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언덕 넘어 다른 언덕? '보이지 않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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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제목이나 작가는 알지 못하더라도 광고나 책 표지, 디자인 등에서 자주 접한 그림일 것이다.
미국 현대 사실주의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1917~2009) 대표작 '크리스티나의 세계'(1948)다.
1985년 작품들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와이어스 부인조차 모를 정도로 비공개 여인이었던 것이다.
잭슨 폴록(1912~1956) 등 추상표현주의가 기지개를 켜며 미국 화단을 장악하던 시기, 와이어스가 그린 사실주의 세계는 독특한 감성으로 사람들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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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작품 제목이나 작가는 알지 못하더라도 광고나 책 표지, 디자인 등에서 자주 접한 그림일 것이다.
미국 현대 사실주의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1917~2009) 대표작 '크리스티나의 세계'(1948)다.
한 여성이 뒷모습으로 넓은 평원에 앉아 언덕 위 멀리 있는 집을 바라보고 있다.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거나 절망하는 듯한 분위기다. 언뜻 보면 초현실적 뉘앙스를 띄지만, 화가가 살던 미국 펜실베이니아 한 시골 풍경을 재배치해 묘사한 것이다.
그림 속 여성은 와이어스 이웃에 살던 크리스티나 올슨이라는 여성이었는데,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는 불구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휠체어 사용을 거부하며 상반신만 이용해 주변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와이어스는 그런 모습에 빠져든 것이다.
이 작품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와이어스에게 올슨의 안부를 묻거나, 올슨을 격려하는 편지가 쉼 없이 배달됐다고 한다. 와이어스는 올슨이 사망하는 1968년까지 여러 차례 그녀를 그렸다.
와이어스가 지속해 그린 여성은 두 명 더 있다.
먼저 올슨이 죽던 해 우연히 만난 시리라는 소녀다. 어린 시리로부터 건강한 청순함을 발견한 와이어스는 약 10년에 걸쳐 다양한 시리를 그렸다.
다른 한 명은 1970년부터 약 15년 동안 그린 헬가 테스토르프라는 독일계 이웃 여성이었는데, 무려 240여 점 그렸다. 시리를 그린 시기와 겹친다.
헬가는 '문제의 여성'이 됐다. 1985년 작품들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와이어스 부인조차 모를 정도로 비공개 여인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헬가 연작엔 에로틱한 누드화도 다수였다.
한 인터뷰에서 기자가 와이어스에게 헬가를 사랑했냐고 물었다. 와이어스는 모범 답안으로 대답했다. "물론 사랑했다. 다만 그림 대상으로 사랑했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잭슨 폴록(1912~1956) 등 추상표현주의가 기지개를 켜며 미국 화단을 장악하던 시기, 와이어스가 그린 사실주의 세계는 독특한 감성으로 사람들을 잡아끌었다.
그의 인물화와 풍경화는 그가 살던 마을 사람들 삶과 죽음을 관통하고 있는데, 이런 화풍을 '지방주의(Regionalism)'로 부른다. 지방주의는 추상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 구상의 버팀목이었다.
2009년 91세로 사망할 때까지 미국이 사랑한 화가였던 와이어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신이 그림에서 뭔가를 발견해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그림자다"
대표작, '크리스티나 세계'를 부연 설명하는 듯하다. 분홍색 의상을 입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여성이 매혹적인 이유는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덕 넘어 다른 언덕이 버티고 서 있을 것 같은 아스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와이어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그림자'란 그가 그린 인물들과 나눈 '영혼의 교류'가 아닐까? 올슨의 투지, 시리의 청순, 헬가의 관능과 교감하며 '그림자'로서 그녀들을 사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가의 손을 떠난 그림이 여러 상상을 불러일으킨다면, 작품은 갈채 받을 만하다. 감상자 상상력을 증강하는 일은 예술이 주는 탄력이며, 예술의 갱생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크리스티나, 당신은 어떤 그녀 표정을 상상하는가?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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