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곳간 '구멍', 재원대책은 '빈칸'…내수대응 실탄도 비상
작년 경기 '상저하고' 전망 어긋나…정부 '경기낙관론' 비판 커질 듯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송정은 기자 =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2년째 대규모 세수 펑크가 확실시되면서 재정의 경기 대응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년간 80조원이 넘는 세수 펑크가 발생하면서 정부는 당장 세수를 메울 구체적인 재원 대책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올해 예산 사업의 일부 강제 불용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올해 대규모 세수 펑크로 작년 정부가 고수한 '경기 상저하고' 전망이 기대 이하였던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경기 낙관론'에 대한 비판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2년간 80조원 이상 세수 펑크…재정 안정성 '흔들'
기획재정부가 26일 세수 재추계를 통해 공개한 올해 예산 대비 세수 부족 규모는 29조6천억원이다. 지난해 50조원대 세수 부족에 이어 2년째 대규모 세수 펑크다.
올해 예상 세수는 337조7천억원으로 지난해 정부가 짠 세입 예산인 367조3천억원에 크게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세수 부족의 주된 원인은 기업실적 부진에 따른 법인세 감소다. 정부는 이날 재추계를 통해 올해 법인세수 전망을 예산(77조7천억원)보다 14조5천억원 적은 63조2천억원으로 낮춰 잡았다.
민생 지원을 위한 유류세율 인하, 물가 안정을 위한 긴급 할당관세 등으로 교통·에너지·환경세, 관세 등도 총 6조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는 기금 여유 재원, 집행 불가 사업 불용 등을 통해 부족한 세수를 최대한 메운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2년째 대규모 세수 부족 사태가 이어지면서 당장 구체적인 재원 대책은 수립조차 쉽지 않은 분위기다.
지난해에는 오랜 기간 지속된 달러화 강세 등 영향으로 축적된 외국환평형기금의 여유 재원이 도움이 됐다.
하지만 올해는 37조원 규모의 공자기금 상환이 세입예산안에 이미 반영돼 있어 추가적인 외평기금 투입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제때 재원을 충당하지 못하면 국세의 40%에 해당하는 지방교부금도 영향을 받아 지방 사업에 차질을 줄 수 있다.
무리한 기금 전용이 이뤄질 경우 기금의 본래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약 20조원의 외평기금이 세수 부족 구원투수로 등판하자 '외환 방파제' 부실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정부가 구체적인 재원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일각에서는 일부 사업의 사실상 강제 불용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기재부는 기금 관계 부처와 국회 등과 논의를 거쳐 구체적인 재원 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김동일 기재부 예산실장은 "재추계가 끝났으니 이제 기금 등 가용 재원을 체크해봐야 한다"라며 "인위적 불용(강제불용)은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외불확실성에 내수 회복도 아직…경기 대응력 우려
윤석열 정부의 고소득자·대기업 감세 정책이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2년째 세수 펑크까지 맞물리면서 재정 기반이 급속도로 취약해진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취약한 재정 기반은 재정의 부실한 경기 대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반년 넘게 계속된 수출 호조세에도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재정의 경기 마중물 역할에 대한 목소리가 큰 상황이다.
대표적 내수 지표인 소매판매액지수는 2022년 2분기 이후 9개 분기 연속 감소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1년 전보다 2.1% 줄었다. 가계 여윳돈인 가구 흑자액(실질)은 2022년 3분기부터 8개 분기째 줄며 소비 여력을 죄고 있다.
정부가 기대한 수출 호조에 따른 경기 선순환 효과도 '아직'이다.
올해 1∼7월 중소기업 제조업 생산지수는 2년째 감소하며 2020년(97.7)과 비슷한 수준(98.2)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생산지수가 96.7에서 113.7로 상승한 대기업과 온도 차가 크다.
여기에 중동 정세 불안,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등 커지는 대외 불확실성까지 악재로 부상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도 녹록지 않은 세수 탓에 재정의 경기 대응 역할이 지나치게 위축됐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올해와 내년 총지출 증가율을 모두 3% 안팎으로 묶으면서 고강도 긴축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재정 기반이 흔들리면 저출생 대응, 연구개발(R&D) 투자 등 당장 서둘러야 할 중장기 과제 대응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가 일관되게 강조해 온 재정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불용 규모가 커진다면 관리재정수지에 긍정적이지만 세수 결손 규모가 예측한 것보다 커지면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4년째 세입 전망 어긋나…'장밋빛 전망' 원인 지적도
최근 반복되는 대규모 세입 전망 '오차'와 함께 정부의 '경기 낙관론'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세수 전망은 2021년 이후 4년째 수십조원 규모의 오차를 내며 실제 세수와 어긋나고 있다.
2021년과 2022년 세수는 당초 전망치보다 각각 61조3천억원, 52조6천억원 더 걷혔다. 예산 대비 오차액 비율인 오차율은 각각 21.7%, 15.3%에 달했다.
반대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는 지난해 56조4천억원의 세수 펑크에 이어 올해 29조6천억원의 세수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오차율은 -14.1%였다.
정부는 글로벌 복합 위기. 고금리 장기화 등 예상치 못한 변수 탓에 올해 세수 오차를 막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수 오차가 반복된 상황을 엄중히 인식하고 원인을 분석해 세수 추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장밋빛 경제 전망을 과신한 정부에 대규모 세수 펑크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시장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뎠음에도 정부가 이른바 '상저하고' 전망을 고수한 탓에 세입 전망을 냉정하게 '현실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경기 회복세를 근거로 내년 법인세가 올해 예산(77조7천억원)보다 10조8천억원 더 걷힐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정부의 경기 예측이 잇따라 실패하고 대내외 불확실성도 커지면서 낙관적 전망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회의론'이 뒤따르고 있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현재로서는 내년 세입 예산을 기존안(382조원)대로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9∼11월 경제 여건이 얼마나 변동되느냐 등에 따라 11월 세수를 재추계할지 여부는 여러 기준과 원칙에 따라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에도 "한국 경제가 개선되고 있다"며 경기 낙관론을 이어가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긍정적인 지표를 부각해서 경제 주체에게 심리를 안정시키거나 희망을 주기 위해 긍정적인 얘기를 해주는 것"이라며 근거 없는 낙관론과 다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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