함성은 정말 감사한 거지만, 때로는 이명처럼 평소에 잔상이 계속 남더라고요. 제가 잘했을 때는 괜찮지만, 못했을 때는 그런 게 제게 더 힘들게 다가오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본능적으로 되도록 조용한 곳을 찾았어요. 사람들도 정겹고, 스트레스 하나 없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제 마지막 꿈은 전원주택에서 사는 거예요. 그게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LG를 응원하는 팬분들이랑 구독자분들한테 인사 한마디 부탁합니다.
정말 너무 오랜만에 인사드렸습니다. 오랜만에 이렇게 인터뷰해보니까 재밌기도 하고, <더그아웃 매거진>을 봐주시는 구독자분들한테도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어요. 종종 이렇게 야구를 잘해서 찾아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 올 시즌 좋은 성적을 남길 수 있도록 LG 선수들 준비 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내한테도 메시지를 보내볼까요?
항상 힘들 텐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모든 시간을 이겨내 줘서 정말 고마워. 아이를 둘 키우는 모든 상황이 되게 쉽지 않을 텐데, 그런 부분에서 너무 감사해. 남은 야구 인생 동안 내가 항상 자기한테 잘할 거고, 또 야구가 끝났을 때도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
한 팀의 프랜차이즈가 된다는 것은 프로야구 선수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꿈 중 하나다. 그렇기에 그 꿈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그리고 길고 긴 세월 동안 묵묵하게 팀을 지탱해온 오지환은 당당하게 그 꿈을 쟁취할 기회를 얻었다. 아니, 어쩌면 그는 본래 프랜차이즈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주전으로서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한 치열한 노력까지. 15년 동안 오지환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그가 트윈스의 프랜차이즈가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 길이 외로웠을지라도.
그는 지금까지의 야구 인생을 돌아보며 알 수 없었고, 치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생의 분기점이 지난 이 시점에서, 오지환은 이제 어떤 야구를 해야 할지 분명히 알고 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단단해진 그의 야구는,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 테다. 앞으로 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그라운드를 수놓을 그의 플레이를 기대해보자.
▲ 더그아웃 매거진 143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3년 143호 (3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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