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당담] 전쟁은 게임에서만

이병욱 게임시나리오 작가 2026. 3. 1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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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게임인양 하는 트럼프 대통령
참혹한 민간인 희생은 안중에도 없나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어릴 적 골목길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던 여자 아이들이 자주 부르던 노랫말이다. 지금 와서 기억나는 앞 소절을 검색해보니 가수 현인이 부른 <전우여 잘자라>라는 가요다. 남자 아이들은 동네 공터 흙바닥에 돌멩이로 줄을 긋고 '삼팔선'이란 게임을 자주 했다. 공격팀은 단 한 명이라도 목표 지점까지 도착하면 이기고, 수비팀은 모든 공격팀을 밀쳐내거나 잡아채서 막아내면 이기는 게임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나온 '오징어 게임'의 단순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게임을 하다가 팔다리 부러진 아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위험한 게임이었다. 앞서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며 부르던 노랫말도 요즘 생각하면 애들이 부를만한 노래라 여기지 않을 거다. 6.25 전쟁이 터진 20~30년 후,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그렇게 놀았고, 어른들은 뭐라 하지 않았다. 전쟁과 폭력의 여운은 아직 채 가시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전쟁은 게임의 단골 소재다. 동서고금 마찬가지다. 체스, 장기, 이건 콘텐츠 자체가 전쟁이다. 대놓고 전쟁 게임이다. 바둑도 콘텐츠가 매우 추상화됐지만, 시스템 자체가 전쟁을 모사했다.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전쟁을 모사하는 정도가 거의 실제와 다름없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특수부대 요원이 돼 적진 깊숙이 잠입해서 작전을 수행하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VR 고글을 쓰고, 바닥에 VR 트레드밀을 설치하면,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총을 쏘며 달려가고, 엄폐물 뒤에 숨으며 적과 총싸움을 하는 체험을 리얼하게 할 수 있다.

전투기 파일럿이 되고 싶으면, 실제 전투기 조작처럼 복잡하고 실제처럼 기동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1인칭이 아니라 지휘관이 되어 전투 상황을 경험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심지어 전쟁의 최고지휘관이 돼 적국을 공습하고, 지상군을 파견해 적지를 점령하고, 수백 발의 핵미사일도 날릴 수 있다. 막말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처럼 미국의 군통수권자 체험도 할 수 있다. 무려 2004년, 지금으로부터 20년도 훨씬 지난 옛날에 출시된 <SuperPower 2>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은 '지정학(geopolitics) 시뮬레이션 게임'인데, 전 세계 국가를 직접 운영하면서 정치·경제·군사·외교를 동시에 관리하는 현실 세계 시뮬레이션 전략 게임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 세계를 운영하는 거다. 경제 정책, 정치 체제, 외교 관계, 국내 정치, 군사력을 자기 마음대로 관리할 수 있는 게임이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하루아침에 통상 관세를 마음대로 올릴 수도 있다. 군사력을 키워 아무 나라나 침공할 수도 있다. 물론 게임에서도 그런 이상한 짓을 하게 되면 여러 조건들이 불리해질 수 있다. 외교 관계가 나빠지고, 국내 여론이 나빠져서 정권을 잃을 수도 있다. 시뮬레이션 장르의 게임은 실제 현실을 모방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2026년 기술은 놀랍게 발전하고 있다. 장기판에서 '장이요, 멍이요' 하며 전쟁을 체험하거나, 골목길 흙바닥에서 팔다리 부러져가며 '삼팔선'을 넘어갈 필요도 없다. 게임에서 테러리스트 수장을 제거하는 체험을 아주 리얼하게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 전 세계를 지배하는 '슈퍼파워'를 누릴 수 있다. 전쟁, 제발 현실에서는 말고 게임에서만 하자. 그것으로도 충분히 전쟁을 만끽할 수 있다.

/이병욱 게임시나리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