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 빚더미, 하루 16시간 일하는 36살 워킹맘의 하루

안녕하세요, 박원정입니다. 요즘 제 출근 시간은 일이 밀려 있으면 훨씬 더 일찍 가기도 합니다. 어제는 심지어 새벽 6시쯤 병원에 가서 아들 우진이가 일어나는 모습도 못 보고 나왔어요. 세수도 병원에서 했습니다.

저희 병원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데, 부서마다 출근 시간대가 달라요. 저는 영상의학과를 메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보통 오전 8시 반 정도에 병원에 도착하려고 합니다.

영상의학과는 CT나 MRI를 판독하고 진단하는 과예요. 질병을 찾고, 내과, 외과, 정형외과 의사들에게 어떻게 치료할지 치료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하죠. 쉽게 말해, 암 같은 질병을 찾아내는 겁니다.

제가 스무 살부터 대학 생활을 하고 의사 생활을 한 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재수 없이 대학에 들어가서 11년 만에 전문의가 되었어요.

예전에는 40대 중반에 개원하는 것이 트렌드였는데, 요즘에는 다들 좀 더 빨리 개원하는 추세입니다.

보통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를 따면 세 가지 진로를 선택해요. 대학에 남을 것인지, 봉직의를 할 것인지, 아니면 개원할 것인지 말이죠. 의대는 6년 과정이고, 의사 국가고시를 합격해야 의사 면허증이 나옵니다. 면허를 따면 인턴이 되는데, 이때는 일반의 신분이에요. 인턴 생활 1년 동안은 병원에서 전문적인 지식까지는 요구하지 않는 기본적인 술기들을 배우며 여러 과를 경험하고 저의 적성을 찾아가는 시기입니다. 인턴을 마치고 어떤 과를 선택할지 결정하고 인턴 시험을 치죠. 저는 인턴 후 영상의학과를 선택했고, 그 후 4년 동안 레지던트 생활을 거쳤습니다.

레지던트 기간을 마치고 바로 개원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어도 의사는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부분 종합병원 등에서 봉직의 생활을 먼저 합니다. 저 역시 봉직의도 해봤고, 대학병원 교수도 해봤어요. 사실 저는 처음에는 교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영상의학과는 진단을 위해 많은 임상 정보를 통합하고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과라 저에게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죠.

제 인생의 95퍼센트는 병원이고, 나머지 5퍼센트는 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병원이 조금 더 안정되면 아기에게 할애하는 시간이 더 커지겠죠. 하지만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으로서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엄마로서 한정된 시간을 모두 아기에게 쓰고 싶은 마음이 커요.

의사의 삶이 화려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병원에 직원이 23명인데, 제가 제일 불쌍함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항상 제일 일찍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며, 주말에도 쉬는 시간 없이 일합니다. 다른 직원들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점심 휴게시간도 꼭 보장받고 쉬지만, 저는 제가 없으면 병원이 안 돌아가는 부분이 많아서 밥 먹는 시간도 따로 없어요.

저희는 지금 사는 나인원 한남으로 분양받자마자 들어와서 5년 가까이 살고 있는데, 분양받을 때 약 44억 원이었고, 지금은 약 120억 원 정도의 가치가 나갑니다. 75평이에요.

의사의 진로 중 교수, 봉직의, 개원 원장 중에 봉직의 의사들의 연봉이 훨씬 높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교수들은 명예 때문에 일을 한다고 할 정도로 봉직의보다 월급이 적습니다. 제가 교수를 했던 것도 명예적인 면도 있지만, 개원했을 때 경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었죠.

요즘에는 직업 선택이 경제 논리에 따라 많이 이루어져서, 돈이 되고 개원하기 좋거나 편한 과로 의사들이 많이 몰리고 있습니다. 피부과, 성형외과, 영상의학과, 재활의학과, 정신과 등이 그런 과들이에요. 이런 과들은 산부인과처럼 응급콜도 없고, 수술하는 외과처럼 소송 리스크도 적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의사들은 평생 모범생처럼 살아왔기에 경찰서에 불려 다니는 소송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커요.

병원까지는 보통 20분에서 30분 정도 걸리지만, 길이 막히면 더 오래 걸리기도 합니다. 출근하면 보통 오후 6시 10분이나 20분쯤 퇴근하지만, 늦게는 밤 12시에 갈 때도 있어요. 요즘에는 아기가 엄마와 자려고 해서, 어제처럼 새벽 6시에 출근하기도 하는 등 아기 패턴에 맞춰 계속 바뀝니다.

저희 병원은 검진과 외래 진료를 모두 하는데, 외래는 당일 바로 판독을 해줘야 하고, 검진은 한꺼번에 많은 검사를 하니까 바쁠 수밖에 없어요. 다른 검진센터들은 판독을 자동화하지만, 저는 제가 직접 소견을 다 작성합니다. 그래서 더 오래 걸리지만, 환자 한 분 한 분에게 더 신경을 쓸 수 있죠. 오늘 출근하면 일단 프리미엄 환자분 검사가 잘 진행되는지 먼저 확인하는 일부터 합니다.

저희 과, 즉 영상의학과는 수입이 높은 편입니다. 지난 10년간 모든 의사들이 진단을 영상의학 도구를 통해 하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맹장염을 의사의 '감'으로 진단하고 수술했지만, 요즘에는 모든 것이 '증거 입각'으로 진료하기 때문에 영상의학의 의존도가 엄청 커졌습니다. 영상 검사는 폭주하는데, 이를 판독할 전문의는 많지 않아서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페이가 센 편이에요. 봉직의 때는 연봉 2억 후반대였고, 세금 떼고 나면 월 1,800만 원 정도였습니다.

봉직의 생활은 오래 하지 않았고, 1년 정도 하다가 경험을 더 쌓고 싶어서 큰 대학병원에 교수로 들어갔었어요. 검진센터 개원을 생각하다 보니 시스템도 익혀야 했기 때문이죠. 의사가 되려면 의과대학 6년, 의사 국가고시 합격,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총 11년을 거쳐야 전문의가 됩니다. 레지던트 때는 최저시급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일하죠. 그래서 1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야 제가 봉직의를 할지, 개원을 할지, 교수를 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거예요.

개원해서 손님이 없으면 페이닥터, 즉 봉직의가 훨씬 나을 수 있습니다. 지금 저희 병원에는 페이 선생님이 총 세 분 계시는데, 저보다 훨씬 더 잘 버세요. 처음부터 저보다 훨씬 잘 벌었고요. 저희 병원 이름은 메디원 영상의학과 내과의원 및 검진센터입니다. 저까지 포함해 의사 네 분이 계세요.

제가 의사 생활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때는 아무래도 인턴 때와 국가고시를 치는 본과 4학년 때였습니다. 의사가 되면 명예도 있고 부도 따른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의사는 굶어 죽지는 않는 직업이라는 게 더 맞아요. 면허가 어느 정도 경제적 지대를 만들어주기 때문이죠. 그래서 의대 열풍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의사를 선택하는 팁을 드리자면, 저는 의사로서의 전성기는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미숙하지 않고, 의사 결정 시 경험이 풍부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최소 10년의 경험이 축적되어야 하고, 의학은 트렌드가 자주 바뀌므로 계속 공부하는 의사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검사를 권유할 때 '무엇 때문에 해야 한다'라고 잘 설명해주는 의사가 좋은 의사라고 생각해요. 의학은 과학이기에 환자가 이해할 수 있게 잘 설명해주는 의사를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희 병원 건물은 지은 지 7개월 정도 되었는데, 제가 직접 설계했습니다. 영상의학과 특성상 CT나 MRI 같은 기기들은 전력 소모가 커서 전기 용량이 커지면 상주 안전 관리자가 있어야 하고 관리비가 높아지는 등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건물 원가만 약 500억 원이 들어갔습니다.

저희 친오빠도 소화기내과 전문의인 의사입니다. 아버지도 개원의사이신데, 개원 후 거의 10년간 휴가도 못 가시고 일만 하셨던 것을 보고 '나는 의사를 안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원래 문과를 선택했지만, 고2 때 '내가 그렇게 똑똑하지 않구나, 경제적 지대가 있는 의사가 더 낫겠다'는 생각에 이과로 전과했습니다.

지금 저는 오른쪽 아랫배 통증으로 오신 환자분의 맹장염 초기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영상 의학 툴들이 워낙 좋아져서 직접 타자를 치지 않아도 말로 진단을 다 작성할 수 있어요. 의학 용어는 대부분 영어라서 한국어로 말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개원하고 보니 의사라는 직업이 정말 힘들다는 것을 느껴요. 아기 엄마라 육아와 병행하기가 특히 힘들고, 저는 진단하고 환자분들을 돕는 일에만 익숙했는데, 개원을 하니 경영도 해야 합니다. 직원들의 고충도 듣고 조율해야 하며, 인사 관리, 숫자 관리, 진료까지 다 해야 해서 삶 자체가 할 일이 더 많아졌죠. 하지만 제가 제 일만 열심히 하면 개인을 넘어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기에 의사로서의 삶은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친오빠처럼 전문 분야가 다르면 의사들끼리도 서로 물어보며 협력합니다. 영상의학과는 '의사들의 의사'라고 불리는데, 이는 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과가 아니라 다른 과 의사들이 진단을 의뢰하는 과이기 때문입니다. 임상의사들이 '이거 진단이 뭐야?'라고 물어보면 저희가 영상을 보고 '그거 맞아', '그럴 확률이 몇 퍼센트야' 등 진단을 내려주는 거죠. 저희는 진단에 특화되어 있지만, 치료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지금 제 삶은 정말 '전쟁'입니다. 외래 진료를 보다가도 프리미엄 환자분들의 검진을 봐야 하는 등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처리해야 해요. 일반적인 의사들은 주중에 휴무를 만들거나 주말에 쉬는 등 워라밸을 중요시하지만, 저는 영상의학과 의사가 저 한 명뿐이라 병원 문을 닫을 수가 없어 쉬는 날이 없습니다. 개원한 지 7개월이 되었는데, 그전에는 하루 16시간씩 일하며 아기를 일주일간 못 본 적도 있었어요. 병원 초기에는 모든 것을 제가 직접 세팅해야 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요즘 폐업하는 병원들도 많습니다. 저희 병원만 해도 약 30억 원의 빚이 있는데, 이는 주로 기계 대출 때문이에요. MRI는 27억 원, CT는 10억 원, 초음파는 1억 원 정도 합니다. 개원한 것을 후회할 새도 없이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제 가게를 제가 문 닫을 수가 없으니까요.

현재 흉부 CT를 판독하며 기침하는 환자분의 폐렴이나 기관지염 여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MRI가 27억 원짜리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드릴 수 있죠. 기계에는 '이건 기업은행 것'이라는 스티커도 붙어 있어요.

의사가 되기를 꿈꾸는 분들께 현실적인 말씀을 드리자면, 의사라는 직업이 명예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충족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코 화려한 직업은 아닙니다. 환자분들을 직접 대면하다 보니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경우도 많고, 제가 내린 진단으로 인해 후회되는 순간들도 많아요. 예를 들어, MRI 판독 결과 괜찮다고 진단을 내렸는데, 보호자가 유치원을 상대로 소송을 걸기 위해 진단서를 써달라고 두 달 가까이 저를 쫓아다니며 괴롭힌 적도 있었어요. 제가 조금만 더 빨리 질병을 찾아냈더라면 환자에게 더 좋은 결과를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되는 순간들도 있고요.

저는 아마 평생 의사로 살 것 같아요. 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은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보다는 '의사 박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정체성을 지키면서 좋은 엄마와 아내도 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당장의 가장 큰 목표는 병원을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겁니다. 그래야 숫자만 체크하는 경영자가 아닌, 환자 진료에 더 집중하는 의사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저의 낙은 요즘 계속 고민하는 부분인데, 아기 우진이가 웃는 모습이 낙인 것 같습니다. 워킹맘들은 취미를 즐길 시간이 거의 없어요. 남는 시간은 모두 아이에게 쏟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아이가 웃고 '엄마 사랑해'라고 할 때면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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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아가시는 분들이나 동기부여를 원하시는 분들께 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노력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머리가 좋건, 특별한 능력이 있건 없건, 노력할 수 있는 자세만 갖춰지면 어떤 분야든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애살있게', 즉 꼼꼼하게 바라봐야 해요. 힘들 때도 있었지만, 저는 그냥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관성이 있었고, 묵묵하게 성실하게 하는 것도 저의 큰 강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보물 우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엄마가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될게, 사랑해. 그리고 남편에게는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래도 고맙고 사랑하고, 내일도 같이 열심히 달려보자고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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