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직전 CCTV 촬영 요구했는데…결국 수술 안 받은 이유는?

최민영 2024. 10. 1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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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자료화면


지난달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종양 제거 수술을 받기로 되어 있던 한 환자가, 수술 직전에 CCTV 녹화를 요구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수술을 취소했다는 제보가 KBS에 들어왔습니다.

의료 사고 입증 책임을 명확히 하고 대리수술 등 불법 행위 감시를 위해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가 시행된지도 1년이 지났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수술 직전 CCTV 촬영 요구한 환자…병원 측 "수술 직전에 요구하면 촬영 어렵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종양 제거 수술을 받기로 한 40대 여성 A 씨. 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종양이라 하루빨리 수술이 필요했습니다.

수술 예정 날짜는 지난달 2일이었습니다. A 씨는 수술 하루 전날 입원해 금식 등 수술 준비를 하며 입원 안내문을 받았습니다.

안내문엔 "전신 마취 수술 시 CCTV 촬영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술 당일 오후 2시,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A 씨는 의료진에게 수술 중 촬영이 가능한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수술실에서 만난 담당 의사는 "미리 말하지 않았다"며 "수술 직전에 CCTV 촬영을 요구하면 수술하기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빨리 종양을 제거해야 하는 터라 수술 날짜를 조정하기에 난감했지만, A 씨는 결국 그날 수술을 취소했습니다.

A 씨는 "촬영을 원하면 예정된 수술할 수 없다는 의료진에게 신뢰가 깨져서 그 병원에선 수술하고 싶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지난달 말, A 씨는 결국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일이 생길 것을 우려해 수술을 받은 병원에는 CCTV 촬영 요청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 병원 측 "CCTV 촬영 준비시간 필요…수술 직전에 요청하면 촬영 어려워"

그렇다면 병원은 왜 수술 직전에 요청하면 수술실 CCTV 녹화가 어렵다고 한 걸까요?

A 씨는 이런 상황을 복지부에 신고했고, 해당 병원을 관할하는 지역 보건소에서 병원에 소명을 요청했습니다.

병원 측은 의료법 시행 규칙상 의료진이 촬영을 거부할 수 있다고 소명했습니다.

의료법 시행규칙 39조의12 - 촬영 거부의 사유
(제2항 제1호) 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수술을 예정대로 시행하기 불가능한 시점에 환자 또는 환자의 보호자가 촬영을 요청하는 경우

이 조항을 근거로 A 씨의 사례는 의료진으로서 촬영을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병원 측이 보건소에 제출한 답변(2024. 9. 6)

"수술실 CCTV 촬영은 수술장면촬영요청서 및 본인동의서가 제출되어야 하고, 마취통증의학과와 수술실 간호팀이 사전에 CCTV 시스템 점검 및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수술실 가동 중에는 의료진이 그 날의 수술일정에 따른 각자 고유의 수술 보조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므로 수술실로 이동하는 시점에 환자 분께서 CCTV 촬영을 요청하시는 경우, 바로 시스템을 준비하여 촬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수술을 예정대로 시행할 수 없습니다."

보건소는 병원 측이 제시한 시행규칙 내용 등을 고려해 볼 때, 촬영을 거부한 것이 관련 법률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보건당국은 "문제 없다" 판단했지만…병원 측도 "더 용이하게 안내할 방안 고민하겠다"

수술 직전에 요청하면 촬영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 준비와 절차 때문에 CCTV 촬영이 어렵다는 병원 측의 입장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 논란 끝에 힘들게 도입된 수술실 CCTV, 실효성 있는 운영을 위해 개선할 점은 정말 없을까요?

A 씨는 "수술실에 CCTV 설치가 의무화됐다고 하니 모든 전신마취 수술은 촬영이 되는 줄 알았다. 환자나 가족이 신청하는 경우만 제한적으로 촬영하고, 의료진이 촬영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도 다양하게 정해두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토로했습니다.

또, "'미리 신청해야 CCTV 영상을 찍을 수 있다'고 안내받은 적은 없었다"며 "촬영 준비 시간을 고려해서 신청해야 한다는 안내는 더더욱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병원이 사전에 충분히 고지하고 환자가 이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면 이런 문제를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때문에 해당 병원을 관할하는 지역 보건소도 환자들의 CCTV 촬영 요청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사전에 환자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 의료진이 수술실 CCTV 촬영 관련 사항에 대해 정확하게 숙지하고 친절하게 안내할 수 있도록 지도했고, 병원 측도 "수술실 CCTV 촬영 공지에 대해 보다 많은 환자가 용이하게 안내받으실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A 씨 사건 이후로 수술실에 CCTV가 설치됐다는 안내문을 추가로 붙였고, 입원 수속 과정에서 CCTV 촬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구두로 한 번 더 안내하고 있다고 합니다.

■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1년…촬영 관련 안내 의무 규정은 없어

이런 안내 의무를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의료법 등은 CCTV 설치는 의무로 하고 있지만 촬영은 환자나 보호자가 요청하는 경우에만 이뤄지도록 하고 있어 환자가 이러한 권리를 알고 있지 못한다면 촬영 요청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시행규칙 등을 통해 의료진이 촬영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를 폭넓게 정해둔 것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 촬영 의무 아예 어겨도 벌금 500만 원…처벌 수위 낮아

법을 어긴 경우 처벌 수위도 높지 않습니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 혹은 환자 요청에 따른 촬영 의무를 어기면 최대 벌금 500만 원에 처해집니다.

CCTV 영상을 유출하거나 변조한 경우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 수위가 더 높은데, 법 자체를 이행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약한 처벌을 받는 역설적인 상황이기도 합니다.


■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1년…개선 방안 나와야

수술실 CCTV 의무화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은 이른바 '권대희법'으로 불립니다. 2016년 안면윤곽 수술을 받던 권대희 씨가 의료사고로 숨진 사건을 계기로 의료법 개정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고 권대희 씨의 어머니이자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를 맡고 있는 이나금 씨는 "수술 중 CCTV 영상을 촬영했더라도 영상을 제한적으로 제공하고, 의료진이 촬영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가 폭넓은 점, 법을 어기더라도 처벌 수위가 낮은 점 등이 보완돼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CCTV 영상을 촬영하지 않고 요청하면 찍는 현재의 구조가 '기본적으로 촬영을 하고, 원치 않는 경우 찍지 않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는 또 "의료계의 반대를 뚫고 CCTV 설치 의무화 법이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환자 보호의 첫발을 뗀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영상에 담겨있는 모습이 의료진이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는 증거가 돼 분쟁이 생겼을 때 의료진을 보호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습니다.

수술실 CCTV 의무화 1년이 지난 지금, 의료법상 수술실 CCTV를 설치해야 하는 의료기관(2,413곳)은 모두 CCTV 설치가 끝났습니다(올해 8월 기준, 자료 :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하지만 많은 논란 끝에 수술실에 설치된 CCTV가 제 역할을 하려면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실효성을 높일 개선방안이 추가로 도입되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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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영 기자 (mym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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