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분쟁에 시달리는 그리스, "한국에게 이 무기 요청"

테스트중인 무인수상정 해령

"가격이 얼마죠?" 그리스 합동참모본부 고위 군 관계자가 한화시스템 관계자에게 물었습니다.

경남 거제 장목항에서 펼쳐진 무인수상정 '해령'의 시연회를 지켜본 그리스 대표단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2시간이 넘는 시연 내내 그들의 시선은 바다 위를 자유롭게 누비며 임무를 수행하는 검은 배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의 '바다 유령'이 그리스를 매혹시키다


지난 5월 13일, 한국의 조용한 항구 마을이 세계적인 해양 강국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한화시스템이 개발한 무인수상정 '해령(Sea Ghost)'의 능력을 그리스 군 고위 관계자들에게 선보이는 자리였습니다.

테스트중인 무인수상정 해령

'바다 유령'이라는 이름처럼, 해령은 마치 유령처럼 조용하고 은밀하게 시연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냈습니다.

"우리는 그저 컴퓨터로 명령을 내렸을 뿐인데, 해령이 알아서 모든 것을 해결했어요." 시연을 진행한 한화시스템 연구원이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시연에서 해령은 지휘 차량의 컴퓨터에서 전송된 명령을 받자마자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검은색 막대 형태의 음파탐지기(소나)가 해수면 아래로 내려가더니, 해령은 항구에서 1.5km 떨어진 대범벅도까지 해저면을 꼼꼼히 탐색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두 근처에 숨겨져 있던 지름 1m의 기뢰 모형을 정확히 찾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더 놀라운 장면은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과정에서 펼쳐졌습니다.

해령이 기지로 복귀하던 중 갑자기 소형 낚싯배가 예정된 항로를 가로질렀습니다.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해령은 주야간 광학카메라(EO/IR)로 수집한 데이터를 인공지능(AI)이 실시간으로 분석해 순식간에 선수를 우측으로 틀어 낚싯배를 피해 나갔습니다.

인간의 조종 없이도 완벽하게 위기를 회피한 것입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그리스 대표단의 표정이 확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의례적인 관심을 보이던 그들이 이제는 진지한 눈빛으로 "세부 제원과 가격, 공급 가능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라고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리스는 한국의 무인수상정에 관심을 보일까요?


그리스가 한국의 무인수상정에 큰 관심을 보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스는 6,000개가 넘는 섬과 15,000km에 달하는 해안선을 가진 해양 국가입니다.

이 방대한 해양 영토를 지키는 것은 그리스 해군에게 엄청난 도전입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그리스는 세 가지 큰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첫째,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오는 난민들이 그리스 해안을 통해 대거 유입되면서 연안 관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둘째, 오랜 앙숙인 튀르키예와의 해상 분쟁이 잦아지면서 해군력 증강이 시급해졌습니다.

셋째, 그리스 역시 전 세계적인 청년 인구 감소 추세에 따라 해군 인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천 개의 섬과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지킬 인력은 점점 부족해지고 있어요. 무인 시스템이 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 합참 대표단의 한 관계자가 시연회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다 유령'의 놀라운 능력


해령은 그저 원격 조종되는 보트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다 위의 진정한 '유령'입니다.

길이 12m, 중량 14톤의 이 무인수상정은 최고 속력 40노트(시속 74km)까지 낼 수 있으며, 임무 속력(20노트) 기준으로 최장 12시간, 약 440km를 완전 자율 운항할 수 있습니다.

테스트중인 무인수상정 해령

마치 선원이 타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항해하고, 임무를 수행하고,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해령은 AI 기반 표적 탐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인공지능이 카메라와 센서로 수집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적의 선박이나 잠수함, 기뢰 등을 자동으로 탐지합니다.

또한 무인 장애물 회피 기동 기능을 통해 다른 선박이나 장애물을 스스로 감지하고 국제해상충돌예방규칙(COLREG)에 따라 안전하게 회피합니다.

자율 이·접안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사람 없이도 스스로 부두에 접근해 정박하고, 다시 출항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무인 해저면 스캐닝 기술로 음파탐지기(소나)를 이용해 해저면을 상세히 스캔하여 기뢰나 잠수함 같은 위험 요소를 탐지합니다.

"해령은 '바다의 유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적을 찾아내는 데는 눈에 띄지 않지만, 정작 적은 해령을 쉽게 발견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현대 해상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비대칭 우위입니다." 한화시스템의 한 엔지니어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무인수상정, 미래 해군의 '게임 체인저'


해령과 같은 무인수상정이 주목받는 이유는 최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드론의 효용성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충격적인 사례는 지난 5월 4일, 우크라이나가 개발한 해상 드론 '마구라-V7'이 러시아의 최신예 전투기 Su-30을 미사일로 격추한 사건입니다.

우크라이나가 개발한 해상 드론 마구라-V7

이 사건은 군사 역사상 처음으로 해상 드론이 전투기를 격추한 사례로, 미래 전쟁의 모습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약 4억원 정도의 해상 드론과 5억원 정도의 미사일로 700억원에 달하는 전투기를 격추한 것입니다. 무려 200대 1의 비용 효율성을 보여준 것이죠!

이러한 사례는 세계 각국 해군이 무인수상정 개발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요 해군 강국들은 물론, 대만과 같은 작은 나라들도 자국의 방어를 위해 무인수상정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마켓리서치퓨처에 따르면, 세계 무인수상정 시장은 2034년까지 62억 달러(약 8조 6800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며, 이는 2023년(26억 달러) 대비 두 배 이상 커진 규모입니다.

한국, 해양 무인체계 기술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


한화시스템은 2011년부터 해양무인체계 연구를 시작해 국내에서 가장 긴 역사와 깊은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가 주관한 국내 최초 무인수상정 '아라곤 1호'의 연구개발 사업 참여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국방과학연구소와 함께 여러 대의 무인수상정이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군집무인수상정'도 개발했습니다.

군집 무인수상정

한화시스템의 이러한 기술력은 세계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40년 넘게 함정 전투체계를 개발해온 경험을 해양 무인체계에 접목한 점이 큰 강점으로 꼽힙니다.

"한화시스템은 40년 넘게 함정 전투체계를 개발해 온 경험을 살려 무인수상정 등 해양 방산 시장을 선도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스와의 이번 미팅이 한국 무인수상정의 첫 수출 사례가 되길 기대합니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글로벌 무인 해양 시대, 한국이 주도할까?


현재 한국에서도 무인수상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은 국방개혁안 '국방혁신 4.0'과 연계해 해양 유·무인 복합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2027년까지 자율기뢰탐색체와 기뢰제거처리기 등을 실전 배치할 예정입니다.

해양경찰도 조만간 전국 지방청에 5척 안팎의 무인수상정을 도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그리스와의 수출 상담은 한국 무인수상정의 세계 시장 진출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만약 그리스와의 수출 계약이 성사된다면, 한국은 무인수상정 분야에서 미국, 이스라엘에 이은 주요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다는 넓고, 지켜야 할 영토는 많고, 인력은 부족합니다. 이것이 무인수상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해령'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 대표단은 시연회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바다의 유령 '해령'이 머지않아 그리스의 에게해, 나아가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