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도 하이파이의 뚝심, 음질 좋고 조용한 포노 앰프 탄생

Libido Hi-Fi
LP-3000

오랜만에 포노 앰프 리뷰 의뢰를 받았다. 최근 빙부상으로 이것저것 챙기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이지만, 포노 앰프의 제작사가 리비도 하이파이(Libido Hi-Fi)라서 망설임 없이 하겠다고 했다. 제작자인 리비도 하이파이의 최재웅 님과 첫 인연은 30년 전쯤으로 하이텔 하이파이 동호회를 통해서였다. 동원통상이라는 수입 오디오사에서 오랜 기간 A/S 담당자로 재직하면서 세계 유수의 오디오 제품을 분해·수리해서 내공이 깊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리비도 하이파이는 창업한 지 30년 가까이 되는 트랜지스터 앰프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업체다. 처음에 레인보우라는 인티앰프를 만들어 세간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 뒤로 LP-91, P-5 포노 앰프와 P-50 프리앰프와 M-50 파워 앰프 등 여러 모델의 제품을 발표했다. 30여 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발표한 모델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앰프 제작자로 운영을 해나가려면 신 모델을 계속해서 발표해서 매출을 일으켜야 하는데, 리비도 하이파이는 그런 일반적인 길을 걷지 않았다.

신제품을 발표할 기술력이 부족하거나 연구 개발을 게을리 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니다. 새로 개발한 기술로 신제품을 출시하는 게 아니라, 기존 사용자에게 회로 기판을 교체하거나, 추가해서 업그레이드하는 일에 주력한다. P-50 프리앰프의 경우 기존 모델 외에 V7, V10 기판 모듈을 발표해서 소리의 취향에 따라 선택해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회로 개량은 미미한데 섀시만 바꿔서 신 모델이라고 파는 하이파이 시장의 행태를 생각하면, 이런 행보는 리비도 하이파이 앰프 사용자에 대한 배려라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리비도 하이파이에 대한 인상이 강하게 남은 것은 C.R.S라는 제품이었다. 앰프 전면 위쪽에 리모컨으로 작동되는 감속 모터를 부착해서 벨트로 볼륨 노브를 돌리는 제품이다. 실제로 장착한 모습을 보면 다소 엽기적으로 보이는데, 굳이 이렇게 한 이유를 듣고는 깊게 공감했다.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전동 볼륨의 음질이 일반 볼륨에 비해 소리가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감속 모터가 작동하면서 노이즈를 만들어낸다. 편의성을 좇는 시대라 리모컨이 필수인 세상인데, 음질이 나빠지면 안 된다는 신념에 외부에 배터리나 별도의 어댑터로 작동하는 감속 모터를 달고, 벨트로 볼륨 노브를 돌리게 한 것이다. 음질에 관해서는 타협을 하지 않겠다는 고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음질에 대한 집착 때문에 눈앞의 경제적 이득을 뒤로 하는 제작자가 망하지 않고, 살아남기 힘든 게 하이파이 오디오 제조 시장이다. 이번 제품 출시로 리비도 하이파이가 살아서 포노 앰프를 출시했다는 사실이 반갑고 뿌듯했다. 이런 반가움에도 불구하고 음질에 대한 평가는 또 다른 문제라 최대한 중립적인 시각에서 살펴봐야 한다. 전면 좌측, 옆면 앞쪽에 메인 스위치를 켜면 전면 패널 중앙에 청색 불이 은은하게 들어온다. 약 5초 후에 전면 중앙의 노브를 누르면, 청색 불빛이 밝아지면서 작동 상태가 된다.

MM 포노단이기에 승압 트랜스로 하만 카돈 XT-2를 연결해서 니들 클리닉 103 카트리지로 음악을 들었다. 첫 음이 귀에 닿자마자 배경이 아주 적막하고 노이즈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 수많은 포노 앰프를 접해봤지만, 배경의 정숙함은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인상적이다. 배경이 아주 적막한 가운데 가수와 밴드의 음상이 단정하게 자리한다. 무대도 포노 앰프의 가격을 감안하면 충분히 넓고 깊게 그려낸다. 무엇보다 음색 표현이 트랜지스터 포노 앰프답지 않게 매끄럽고 유연한 음색을 낸다. 흡사 진공관을 닮은 듯하다는 착각이 살짝 머리를 스쳤다.

LP-3000이 가격을 떠나 놀랍도록 낮은 노이즈 레벨을 보이는 것은 내부 구조에 기인한다. 앰프 전체가 철판으로 둘러싸여 있다. 알루미늄으로 하면 좀더 멋있게 디자인할 수 있지만, 포노 앰프에서는 알루미늄보다 철판이 노이즈 차폐에 더 유리하다. 전기가 흐르면 그 주위로 서로 직각으로 교차하는 전기장과 자기장이 발생한다. 이 전기장과 자기장은 공간으로 퍼져 나가서, 근처의 다른 기기에서 노이즈를 유발한다. 이때 전기장은 전기가 통하는 금속, 즉 도체로 차단할 수가 있고, 자기장은 자석에 붙는 자성체로 차단이 가능하다. 알루미늄이나 구리 같은 소재는 전기장은 효과적으로 차단하지만, 자석에는 붙지 않기 때문에 자기장 차폐 효과는 거의 없다. 철판은 구리나 알루미늄보다 떨어지기는 하지만 전기가 통하기 때문에 전기장을 막을 수 있고, 자석에 붙는 자성체이기 때문에, 자기장도 막을 수 있다. 철은 전기장과 자기장 두 가지 다 차단이 가능한 소재다.

LP-3000은 철판을 섀시로 쓰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신호부와 전원부를 별도로 절곡한 철판으로 다시 한번 싸는 구조를 통해서 이중 차폐를 했다. 이런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노이즈로부터 차폐가 되는 깨끗한 소리를 얻을 수 있다. 이 가격대 포노 앰프에서 이렇게 이중 섀시를 하는 경우는 찾기 쉽지 않다. 철판은 다양한 모양을 내기에 알루미늄에 비해서 불리한 소재지만, 노이즈 차폐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알루미늄보다 장점이 더 많은 소재다. 상당수의 포노 앰프들이 알루미늄이 아닌 철 재질 섀시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LP-3000이 노이즈가 적은 또 다른 이유는 포노 입력단이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아니 입력단이 하나가 아니고, 두 개가 된다고 달라지는 게 없는데, 무슨 차이가 날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앰프 자작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입력단 바로 뒤에 셀렉터를 달거나 릴레이를 통해서 연결하면 되는데, 무슨 문제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3-4cm에 불과한 짧은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셀렉터나 릴레이 사용이 노이즈 유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직접 해보시길 권한다. 정말 신기하게 셀렉터나 릴레이를 빼고, 바로 RCA 입력 단자에 연결하면 노이즈와 험이 확 줄어든다.

LP-3000이 노이즈가 적은 마지막 이유는 회로 방식이 트랜지스터를 이용하지만 CR 방식이 아닌 NFB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서다. CR 방식은 좀더 회로적으로 복잡하고, 노이즈 컨트롤도 어렵다. 다만 잘 만들면 NFB 방식에 비해서 높은 해상력과 광활한 무대를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LP-3000이 CR 타입이 가지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NFB 방식을 채택하는 이유는 일단 노이즈를 줄이는 데 유리하고, 회로적으로 안정되어 내구성이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일반적으로 들어보면 CR 타입과 NFB 타입은 음색이나 질감이 다르다. CR 타입은 종이로 비교하자면 아무런 표면 처리를 하지 않은 날것의 질감의 가진다고 할 수 있다. NFB 타입 회로는 종이 표면에 무광 코팅을 해서 윤기와 광택이 느껴지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종이에 코팅을 하면 습기나 물 접촉 등에 대한 내구성이 좋아진다. LP-3000은 NFB 방식으로 유려하고 매끄러운 음색을 가지고 있고 안정성과 내구성에서도 유리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음악을 들어볼 시간이다. 밀스타인 연주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를 듣는데, 과하게 현란하지 않고 중립적이면서도 은은하게 윤기가 느껴지는 소리가 난다. 미켈란젤리 연주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도 들었는데, 깊게 떨어지는 저음 건반도 좋았지만 피아노 특유의 투명함도 좋아서 합격점을 줄만하다. 기대보다 배경이 정숙하고 음색도 유려하고 저음도 생각보다 잘 내려가서 이 포노 앰프를 다른 시스템에 물려서 들어보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마침 지인의 시스템에 물려볼 수가 있어서 LP-3000을 들고 찾아갔다.

베리티 오디오 사라스트로 스피커에 마크 레빈슨 No.33HL을 물려서 쓰는 집으로 포노 앰프 린 유포릭에 린 LP12 턴테이블이 갖춰져 있었다. 본의 아니게 린 유포릭 MC 단과 LP-3000·하만 카돈 승압 트랜스 조합으로 배틀 아닌 배틀이 벌어지게 되었다. 클래식 대편성에서는 유포릭이 무대의 좌우가 좀더 넓게 표현한다. 악기가 없는 빈 공간의 적막감은 확연히 LP-3000에 승압 트랜스 조합이 우수했다. 사실 승압 트랜스에 MM 포노 조합이 순수한 MC 헤드 앰프 조합보다 이론적으로 노이즈에 유리한 게 사실이다. 난다 긴다 하는 린일지라도 MC 헤드 앰프의 노이즈 레벨을 승압 트랜스만큼 조용하게 할 수가 없다. 그만큼 조용한 MC 헤드 앰프는 만들기가 어려워서 그런 기술력을 가진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도 거의 없다.

저역의 양감은 린 유포릭보다 LP-3000·승압 트랜스 조합이 확연하게 좋았다. 클래식에서 린 유포릭은 저역이 얕고 빠르면서 담백하고 깔끔한 바로크 음악이라면, LP-3000은 저역이 깊고 풍부하면서 진한 음색의 낭만파 음악에 어울리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전체적으로 클래식에서는 개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본다. 클래식 애호가라 하더라도 바로크 음악보다는 고전이나 낭만파 음악을 즐기는 애호가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LP-3000은 좀더 대중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소리의 포노 앰프인 셈이다.

가요 음반은 어떨까 싶어서 녹음이 괜찮은 정미조 ‘37년’을 걸었다. 린 유포릭이 정미조의 입술이 뽀얗게 표현되는데, 반해 LP-3000은 선명하게 느껴진다. 가수나 반주자가 없는 빈 공간의 표현도 역시 LP-3000이 확연히 더 적막하고 조용하다. LP-3000이 가수의 목소리 음상에 속이 좀더 찬 듯한 느낌이다. 노래가 진행되면서 반주가 본격적으로 나오자 저역의 양감과 질감에서 차이가 확연히 벌어졌다. LP-3000이 깊게 아래로 떨어지면서 피라미드 기단부처럼 가수의 보컬을 받쳐주는 안정감이 느껴졌다. 이에 반해, 린 유포릭은 낮은 저역의 양감이 부족하고, 전체적으로 공중에 들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 음반에서는 린 유포릭이 완패했다.

사실 몇 년에 걸쳐서 오디오 시스템이 갖춰진 곳에 불쑥 끼어 들어가서 좋은 소리 내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이 갖춰진 곳에 끼어들어가서 린 유포릭과 호불호가 갈리거나 일부 장르에서는 더 나은 소리를 들려준 LP-3000의 선전은 아주 인상적이다. 더구나 아주 고가의 승압 트랜스가 아닌 70-80만원 정도에 불과한 하만 카돈 승압 트랜스와 만나서 이뤄낸 것이라는 점이 대견하다. 2주 넘게 LP-3000을 이리저리 물려본 경험으로는 매끄럽고 부드러운 승압 트랜스보다는 직진성이 좋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성향의 트랜스가 궁합이 좋았다. 구체적으로 애기를 하자면 조겐쇼나 파트리지 9708, ADC 7318 쪽보다는, 오토폰 T-3000, 피어리스 4629, 하만 카돈이나 알텍의 중급 승압 트랜스가 더 나은 조합이 될 것이다.

LP-3000은 가격대를 떠나서 인상적으로 잡음과 노이즈가 적은 포노 앰프다. 이것 하나로도 강력하게 추천할 이유로 충분하다. 기천만원하는 기함급 포노 앰프에 비하면 무대의 깊이나 좌우 펼쳐짐은 약간 밀리지만, 노이즈에 관해서는 전혀 꿀릴 게 없는 수준으로 좋다. 가격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이 되고도 남는 유려하고 매끄러운 음색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아날로그적이라고 할 만한 소리를 내준다. 사실 최정상급을 제외하고 중급대 가격에 좋은 포노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 좋은 포노라 함은 무엇보다 험과 노이즈가 적고 음질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 그런데 소리가 괜찮다 싶으면 험과 노이즈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오랜만에 국내에서 음질 좋고 조용한 포노 앰프가 탄생된 것이 아주 기쁘다. 이런 포노 앰프를 출시한 리비도 하이파이 최재웅 사장님의 뚝심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글 | 최윤욱

제조원 리비도하이파이 (010)4242-7349
가격 15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