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책, 중국 경기 띄울까…시진핑 드디어 각성?[딥다이브]
“중국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바꿔놨다.”
24일 중국 인민은행이 발표한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두고 이런 평가가 나옵니다. 부양책 규모나 발표 형식 모두 예상보다 강력하고, 획기적이며, 이례적이었기 때문인데요. 실제 중국 증시가 사흘 만에 10% 반등할 정도로 파급효과가 상당하죠.
그럼 수렁에 빠졌던 중국 경제는 다시 되살아날 희망이 보이는 걸까요. 중국 경제를 부양하는 방법에 대해 들여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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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은행이 돈 푼다
일단 24일 판궁성 인민은행 총재가 무슨 보따리를 내놨는지부터 살펴볼까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세가지는 이겁니다.
1)정책금리(7일물 역환매조건부채권 금리)를 0.2%포인트 내렸습니다. → 대출·예금금리도 줄줄이 인하될 겁니다.
2)지급준비율도 조만간 0.5% 포인트 내립니다. → 지급준비율은 상업은행이 예금 중 일정 비율을 인민은행에 맡겨놓는 걸 뜻하죠. 이게 낮아지면 그만큼 은행이 대출로 시중에 풀 수 있는 돈의 양이 늘어납니다. 지준율은 연내 더 내릴 수도 있습니다.
3)기존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0.5%포인트 인하됩니다.
정책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금리 내리고 돈 왕창 풀 테니, 제발 돈 좀 쓰라는 뜻이죠. 중국은 생산자물가가 23개월 연속 하락했을 정도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징후가 뚜렷한데요. 어떻게든 돈 쓸 만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물가와 경기를 다시 끌어올리려는 겁니다. 올해 경제성장률 5% 목표치는 사수하려는 거죠. 이번 발표를 두고 “중국 최고 지도자들 사이에서 디플레이션과 싸우려는 긴박감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맥쿼리캐피털 래리 후 이코노미스트)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기존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하’입니다. 중국 가계의 소비를 가로막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주택담보대출 부담이었기 때문이죠.
2021년까지 중국에선 부동산 열풍이 대단했죠. 그 결과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지난해말 기준 38조1700억 위안(약 7200조원)이나 쌓였죠. 그런데 이 잔액이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올해 2분기에만 4000억 위안(76조원)이나 줄었다는데요.
왜 미리 갚느냐. 기존 대출금리가 너무 높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미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이자율이 평균 4.27%(지난해 말 기준)인데요. 그동안 시장금리가 내려서 요즘 신규 주택담보대출 이자율은 평균 3.4%, 일부 도시는 2%대까지 내려왔죠. 저금리 시대에 높은 이자를 계속 내려니 너무 부담인 겁니다. 집값이 상승해서 투자 수익률이 높기라도 하면 그나마 버틸 텐데, 그 반대라서요(신규주택 가격이 9년 만에 최대 폭락).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부담스러운 빚부터 갚는 긴축에 나선 거죠.
그래서 이번에 인민은행이 ‘기존 대출도 금리 내려줄게. 그럼 빚이 있어도 좀 살만 해질 거야. 그러니까 조기 상환 그만하고 허리띠 좀 풀어’라는 신호를 준 건데요. 이거 효과가 있을까요?
일단 인민은행은 5000만 가구, 약 1억5000만명이 연간 1500억 위안(28.5조원)의 대출이자를 절감하게 될 거라며 생색내는데요. 그런데 계산해보면 1가구가 연간 평균 3000위안(57만원)을 절약한다는 뜻이어서요. 대출자들이 반가워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달라질 건 없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결국 중국 소비를 되살리려면 더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죠. 지금 시장에선 중국이 이렇게 급박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조만간 더 큰 게 나올 거란 기대감이 팽배합니다. 요 며칠 주가가 뛴 이유도 사실 이런 분위기 변화 때문이죠. 모두가 기대하는 강력한 한방은 뭘까요. 바로 직접적으로 정부가 곳간을 열어 돈을 푸는 재정정책입니다.
소비를 깨워라. 어떻게?
경제성장 초기엔 이런 모델이 필요하겠지만, 지속가능하진 않죠. 거대한 수출 붐을 다른 나라가 계속 받아줄 순 없으니까요. 게다가 미국과의 패권 경쟁까지 겹치면서 중국 수출엔 먹구름이 꼈고요. 팽창만 해왔던 부동산 시장도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남은 방법은 방대한 인구를 가진 내수 시장을 깨우는 겁니다. FT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이를 두고 “지금이 중국 현대 경제사의 결정적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저소비, 고투자’ 경제 모델에서 벗어날 타이밍이란 뜻이죠.
이와 관련한 논의는 사실 수년 째 이어지고 있고요. 수많은 보고서와 전문가 칼럼이 그 해법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하면 이런 겁니다.
①건강·사회보험 같은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을 더 튼튼히 해야 합니다.
중국은 저축률이 높기로 유명하죠. GDP 대비 저축률이 46.6%로 일본의 두배(22.8%)이고 한국(33.2%)보다도 한참 높은데요. 저축 많이 하면 좋은 거 아니냐고요? 투자할 곳이 아주 많던 시절엔 그 많은 저축을 소화할 수 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높은 저축률이 소비를 가로막기 때문이죠.
그래서 나오는 해법이 정부가 경제 수준에 맞게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겁니다. 예컨대 중국이 GDP 중 건강에 쓰는 지출은 5.4%뿐. 한국이나 일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죠. 중국 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의 쉬 치위안 부소장 역시 정부가 교육·의료·사회 보장에 필요한 재정 지출을 “상당히 늘려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그냥 찔끔 늘리는 수준이 아니라 ‘이제 사는 게 좀 편안해지겠구나’라고 소비자가 마음 놓을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하죠.
②소득재분배를 위해 세금과 호구제도를 개혁해야 합니다.
소비를 효과적으로 늘리기 위한 또다른 방법은 가난한 이들 소득을 늘려주는 겁니다. 부자에겐 100만원을 줘도 지출이 크게 늘지 않겠지만, 가난한 가계에 100만원을 주면 다 소비로 쓰게 될 테니까요. 소득 재분배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려면 사회적 약자를 위한 현금·현물성 복지를 늘려야 하고요. 동시에 세금개혁도 필요합니다. 중국은 전체 세수에서 부가가치세 비중(38%)은 너무 높고, 개인 소득세(8%)는 상당히 낮죠. 상속세와 재산세는 아예 없고요.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거둔다면 이를 소득 재분배를 위한 재원으로 쓸 수 있을 겁니다.
또 중국 특유의 호구제도를 개혁해야 하죠. 농촌 출신이냐 도시 출신이냐로 나눠서, 다르게 대우하는 제도인데요. 이런 차별을 없애는 것 역시 소득재분배를 위한 길입니다.
‘복지주의 함정’이란 함정
해석은 다양합니다. 국가 주도 투자에 중독된 경제 체질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 미국과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기술 투자를 강조하게 된다, 성장보다 안보를 우선시해서다, 아직은 중국 경제가 시스템적 위험에 처하진 않아 버틸만 하다 등등. 그 중에서도 제가 주목하는 건 시진핑 주석의 ‘복지주의’ 반대입니다.
“게으른 자를 먹여 살리는 복지주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2021년 시 주석이 이 얘기를 했을 땐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요. 그의 사상을 연구·해석하는 중국 학자들의 해설을 종합해보자면 이런 겁니다. ‘포퓰리즘 정책으로 재정이 파탄났던 일부 남미 국가 사례 보지 않았냐.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아예 처음부터 국민들이 복지를 기대할 수 없어야 한다. 괜히 경제 성장했다고 사회보장을 늘리기 시작하면 점점 국민은 게을러지고 요구사항만 커지고 나중엔 국가가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달리 말하자면 인민의 ‘정신력’이 해이해지는 걸 막기 위해 일부러 낮은 복지 수준에 머무르겠다는 고집입니다. 고생 좀 해봐야 강해진다는 이런 발상, 어딘가 익숙하지 않나요? 월스트리트저널은 ‘시진핑이 문화혁명 기간 토굴에서 살고 도랑을 파면서 겪었던 어려움이 그의 견해를 형성했다’는 설명을 전합니다.
중국 정부가 참 급하긴 급하구나 싶으면서도, 드디어 방향을 트는 건가 기대하게 되는데요. HSBC 징 리우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정책 출시의 빈도와 규모가 우리 기대를 넘어섰습니다.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보다 적극적인 이니셔티브에 대비하세요.” By.딥다이브
한동안 우울한 소식만 가득했던 중국 경제에 드디어 햇살이 비추려나요. 지난 2년 동안 화끈한 부양책을 기대했다가 실망하기를 반복해온 터라, 조금 조심스럽기도 하네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중국 인민은행이 대대적인 돈풀기 정책을 내놨습니다. 소비여력을 갉아먹던 주택담보대출 상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금리를 인하해주기로 한 거죠. 디플레이션 위험에서 탈출하기 위한 과감한 움직임입니다.
-하지만 소비를 깨우려면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투자와 수출 위주였던 경제성장 모델 자체가 바뀌어야 하죠.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예방적 저축률’을 낮추고, 저소득층 지원을 더 늘려야 합니다.
-중국 지도부는 그동안 방향전환을 주저했죠. 성장보다는 안보와 패권경쟁을 우선시했을 뿐 아니라, 시진핑 주석의 ‘복지주의 반대론’도 작용했는데요. 이제 방향을 틀어 나아가기 시작할 거란 기대감이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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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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