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찾아서] 맞춤형 시술로 부작용 ‘뚝’… 탈모인 웃게 할 ‘모발 이식 대가’
24년 전 자신 모발을 몸에 심어 관찰
모낭 길이 따라 환자 맞춤형 수술
“후배 양성해 노하우 전수하고파”
‘머리카락을 두피가 아닌 손, 팔, 다리, 등에 옮겨 심으면 원래처럼 잘 자랄까.’ 황성주(55) 명지병원 모발이식센터장의 생체실험은 이처럼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우리 몸 어디든 이식한 머리카락이 원래 성질을 유지한다는 게 당시 학계의 정설이었지만, 황 교수의 실험 결과는 정반대였다.
황 교수가 자신의 몸에 심은 모발은 두피보다 자라는 속도가 절반 수준으로 느려졌고, 다리에 심은 모낭을 다시 두피에 심었더니 다시 원래 속도로 길게 자라났다. 이식한 부위, 즉 옮겨 심는 밭에 따라 모발의 성질이 바뀐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황 교수의 이러한 연구 결과는 학계를 놀라게 했다.
2000년부터 시작된 황 교수의 생체실험은 이식 부위의 피부 두께나 혈관, 신경분포 정도 등에 따라 모발의 길이와 형태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혔다. 이 연구 논문은 2002년 미국 피부외과학회지(Dermatologic Surgery)와 미국 모발이식교과서에 실렸다. 이후 2006년 세계모발이식학회(ISHRS)가 그해 최대 업적을 선정해 주는 백금모낭상을 받았다. ISHRS는 1993년 설립된 세계 최고 권위의 모발이식 학술단체다. 황 교수는 2017년에 한국인 최초로 ISHRS 회장을 역임했다.
지난 19일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만난 황 교수는 자신의 몸 곳곳에 자라고 있는 모발을 보여주며 “손바닥은 피부가 얇지만 혈액 순환이 원활하고, 등은 피부가 딱딱하지만 혈액 순환은 적어 모발이 자라는 추이를 비교해보려고 심었다”며 “24년째 품다 보니 이제 나와 한 몸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6년간 경북대병원 모발이식센터에서 근무했다. 이후 2004년 서울 강남구에 모발 클리닉을 개원해 20년간 운영했으며, 명지병원 모발이식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겨 이달부터 진료를 시작했다. 명지병원은 지난달 수도권 종합병원 최초로 모발이식과 두피 문신 중심의 모발센터를 열었다.
탈모는 비정상적으로 털이 많이 빠지거나 머리카락 굵기가 극도로 가늘어진 상태를 말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8년 22만 4840명이었던 탈모 환자 수는 2022년 24만 7915명으로 최근 5년 사이 약 14% 늘었다. 이 통계는 원형 탈모증을 비롯한 심각한 질환으로 보험 급여를 받은 사례들이어서, 경증 환자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황 교수는 최근 늘어나는 탈모 환자들을 위해 후배들에게 모발 이식 기술을 전수하는 게 종합병원으로 온 가장 큰 이유라고 했다. 다음은 황 교수와의 일문일답.
–개원의로 활동하다가 종합병원으로 온 까닭은.
“가장 큰 이유는 후학 양성이다. 나름 생체실험을 통해 모발 이식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다수 발견했고, 전 세계에 공유하며 커리어(경력)를 쌓았다. 그런데 은퇴하면 이 노하우는 써먹을 수 없지 않나. 그 전에 후배들에게 내가 가진 모든 기술을 전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두 번째 이유는 개인병원에 있어 보니 시술 전 검사가 상당히 어렵더라. 모발 이식 전에 심전도 검사를 비롯한 여러 검사가 필요한데, 종합병원에 있으면 바로 결과를 보고 안전하고 빠르게 수술을 진행할 수 있다. 또, 종합병원에서는 시술 도중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다른 과 연계 진료도 가능하다고 봤다. 시술하다 심근경색이 도진 환자가 있었는데, 이때 애를 많이 먹었다.”
–새로운 모발 이식 기술을 개발한 계기는.
“모발 이식의 가장 흔한 부작용은 모낭염이다. 내게 시술 받은 환자에게 조금 심한 모낭염이 생기면서, ‘이거 그냥 넘기면 안 되겠구나’ 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갑자기 모낭의 길이를 재보고 싶은 호기심이 도져, 모낭을 일일이 분리해 하나하나 길이를 재봤다. 그랬더니 사람마다 모낭 길이가 4㎜, 5㎜, 6㎜로 각각 다르고, 한 사람의 모낭 길이도 제각각이라는 것을 2011년에 알았다. 서양인은 대부분 비슷한데, 유전자가 달라서인지 동양인의 모낭은 가지각색이었다.”
–모낭 길이가 다르면 이식도 달라지나.
“모낭 길이가 짧다는 것은 모낭 깊이가 얕다는 의미인데, 이걸 무시한 채 모두 같은 길이로 심다 보니 탈이 난 거였다. 그때부터 깊이를 조절한 모발 이식 방법이라는 걸 세계 최초로 했다. 각 길이에 맞게 심었더니 부작용이 없는 건 물론이고 보기에도 훨씬 자연스럽고, 모발 생존율도 높아졌다. 이 방법으로 시술한 뒤로 13년간 모낭염 부작용이 생긴 환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낭 길이를 다 재면 번거롭겠다.
“모낭을 다 분리해서 길이를 각각 재는 사전 작업이 필수인 만큼 엄청 수고스럽다. 직원 4명이 서너 시간을 앉아 분리한다. 다른 병원이나 기관이 이 방법을 쓰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대한 작업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모낭 길이를 재고, 길이별로 분류하는 전용 자도 직접 만들었다.”
–또 다른 독보적인 기술이 있다면.
“과거 모발 이식은 마취가 필수였다. 그런데 20년 전 한 병원에서 모발 이식 시술을 위해 수면 마취를 한 환자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이후로 마취를 꺼렸다. 약 2년 전에 국내에서 자동 주사기가 개발됐는데, 이걸 가장 처음으로 사용하는 ‘퍼스트 유저(first user)’가 됐다. 국소 마취제인데, 속도와 압력 조절이 가능해 환자들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대화하며 시술이 가능하고, 통증도 크게 줄여 따끔따끔한 정도이다. 주사기를 개발한 교수님과 함께 논문을 작성해, 곧 학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최근 탈모 환자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현재 국내 탈모 인구는 비공식적으로는 1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전체 탈모 환자의 85~90%는 유전성(안드로겐성) 탈모증이다. 이는 남성형과 여성형으로 구분되는데, 주요 원인은 가족력, 노화, 남성호르몬 3가지다. 과거 탈모 환자는 중장년 남성이 대표적이었지만, 최근에는 나이와 성별 상관없이 많아지고 있다. 기름진 음식과 인스턴트 식품 등의 서양식 식습관이 일반화되면서 증가하는 추세다.”
–모발 이식 시술은 어떤 환자들에게 적합한가.
“탈모 환자들의 치료법으로는 약물 치료, 모발 이식, 두피 문신(두피 미세 색소 침착술) 등 3가지가 있다. 기본적으로 뒤통수와 옆머리 아래는 나이가 들거나 대머리가 돼도 모발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머리가 충분하다면 대체로 모발 이식이 가능하다. 만약 탈모 진행이 심하지 않는 경우에 이식 시술을 하면 만족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 두피 문신을 권한다. 여성의 경우에는 M자 탈모가 대부분인데, 올림 머리가 하고 싶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 케이스는 빈 공간이 작아 비교적 간단히 진행할 수 있다.”
–모발 이식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나.
“환자가 모발 이식하고 싶다고 해서 모두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보통 10명의 환자가 오면 4명은 돌려보낸다. 피부가 너무 딱딱하거나, 미끄럽거나, 지병이 있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심장판막 수술을 받은 환자가 와파린이라는 혈액 항응고제를 먹고 있었는데, 이 약은 복용을 멈출 수가 없어서 이식 수술 내내 지혈에 어려움이 있었다. 담배를 못 끊겠다고 하는 사람도 돌려보낸다. 모발 이식 시술을 받은 뒤 흡연은 가장 부작용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흡연은 혈관을 수축시켜 모발 생착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모발 이식의 가장 큰 적은 담배다.”
–특정 환자에게 모발 이식을 권한다고 들었다.
“명지병원에서 꼭 하고 싶은 것 중 하나인데, 암 또는 골수이식 환자들의 모발 이식이다. 이들의 경우 항암 치료로 탈모가 오면 모자나 가발을 쓰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환자들은 남아 있는 모발이 없어 다른 사람의 모발을 이식해야 한다. 한 여성이 골수이식을 받은 여동생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주고 싶다고 했다. 언니의 머리카락을 환자에게 심었더니 잘 자랐다. 타인의 모발을 이식한 국내 최초 사례였다. 동생의 모발을 언니에게 심었을 때는 모발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죽더라. 두 번째로 골수이식 수술을 받은 딸에게 엄마의 모발을 심고 현재 관찰 중이다. 조만간 추이를 보고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탈모는 어떻게 예방해야 하나.
“보통 탈모는 유전적 영향이 크다고 한다. 그런데 예외인 경우도 있다. 사실 우리 집안은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큰아버지, 아버지, 사촌들이 전부 다 대머리인데, 나만 이렇게 용케 살아남았다. 왜 그럴까 곰곰히 들여다보니, 식습관이 달랐다. 그들보다 내가 평소 고기를 덜 먹고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더라. 과일을 유독 좋아해서 몸속 비타민C가 탈모를 예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머리카락이 빠질까 걱정돼 머리를 잘 안 감는 경우가 많은데, 지성 피부일수록 머리를 자주 감는 게 중요하다. 매일 빠지는 머리카락은 정해져 있다. 머리를 자주 감는다고 해서 머리카락이 더 많이 빠지지는 않는다. 지성, 건성 등 자신의 피부 유형에 맞는 샴푸를 쓰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하루 두 번 감는다.”
참고 자료
Dermatologic Surgery(2002), DOI: https://doi.org/10.1046/j.1524-4725.2002.02041.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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