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의 벤츠"로 놀림 받았지만 지금의 현대를 만들어준 차!
현대는 EF 쏘나타 출시 3년 만에 대대적인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풀체인지급 변화를 선보인 '뉴 EF 쏘나타'를 선보였습니다. 전작의 분위기를 떠올리기 힘들 만큼 인상이 확연하게 달라졌는데, 이에 맞춰 달라졌을 부품들과 금형 같은 제작 과정을 떠올리면 신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현대차의 과감한 투자와 그걸 이뤄내는 기업 차원의 스피드가 일찍부터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죠. 물론 부작용도 분명 따라왔지만요.
부드럽고 단아한 디자인으로 여성스러움이 돋보였던 전기형과 달리 묘한 디자인의 헤드램프, 더욱 커진 라디에이터 그릴, 크롬 몰딩 같은 각종 장식 요소를 추가하면서 이번에는 남성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고급차에서나 볼법한 HID 헤드램프에 애스턴마틴 스타일로 바뀐 이 리어램프가 아주 근사했어요. 후면 레터링이 일체형으로 바뀌면서 더 이상 '오나타'가 되는 일도 없었고 서울대 진학률도 그대로였죠.
다만 전작의 차분한 분위기를 원했던 일부 소비자들은 현란한 전면부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고, 헤드램프가 벤츠 C클래스를 연상케 해 해외에서는 '가난한 자의 벤츠'라는 놀림도 받았습니다.
실내에서도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형제차인 기아 '옵티마'와 동일한 레이아웃을 적용한 실내는 우드 트림의 비율을 높이고 상단에 있던 공조장치 조작부를 하단으로 옮겨 더 깔끔하고 정돈된 분위기로 거듭났습니다.
수동 변속 모드를 제공하는 변속 레버와 공기청정기, 6개 스피커의 JBL 사운드 시스템을 포함한 5.8인치 VCD 내비게이션 등 여러 고급 사양을 상위 모델인 그랜저 XG와 공유하는 최신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내비게이션과 차량 내 전화, 전용 웹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텔레맥티스 시스템 'MOZEN'을 적용하기도 했어요.
보닛 아래에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경제형 라인업인 1.8L 모델과 2.0L LPG 모델이 기존 시리우스 엔진에서 독자 개발 베타 엔진으로 변경돼 이 모델부터 미쓰비시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줄어들었죠. 이 밖에 서스펜션 세팅을 손봐 여전히 부드러운 승차감을 제공하면서도 이전만큼 출렁이거나 허둥대진 않았어요.
출시 초에는 전작의 월드컵 트림이 그대로 이어져 시트와 C필러, 휠캡에 한일 월드컵 공식 로고를 새겼고, 이후 2003년형 모델부터는 가로 형태의 그릴과 보닛에 부착된 전용 엠블럼, 리어 스포일러와 새로운 알루미늄 휠 등 더욱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꾸며졌습니다. 조수석 에어백을 기본 장착해 승객 안전성을 높인 것도 좋은 부분이었죠.
이 무렵 쏘나타 브랜드 전체 누적 생산량 250만 대를 기념해 신설된 '엘레강스 스페셜' 트림은 화사한 분위기의 전용 베이지 인테리어와 자외선 차단 전면 유리, 1열 사이드 에어백, 핸드백 걸이 등 여성 고객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였습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며 드러난 문제들도 있었죠. 자동 변속기와 CVT는 연약한 내구성을 그대로 물려받아 '유리미션'이라는 타이틀을 이어받았고, 특히 'EF', '뉴 EF' 할 것 없이 고질적인 차체 부식으로 오히려 심장은 멀쩡한데, 차대가 주저앉아 폐차를 결정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특히 같은 시기를 공유한 경쟁차 1세대 SM5와 비교해 잔존 개체 수가 현격히 차이나는 것은 현대차의 내구성에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지점이었어요.
4세대 EF 쏘나타는 정몽구 회장 체제로 돌입한 이후 내놓은 첫 번째 쏘나타로 품질 경영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훌륭한 만듦새와 감성 품질이 돋보였고 일본 업체의 구형 기술보다 못한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해외 업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꾸준히 독자 개발을 추진해온 그들의 노력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한 모델이었어요. 뿐만 아니라 이 독재개발 전륜구동 중형 플랫폼을 활용해 그룹 내 다양한 차들을 개발할 수 있었고, 플랫폼 공유에 대한 노하우와 신차 개발비 절감, 가격 경쟁력 강화 등 지금의 현대차를 있게 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어준 모델이기도 했죠.
다만 최신 연도를 눈여겨보신 분들이라면 짐작하셨겠죠. 국내 모든 기업들의 운명을 뒤흔들어 놓았던 IMF 외환위기 앞에서는 시장 1위 현대도 무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회사의 명예를 걸고 나온 삼성 'SM5', 대우 '매그너스' 같은 쟁쟁한 경쟁 차들에 밀려 고전했고, 심지어는 한 지붕 아래로 들어온 기아 형제차나 다름없는 '옵티마'에 밀리는 굴욕을 겪기도 했어요. EF 쏘나타의 프로토타입 중 하나가 기아 옵티마로 등장했다는 것도 꽤나 알려진 사실이죠.
이후 IMF가 해소되고 내수시장이 다시금 활기를 띠자 중형차 판매량도 자연스레 상승하게 됩니다. 디자인과 상품성을 대폭 보강한 뉴 EF 쏘나타가 출시되면서 중형차 1위 자리를 탈환했죠. 특히 오랫동안 두드려오던 해외 시장에서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차 사상 최초로 북미의 권위 있는 소비자 매거진 [컨슈머리포트]에서 쏘나타를 권장할 만한 차로 선정했고, 여전히 경쟁차에 비해 다소 부족하지만 '가격을 감안하면 괜찮은 차'라는 평가와 함께 해외 판매량도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과거 '엑셀' 시절부터 발목을 잡았던 '값싸고 조악한 차'라는 이미지에서 '조악한'이 빠진 정도였지만, 이것만 해도 괄목할 만한 성과였죠. 글로벌 시장에서 이 4세대 모델만 무려 160만 대가 넘게 팔려나갔어요.
이를 증명하듯 이때부터 해외 영화나 드라마 등 각종 매체에 눈에 띄게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비록 수 초만에 짧게 스쳐 지나가는 정도였지만 할리우드 영화에 국산차가 등장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괜히 기분이 묘했어요. 첩보 영화 '본 시리즈' 2편 '본 슈프리머시'에서 흙먼지를 휘날리며 내달리던 뉴 EF 쏘나타가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죠.
여담으로 중국 시장에서는 '뉴 EF'부터 아예 현지에서 직접 생산했고, '엘란트라'로 판매되어 인기를 끈 '아반떼 XD'와 함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또 보통 신형 모델이 준비되면 구형이 된 모델은 단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러 차례 자체적인 페이스리프트로 수명을 연장해 뒤이어 출시된 신형 모델들과 함께 병행판매됐는데요. 차를 소유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중국 시장에서는 구형 모델이라고 해도 메리트는 충분하기 때문에 신형은 신형대로, 구형은 합리적인 가격을 어필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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