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L은 죄 없다, 한강 위대하나 ‘숭배’ 말아야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2024. 10. 27. 09:01
[노정태의 뷰파인더] ‘재현=불경한 행위’ 사고방식은 ‘종교’와 다름없다
이에 필자는 19일 공개한 SNL의 해당 회차를 시청해 봤다. 문제의 장면은 1시간 12분 분량의 전체 영상 가운데 후반 54분 무렵 '위크엔드 업데이트(Weekend Update)' 코너의 일부다. 제목 그대로 한 주간 가장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킨 소식을 코미디 형식으로 가공해 전달하는 시사 풍자 코미디다.
이번 회차에서 이 코너의 분량은 약 10분. 사회자인 코미디언 안영미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면서 코너가 시작됐다.
"소설가 한강 씨가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면서, 책 주문이 폭주하고 서점 사이트가 마비될 정도로 한강 열풍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최우선 기자가 보도하겠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가짜 뉴스' 리포트는 우선 정치권의 반응을 살핀다. 코미디언 김민교는 누가 봐도 윤석열 대통령을 따라한 외모와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
"이 대한민국 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뤘는데, 이때 누가 대통령이었냐가 가장 중요하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서… 다 같이 한 잔 합시다."
윤 대통령이 술을 자주 마신다는 대중적 불만을 녹여낸 풍자다. 뒤이어 등장하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패러디 역시 마찬가지다. '한동안'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가짜 한 대표는 검은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앞으로 한국은 한동안 한 씨가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재면'이라는 이름의 가짜 이 대표는 한술 더 뜬다.
"이렇게 한강 작가님처럼 훌륭하신 소설가님이 소설을 쓰셔야 되는데, 왜 여당과 검찰이 소설을 쓰는지 저는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나는 죄 없고."
이러한 풍자가 의도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국가적 경사를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셈법에 맞게 견강부회(牽强附會‧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하고 있다는 것.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윤 대통령, 한 대표, 이 대표 모두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을 두고 위와 같이 노골적인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SNL은 그들이 정치인으로서 할법한 말을 덧씌워 '조롱'한 셈이다.
문제의 한강 인터뷰 패러디는 그 직후에 등장한다. 내용은 이 글을 시작하면서 인용한 대사가 전부다. 한강이 직접 한 말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하지 않았을 법한 말도 아니다. 김아영은 그저 한강이 했음직한 말을, 누가 봐도 한강이라고 알아볼 수 있을법한 자세‧표정‧발성으로 연기했을 따름이다.
아이는 부모가 걷는 모습을 보고 따라하며 걸음을 배운다.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말을 흉내 내며 언어를 배운다. 이 본능은 사람에게만 주어지지 않았다. 동물도 동물끼리 모방을 통해 학습한다. 개나 고양이처럼 지능이 높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동물은 사람을 따라하기도 한다. 모두 일반적 현상이다.
요컨대 우리는 '누가 누구를 따라했다'는 것을 패러디, 풍자, 비하 같은 차원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 모방은 인간, 아니 동물 전체가 지닌 본능이다. 학습을 위해서건 생존을 위해서건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예술의 기본 원리를 모방 혹은 재현으로 설명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인간의 흉내는 동물과 달리 단지 눈에 보이는 어미의 동작이나 울음소리 등을 따라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신화 속 인물과 신을 주제로 연극을 하며 고통의 눈물을 흘리고, 페리클레스 같은 정치인 혹은 소크라테스 같은 철학자를 따라하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예술적 모방은 인간을 동물과 다른 그 무언가로 만들어주는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모방이 없으면 예술도, 문명도 없다.
물론 모든 모방이 옳거나 장려돼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령 옛날 코미디 소재 가운데 하나였던 '흑인 흉내내기'를 보자. 불과 1990년대만 해도 얼굴과 몸에 검은 칠을 한 코미디언이 스스로를 '시커먼스'라 부르며 춤추는 모습이 TV에서 방송됐고, 많은 이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아무 문제의식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사람을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원초적 차원의 공격 행위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말싸움을 벌이는 두 명의 초등학생만 떠올려 봐도 알 수 있다. 한 꼬마가 다른 꼬마의 말투를 따라한다. 약이 오른 꼬마는 "따라하지 말라고"라며 항의하지만, 모방을 통해 조롱하는 이는 예컨대, "땨랴흐즈믜~" 같은 이상한 말투를 써가며 계속 따라한다. 한 명이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이 모방 행위는 계속된다. 조롱 목적으로 쓰이는 모방의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박물관에서 왕을 소재로 한 그림들을 살펴보자. 왕이 앉는 옥좌나 가마만 그려져 있고 왕의 모습은 그리지 않은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왜일까. 앞서 말한 '재현의 정치학' 때문이다. 감히 왕을 그린다는 것은 그를 평범한 인간과 같은 수준으로 취급하는 것이 된다는 논리다.
무언가를 재현함이 곧 불경한 행위라는 사고방식은 종교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근대 초기 종교개혁을 겪으며 가톨릭 교회의 성상을 파괴해버린 개신교나, 지금까지도 신의 모습을 절대 그리지 못하게 하는 이슬람교가 대표적이다. 그들에게 신은 감히 그려내겠다는 시도조차 허용되지 않는 절대적 성역인 셈이다.
우리는 세속화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절대적 신성불가침을 주장하는 종교는 정치에 개입할 수 없다. 정치인은 제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코미디, 캐리커처, 그 외 여러 방식으로 재현‧풍자될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상당한 영향력을 지닐 수밖에 없는 인물 역시 마찬가지다. 한강이라는 예술가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면, 그를 바라보는 다른 이들에게도 그 자유는 동등하게 보장돼야 한다. 그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모방‧재현을 통해 구현될 것이다.
필자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을 향해 쏟아진, 자칭 '보수 진영'의 품위 없는 비난‧매도에 단호히 반대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강이 재현조차 하면 안 될, '불가침 존재'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주장‧태도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한강은 대한민국, 아니 한반도 역사상 전무후무한 상징 자본을 지닌 독보적 인물이다. 그를 숭배하지 않고 재현할 때 우리 문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될 것이다.
● 한강 희화화 논란 일으킨 SNL
● 그저 ‘재현’, 이리도 문제될 일인가
● 희화화‧비난이라고? 억지 주장!
● 한강 ‘성역화’, 민주주의 정신 해쳐
"수상을 알리는 연락을 받고는, 음… 처음에는 놀랐고, 음… 전화를 끊고 나서는, 어… 천천히… 현실감과 감동이 느껴졌어요. 아주 밝은 것, 음… 밝고, 눈부시고, 거대한 파도와 같은 따뜻한 축하. 너무 감사드려요."
19일 공개된 쿠팡플레이 예능 'SNL 코리아(이하 SNL)'에서 패러디한 소설가 한강의 인터뷰다. 배우 김아영이 긴 머리에 스웨터 차림으로, 눈을 반쯤 감은 채 느리게 이야기하며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인터뷰하는 한강을 연기했다.
이 장면은 논란을 낳았다. 한강을 이런 식으로 희화화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불만이 일각에서 불거져 나왔다. 한강의 문학 세계나 성취와는 무관하게 그의 외모와 말투만을 따라하는 것은 넓은 의미의 '여성 비하'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등장했다.
과연 그럴까. 물론 이는 정답이 없는 문제다. 하지만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대체 사람은 왜 다른 사람의 모습을 따라하는지, 그런 모방과 풍자 행위를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더 나아가 사회 속에서 예술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곱씹어볼 기회이기 때문이다.
19일 공개된 쿠팡플레이 예능 'SNL 코리아(이하 SNL)'에서 패러디한 소설가 한강의 인터뷰다. 배우 김아영이 긴 머리에 스웨터 차림으로, 눈을 반쯤 감은 채 느리게 이야기하며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인터뷰하는 한강을 연기했다.
이 장면은 논란을 낳았다. 한강을 이런 식으로 희화화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불만이 일각에서 불거져 나왔다. 한강의 문학 세계나 성취와는 무관하게 그의 외모와 말투만을 따라하는 것은 넓은 의미의 '여성 비하'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등장했다.
과연 그럴까. 물론 이는 정답이 없는 문제다. 하지만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대체 사람은 왜 다른 사람의 모습을 따라하는지, 그런 모방과 풍자 행위를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더 나아가 사회 속에서 예술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곱씹어볼 기회이기 때문이다.
정치인 '조롱' 비하면 '재현' 수준
문화적 사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은 흔히 '맥락'을 강조한다. 정작 SNL의 한강 패러디 논란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 이를 보도하는 언론뿐 아니라 문제를 제기한 인터넷 사용자들 역시 약 30초 분량의 영상과 캡처 화면만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이에 필자는 19일 공개한 SNL의 해당 회차를 시청해 봤다. 문제의 장면은 1시간 12분 분량의 전체 영상 가운데 후반 54분 무렵 '위크엔드 업데이트(Weekend Update)' 코너의 일부다. 제목 그대로 한 주간 가장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킨 소식을 코미디 형식으로 가공해 전달하는 시사 풍자 코미디다.
이번 회차에서 이 코너의 분량은 약 10분. 사회자인 코미디언 안영미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면서 코너가 시작됐다.
"소설가 한강 씨가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면서, 책 주문이 폭주하고 서점 사이트가 마비될 정도로 한강 열풍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최우선 기자가 보도하겠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가짜 뉴스' 리포트는 우선 정치권의 반응을 살핀다. 코미디언 김민교는 누가 봐도 윤석열 대통령을 따라한 외모와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
"이 대한민국 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뤘는데, 이때 누가 대통령이었냐가 가장 중요하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서… 다 같이 한 잔 합시다."
윤 대통령이 술을 자주 마신다는 대중적 불만을 녹여낸 풍자다. 뒤이어 등장하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패러디 역시 마찬가지다. '한동안'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가짜 한 대표는 검은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앞으로 한국은 한동안 한 씨가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재면'이라는 이름의 가짜 이 대표는 한술 더 뜬다.
"이렇게 한강 작가님처럼 훌륭하신 소설가님이 소설을 쓰셔야 되는데, 왜 여당과 검찰이 소설을 쓰는지 저는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나는 죄 없고."
이러한 풍자가 의도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국가적 경사를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셈법에 맞게 견강부회(牽强附會‧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하고 있다는 것.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윤 대통령, 한 대표, 이 대표 모두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을 두고 위와 같이 노골적인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SNL은 그들이 정치인으로서 할법한 말을 덧씌워 '조롱'한 셈이다.
문제의 한강 인터뷰 패러디는 그 직후에 등장한다. 내용은 이 글을 시작하면서 인용한 대사가 전부다. 한강이 직접 한 말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하지 않았을 법한 말도 아니다. 김아영은 그저 한강이 했음직한 말을, 누가 봐도 한강이라고 알아볼 수 있을법한 자세‧표정‧발성으로 연기했을 따름이다.
SNL은 한강 '존중'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윤석열, 한동훈, 이재명, 한강 가운데 SNL이 가장 '존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한강이다. 앞서 등장한 세 사람을 다룰 때는 풍자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없는 대사를 지어내어 갖다 붙이고, 배우가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어색한 행동을 하게 했다. 반면 한강은 물론 '따라한' 것이긴 하지만 나름 '정중하게' 패러디했다.
믿기 어려운 이들은 문제의 '위크엔드 업데이트'를 처음부터 보아야 할 것이다. 김아영이 연기한 한강의 캐릭터엔 딱히 희화화‧조롱을 하겠다는 의도가 없었다. 그저 한강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등장한 수준이었다. 오히려 너무도 점잖았기에, 코미디로 승화시킬 기회를 낭비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문화적 이슈에 문제 제기를 하는 이들이 강조하는 '맥락'을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위크엔드 업데이트'의 나머지 전개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기자 연기를 하는 코미디언 최우선은 이와 같은 말을 시작으로 한강의 저서를 구입한 MZ세대의 독서 클럽을 취재한다.
노벨문학상을 탔다니까, 다들 좋다니까 책을 산 MZ세대는 당연히 독서엔 관심이 없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인증샷을 찍느라 정신이 없고, 책 이야기를 해도 영 엉뚱한 소리만 한다.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적어도 육식주의자는 아니겠구나" "저는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에 걸맞은 소설가라고 생각을 해요. 소설이 영어로 'Novel'이잖아요" "여성이신데 우먼 부커상이 아니라 맨 부커상을 받으셨다는 점에서… 위대하신 것 같아요" 등이다. MZ세대가 책 자체가 아니라 '책 읽는 나'를 뽐내려 든다는, 비판적 시각이 담긴 풍자라 할 수 있겠다.
이 외에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및 그 후계자로 언급되는 김주애 등을 흉내 내는 코미디언들이 등장해 안영미와 인터뷰를 나눈다. 그것이 '위크엔드 업데이트'의 나머지 5분을 채웠다.
이 코미디를 보며 웃지 않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고백하건대 필자 역시 딱히 '빵 터지는' 순간은 없었다). 하지만 이 패러디 시사 뉴스 속에서 한강이 희화화 및 비하 대상이 됐다는 주장은 영상을 아무리 되돌려 확인해 봐도 억지에 가까워 보인다. 총 10여 분에 걸친 코너 가운데 가짜 한강은 고작 30초 등장했고, 제작진은 나름대로 존중했다. 모든 출연자 가운데 유일하게 한강만이 바보처럼 묘사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믿기 어려운 이들은 문제의 '위크엔드 업데이트'를 처음부터 보아야 할 것이다. 김아영이 연기한 한강의 캐릭터엔 딱히 희화화‧조롱을 하겠다는 의도가 없었다. 그저 한강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등장한 수준이었다. 오히려 너무도 점잖았기에, 코미디로 승화시킬 기회를 낭비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문화적 이슈에 문제 제기를 하는 이들이 강조하는 '맥락'을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위크엔드 업데이트'의 나머지 전개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기자 연기를 하는 코미디언 최우선은 이와 같은 말을 시작으로 한강의 저서를 구입한 MZ세대의 독서 클럽을 취재한다.
노벨문학상을 탔다니까, 다들 좋다니까 책을 산 MZ세대는 당연히 독서엔 관심이 없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인증샷을 찍느라 정신이 없고, 책 이야기를 해도 영 엉뚱한 소리만 한다.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적어도 육식주의자는 아니겠구나" "저는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에 걸맞은 소설가라고 생각을 해요. 소설이 영어로 'Novel'이잖아요" "여성이신데 우먼 부커상이 아니라 맨 부커상을 받으셨다는 점에서… 위대하신 것 같아요" 등이다. MZ세대가 책 자체가 아니라 '책 읽는 나'를 뽐내려 든다는, 비판적 시각이 담긴 풍자라 할 수 있겠다.
이 외에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및 그 후계자로 언급되는 김주애 등을 흉내 내는 코미디언들이 등장해 안영미와 인터뷰를 나눈다. 그것이 '위크엔드 업데이트'의 나머지 5분을 채웠다.
이 코미디를 보며 웃지 않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고백하건대 필자 역시 딱히 '빵 터지는' 순간은 없었다). 하지만 이 패러디 시사 뉴스 속에서 한강이 희화화 및 비하 대상이 됐다는 주장은 영상을 아무리 되돌려 확인해 봐도 억지에 가까워 보인다. 총 10여 분에 걸친 코너 가운데 가짜 한강은 고작 30초 등장했고, 제작진은 나름대로 존중했다. 모든 출연자 가운데 유일하게 한강만이 바보처럼 묘사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모방 없인 예술도, 문명도 없다
물론 이런 반론이 가능하다. 악의가 없었더라도 어떤 사람을 콕 집어서, 특히 여성의 외모를 부각하는 것을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을까. 또 흉내 내고, 풍자하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행위는 '약자'가 아닌 '강자'에게만 해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이 질문에 곧장 답을 하기에 앞서 좀 더 근본적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대체 모방이란 무엇이며, 사람은 왜 다른 사람을 따라하는 걸까.
아이는 부모가 걷는 모습을 보고 따라하며 걸음을 배운다.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말을 흉내 내며 언어를 배운다. 이 본능은 사람에게만 주어지지 않았다. 동물도 동물끼리 모방을 통해 학습한다. 개나 고양이처럼 지능이 높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동물은 사람을 따라하기도 한다. 모두 일반적 현상이다.
요컨대 우리는 '누가 누구를 따라했다'는 것을 패러디, 풍자, 비하 같은 차원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 모방은 인간, 아니 동물 전체가 지닌 본능이다. 학습을 위해서건 생존을 위해서건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예술의 기본 원리를 모방 혹은 재현으로 설명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인간의 흉내는 동물과 달리 단지 눈에 보이는 어미의 동작이나 울음소리 등을 따라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신화 속 인물과 신을 주제로 연극을 하며 고통의 눈물을 흘리고, 페리클레스 같은 정치인 혹은 소크라테스 같은 철학자를 따라하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예술적 모방은 인간을 동물과 다른 그 무언가로 만들어주는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모방이 없으면 예술도, 문명도 없다.
물론 모든 모방이 옳거나 장려돼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령 옛날 코미디 소재 가운데 하나였던 '흑인 흉내내기'를 보자. 불과 1990년대만 해도 얼굴과 몸에 검은 칠을 한 코미디언이 스스로를 '시커먼스'라 부르며 춤추는 모습이 TV에서 방송됐고, 많은 이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아무 문제의식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사람을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원초적 차원의 공격 행위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말싸움을 벌이는 두 명의 초등학생만 떠올려 봐도 알 수 있다. 한 꼬마가 다른 꼬마의 말투를 따라한다. 약이 오른 꼬마는 "따라하지 말라고"라며 항의하지만, 모방을 통해 조롱하는 이는 예컨대, "땨랴흐즈믜~" 같은 이상한 말투를 써가며 계속 따라한다. 한 명이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이 모방 행위는 계속된다. 조롱 목적으로 쓰이는 모방의 사례라 할 수 있겠다.
한강 '숭배'되지 않을 때 우리는 더 나아간다
SNL을 보며 반발한 이들은 SNL이 이런 식의 조롱 행위를 했다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이 생각은 틀렸다. 문제의 영상 속에서 한강은, 딱히 패러디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점잖게, 그저 '재현'됐다. 여기서 다시 질문. 우리는 한강을 재현하지 말아야 하는가. 어떤 이들은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겠으나 그런 관점은 퍽 위험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무언가의 재현을 금지한다는 것은 그것을 숭배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과 충돌하는 일이다.
박물관에서 왕을 소재로 한 그림들을 살펴보자. 왕이 앉는 옥좌나 가마만 그려져 있고 왕의 모습은 그리지 않은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왜일까. 앞서 말한 '재현의 정치학' 때문이다. 감히 왕을 그린다는 것은 그를 평범한 인간과 같은 수준으로 취급하는 것이 된다는 논리다.
무언가를 재현함이 곧 불경한 행위라는 사고방식은 종교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근대 초기 종교개혁을 겪으며 가톨릭 교회의 성상을 파괴해버린 개신교나, 지금까지도 신의 모습을 절대 그리지 못하게 하는 이슬람교가 대표적이다. 그들에게 신은 감히 그려내겠다는 시도조차 허용되지 않는 절대적 성역인 셈이다.
우리는 세속화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절대적 신성불가침을 주장하는 종교는 정치에 개입할 수 없다. 정치인은 제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코미디, 캐리커처, 그 외 여러 방식으로 재현‧풍자될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상당한 영향력을 지닐 수밖에 없는 인물 역시 마찬가지다. 한강이라는 예술가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면, 그를 바라보는 다른 이들에게도 그 자유는 동등하게 보장돼야 한다. 그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모방‧재현을 통해 구현될 것이다.
필자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을 향해 쏟아진, 자칭 '보수 진영'의 품위 없는 비난‧매도에 단호히 반대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강이 재현조차 하면 안 될, '불가침 존재'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주장‧태도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한강은 대한민국, 아니 한반도 역사상 전무후무한 상징 자본을 지닌 독보적 인물이다. 그를 숭배하지 않고 재현할 때 우리 문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될 것이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칩 워' '인간의 본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外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칩 워' '인간의 본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jeongtaeroh@rie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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