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환자 치료하다 신기한 코골이 치료법 개발한 치과 의사
연대 치대 교수의 코골이 치료법 개발기
막 학력고사를 치른 고등학교 3학년 소년은 갑작스런 치통에 시달렸다. 가정형편이 녹록지 않아 진료비가 저렴한 동네 치과 문을 두드렸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클래식 음악과 가운 입은 치과의사의 인자한 얼굴. 문을 연 순간 펼쳐지는 풍경에 반해 진로를 결정했다. 치과의사 창업가 서종진(57) 원장의 얘기다.
어릴 적의 작은 풍경이 그의 삶을 바꿨던 것처럼 치의술로 사람들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었다. 20대엔 슈바이처 같은 의료 선교사를 꿈꾸며 종횡무진 오지를 누볐다. 3040대엔 합병증에 시달리는 당뇨 환자를 위해 헌신했다. 병원 이름을 CCL치과(Can Change Your life)로 지은 배경이다.
50대의 그는 ‘코골이’(수면무호흡) 분야의 명의가 됐다. 약물이나 수술 없이 턱의 균형을 맞춰 수면무호흡을 치료하는 국내 유일한 치료법도 개발했다. 서 원장을 만나 턱의 균형이 우리 몸에 일으키는 연쇄작용에 대해서 들었다.
◇해외 교민들도 찾는다는 치과의 정체
서종진 원장의 CCL 치과는 작년 12월 더밸런스 치과의원으로 새단장했다. 구 CCL 치과 시절부터 매달 평균 400명의 환자가 서 원장을 찾는다. 거제나 부산 등 국내 곳곳은 물론 캐나다, 뉴질랜드 등 해외 교민까지 단골로 두고 있다.
서 원장은 25년 전 처음 턱의 균형에 꽂혔다. 그는 우리 턱을 ‘자동차 운전대’에 빗댔다. 좌우로 틀어지기 쉬우면서 몸 전체의 방향성을 좌우하는 신체 부위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깊은 잠을 방해하는 원흉 수면무호흡의 원인도 턱의 불균형에서 찾았다.
그래서 신개념 ‘바른턱 편한숨 코골이 치료법’을 고안했다. 구강에 삽입하는 장치로 턱의 정렬을 맞춰 기도 공간을 확보하고, 호흡을 편하게 만들어 수면무호흡을 해결하는 시술이다. 약물이나 수술 대신 장치로 몸의 회복력을 키우는 발상이다. 약 3~5개월이면 완치가 가능하다.
◇아랍에미리트 간부의 출국을 늦춘 치과의사
서 원장은 연세대 치대 졸업 후 동대학 치주과에서 전임교수로 활동했다. 현재는 연세대 치과대학원 외래교수로 출강한다.
신기술을 개발하고 전파하는 데 관심 많은 창업가형 의료인이다. 대학병원 레지던트 시절 처음 임플란트를 접한 후 이를 현장에 도입하는 데 앞장섰다. 중국 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캐나다, 호주 등 선진국에서 임플란트 강의를 다녔다. 연구의 끈을 놓지 않아 SCI급 논문도 다수 게재했다. 미국에서 물방울레이저 마스터 자격증도 취득했다. 곧 대한안악면레이저치의학회 회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내공을 쌓은 덕에 국경 너머 이름을 알릴 기회가 많았다. “아랍에미리트의 고위 간부가 청와대를 방문했을 적의 일입니다. 그분이 치통을 호소해서 알음알음 저희 병원으로 연결됐죠. 다급하게 진료가 이뤄줬는데요. 증상이 빠르게 호전됐습니다. 그날 밤 자국으로 돌아가기로 한 분이 출국을 3일 늦추고 남은 치료를 다 받았어요. 이후 중동 국가 상류층 사이에서 소문이 났나 봅니다. 쿠웨이트, 두바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족이나 VIP 인사들이 저희 병원을 찾았어요.”
◇당뇨 환자의 완쾌를 막는 뜻밖의 방해물
항상 먼 곳 보다는 가까운 곳에 시선을 뒀다. 그의 마음을 흔든 건 중동의 왕족이 아니라 온갖 합병증에 시달리는 당뇨병 환자들의 고통이었다.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던 25년 전에 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합병증을 주제로 하는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당뇨병 환자들은 각종 합병증에 시달립니다. 잇몸이 약해져서 발치하는 분도 적지 않죠. 젊어서는 궁핍해서 못 먹던 분들이 먹고 살만해지니 이가 빠져서 못 먹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이때부터 당뇨 환자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 당뇨병 환자 특화 치과를 개원해 본격적으로 이들을 진료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수면 문제를 겪는다는 것을 포착했다. “당뇨 환자들은 호흡에 문제를 겪습니다. 호흡이 안 좋으면 수면의 질이 떨어져요. 결국 면역력이 떨어져 치료 속도가 더뎌집니다. 수면의 질이 안좋아서 면역력이 떨어지는 분들이 당뇨에 걸리기 쉬운데, 부족한 수면의 질 때문에 회복을 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죠. 근본 원인을 해결해서 악순환을 끊어내고 싶었어요.”
수면 문제의 원흉은 틀어진 구강 구조로 인한 ‘수면무호흡’이었다. “수면무호흡의 원인을 코골이라고들 하는데요. 사실은 입골이입니다. 우리가 아는 코 고는 소리는 입으로 숨 쉬어서 생긴 병입니다. 귀여운 코골이는 큰 병이 아니에요. ‘크어억’ 소리가 나는 입골이가 문제죠. 입으로 숨을 쉬면 코가 막히고, 편도가 커지고, 혀가 아래로 처지면서 기도가 막힙니다. 숨이 다니는 길이 좁아지면서 수면무호흡 상태가 되는데요. 통상 1시간에 5회 이상 수면무호흡이 발생하면 수면무호흡증으로 진단합니다. 자주 피곤하고, 낮에 졸리고, 아침에 입이 말라 있다면 수면무호흡증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수면무호흡은 만병의 근원이다. “기도가 막히면 자율신경계가 망가집니다. 수면 중 몸이 긴장 상태가 돼 면역력이 떨어지죠. 면역에 문제가 생기면 고혈압, 당뇨, 심장병, 암의 위험이 커집니다.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받아요. 편두통,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집중력이 떨어지죠. 어린이도 수면무호흡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어린이의 10%가 입골이를 하는데요. 이 경우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발생 우려가 있습니다. 성장에도 지장이 있고요. 잠이 보약이라는 말은 정말 맞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수면무호흡 치료법을 찾아봤다. 모두 ‘증상 완화’에만 초점 맞추고 있었다. “가장 많이 활용하는 수단이 외부 압력을 넣어 좁아진 기도를 확장하는 ‘양압기’입니다. 하지만 장치를 들고 다녀야 한다는 번거로움과 평생 사용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목젖이나 혀뿌리, 편도를 잘라내 기도 공간을 확보하는 수술의 경우 너무 많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회복 기간엔 얼음을 물고 자야 하죠.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떼어낸 살점이 다시 자라날 우려도 있습니다. 모두 근본적인 해결책과 거리가 멀다고 판단했습니다.”
◇약물과 수술 없는 치료법 개발
현상보다는 ‘원인’에 주목했다. “수면무호흡의 원인을 단계별로 세가지로 규정했습니다. 1단계는 ‘비염형’입니다. 가벼운 코골이로 금방 고칠 수 있습니다. 2단계는 좁은 기도형입니다. 입 후면의 기도가 좁아지면서 발생하는 경우죠. 3단계는 얼굴 긴장형입니다. 몸의 균형이 망가지면 턱도 긴장상태가 됩니다. 잘 때 입을 꽉 깨물고 자죠. 이를 갈기도 하고요. 이 과정이 지속되면 턱 주변의 모든 근육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턱이 틀어지고 기도도 좁아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턱이 틀어져 있는 걸 모르는데요. 찌그러진 나비는 예쁘지 않아요. 우리 얼굴도 그렇습니다.”
‘바른턱 편한숨 코골이 치료법’을 개발했다. 관건은 틀어진 턱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치아교정기처럼 구강에 삽입하는 장치입니다. 착용하고 자면 됩니다. 턱의 정렬을 맞추는 순간 좌우가 찌그러진 기다고 똑바로 되면서 숨 쉴 공간이 확보됩니다. 장치를 끼는 순간 4.4mm였던 기도가 9.1mm로 확장된 환자의 사례도 있습니다. 비슷한 수단으로 하악전진장치가 있는데요. 턱을 앞으로 빼는 자세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턱 관절이 망가질 우려가 있어요. 제가 개발한 장치는 다른 부위에 무리를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근육 이완에 도움을 주죠.”
몸이 스스로 낫게 하는 힘을 이용한다. “착용 즉시 기도가 넓어지지만 3~5개월 착용을 권합니다. 근육이 올바르게 자리 잡는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한 겁니다. 치료 기간 동안 병원을 3~4회 내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첫 내원 시 엑스레이를 촬영하고 수면 측정을 합니다. 이날 구강 구조를 본 뜬 후 이에 맞춰서 장치를 만듭니다. 두번째 회차 때 수면 분석 결과를 설명한 뒤 장치를 착용하게 합니다. 그 이후에는 엑스레이를 착용해서 차도를 체크합니다. 수술과 약물을 동반하지 않는 시술로 국내 유일한 치료법입니다. 다만 심한 부정교합 환자는 이 방법이 안 통할 수도 있습니다.”
◇의사인 제게도 불치병이 하나 있습니다
2018년 첫 도입 후 약 500여명의 환자가 이 시술을 받았다. 바다 건너온 환자도 있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오신 환자분이 기억에 납니다. 평생을 양압기에 시달리다 우연히 저를 발견하고 오셨어요. 수면 시 산소포화도가 90% 이상이어야 정상인데요, 시술 전 산소포화도 90% 미만인 시간이 24초였다가 0초로 줄었습니다. 자가다 뇌가 깨는 수면 분절(sleep fragmentation) 지표도 시간 당 17번에서 9.3으로 줄었습니다. 수면무호흡 치료에만 수천만원을 쏟았다는 환자분도 있었어요. 코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가족들이 더 좋아한다며 아이처럼 기뻐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당뇨병 환자를 위해 시작한 일인데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요즘 그의 화두는 아이들의 호흡 개선이다. “입으로 호흡하는 아이들이 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이 호흡 문제로 발달에 문제를 겪는 게 안타까웠어요. 성수동으로 확장이전한 이유도 아이들 때문입니다. 호흡법을 교육할 장소를 찾아다녔거든요. 호흡은 우리의 자율신경계를 조율하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턱 균형을 잡고 호흡만 잘 해도 많은 건강문제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의사지만 불치병 하나를 앓고 있다. 계속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만드는 병이다. “한시도 연구를 멈출 수 없어요. 병입니다. 과학자를 했어도 잘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마취도, 레이저도, 시술도 안 아프게 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아파서 왔는데 아프게 치료하는 건 저도 싫어요. 저를 찾는 모든 분들의 삶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좋겠습니다. 소소하게 보일지라도 제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해요.”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