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그래프] (30) 경희대 고찬혁 "프로에서 가장 빛나는 선수 되고 싶다"

[점프볼=정다혜 인터넷기자] 서른 번째 미생은 경희대 3학년 고찬혁(G, 186cm)이다. 코트 위에서 찬란한 존재감을 예고한 고찬혁의 ‘미생그래프’를 살펴보자.
#불안한 시작과 성장의 발판
어린 시절 고찬혁은 농구 경기장을 자주 방문했다. 그는 코트에서 뛰는 선수들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농구에 대한 마음이 생겼다. 이후 부모님에게 의사를 전달했지만, 설득이 쉽지 않았다. 운동선수의 길이 만만치 않기에 걱정이 앞섰기 때문. 하지만 농구를 향한 완강한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이후 고찬혁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농구부가 있는 인헌초로 전학을 갔다.
부모님이 한발 물러섰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중에 여쭤보니까 제가 무언가를 한다고 한 게 처음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전까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는데 제가 직접 찾아서 해달라고 한 게 처음이라서 시켜줬고 아빠는 제가 재능이 있어 보여서 시켰다고 하셨어요”.
초등학교 말미에 걸음마를 뗀 그는 기대를 안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시작은 그리 좋지 못했다. 농구에 큰 뜻이 없던 팀원들이 다수였고 분위기도 어수선했다. 대회에 출전하면 예선 탈락하기 일쑤였다.
팀 분위기에 노출되기 쉬운 상황이었기에 열정도 조금씩 식어갔다. “솔직히 중학교 1, 2학년 때까진 별생각이 없었어요. 농구에 대한 욕심도 없었고요. 2학년 땐 예선 통과를 몇 번 했는데 1학년 때랑 큰 차이는 없었죠”.
그러나 이 상황은 3학년 때 180도 달라졌다. 제53회 춘계전국남녀 중고농구연맹전, 2016 연맹회장기 전국남녀중고 농구대회, 2016 중고농구 주말리그 왕중왕전. 홍대부중은 3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시즌 3관왕을 달성했다. 분위기 쇄신에 성공한 것이다.
춘계 대회 당시 고찬혁은 컨디션 난조로 4강을 결장했고 결승전 날에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26점 5리바운드 1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주말리그 왕중왕전 결승전에서도 광신중 상대로 28점 4리바운드 3스틸을 만들어냈다. 3점슛 감각도 출중했다.
시즌 3관왕은 자신감을 심어줬다. “솔직히 3관왕 할 줄 몰랐어요. 3학년 동계 훈련하면서 (팀이)좋다는 느낌은 받았는데 우승 후보까지라고는 생각 못 했거든요. 근데 하다 보니까 결승에 갔고 또 우승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무언가를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때의 추억을 뒤로하고 고등학생이 된 고찬혁. 홍대부고는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팀의 사기가 한껏 올라간 상태에서 치른 대학과의 연습경기. 이는 깨달음을 주었다. “대학이랑 연습게임을 딱 해보니까 ‘아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피지컬에서 차이가 많이 났고 센스 부분에서도 차이가 났어요”.
새로운 벽을 느끼고 맞이한 2학년. 홍대부고는 그해 춘계 대회와 협회장기에서 모두 준우승을 했다. 팀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분위기 반전을 위해선 우승이 필요했다. 7월 종별선수권대회. 홍대부고는 결승 진출에 성공했고 상대는 전주고였다.
춘계 대회에서 전주고에게 우승을 내줬기에 트로피를 향한 간절함은 더더욱 커졌다. 경기 초반에는 불안정한 수비로 춘계 때 기억을 이어가나 싶었지만, 홍대부고는 재정비를 마쳤고 고찬혁도 외곽슛으로 분위기를 가져오는 데 일조했다. 그가 기록한 22점은 홍대부고가 시즌 첫 우승을 가져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고찬혁의 성장은 다음 해에도 계속됐다. 홍대부중 3학년 시절을 연상케 하듯 홍대부고 3학년 때도 시즌 3관왕을 이뤄냈다. 첫 우승이었던 제56회 춘계전국남녀중고 농구연맹전 예선전에선 2경기 연속 30점 이상을 올렸는데 그는 이 대회에 아쉬움이 남는 듯 보였다.
“우승은 했지만, 개인적인 부분에선 아쉬웠어요. 제가 예선까지는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올라갈수록 수비 압박이 심해져서 못한다’라는 얘기를 그때부터 들은 거 같아요. 예선 때는 30점씩 넣다가 결승만 올라가면 20점 언저리가 나오니까 만족이 안 되더라고요”.
부정적인 평가를 지우고 싶었던 그는 남은 대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이 바람이 종별선수권대회에서 이뤄졌다. 예선전부터 3점슛 6개(휘문고전)를 터뜨리고 14강에선 32득점을 올리면서 눈도장을 찍었다.
삼일상고와의 4강전에서 25점 5리바운드 2스틸을 기록한 고찬혁. 휘문고와의 결승전에서도 맹활약을 펼치며 2점 차 승리(73-71)를 만들어낸 그가 종별선수권대회 남고부 MVP로 선정됐다.
“원래 잘 안 우는데 그때 처음 울었어요. 너무 받고 싶었거든요. 중학교 때 한 번도 못 받아서 설움이 있었는데 울컥하더라고요”. 고찬혁은 그토록 원하던 MVP를 수상했고 이후 홍대부고는 주말리그 왕중왕전에서 또다시 우승을 차지했다.

고등학교 시절을 뒤로하고 경희대에 입학한 그는 당황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렸다. 중, 고등학교에선 팀 특성상 운동량이 많지 않았는데 대학교는 달랐기 때문이다. “제가 대학교 와서 운동을 정말 힘들게 했다고 느꼈어요. 뛰는 거랑 운동시간이 (그전에 비해)2배였거든요”.
늘어난 운동량으로 적응에 힘이 부쳤지만, 더 힘들었던 건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었다. 1학년이지만 코트에서 자신의 농구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두 가지였다. “상담도 많이 했는데 아직 수비가 안 되고 몸도 아직 안된다고 하셨어요”.
아쉬움만 남긴 채 1학년을 보내고 2학년 MBC배 때부터 출전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MBC배 3경기 동안 평균 22점을 기록했다. 이건 맛보기에 불과했다. 올해 3학년이 된 고찬혁은 대학리그에서 득점합계 297점(평균 21.2점)으로 이 부문 2위에 안착했다.
14경기 중 12경기에서 20점 이상을 올렸고 중앙대전(5월 24일)에선 3점슛 5개 포함 32점을 기록했다. 팀의 스코어러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3학년 때 이렇게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능력을 끌어올려 준 분들이 감독님, 코치님이시잖아요. 그거에 감사하게 생각해요. 이렇게 해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아직 3학년인 그가 드래프트 참가를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적응’이었다. “제 동기들 중에서도 연고대 선수들이랑 비교하면 당연히 연고대 선수들 평이 더 높잖아요. 그 선수들보다 1년을 먼저 시작하면 FA도 1년 빠를 테고 그 선수들이 프로와서 적응할 시간을 저는 1년 동안 미리 할 생각입니다”.
‘프로에서 빛나는 선수’. 고찬혁이 말하는 빛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렸을 때부터 든 생각인데 선수는 코트에 있을 때 가장 빛난다고 생각해요. 제가 프로에 가게 된다면 프로에서 가장 빛나는 선수가 되고 싶고 그 선수들 안에서도 제일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슛 하나만큼은 대한민국에서 최고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까지 올라갔으면 좋겠어요. ‘슛하면 고찬혁’ 이렇게요(웃음)”라며 자신의 장점을 어필했다.
눈부신 활약을 기대케 하는 고찬혁. 그가 드래프트라는 무대에서 반짝이는 조명 아래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보자.
#사진_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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