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면 한 잔"…'인스턴트 커피'의 비밀

김아름 2024. 10. 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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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인스턴트 커피의 역사와 기술
최초의 인스턴트커피는 네슬레 '네스카페'
스페셜티·싱글오리진 등 고급화도
그래픽=비즈워치
[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인스턴트 커피

커피만큼 우리가 늦게 발견하고도 이렇게 진한 사랑을 받는 음료가 있을까요.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 것이 1800년대 후반, 19세기 말이니 고작 10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 사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커피를 많이 먹는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됐죠.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커피 소비량은 405잔으로, 전세계 평균인 152잔보다 2배 이상 많습니다.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그간 [생활의 발견]에서도 수많은 커피 이야기를 다뤄 왔는데요. '"라떼는 말야"…우유 커피의 AtoZ'에서는 카페라떼 이야기를, '같은 원두인데…커피 맛은 왜 다를까'와 ''스페셜티 커피 원두의 비밀''에서는 다양한 커피 추출법과 원두 종류를 공부해 봤습니다. '당신이 몰랐던 커피 프랜차이즈의 은밀한 서비스'처럼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의 서비스를 파고들기도 했죠.

빠르게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사진=Pexels

그런데 우리가 아직 다뤄보지 않았던 영역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인스턴트 커피'입니다. 국내 인스턴트 커피 시장 규모는 대략 1조원대 안팎입니다. 에스프레소 기반 커피의 인기가 치솟고 중저가 커피전문점이 늘면서 시장 규모가 줄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커피 시장의 큰 기둥 중 하나입니다. 

저도 집에 캡슐 머신과 그라인더, 모카포트 등 다양한 커피 추출 도구를 갖고 있지만 인스턴트 커피도 애용하고 있습니다. 직접 원두를 갈아 내려 마시는 것보다 맛이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뜨거운 물에 가루를 넣고 휘저으면 커피 한 잔이 뚝딱 나오는 마법은 완전히 외면하기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이번 [생활의 발견]에서는 이 '인스턴트 커피'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빨리빨리

인스턴트 커피의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커피가 우리나라에 전해질 때쯤, 고종 황제가 '가배(咖啡)'를 들이켤 때쯤인 19세기 말이 시작입니다. 커피콩을 갈아 내려 마시는 게 귀찮았던 건 저뿐만이 아닌가 봅니다. 1881년엔 프랑스의 알퐁스 알레가, 1890년엔 뉴질랜드의 데이비드 스트랭이, 1901년엔 일본에서 사토리 카토가 각각 '물에 녹는 커피 가루'를 개발합니다. 

하지만 처음이 늘 그렇듯, 인기를 얻기엔 아직 역부족이었습니다. 가루가 덜 녹거나 맛이 없어서이기도 했고 대량 생산에 들어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죠. 이후 1910년 조지 워싱턴(미국 대통령 아닙니다)이 회사를 차려 미군에 납품하면서 인스턴트 커피가 세상에 알려집니다. 하지만 대중에게 인스턴트 커피가 알려지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네슬레가 선보인 초기 인스턴트 커피/사진제공=네스카페

인스턴트 커피가 전세계에 퍼진 건 글로벌 기업 '네슬레'의 역할이 컸습니다. 1920년대, 커피의 주 생산지 중 하나인 브라질이 커피 풍년으로 원두 시세가 폭락하는 일이 벌어졌는데요. 이에 브라질 정부가 커피 소비 증대를 위해 네슬레에게 '물에 잘 녹는 각설탕 형태의 커피'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합니다. 

네슬레는 1937년, 기존 인스턴트 커피보다 커피의 향과 맛을 잘 유지하면서도 물에 잘 녹는 커피 개발에 성공합니다. 이듬해 네슬레는 이 제품에 '네스카페(Nescafe)'라는 이름을 붙이고 상용화에 들어갑니다. 이 이름은 곧 인스턴트 커피의 대명사가 됩니다. 지금도 미국이나 유럽에서 '네스카페'는 인스턴트 커피를 가리킵니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네스카페가 영 먹히지 않는 나라가 있죠.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인스턴트 커피는 곧 '맥심'으로 통합니다. 국내 인스턴트 커피 시장에서 동서식품 맥심의 점유율은 90%에 육박합니다. 우리나라에 여행을 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기념품이 '맥심 모카골드'라고 할 정도로 해외에서도 인기가 많습니다. K-커피의 자랑이라고 할 만합니다. 

하지만 사실 맥심은 순수 국내 브랜드는 아닙니다. 원래 맥심은 미국 '맥스웰하우스'의 서브 브랜드였는데요. 국내에는 동서식품이 제너럴 푸드와 손잡고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대성공을 거두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커피 브랜드로 자리잡게 된 겁니다. 막상 '본토'인 미국에서는 입지가 애매해지면서 맥스웰하우스에 라인업이 흡수, 이제는 사라진 브랜드가 됐습니다. 미국인들이 맥심을 'K-커피'라고 불러도 이상할 게 없는 이유입니다.

처음엔 '싸구려 커피'의 대명사였던 인스턴트 커피지만 최근에는 다방면으로 고급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우선 프림이나 설탕 등을 넣지 않은 대신 원두 가루를 넣은 '원두 스틱 커피'가 있습니다. 스타벅스의 '비아', 동서식품의 '카누', 남양유업의 '루카' 등이 대표적입니다. 아메리카노를 사랑하는 한국인의 정서에도 딱 맞죠. 

네스카페의 인스턴트 원두커피 '수프리모 블랙'/사진제공=네스카페

인스턴트 커피임에도 고급 원두를 사용하거나 로스팅 기술을 개선한 프리미엄 제품군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원조' 네스카페의 경우 '수프리모' 브랜드를 통해 프리미엄 라인을 구축했고요. 동서식품 카누는 '콜롬비아 나리뇨 수프리모'·'에티오피아 아리차' 등 프리미엄 싱글 오리진 원두를 담은 제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스타벅스도 다양한 블렌드와 싱글 오리진 원두를 넣은 비아 시리즈로 드립커피 못지않은 인스턴트 커피를 선보이고 있죠.

물론 인스턴트 커피가 갓 갈아 내린 에스프레소나 드립커피만큼 맛있기는 어려울 겁니다. 커피콩을 갈 때 나는 부드럽고 달콤함 향기도, 모카포트에서 나는 감성적인 치익 소리도 없죠. 하지만 누구보다 빠르고 간편하게, 또 저렴하게 마실 수 있는 커피도 그만의 매력이 있을 겁니다. 커피에는 선호도가 있을 뿐 옳고 그름은 없으니까요. 사실 저도 지금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고 있답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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