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데믹 시기 급부상했던 메타버스가 몇 년 만에 전략 후순위로 밀려났다. 국내 게임사들이 관련 프로젝트를 연달아 정리하는 가운데 글로벌 빅테크도 메타버스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유행의 소멸이라기보다 모바일과 인공지능(AI)으로 산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과정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타버스 열기 꺼졌다
20일 정보통신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기업들은 메타버스 사업을 잇따라 철수하고 있다. 과거 국내 기업들은 모바일·PC 기반 가상공간 플랫폼을 주로 선보였다. 넥슨은 메타버스 플랫폼 ‘넥슨타운’ 서비스를 종료했고 넷마블은 메타버스 관련 자회사를 정리하며 조직을 재편했다. 컴투스 역시 ‘컴투버스’ 등 메타버스 프로젝트를 축소했고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 숲(SOOP)도 메타버스 플랫폼 ‘프리블록스’를 접고 본업 중심 전략으로 돌아섰다.
이처럼 사업을 철수하는 배경에는 기대와 달리 이용자 기반을 빠르게 확대하지 못했고 직접적인 수익 모델로 연결되지 못했다는 점이 작용했다. 별도 플랫폼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실질적인 매출 기여도는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팬데믹 특수로 늘어났던 비대면 수요가 줄어들자 트래픽과 체류 시간도 빠르게 둔화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시기 메타버스가 각광받으면서 관련 사업에 뛰어든 게임사들이 많았지만 일상이 정상화되면서 빠르게 한물간 트렌드가 됐다”며 “신사업으로 보고 별도 프로젝트로 운영하던 곳들도 많았지만 성과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운영 비용과 인력 부담이 계속 쌓이다 보니 정리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리 움직임은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메타버스에서 미래를 보고 사명까지 바꾼 메타 플랫폼스는 2020년 이후 VR·메타버스 사업을 담당하는 리얼리티랩스 부문에 600억 달러 이상을 투입했고 누적 적자 역시 400억 달러를 넘어섰다. VR 기반 플랫폼 ‘호라이즌 월드’를 핵심 콘텐츠로 밀어붙였지만 이용자 확대와 수익성 확보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메타는 VR 중심 전략의 속도를 조절하고 모바일과 AI 분야로 무게를 옮기겠다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VR 소셜 플랫폼 ‘알트스페이스VR’을 종료했다.

실패 아닌 재편
그렇다면 메타버스는 실패한 것일까. 업계에서는 다른 해석도 나온다. 가상공간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VR 중심의 몰입형 메타버스’라는 서사가 힘을 잃었을 뿐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로블록스와 포트나이트 같은 플랫폼은 여전히 대규모 이용자를 확보하며 성장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VR 헤드셋이 아니라 이미 수십억 명이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PC 위에서 가상공간을 구현했다는 점이다. 별도 기기를 착용해야 하는 고비용 진입 구조 대신 접근성이 높은 플랫폼 위에서 생태계를 확장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기술 완성도가 아니라 ‘접속성’과 ‘수익 구조’였다. VR은 높은 몰입도를 제공하지만 대중 확산 속도는 느렸고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반면 모바일은 이미 이용자 결제 광고 인프라가 갖춰진 플랫폼이다. 새로운 판을 구축하기보다 기존 생태계 위에서 확장하는 방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접근성이 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생성형 AI의 부상도 투자 우선순위를 바꾸는 변수로 작용했다. AI가 비용 절감과 생산성 개선이라는 즉각적인 성과를 증명하면서 장기적 실험에 가까웠던 메타버스에 쏠렸던 기업들의 시선이 분산됐다. 결과적으로 메타버스 투자 속도 조절은 AI로의 자원 재배분과 맞물려 진행됐다.
가상공간에 대한 수요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업계는 이를 실패보다 재편으로 읽는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의 2024년 ‘하이프 사이클(Hype Cycle)’ 보고서에 따르면 메타버스를 기술 기대치가 급락하는 ‘환멸의 골짜기(Trough of Disillusionment)’ 단계로 분류했다. 가트너는 메타버스가 장기적으로 발전 가능성은 있으나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메타버스는 과잉 기대 국면을 지나 현실 조정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며 “VR 기반 몰입형 플랫폼은 상용화까지 시간이 필요하지만 모바일 기반 가상공간과 AI 기술은 이미 수익 모델이 검증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이담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