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자동차 범퍼 수리 및 교환비용 1조 4천억
수리 비중은 3~4% 수준… 긁히기만 해도 범퍼 교체
교체 비중 낮추면 873억 절감, 법적 기준 필요해
자동차 사고가 나면, 손톱만 한 스크래치에도 습관처럼 범퍼를 통째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일명 ‘실기스 교체’는 옛날부터 지속되어 온 것으로, “교체가 가능한데 굳이 수리해야 하나?” 생각이 굳어져 일종의 관행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익숙한 선택이 작년에만 1조 3,578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수리비를 만들어냈다. 이는 전체 자동차 보험 수리비 중 17.3%나 차지하는 수준이다. 거기에 결국 이런 식으로 사용된 비용은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우리의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돈이 된다.
1조 3,578억이 사라진 이유, 범퍼 교체의 진실
11일, 보험연구원에서는 ‘자동차보험 차량수리 관련 제도개선 방안’ 연구보고서를 발간하였다. 보고서는 자동차 보험을 통한 수리비 상승이 자동차 보험료 인상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였다.

특히 2017년 정부가 ‘경미손상 수리 기준’을 도입했음에도 여전히 교체 위주의 보험 처리가 지속되는 현실을 문제로 꼽았다. 긁힘이나 미세 변형처럼 수리만으로 충분히 복원이 가능한 손상임에도 교환이 선호된다는 것이다.
실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범퍼 관련 수리·교환 규모 1조 3,578억 원 중 수리 비중은 고작 3~4%에 불과했다. 영국이나 독일 등 해외의 주요국은 경미 손상 기준을 법령으로 명확하게 규정해 수리를 우선하도록 유도한다. 국내에서는 이 기준이 권고 수준에 머물러, 결국 정비사와 차주의 자율 판단에 맡겨져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법령으로 ‘수리 및 교체 선택의 기준’이 명시되어 있는 해외 사례와는 확연히 대비된다.

보고서는 경미 손상 기준을 강화해 범퍼 교환 건수를 30%만 줄여도 전체 수리비가 6.4% 감소할 수 있으며, 대차료 등 간접 비용까지 고려하면 보험료 인하 효과는 더욱 커진다고 분석했다. 연간 20조 원 규모의 자동차보험료가 약 0.4% 내려갈 수 있는 수준이다. 0.4%만 인하되어도 873억 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이 된다.
근거 없는 공임 산정 또한 보험료 인상 원인
보고서는 시간당 공임 산정 방식 역시 구조적으로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의 정비 공임은 정비업계와 보험업계 간 연간 협의를 통해 결정된다. 양측이 인상률을 정하면 이후 보험사와 정비업체가 개별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인데, 이러한 협의가 인플레이션이나 정비 인력 인건비, 자본비용, 보험료 영향 등 경제적 변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꾸준했다.

또한 공임 조정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깜깜이 협상’이라는 비판도 이어져 왔다. 미국의 매사추세츠주는 수리 원가 자료와 함께 인플레이션, 자동차 보험료 영향 등을 검토한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자동차 수리공임에 대한 실태 조사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공임 기준을 마련한다. 일본의 경우에도 보험회사가 객관적인 근거 자료를 작성 및 제시하고 시간당 공임을 협의하도록 제도화 되어있다.

보험연구원은 자동차보험료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선 근거 기반의 공임 협의 체계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경미손상 수리기준을 법제화하면 불필요한 범퍼 교환을 줄이고 수리 기간 단축, 부품비 절감으로 이어져 전체 수리비와 대차료가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결국 정비업계와 보험업계의 상생, 그리고 보험계약자에게 공정한 보험료 부담을 가능하게 만들어 사회적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봤다.
'실기스 교체’의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
사실 작은 사고에도 범퍼를 통째로 갈아버리는 관행은 오랫동안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져 왔다. 사고 난 김에 기존 스크래치까지 엮어서 교체하는 사례가 흔했고, 이를 문제로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지 않았다. 너무나 익숙한 행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실기스 교체’가 쌓이면 결국 그 비용은 보험 수리비로 집계되고, 다시 보험료 인상이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구조다.
이러한 관행이 전체에게 부담을 지우는 구조를 만들어낸 만큼, 이제는 기준을 명확하게 손보고 공임 체계도 합리적으로 다듬어야 한다. 불필요한 교환을 줄이고, 진짜 필요한 곳에만 비용이 쓰이게 하여야 우리의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자동차 보험료도 그나마 줄어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