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가을, ‘LG 콤플렉스’ 날려버린 결정적 그날

[이재국의 베팬알백] ⑤2000년 두산-LG플레이오프 이야기

두산 베어스 선수단이 2000년 플레이오프에서 잠실 라이벌 LG를 극적으로 이기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뒤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베어스가 LG를 가을야구에서 이긴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두산베어스
『두산은 28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2000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6차전에서 9회초 안경현의 동점홈런, 11회초 심정수의 역전 홈런에 힘입어 서울 라이벌 LG를 5-4로 힘겹게 따돌렸다. 이로써 치열했던 플레이오프를 4승2패로 마감한 두산은 95년 우승 이후 5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올라 30일 오후 6시 수원구장에서 현대와 7전4선승제의 한국시리즈 1차전을 갖는다.』 <연합뉴스 2000년 10월 28일자>

두산 베어스 팬들에게 2000년 가을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적의 계절이다. 플레이오프 최종 6차전의 거짓말 같은 역전 드라마는 지금도 팬들에게 회자될 만큼 진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베팬알백-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시즌2-두산 베어스 시대’ 5번째 주제는 2000년 플레이오프 6차전 이야기다. 포스트시즌에서 잠실 라이벌 LG를 처음으로 꺾은 날이었고, 베어스가 ‘LG 콤플렉스’를 벗어던진 결정적 터닝포인트이기도 했다.

두산 치어리더와 팬들이 불꽃을 흔들며 응원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 기괴한 양대리그…뒤엉킨 포스트시즌 제도

“김용수 선배가 그때 계속 던졌더라면 아마 그 홈런이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안경현(현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협회장)은 23년 전 그날 그 홈런의 순간이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오르는 듯했다. 2000년 플레이오프 6차전 9회초 상황을 묻자 대뜸 LG의 전설적 소방수 김용수 얘기부터 시작하며 웃는다.

이 결정적 순간을 끄집어내기에 앞서, 우선 2000년 플레이오프에서 ‘한 지붕 두 가족’ 두산과 LG가 플레이오프에서 맞닥뜨린 상황부터 설명하자고 한다.

당시 KBO 제도를 먼저 알아둘 필요가 있어서다. KBO리그는 1999년과 2000년 양대리그 제도를 도입하는 새로운 실험을 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처럼 자연스럽게 양대리그가 만들어진 게 아니라, 당시 8개 구단을 인위적으로 나눠 드림리그와 매직리그에 배치하다 보니 무리가 뒤따랐다

각 리그 소속팀조차 고정되지 않고 해마다 바뀌는 반쪽짜리 양대리그. 1999년엔 드림리그가 롯데 자이언츠, 두산 베어스, 현대 유니콘스, 해태 타이거즈로 구성되고, 매직리그는 한화 이글스,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 쌍방울 레이더스로 짜였다. 그런데 2000년에는 롯데가 매직리그로 가고, 삼성이 드림리그에 소속됐다. 여기에 쌍방울이 해체된 뒤 신생팀으로 새 식구가 된 SK 와이번스가 매직리그에 포함됐다.

1999년에는 소속 리그 팀간 20차전, 인터리그(다른 리그) 팀간 18차전을 치렀지만 2000년에는 리그 구분 없이 19차전씩 소화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무늬만 양대리그였던 셈이다. 그러자 “이럴 거면 왜 양대리그를 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포스트시즌은 양대리그의 1~2위팀이 올라가 크로스(매직리그 1위 vs 드림리그 2위, 드림리그 1위 vs 매직리그 2위)로 7전4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것이 기본 틀. 여기서 승자끼리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특정 리그에 강팀들이 몰릴 가능성이었다. 실제로 2000년에 드림리그 1~3위 팀이 전체 승률에서도 1~3위를 차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다시 말해 드림리그 3위 삼성(69승5무59패)이 매직리그 1위 LG(67승3무63패)와 2위 롯데(65승4무64패)보다 성적이 좋았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특정 리그 3위 팀이 다른 리그 2위보다 승률에서 앞설 경우 준플레이오프(3전2선승제)를 치르기로 대회요강을 미리 만들어 놨지만, 기형적인 제도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렇게 2000년에는 삼성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가 성사됐다. 여기서 삼성이 2승1패로 이기면서 드림리그 1위 현대(91승2무40패)와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격돌하게 됐다.

드림리그 2위 두산(76승0무57패)은 매직리그 1위 LG와 곧바로 플레이오프에서 만났다. 두산이 정규시즌 성적에서 LG에 앞섰지만, LG는 리그 1위라는 타이틀 속에 1~2차전과 6~7차전을 홈경기로 가져가고 두산은 3~5차전을 홈경기로 배정받았다.

두산 베어스 김인식 감독(왼쪽)과 LG 트윈스 이광은 감독 ⓒ두산베어스

◆ ‘한 지붕 두 가족’, 사상 3번째 가을야구 격돌

두산과 LG가 포스트시즌에서 격돌하는, 이른바 ‘덕아웃 시리즈’가 성사된 것은 역대 3번째였다.

최초는 1993년 준플레이오프 무대. 당시 LG가 2승1패로 이기며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따냈다. 그리고 1998년에 준플레이오프에서 두 번째 만남이 성사됐다. 여기서도 LG가 2승무패로 플레이오프 무대에 오르게 됐다. 이때는 ‘OB 베어스’ 시대로, 베어스가 유난히 ‘LG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시절이기도 했다.

2000년 가을야구 격돌은 두산 베어스로 이름이 바뀐 뒤 벌어지는 첫 포스트시즌. 두산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LG를 만났다.

10월 20일 금요일 잠실구장. 선발진이 약했던 두산은 조계현(시즌 7승3패, 평균자책점 3.74)을 1차전 선발투수로 내세웠다. 1999년 삼성에서 방출된 뒤 김인식 감독의 부름을 받고 두산에 입단해 7승3패, 평균자책점 3.74로 쏠쏠한 활약을 펼친 백전노장. LG는 시즌 17승10패, 평균자책점 3.12에 빛나는 외국인투수 대니 해리거를 선발 카드로 뽑아들었다.

1차전부터 불꽃 튀는 승부였다. 두산이 7회초 터진 김동주의 솔로홈런으로 2-1로 앞서 나가며 승기를 잡는 듯했다. 8회말 2사 1·3루 위기. 두산 김인식 감독은 그해 52세이브포인트(10구원승+42세이브)로 KBO 역대 구원 부문(2003년까지는 구원승과 세이브를 합친 세이브포인트로 시상) 신기록을 작성한 진필중을 호출했다. 진필중은 여기서 최익성을 1루 파울플라이로 유도하며 급한 불을 껐다.

그러나 두산은 9회말 뼈아픈 역전패를 당하고 만다. 진필중이 선두타자 안재만에게 볼넷, 조인성에게 중전안타를 맞았다. 3루로 공이 중계되는 사이 조인성이 2루까지 내달려 무사 2·3루. 여기서 류지현(개명 전 유지현)의 3루수 땅볼로 2-2 동점이 됐다.

계속된 1사 3루. 이종열 타석 때 스퀴즈번트를 의식한 진필중이 3루주자를 보며 홈으로 던졌지만 초구가 원바운드로 포수 홍성흔 뒤로 빠지고 말았다. 끝내기 폭투로 2-3 재역전패. 다시 ‘LG 콤플렉스’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듯했다.

2차전에서도 두산은 1회와 2회 1점씩을 내주며 0-2로 끌려갔다. 1년 전 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4연패로 물러난 악몽을 떠올리는 팬도 있었다.

그러나 두산은 3회초 1사 만루에서 김동주의 2타점 중전 적시타로 2-2 동점을 만들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3회말 두산 선발투수 구자운이 찰스 스미스에게 솔로홈런을 맞았지만, 5회초 홍성흔의 적시타로 3-3 동점을 만들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8회초 무사 1·2루. LG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이광은 감독은 장문석을 마운드에 세웠다. 2000년은 ‘노송’ 김용수 마지막 시즌. 포스트 김용수 시대를 그리며 마무리투수로 키우려고 애지중지하던 투수였다. 그런데 김동주의 타구가 장문석 다리를 맞고 1루쪽으로 굴절됐다. 내야안타로 4-3 역전. 두산은 이어 9회초 선두타자 홍성흔의 3루타와 김민호의 희생플라이로 5-3으로 달아나며 1패 후 1승을 얻었다.

큰 의미가 있는 승리였다. 포스트시즌에서 LG에 3연패(1993년 준PO 3차전 2-5 패배, 1998년 PO 1차전 2-3 패배, 2차전 5-14 패배)의 사슬을 끊는 순간이었다. 아울러 1999년 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 4연패를 당한 것까지 포함하면 두산의 포스트시즌 7연패 탈출이기도 했다.

두산 베어스 주포 김동주 ⓒ두산베어스

◆ 김동주의 손가락 부상과 투혼

2차전에서 이겼지만 두산은 낭패감에 휩싸였다. 주포 김동주가 8회말 최익성의 3루 강습타구를 잡으려다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이 골절되는 뜻밖의 상황을 맞이한 것. 비상이 걸렸다

하루 휴식 후 펼쳐진 23일 3차전. 김동주는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다. 두산 선발투수 최용호가 2회까지 3점을 먼저 내주면서 기세에서 밀렸다. 4회에는 김재현의 솔로홈런까지 터졌다. 두산은 7회와 8회 1점씩을 추격했지만 2-4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1승2패로 밀렸다.

팀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황. 때마침 비가 왔다. 4차전이 하루 연기돼 25일에 치러졌다. 1차전 선발등판 후 4일 휴식을 취한 조계현이 다시 선발등판했다. 공격에서 일찌감치 축포가 터졌다. 1회말 2사 1·2루. 3차전까지 9타수 무안타로 침묵하던 5번타자 심정수가 LG 선발투수 해리거를 상대로 장쾌한 좌월 3점홈런을 날렸다. 분위기를 반전시킨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조계현은 6.2이닝 무실점으로 힘을 냈고, 두산은 4차전을 5-1로 잡고 다시 2승2패 균형을 이뤘다.

5차전 역시 심정수의 홈런포가 불을 뿜었다. 3회초 류지현에게 솔로홈런을 허용해 0-1로 끌려가던 8회말. 선두타자 장원진이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던 LG 선발투수 최향남을 상대로 우전안타를 날렸다. LG 이광은 감독은 여기서 장문석을 투입했다. 그러나 타이론 우즈의 우월 2루타가 터지면서 1-1 동점. 1사 후 심정수가 장문석을 상대로 좌월 역전 결승 2점홈런을 날렸다. 두산이 3-1로 승리하며 3승을 먼저 수확했다.

2000년 플레이오프 6차전 9회 2아웃에서 극적인 동점 홈런을 친 안경현 ⓒ두산베어스

◆ 운명의 6차전, 기적의 홈런! 홈런! 홈런!

10월 28일 토요일. 낮 2시에 경기가 시작됐다. 두산 선발투수 마이크 파머(시즌 10승9패, 평균자책점 4.54)가 1회말 시작하자마자 류지현~김재현~이병규에게 3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선취점을 빼앗겼다. 4회말에는 아웃카운트 1개를 잡는 동안 2루타 2개를 포함해 4안타를 맞으며 3점을 추가로 내주고 말았다. 순식간에 스코어는 0-4로 변했다.

7차전 승부가 머리에 그려지는 순간, ‘미러클 두산’의 스토리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5회초 무사 1루서 호투하던 LG 선발투수 안병원을 상대로 홍성흔의 1타점 2루타, 1사 3루서 대타 최훈재의 중전 적시타로 2-4로 추격했다.

7회초 선두타자는 김동주. 2차전 이후 정밀검진 결과 오른손 중지 골절과 인대 손상으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견이 나왔지만, 김동주는 “LG와 플레이오프인 만큼 뛰고 싶다”며 수술을 미뤘다. 3차전 대타, 4차전부터는 지명타자로 나서고 있었다. 김동주는 6차전에 앞서서도 흔히 ‘대포주사’로 일컬어지는 데포메드를 맞고 출전을 강행했다.

마운드에는 LG 2번째 투수인 좌완 이승호. 볼카운트 1B-0S에서 2구째 가운데 실투가 들어오자 김동주의 방망이가 전광석화처럼 돌았다. 왼쪽 담장을 총알처럼 넘기는 솔로홈런. 3-4로 1점차로 따라붙는 값진 홈런포였다(당시 영상을 자세히 보면 김동주는 배트를 양 손으로 단단히 잡지 못하고 오른손 중지를 세워 홈런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

“손가락 부상 중인 김동주 선수가 팀이 진짜 어려울 때 말이죠. 뭔가 경기 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는 그런 홈런이 나왔어요.”

이날 경기 중계를 맡은 KBS 하일성(작고) 해설위원이 흥분한 목소리로 텐션을 끌어올렸다

9회초가 시작됐다. 마운드에는 8회말 2사 1·3루에서 등판해 김동주를 범타 처리한 김용수가 여전히 서 있었다. 선두타자 심정수는 2구, 홍성흔은 3구 만에 각각 1루수 땅볼과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다. 이제 아웃카운트 1개만 남은 상황. 안경현이 타석에 들어설 준비를 했다. 그런데 여기서 LG 벤치는 타임을 걸더니 김용수를 강판시키고 다시 장문석을 올렸다.

서두에 안경현이 “김용수 선배가 그때 계속 던졌더라면 아마 그 홈런이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죠”라고 말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안경현은 5차전까지 플레이오프 9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6차전에서도 첫 두 타석 무안타로 11타수 무안타. 이날 7회초 중전안타로 가까스로 플레이오프 첫 안타를 때려낸 터였다. 그러나 이광은 감독은 앞선 경기에서 심정수에게 홈런을 맞고 패전을 기록한 장문석을 선택해 승부를 7차전으로 몰고 갈 요량이었다. 타격감이 떨어져 보이는 안경현 정도는 충분히 잡을 수 있다는 기대. 또한 깔끔하게 경기를 마무리한다면 장문석 스스로 5차전 패전의 상처도 씻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두산 팬들이 V3 현수막 주변에서 응원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솔직히 2000년 플레이오프 당시 타격감이 아주 나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계속 안타가 안 나왔어요.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가고, 그날 김재현이 우익수를 봤는데 키를 넘어가는 타구를 잡아내기도 하더라고요. 속으로 ‘이번 플레이오프에서는 안 되나?’ 하면서 타석에 들어섰던 게 기억납니다.”

안경현은 그날 그 상황을 생생히 기억했다.

“홈런 하나 치자고 생각했어요. 9회 2아웃이었고, 어차피 안타 쳐봤자 곧바로 동점이 안 되니까 진짜 홈런 하나 생각하고 들어갔어요.”

장문석도 전날의 부진을 만회하려는 듯 이를 악물고 공을 던졌다. 초구 볼 이후 연속 3개의 파울. 안경현은 “장문석 공에 힘이 있어서 방망이가 밀려 파울이 됐지만 포인트를 조금씩 앞에 두고 치면서 점점 타이밍이 맞아 나가기 시작했다”고 그 타석의 기억을 되살렸다.

5구와 6구는 볼. 볼카운트가 3B-2S로 꽉 찼다. 7구째는 한가운데 직구. 안경현의 방망이가 돌았다. 타구는 낮은 발사각을 유지한 채 라인드라이브로 좌중간 외야 관중석을 향해 추진력을 얻었다.

“좌중간 쭈~욱 뻗어갑니다. 좌측 담장! 넘었습니다! 솔로홈런! 동점 홈런입니다!”

이때가 오후 5시31분. 늦가을의 땅거미가 내려앉아 잠실구장이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이었다. KBS 표영준 캐스터의 목소리가 잠실구장 저녁 공기를 갈랐다.

“지금 이러한 분위기에서 말이죠. 이런 분위기에서 동점 홈런을 친다는 것. 바로 이게 야굽니다.”

옆에 있던 하일성 해설위원도 맞장구를 치며 흥분한 목소리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야구는 9회 투아웃부터’라는 격언이 그대로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두산 팬들은 일제히 잠실구장이 떠나가라 환호성을 질렀고, 벤치에서 팔짱을 낀 채 패배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던 두산 김인식 감독도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마운드의 장문석 표정은 굳었고 , LG 덕아웃의 이광은 감독은 선글라스를 낀 채 의자에 앉아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선 미동도 하지 않았다

“LG 벤치에서는 아마도 장문석 선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올린 것 같아요. 김용수 선배가 던졌으면 구종도 다양해서 노려치기는 쉽지 않았겠죠. 그렇지만 당시 장문석은 힘 있는 공을 던지긴 해도 직구와 슬라이더 투피치 투수였어요. 슬라이더도 잘 던지지 않아 사실상 원피치 투수였죠. 연속 파울이 3개 나올 땐 직구 90%, 변화구 10% 정도 생각하고 쳤어요. 공끝이 좋으니까 파울이 되더라고요.”

‘안쌤’ 안경현은 지금도 그날의 투구 하나하나, 타구의 궤적까지 그대로 떠오르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날 3B-2S로 풀카운트까지 갔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장문석 투수가 100% 직구를 던질 거라고 생각했죠. 포인트를 조금 더 앞에 두고 치려고 했어요. 맞는 순간 타구가 쭉쭉 뻗어 좌중간 담장을 넘어가더라고요. 제가 친 홈런 중에 끝내기 홈런이라든지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몇 개는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홈런이라면 아무래도 바로 이 홈런이겠죠.”

2000년 플레이오프 6차전 연장11회초 결승 솔로홈런을 날린 헤라클레스 심정수 ⓒ두산베어스

◆ 연장 11회 심정수 결승 솔로포! 마침내 LG를 이겼다

벼랑 끝에서 기사회생한 두산 김인식 감독은 10회부터 박명환을 마운드에 올리는 승부수를 던졌다. 박명환은 그해 어깨 부상으로 시즌 초반 이탈한 뒤 뒤늦게 불펜투수로 팀에 가세했다.

연장 11회초. 선두타자는 심정수. 4차전과 5차전에서 연속 홈런포를 가동했지만 이날 안타 없이 1볼넷만 얻고 있었다. 5번째 타석이었다. LG 마운드는 여전히 장문석이 지키고 있었다. 연속 볼 2개가 들어왔다. 그리고는 3구째, 한가운데 직구였다. 실투였다. ‘헤라클레스’ 심정수 방망이가 먹잇감을 보곤 참지 못했다.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모두가 알았다.

“좌측 담장 계~속 날아가 넘어갑니다! 솔로홈런! 심정수! 5-4가 됐습니다.”

표영준 캐스터가 상황 설명을 하기도 힘들 만큼 타구는 무서운 속도로 담장을 넘어갔다. 좌중간 외야 관중석 통로 사이에 펼쳐진 ‘V3 최강두산’ 현수막을 때리는 홈런포였다.

플레이오프 3경기 연속 홈런. 심정수는 무아지경으로 두 팔을 들고 1루로 달려갔다. 동료들은 심정수가 덕아웃에 들어오자 마치 우승을 한 것처럼 격한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환호했다.

“이런 경기 양상은 홈런 한 방이 제일 무서운 거예요. 역시 장문석 선수가 변화구 없이 직구만 가지고 승부하다 보니까 힘 있는 두산 타자들이 노리고 들어오거든요. 이건 코스를 노린단 말이에요. 구질은 파악이 돼 있는 상태에서.”

하일성 해설위원은 고조된 목소리 톤으로 속사포처럼 냉정한 분석을 이어가고 있었다.

박명환은 연장 11회말 서용빈~조인성~이종열 하위타선을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잡아내며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마무리했다.

심정수가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친 안타는 딱 3개였다. 그것이 모두 4~6차전 승부를 결정짓는 결승 홈런. 플레이오프 MVP는 심정수가 차지했다.

두산 베어스 김인식 감독이 투수교체 후 덕아웃으로 달려가고 있다. 젊고 건강하던 시절의 모습이다. ⓒ두산베어스

◆ 1990년대 LG 콤플렉스는 저멀리

플레이오프 4승2패. 두산으로선 1995년 우승 이후 5년 만에 다시 한국시리즈 무대에 오르게 됐다. 무엇보다 두산으로선 1990년대 베어스를 옥죄던 LG 콤플렉스를 완전히 벗어던졌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잠실 라이벌, 한 지붕 두 가족. 두 팀은 잠실구장을 나눠 쓰는 사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라이벌 의식이 강했다. 때론 앙숙이 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OB 베어스와 MBC 청룡 시대. 이때는 베어스가 상대전적에서 77승5무70패로 근소하게 앞서 있었다. 서울 입성을 약속받고 1982년부터 1984년까지 3년간 대전에 둥지를 틀었던 베어스는 1985년부터 본격적인 서울 라이벌 시대를 열게 된다. 1985년부터 1989년까지만 따지면 베어스가 51승41패로 청룡에 우위를 점했다. 잠실구장을 함께 쓰기 시작한 1986년 이후로 따져도 38승32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1990년 LG 트윈스가 MBC 청룡을 인수한 뒤로 베어스는 LG의 신바람야구 기세에 눌려 있었다. 1993년 9승9패로 동률이 됐을 뿐, 1997년까지 한 번도 상대전적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1997년에는 5승1무12패로 압도당하기도 했다.

상대전적에서 우위로 돌아선 것은 1998년. 김동주와 타이론 우즈가 입단한 해로 10승1무7패로 앞서게 됐다. 두산 베어스로 간판이 바뀐 1999년에는 13승5패로 LG를 압도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베어스가 LG 콤플렉스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앞서 설명한 대로 1993년과 1998년 준플레이오프에서 LG에 패퇴한 잔상이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두산 선수단과 프런트도 그런 찜찜한 기분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2000년을 맞이했다.

“1990년대에는 LG하고 붙었다 하면 졌어요. 5회가 끝나기도 전에 승부가 갈라지니까 그때부터 LG 팬들이 ‘OB 꼴찌’라고 놀리기도 했잖아요. 솔직히 선수들이나 코치나 프런트나 팬들이나 모멸감을 느꼈죠.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지만 판판이 지는데 할 말이 없었어요. 당시 LG 멤버가 워낙 좋기도 했고요.”

두산 베어스의 역사와 함께해온 김정균 구장관리팀장은 뼈아팠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한번은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는데 그날 모 코치가 울기까지 했어요. 경기에서도 지는데 순둥이 우리 선수들이 벤치 클리어링에서도 못 이기니까 ‘거기서까지 지냐’며 분해하더라고요. 당시 LG에는 정삼흠을 비롯해 야구도 잘했지만 기가 센 선배들이 많았고, 우리는 세대 교체 과정에서 여리고 어린 선수들이 많았거든요.”

2000년 플레이오프에 앞서 두산 선수단이 LG에 대해 결정적으로 자신감을 갖게 된 경기가 있었다. 그해 5월 7일 어린이날 시리즈 마지막 경기였다. 당시 경기 초반 엎치락뒤치락하다 후반에 무너지며 5-10으로 끌려갔다. 9회초도 쉽게 2아웃이 됐다.

그런데 안경현의 좌전안타를 시작으로 밀어내기 볼넷, 대타 이도형의 싹쓸이 3타점 2루타, 장원진의 1타점 중전 적시타가 이어지면서 거짓말 같은 10-10 동점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연장 10회초 강혁의 결승 우월 2루타로 11-10이라는 믿기 힘든 대역전승을 거뒀다. 아직도 ‘5·7대첩’으로 회자되는 그날이었다.

두산은 2000년 상대전적에서 LG에 9승10패로 밀렸지만, 플레이오프 6차전에서 9회초 2사 후 터진 안경현의 극적인 동점 솔로홈런과 연장전 심정수의 결승 솔로포로 다시 한번 뚝심과 ‘미러클 두산’을 재현했다. 두산 관계자들은 그래서 2000년 플레이오프에서 LG에 승리한 순간을 LG 콤플렉스에서 완전히 벗어난 터닝포인트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는 2000년대 들어서는 LG를 압도하면서 오히려 1990년대와 정반대의 상황을 만들었다.

2001년 12승1무6패를 기록한 뒤 2008년까지 8년 연속 상대전적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했다. 2018년에는 시즌 최종 맞대결에서 패하면서 전승 신화를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LG에 15승1패라는 전설적인 시즌을 만들었다. 오히려 LG가 두산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시즌이 이어졌다. 두산은 그러면서 1982년부터 2022년까지 통산 383승21패333패로 상대전적에서 앞서 나갔다.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도 두산이 3승1패로 이겼다.

두산 베어스 2루수 계보의 중심에 서 있는 안경현 ⓒ두산베어스

현재 ‘모두의 예체능’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사업가로서도 수완을 발휘하고 있는 ‘안쌤’ 안경현. 김광수~이명수~안경현~고영민~오재원으로 이어져온 베어스 역대 2루수 계보의 중심에 서서 OB 베어스 시대와 두산 베어스 시대를 모두 경험한 인물이다. 그는 베어스가 LG 콤플렉스를 벗어난 결정적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990년대에 LG에 많이 져서 주눅이 들었던 세대가 은퇴하거나 다른 팀으로 이적하고, 2000년에는 1990년대 후반부터 들어온 세대들이 팀의 주축이 됐어요. 정수근, 김동주, 홍성흔 등은 LG 콤플렉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신경을 안 쓰는 세대들이었죠. 안타를 치거나 도루를 하거나 홈런을 쳐도 액션이 강했어요. OB 시절 선배들은 그런 게 별로 없었거든요.”

김정균 팀장도 맞장구를 쳤다.

“사실 OB 시절엔 선수들이 하도 순둥이라 프런트에서 ‘2루타 치고 나가면 액션 좀 멋있게 하라’고 주문을 할 정도였어요. 그래야 신문 1면에 사진도 멋있게 나오고 팬들도 좋아하고 마케팅에도 도움이 된다고 얘기를 하곤 했죠. 그래도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김형석 선수는 2루타 치고 그냥 주먹 한 번 살짝 쥐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정수근 홍성흔 이런 친구들은 선배들이 볼 때는 천방지축이었죠. 난리도 아니었죠. 하지만 프런트나 팬들이 볼 땐 너무 좋은 거야. 두산으로 바뀐 뒤 팀 성적도 좋아지고, PC통신이 활발해지면서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팬클럽도 생기고, 팬들이 몰려들면서 두산이 인기구단으로 올라서기 시작했어요. LG 콤플렉스도 벗어나고 말이죠.”

덧붙이기) 2000년 플레이오프 6차전에서 안경현 타석에 앞서 장문석에게 마운드를 물려주고 내려간 LG의 ‘노송’ 김용수. 그것이 KBO 마지막 무대가 됐다. 그 뒤 LG 줄무늬 유니폼을 벗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 순간이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 라이벌 역사의 변곡점이 된 상징적인 장면이었는지 모른다.

LG 콤플렉스를 벗게 만든 새로운 세대 홍성흔(왼쪽)과 정수근. 둘은 동기이기도 하다 ⓒ두산베어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OBS라디오 프로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