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가와 AI가 함께 쓰는 서평]
돈을 빼고 설명할 수 없는 역사
역사란 무엇인가. 우리는 학교에서 역사란 과거를 기록하고, 그 안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라 배운다. 하지만 강승준의 『역사는 돈이다』를 읽고 나면, 그 역사가 얼마나 잔혹하게, 때로는 절망적으로 흘러왔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책은 말한다. “돈을 빼고는 어떤 역사도 설명할 수 없다”고.
저자는 공무원 출신의 경제학자로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을 거쳐 한국은행 감사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대외국제부총장 직을 맡고 있다.

세계사를 돈의 시선으로 읽는다는 것은 곧 이상과 명분, 종교와 철학이라는 탈을 벗기고 역사를 보는 일이다.
그게 가능할까. 힘과 돈의 논리가 그토록 적나라하게 역사의 기저를 관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책은 단지 충격적인 사실을 나열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역사의 무대 위에서 벌어진 인간 군상들의 생존과 야망, 허위와 본심을 꿰뚫어보며 우리더러 현실을 더욱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로마 제국의 몰락은 화폐 가치 붕괴 탓
저자는 먼저 거대한 역사적 전환점들이 단순한 도덕적 판단이나 명분 때문이 아니라, 철저히 경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결정되었다는 점을 짚는다. 로마 제국의 몰락조차도 단지 정치적 혼란이 아니라, '화폐 가치의 붕괴'와 '귀족의 탈세'라는 경제적 요인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또 중세의 종교 권력이 신의 이름으로 작동한 듯 했지만, 실제로는 '면죄부 판매'와 '교회세 수탈'이라는 ‘수익 모델’에 기초하고 있었다. 십자군 전쟁, 개신교의 탄생, 아편전쟁, 심지어 르네상스와 산업혁명까지도 그 기저에는 언제나 돈과 금융이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세계사의 흐름이 정치와 종교보다 금융의 움직임에 더 많이 좌우되었다고 분석하는 부분이다. 메디치가, 푸거가, 로스차일드가와 같은 금융 가문들의 등장과 암스테르담 은행의 시스템 혁신, 주식회사의 탄생, 그리고 영국 파운드화의 신뢰가 세계 패권을 어떻게 이동시켰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역사란 거대한 부의 흐름이 만들어낸 ‘금융 드라마’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에스파냐의 몰락과 네덜란드의 부상, 영국의 명예혁명과 산업혁명,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설립과 브레턴우즈 체제까지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저자는 거시적 시야로 ‘국가가 어떻게 돈을 관리하고, 그것을 통해 어떤 권력을 행사해왔는가’에 집중한다. 이는 단지 과거를 재구성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시각까지 제공한다.
경제가 곧 정치이고, 금융이 곧 군사력이며, 신용이 곧 국력이라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진실이다.

정의로운 역사는 없다?
그러나 이 책의 힘은 단지 통찰력에만 있지 않다. 역사 속에서 종교가, 이념이, 심지어 인간애마저도 어떤 방식으로 돈 앞에서 무력해졌는지를 저자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일본의 도자기 산업 발전이 조선 도공의 납치와 착취에서 비롯되었고, 기독교의 선교 활동이 제국주의적 침략의 명분이 되었으며, 이슬람 제국의 관용적 조세 정책이 패권을 가능케 했다는 이야기는 역사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흔든다. 특히 “교회를 세우면 징세권이 생긴다”는 명제로 설명되는 유럽 제국주의의 폭력성은, 종교가 아닌 이익을 중심에 놓고 역사적 사건을 재해석하는 이 책의 방식이 얼마나 유효한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정의로운 역사’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곧 현실을 바로 보는 힘이 될 수 있다. ‘국익’이란 미명 아래 벌어지는 침략과 약탈, ‘선의’의 외피를 두른 경제 지배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고 있음을 저자는 강하게 시사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한 냉소주의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세계사의 흐름에 의도치 않게 휘말리고, 당하고, 끌려간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고. 역사를 앎으로써 오늘의 우리를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이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담겨 있다. 역사를 인간의 도덕적 진보의 기록으로만 보려는 태도는 안이하다. 오히려 이 책은 역사에서 배우되, 그것을 이상화하지 말고 현실의 언어로 새겨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는 돈이다』는 어쩌면 우리가 눈감고 지나쳤던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보게 만들고 있다. 이 책은 위선과 허위를 걷어낸 진짜 세계사이며, 동시에 오늘의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현실 인식의 지도라 할 것이다. 고통스럽더라도, 이 책을 읽는 일은 분명 의미 있을 터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세계 역시 돈의 흐름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여전히 사람을 움직이고, 사람을 바꾸며, 결국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 다독가 정재헌은 대학교에서 철학과를 다녔는데, 컴맹인데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IT 기업이었던 STM(현, LG CNS)에 입사할 수 있었다. 광주에서 서울로 온 여인을 회사내에서 만나 아이들을 일곱 명이나 낳고 길렀다. 7년 전에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책을 벗 삼는 것보다 나은 걸 찾을 수 없었다. 아이들도 책과 친해지게 하자는 생각에 지금도 매일 책을 본다. 읽다 보니 정리하는 맛이 참 좋았다. 지금은 코스닥 상장사인 토마토시스템에서 AI/헬스케어 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멋진 독후감을 쓰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