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 페이스 당구퀸‘ 김하은 “남자 선수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실력 갖추고 싶어”

김동우 MK빌리어드 기자(glenn0703@mkbn.co.kr) 2024. 1. 1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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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자3쿠션 1위 ’야무진 18세‘
지난해 17세때 전국대회 첫 우승, 올해 2관왕
세계선수권 준결승 9점차 역전패 “너무 화나”
“김행직 선수 존경, 실력과 멘탈 닮고 싶어”
지난해 전국대회 2관왕에 오르며 전국1위로 올라선 김하은은 한국 여자3쿠션 최고의 기대주 중 하나다.
“목표는 당연히 세계1위이고, 남자선수들과 시합해도 쉽게 밀리지 않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한국 여자3쿠션 최고의 기대주인 김하은의 포부다. 지난 2022년 17세 나이로 전국당구대회 첫 정상에 올랐고, 지난해엔 2관왕에 오르며 전국 1위로 올라섰다. 특히 첫 출전한 세계여자3쿠션선수권에서는 ‘최강’ 테레사 클롬펜하우어를 꺾고 공동3위에 입상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떡잎부터 남달랐다. 당구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10살 때 처음 큐를 잡았고, 초등학교 6학년인 지난 2017년 전국대회 일반부에 출전했다. 김하은은 당시 자신의 키만한 큐를 들고 대선배들을 상대했지만, 경기에 지면 분한 마음에 몰래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김하은은 아직도 연습 때 성공하지 못한 공이 있으면 하루고 이틀이고 될 때까지 그 공에 집착한다. 강한 승부욕과 오기가 지금의 그를 만든 셈이다. 새해를 맞아 맹연습 중인 김하은을 서울 역삼동 엠블당구클럽에서 만났다.

김하은은 지난 2022년 첫 우승하기 직전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으나, 첫 우승 후 성적과 실력 면에서 모두 혈이 뚫렸다고 했다. 사진은 인터뷰 현장에서 당구공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하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충북당구연맹 소속 3쿠션 선수이며 올해 18세가 됐다. 현재 아프리카TV 미디어프로로도 활동하고 있다.

▲어떻게 당구를 시작하게 됐나.

=아버지가 워낙 당구를 좋아하셨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함께 당구장에 놀러가거나, TV에서 3쿠션월드컵을 중계하면 함께 경기를 봤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당구 한번 시작해볼래?”라고 하셨고, 저도 당구에 관심이 많아 10살 때 처음 큐를 잡게 됐다. 당시엔 키가 너무 작아 3년 동안 스트로크 연습만 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당구대회 학생부와 일반부에 참가했다.

▲당구는 누구에게서 배웠나.

=당구를 시작하고서는 당시 살던 구미에서 권영일 선생님께 배웠다. 이후 중3 때 서울로 올라와 계속해서 김동룡 선생님께 배우고 있다.

▲지난해 2관왕(남원 전국당구선수권, 대한체육회장배)을 차지했고, 처음 국내 1위에도 올랐다.

=지난해는 확실히 특별한 해였다. 성적 면에서 어느때보다 좋은 성과를 냈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아직 내 목표에는 한참 못 미치고, 실력 면에서도 성에 안찬다.

▲지난 2022년 첫 우승(11월 대한체육회장배) 이후 성적과 기량이 눈에 띄게 상승하고 있다. 첫 우승이 본인에게 큰 터닝 포인트였는지.

=확실히 첫 우승이 성적과 실력 면에서 큰 도약의 계기였다. 특히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하나 있다. 처음 우승했던 지난 2022년 양구대회 당시 결승에 들어가기 직전 허정한 선수가 저에게 “이번에 우승 한번 해보자. 우승하면 당구치는게 많이 달라질 거다”라고 말씀해주셨다. 솔직히 그때는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근데 돌아보면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겠더라. 그때 우승하고 나서 성적과 실력 면에서 모두 혈이 뚫린 듯하다. 제게 중요한 말씀을 해주신 허정한 선수께 너무 감사드린다.

▲첫 우승 직전까지 굉장히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다고.

=아마 지난해 첫 우승하기 직전까지가 가장 많이 울었던 시기가 아닐까 싶다. 당시 수지가 28점이었는데,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팔이 따라주지 않아 치지 못하는 공이 유독 많았다. 그 때문에 엄청 힘들었고, 경기에서 지면 화장실이나 비상계단에서 혼자 울고, 또 마음을 다잡고 연습하는 것을 반복했다. 사실 우승했던 대회 직전까지도 공이 너무 안 맞았는데, 우승을 하고 나니 이후 안 맞았던 것들이 싹 풀리기 시작하더라.

지난 2017년 ‘대한당구연맹회장배’ 일반부에서 경기하고 있는 김하은. 김하은은 초등학교 6학년인 지난 2017년 전국대회 일반부에 처음 출전했다. (사진= MK빌리어드뉴스 DB)
김하은은 또래 남자선수들과도 친하게 지낸다. 지난 2022년 강원도 양구 ‘제17회 대한체육회장배 전국당구대회’에서 첫 우승한 김하은을 친구와 선배 선수들이 들어올리며 축하해주고 있다. (왼쭉부터)조영윤 이형호 정재인 정예성 김하은 손준혁 원재윤 박정우 김동룡(스승) 김회승. (사진=MK빌리어드뉴스DB)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도 공동3위에 올랐다. 첫 출전에 좋은 성과인데.

=국제 시합이라 국내 시합보다는 긴장감이 더했다. 그래도 평소 하던 대로 한 게임, 한 이닝, 한 큐에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쳤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준결승전이다. (김하은은 당시 준결승전에서 니시모토 유코에 19이닝까지 23:12로 크게 앞서다 27:30(38이닝)으로 역전패했다) 당시 니시모토 유코 선수랑 경기서 중반까지 많이 앞서다 역전패했는데, 개인적으로 역전패를 제일 싫어해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조별 예선에선 테레사를 물리치기도 했다. (김하은은 지난해 세계선수권 조별예선 A조에서 테레사에 25:22(28이닝)로 승리했다)

=테레사와는 세계선수권 얼마 전 한국에서 비공식 경기를 치른 적이 있었고, 당시 3점 차로 졌다. 그때 느낀 점이 테레사와 경기할 땐 무조건 초반에 치고나가야 승산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세계선수권에서 테레사를 만났을 때 최대한 초반에 치고나가는 것만 생각하며 쳤고, 그 전략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초6때 전국대회 일반부 출전 “지면 분해서 울었다”
올 목표 조명우 선수처럼 다관왕+세계선수권 우승
아프리카TV ‘당구선수하은’ 채널서 미디어프로 활동
▲아프리카 당구 미디어프로로 활동 중인데.

=지난해 후반부터 아프리카TV 미디어프로로 활동 중이다. 이후 아프리카TV에 ‘당구선수하은’이라는 채널을 개설해 평소 연습, 경기하는 모습을 방송하고 있다. 때로는 아프리카TV 측에서 연계해주는 게스트와 경기하는 콘텐츠도 싣는다. 지난해 이집트3쿠션월드컵 때엔 이 채널을 통해 방송해설도 했다.

▲당구 미디어프로로 활동하며 새롭게 느낀 점도 있다고.

=아프리카TV 미디어프로로 활동을 시작하며 갑작스레 미디어 노출이 잦아져 처음엔 어색하기도 했지만, 방송을 자주 하다 보니 이제 꽤나 익숙해졌다. 내 경우 워낙 말수가 적은 편이라 방송을 켜놓고도 말없이 연습만 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럼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방송을 시청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시청자수도 생각보다 많아 신기하다. 특히 최근 어떤 시청자분이 ‘아프리카TV에서 김하은이 연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니’라는 댓글을 남겨 주셨는데, 팬들이 저를 봐주시고 관심 가져주신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감사하다. 또 아프리카TV가 미디어프로를 운영하며 새로운 여자3쿠션 시합을 신설하려 하는 등 여자3쿠션 선수들에게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주려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현재 여자3쿠션 국내 1위지만, 나이는 가장 어린 편이다.

=워낙 어렸을 적부터 대선배님들과 시합을 해와서 그런지 경기하면서 딱히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예전부터 저보다 나이가 많고 경력이 많으신 분들께는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 인사도 열심히 한다. 그런데 지난해 랭킹 1위에 오르고 나서는 주변에서 ‘김하은이 랭킹 1위가 되니 인사도 안 하고 다닌다’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저는 그렇지 않았는데. 억울한 마음에 우울하기도 했다.

▲친하게 지내는 선수는.

=비슷한 시기 당구를 함께 치기 시작해 가장 오랜 시간 교류해 왔던 정재인 선수와 가장 친하다. 또한 이채은 박정우 정예성 조영윤 김민철 선수 등, 또래 선수들과 대부분 친하게 지낸다. 포켓볼 선수인 송나경 선수, PBA 정보윤 선수와도 친하다.

스승인 김동룡(오른쪽)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는 김하은. 경북 구미 출신인 김하은은 과거엔 권영일에게 당구를 배우다 중3 때 서울로 올라온 이후로는 줄곧 김동룡을 스승으로 두고 있다.
▲가끔 남자 선수들에게서 스트레스도 받았다고.

=예전부터 또래 남자 선수들이랑 같이 연습하고 경기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남자 친구들은 되는데 저는 안 되는 공이 몇 개씩 있었고, 그럴 땐 저만 뒤처지는 것 같아 그 공을 며칠씩 연습했다. 그래도 안 돼서 혼자 힘들어하면 김동룡 선생님이 ‘여자가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되는 공이 있는 거다’라며 위로해주시곤 하셨다. 당시엔 이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계속해서 당구를 치다 보니 정말 여자선수가 치기 어려운 공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그런 공이 있으면 여자선수만의 방식으로 풀어내자는 마음을 먹게됐다.

▲평소 경기 때 덤덤해 보이는 것과 달리, 승부욕이 꽤 강한 것 같다.

=어려서부터 승부욕이 강한 편이었다. 지는 걸 싫어하고, 지면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곤 했다. 무조건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과거 초중학생 시절엔 대선배 분들이랑 자주 경기 하다 보니 질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때마다 분해서 울면 같이 경기했던 선배들이 위로해주곤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저도 경력이 꽤 쌓였기 때문에 경기할 때만큼은 감정을 잘 안 드러내려 한다. 만일 내가 이겼어도 상대는 기분이 안 좋을 수 있기 때문에 크게 기뻐하지도 않는다.

▲선수로서 본인의 장점을 꼽자면.

=아무래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다보니 ‘포커 페이스‘가 아닐까. 또 개인적으로는 평소 ’길공‘(기본 배치)이 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공들을 잘 공략하는 점도 장점인 듯하다. 물론 그만큼 기본구 연습을 많이 한다.

▲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김행직 선수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멘탈이 정말 좋으시다고 생각한다. 김행직 선수 특유의 ’마이웨이‘를 닮고 싶다. 주변에서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자신 공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멋지다.

“초등학교 때 전국대회에 나가서 지면 항상 분해서 울었고, 그럴때면 같이 경기했던 선배들이 위로해주곤 했죠”. 어려서부터 유독 강한 승부욕을 타고난 김하은은 지금도 안 되는 공이 있으면 악착같이 연습한다고 한다.
▲연습 패턴은.

=현재 서울 역삼동 엠블당구클럽에서 연습하고 있고, 보통 오전 11시 반에 나와 점심 식사 후 연습 좀 하다 손님과 경기 한다. 중간에 비는 시간에는 경기 때 못 쳤던 공 위주로 연습하고, 내가 완벽하게 이해하고 깨달을 때까지 연습한다. 요즘엔 체력을 키우기 위해 저녁엔 헬스장에 간다. 그래서인지 오래 경기하거나 늦게까지 경기 해도 체력적으로 지치지 않는다.

▲18세면 한창 친구들과 어울릴 나이인데.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했기 때문에 학교 친구는 없고, 개인적으로도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다. 따라서 쉴 때는 주로 집에서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최근엔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져 만화를 자주 본다.

▲새해 목표는.

=현재 수지가 30점인데, 올해엔 좀 더 단단한 30점을 만드는게 목표다. 또 지난해 조명우 선수가 전국대회 5관왕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진짜 대단하다. 올해는 저도 그런 성적을 한번 내보고 싶다. 세계여자3쿠션선수권에서도 우승하고 싶다.

▲당구선수로서 최종적인 목표는.

=세계랭킹 1위에 오르는 것이 꿈인데, 특히 남자선수와 시합해도 밀리지 않는 선수가 되고 싶다. 남자선수가 저와 대결하려 할 때 ’아, 그래도 김하은이랑 치면 쉽지는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김동우 MK빌리어드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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