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터뷰!) 영화 '호프'의 나홍진 감독을 만나다

'호프'는 비무장지대의 마을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이 성기(조인성)를 포함한 동네 청년들로부터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순경 성애(정호연)와 믿기 힘든 현실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나홍진 감독은 '추격자'(2008), '황해'(2010), '곡성'(2016), '호프'까지 작품 하나를 만나기까지 10여 년의 주기가 걸린다. 하지만 작품마다 확실한 장르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만큼 해외에서 자주 한국의 대표 감독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는 “몇천 번은 본 영화를 더 이상 안 보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고 하다가도 집요하게 파고드는 기질을 숨길 수 없었나 보다. “개봉까지 남은 시간 동안 사운드, CG 등 보안 공정이 남았다”며 “(영화를) 다시 보면 수정만 하게 되니 만인을 위해 안 보는 게 낫다”며 웃어넘겼다.
개봉까지 일주일 남짓 앞둔 시점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집념을 실감하게 되었다.

지난 6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된 '호프'는 여러 의견으로 나뉘며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달리는 추적의 운동성이 서사를 내포하는 독특한 표현 방식이 돋보이는 영화기는 하나, 첨예한 대립을 낳을 정도로 상징과 은유가 가득한 '곡성'과 분위기가 다르다.
지구에 불시착한 네 외계인이 호포항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과정과 이를 좇는 인간의 사투가 중심이며, 156분 동안의 사투가 마무리되지 않고 끝나 속편의 기대감도 커진다.다음은 7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10년 만에 신작을 선보인 나홍진 감독과 영화에 관한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글이다.
입장 차이가 만든 비극
-'호프'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해 왔던 것 같다. 특정 사건이나 소재에 끌리지 않는다. 비슷한 소재를 어떻게 바라볼지가 관심사다. 나이가 들면서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게 되더라. '호프'는 ‘세상의 모든 비극’이라 말하고 싶다. 비극 안에서 어떤 희망을 건져낼 수 있을지가 콘셉트다. 인간적, 우주적 관점으로 공간을 이동해서 다르게 가보려는 시도였다. 그래서 (사건 발생의) 원인이 중요하지 않았다.
-곡성처럼 고립된 비무장지대 근처 호포항(가상공간)에서 벌어거나, 스마트폰이 없는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유가 있나.
가장 누추하고 작은 곳에서 비롯된 큰 희망이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다. 양가적인 콘셉트를 담아내기 좋았다. 과거 시점으로 두어야 재미있게 표현할 설정이 늘어난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있으면 더욱 복잡해진다.

-페이스, 모션 캡처 기술로 완성한 외계인 역할에 외국인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가 궁금하다.
대부분 캐스팅 비용이 큰 비중을 차지했을 거라 추측하나 크게 발생하지 않았다. 어느 배우를 모실까 고민했을 때 최적화된 분들이셨다.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다. 제가 쓴 ‘조르’의 풀 스토리를 보내주었는데 함께 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내왔다. 알리시아가 한다고 하니 마이클도 데리고 와 줬다. (웃음) 조르는 스토리의 중심인물이자 파워풀한 역할인데, 시원하게 캐스팅에 응해주었다.
-여러 해석이 난무했던 전작 '곡성;을 기대하는 팬의 입장에서 '호프'는 간결한 서사와 관점을 담았다.
관객이 몰입할 수 있도록 몇백 명의 제작진이 죽을힘을 다했으니 한 번 더 봐 달라. 더 많은 것들이 보일 것 같다. (웃음) '곡성'이 토속, 초자연, 신앙적인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이번에는 성경 속의 신의 관점에서 과감하게 도전했다. ‘호프’가 제목인 이유다. 믿음이란 단어를 호프라고 확신했고 아이의 부활을 믿은 간절한 희망의 이야기다. 목수(음문석)가 죽인 생명체는 무엇을 대입해도 되는 존재다.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의 유지

-전작들이 인간 심연을 탐구하는 데 천착했다면, '호프'는 시각, 청각적인 오락성 즉 대중성에 공들인 느낌이다.
'호프'를 준비할 때 미국을 다녀왔고 영화 산업의 큰 위기의식을 느꼈다. 극장 관람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오로지 극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몰입, 흥분되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체험을 우선순위로 두 자고 집중했다. 외계인 이야기에 살이 붙으면서 사이즈가 커졌다. 비용이 발생한 만큼 관객 수가 많이 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배우, 스태프는 극도로 노력해야 했고, 공부해야 했으며,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156분 동안 휘몰아치는 도파민 액션 추격에 서사를 입혔다. 미장센이나 촬영 구도도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모양새다.
영화는 사실 관객 보다 필름 메이커에게 유리하다. 불끈 공간에 가둬 두고 필름 메이커가 만든 소리와 비주얼만 보게 하는 쉬운 게임이다. 하지만 2시간 정도 동안 영화가 갖추어야 할 수많은 요소를 우수하게 담아내야 한다는 전제가 충족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도록 영화가 끝날 때까지 멈추면 안 되었고, 전략적인 각오로 임했다.
홍경표 촬영 감독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법을 찾아가며 독특한 샷을 완성해 나갔다. 카메라가 피사체를 쫓아가는 것 이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체험과 스릴에 올인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과 기술이 적용되었다. 스태프와 합도 잘 맞았다. 오래 알고 지내던 분들이다. 오랜만에 저와 작업한다는 의미도 있겠고, 그동안 습득한 능력을 발휘해 보겠다는 각오도 있었을 것 같다. 최고의 스태프가 절치부심으로 준비해 놓으니, 배우는 제작진의 노고를 느낄 수밖에 없다. 위험하고 고된 촬영이었지만 그 이상을 발휘해 주었다
-1020 세대를 겨냥한 비주얼과 액션 몰입감에 공들였는데 극장으로 끌어들이려던 의도였나.
'아이언 맨'을 너무 재미있게 봤지만 후속편이 십여 년에 걸쳐 나오자 인기를 끌지 못한 상황이 떠오른다. 영화라는 개념 자체가 달라진 세대가 형성된 지 10여 년이 흘렀다. 새로운 세대에게 액션의 재미와 가치를 말하고 싶은 목적도 분명히 있다. 여러 번 보며 확인하게 만들려는 저의 노림수다. (웃음)
-외계인의 대화만으로는 지금까지의 전개를 유추할 만한 상황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런 선택을 한 의도가 있나.
초반에는 관객이 범석의 시점으로 상황을 1시간 동안 같이 겪으며 의문을 쌓아간다. 이후 해부 장면과 할아버지의 증언으로 살짝 다른 감정을 겪는다. 상황을 의심과 믿음으로 생각할 찰나 아이의 죽음으로 원인이 해소된다. 그렇다면 이제 외계인의 시점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계속 인간의 관점으로 간다. 성기가 숲에서 겪는 일을 보여주면서 액션 영화인 척 관객을 속이게 된다. 최종적으로 아이의 죽음으로 인한 죄책감을 심어주려는 의도였다.
글: 장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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