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매출 0원’···43년 광주 대인시장 얼음가게 사라진다

강주비 2025. 7. 2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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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기기 보급·장기 불경기 '이중고'…설 자리 잃어
하루 매출 '0원'도 다반사, 광주 지역 서너 곳 남아
28일 광주 동구 대인동 성용얼음 대표가 배달접수를 받고 얼음을 자르기 위해 운반하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1년이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제는 얼음 가게보다는 마트를 찾는 시대가 돼버렸잖아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28일 오전 광주 동구 대인시장 인근의 골목. 한 가게 앞에는 바랜 붉은 붓글씨로 '얼음'이라 적힌 낡은 입간판이 서 있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낡은 선풍기 한 대가 덜덜거리며 돌고 있었다. 사장 성용(71)씨는 그 앞에 앉아 휑한 가게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오래된 체념과 씁쓸함이 묻어났다.

28일 광주 동구 대인동에서 43년째 운영되고 있는 얼음가게. 강주비 기자

성씨는 이 자리에서 43년째 얼음 장사를 하고 있다. 그가 장사를 시작했던 1980년대에는 여름이면 얼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 하루 종일 얼음을 자르고, 나르고, 또 자르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냉동기기와 제빙기가 대중화되고 주요 판매처이던 전통 시장이 점차 쇠락하자 성씨의 얼음 가게는 설 자리를 잃어갔다.

성씨는 "오늘도 새벽같이 문 열었지만, 하루 종일 주문 전화 한 통 없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과거엔 하루에도 수차례 날을 갈며 사용하던 얼음 절단기와 칼, 톱 같은 도구들은 이제 가게 구석에 녹이 슨 채 방치돼 있었다.

얼음을 실어 나르던 자전거는 이제 고물을 싣고 다니는 용도가 됐다. 이날도 성씨는 자전거에 고철을 실어 팔고 돌아와 손에 4천900원을 쥐었다. 성씨는 "장사가 돼야 먹고사는데, 요즘은 '공치는 날'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고물 팔아 몇천 원 버는 게 하루 수익의 전부"라고 말했다.

가장 최근에 얼음 주문을 받은 게 언제인지 묻자, 성씨는 "기억도 안 난다"며 고개를 저었다.

28일 광주 동구 대인동에서 43년째 얼음가게를 운영 중인 성용씨가 가게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강주비 기자

얼음을 좌판에 깔고 생선을 팔던 시장 상인들은 점차 줄어간다. 커피숍과 음식점은 대부분 제빙기를 사용하고, 체육대회나 낚시용으로 대량 얼음을 찾던 고객들도 마트나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끔 주말에 찾아오는 단골이 성씨가 맞이하는 유일한 손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게 문은 닫을 수 없다. 어쩌다 한 번 '올지도 모를' 손님을 위해 성씨는 매일 같은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성씨에게 돌아오는 건 매달 30만~40만원에 이르는 냉동고 전기료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얼음 가게들은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한때 광주 시내에 10곳이 넘었던 얼음가게는 현재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는 게 성씨의 전언이다.

성씨는 "대인시장에도 불과 1년 전까지 다른 얼음 가게가 하나 더 있었는데, 결국 문을 닫았다. 나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28일 광주 북구 말바우시장 인근에서 얼음가게를 운영중인 정진갑씨가 얼음을 포장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28일 광주 북구 말바우시장 인근에서 얼음가게를 운영중인 정진갑씨가 얼음을 자르고 있다. 강주비 기자

광주 북구 말바우시장 인근에서 10년째 얼음 가게를 운영 중인 정진갑(56)씨도 비슷한 처지다. 얼음 판매가 늘어야 할 여름철임에도 경기는 좀처럼 풀릴 기미가 없고, 연이은 폭염에 따른 고수온 현상으로 어획량까지 줄면서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정씨는 "생선이 많이 잡혀야 얼음도 많이 나가는데, 올해는 고수온 탓에 어획량이 줄어서 평년보다 매출이 20%는 빠졌다. 여름 대목이라는 말이 무색하다"며 "5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해마다 상황이 안 좋아진다. 물가 상승과 불경기까지 덮쳐 최근 4년 사이 1판당 3천원이던 얼음 가격을 4천5백원으로 올릴 수밖에 없었다. 작은 식용 얼음은 수요도 없어서 2년 전부터는 아예 취급을 안 한다"고 털어놨다.

정씨의 냉동고 안에도 얼음이 가득하지만, 언제 팔릴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얼음을 자르고 포장하기를 반복했다.

"얼음 가게는 결국 전통시장에 기대어 운영되는 구조인데, 시장이 죽어가니까 우리도 같이 힘들어지고 있어요. 그래도 이게 내 생계니까, 안 할 수도 없잖아요."

28일 광주 북구 말바우시장 인근 한 얼음가게 창고에 얼음이 쌓여있다. 강주비 기자

수십 년간 '여름 풍경'의 일부였던 얼음 가게들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묵묵히 가게 문을 여는 이들의 땀과 기다림뿐이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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