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퀸즈컬렉션'이 담은 영국 로열패밀리 500년 [현장+]

부슬비가 내린 23일 오전11시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10층. 식당가에 가득한 군중을 지나 퀸즈컬렉션 전시장 앞에 다다르자 영국 록밴드 비틀스의 대표곡 '헤이 주드'가 들려왔다. 시각보다 청각을 먼저 자극하는 입구가 시간여행을 준비하라는 듯했다. 터널 입장과 동시에 볼륨이 커지고 영국 왕실의 500년 역사가 펼쳐졌다.

'퀸즈컬렉션' 브리티시 로열 특별전은 이랜드뮤지엄과 이월드의 파인주얼리 브랜드 '더그레이스런던'이 현대백화점과 함께 선보이는 전시다. 엘리자베스 1세부터 빅토리아 여왕과 마거릿 공주를 거쳐 다이애나빈까지 입헌군주제 아래 수백년간 이어온 영국 로열패밀리와 여왕의 삶을 대중과 공유하고, 이를 모티브로 디자인을 하는 더그레이스런던의 브랜드 스토리를 알리는 것이 취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난 1948년 한 자선무도회에서 입은 드레스 /사진=박재형 기자

전시의 시작은 지난 1952년부터 2022년까지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영국을 통치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드레스다. 그가 1948년 한 자선무도회에서 입은 것으로 왕실 패션의 품격을 대표하는 유산으로 꼽힌다. 현 국왕인 찰스 3세의 임신 사실을 비밀에 부친 채 착용했던 의상이기도 해 여왕의 애정이 각별했다고 전해진다.

대영제국의 ‘엘리자베스 시대’를 시작한 엘리자베스 1세 섹션도 흥미롭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오래된 소장품도 엘리자베스 1세의 물건이다. 그가 8명의 풋맨(남자하인)에게 왕실의 상징색인 진홍의 벨벳코트를 하사한다는 결재 문서(1564년)가 주인공이다. 여왕은 결혼이 곧 정치가 되는 시대에 “짐은 국가와 결혼했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통치 기간에 해군력을 강화하고 무역을 활성화하며 셰익스피어 같은 대문호를 배출해 영국의 황금기를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시 후반부의 다이애나빈 컬렉션도 빼놓을 수 없다. 1981년 런던 세인트폴대성당에서 치러진 찰스 왕세자와의 ‘세기의 결혼식’에서 다이애나빈이 착용했던 웨딩드레스와 1992년 방한 당시 입었던 버건디 로즈 드레스가 위엄을 뽐낸다.

다이애나빈이 지난 1981년 착용한 웨딩드레스의 복각품 뒤로 1992년 방한 당시 입은 버건디 로즈 드레스가 전시돼 있다. / 사진 = 박재형 기자

다이애나빈의 삶은 다사다난했다. 세기의 결혼식도 잠시, 부부생활은 순탄치 않았고 결국 1996년 이혼에 이른다. 다이애나빈은 자선과 봉사 활동을 이어가지만 곧바로 1년 뒤인 1997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36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권력자의 자리에서 누구보다 약자의 편에 섰던 그를 영국인들은 영원한 ‘잉글리시 로즈’로 기억한다.

이외에도 사랑을 위해 왕위를 포기한 에드워드 8세(윈저공)의 컬렉션과 엘리자베스 2세의 동생이자 패션을 사랑한 왕실의 아이콘 마거릿 공주 코너도 로열패밀리의 분위기를 생동감 있게 전했다. 무엇보다 잉글리시 로즈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글로리어스 플라워 티아라’에서는 더그레이스런던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이랜드그룹의 이미지가 영국과 묘하게 겹쳐 몰입감을 더했다. 1980년 ‘잉글랜드’라는 간판을 달고 이화여대 앞에 문을 연 2평 남짓한 옷가게가 이랜드의 뿌리라는 점만 봐도 그렇다. 실제로 창업주인 박성수 회장은 영국 왕실의 패션과 문화에서 사업의 영감을 많이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더그레이스런던 역시 이러한 그룹 정체성의 연장선이다. 나아가 더그레이스런던이 선보이는 랩그론 다이아몬드는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방법으로 생산된다는 점에서 왕실의 노블레스오블리주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이랜드뮤지엄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영국 여왕들의 삶과 그들이 남긴 유산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라며 “오는 8월 31일이 다이애나빈의 기일인 만큼 그의 업적을 되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드워드 8세의 스타일링은 현재 남성복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사진 = 박재형 기자

박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