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놀이터, 19세 미만은 출입금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만화 도서관 겸 서점인 '그래픽'은 20여 개의 테마로 분류된 총 5000여 권의 장서가 있는 유료 만화 도서관 겸 서점입니다. 만화 도서관 겸 서점이라는 이곳에 19세 미만 청소년이 출입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른들을 위한 공간 '그래픽'의 이야기를 '정책주간지 K-공감'에서 확인해 보세요!


가장 재미있는 만화는 몰래 보던 만화?
19세 미만은 출입금지!
어른들의 놀이터로 오세요
만화 도서관 겸 서점 ‘그래픽’
부드러운 자연광이 가득한 ‘그래픽’ 내부 전경. 두꺼운 철문을 밀고 들어가 어둡고 고요한 복도를 지나는 입장 과정은 꽤 드라마틱하다. 사진 C영상미디어
주소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39길 33
영업시간 화~일요일 오후 1시~밤 11시(월요일 휴무)
전화 070-4070-0204
입장료 1인 1만 5000원 / 이용시간 제한 없음 / 3회 방문 시 1회 입장료 무료(쿠폰) /
오후 7시 이후 입장 시 입장료 1만 원 할인 / 주류 구매 시 무료 입장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graphic.fan
부드러운 자연광이 가득한 ‘그래픽’ 내부 전경. 두꺼운 철문을 밀고 들어가 어둡고 고요한 복도를 지나는 입장 과정은 꽤 드라마틱하다. 사진 C영상미디어

어른이라면 누구나 만화에 대한 추억이 하나쯤 있기 마련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해주던 인기 만화영화부터 만화방에서 수십 권씩 쌓아놓고 보던 만화책까지 어린 시절을 가득 채우는 기억들입니다. 아직도 주인공은 물론이거니와 등장인물 이름을 줄줄 외우고, 만화 주제가를 흥얼거리고, 책장 깊숙한 곳에 간직하고 있는 만화책을 떠올리는 어른도 많습니다. 굳이 마니아, 애호가, 덕후라는 이름으로 분류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시절을 그렇게 커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화를 떠올리면 따라오는 기억이 또 하나 있다. 바로 타박입니다. “공부는 안 하고 웬 만화냐?”, “커서 뭐가 되려고 만화만 보고 있느냐”는 부모님의 타박이 기억의 한 세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숨어서 몰래 읽고 들켜 혼나는 게 예사였습니다. 과거에는 만화방이 유해한 시설로 지정될 정도였으니 만화를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가 어땠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본디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고, 보지 말라면 더 재미있어지는 게 사람 마음입니다. 어른들의 타박은 그저 만화의 재미에 달콤함을 더할 뿐이었습니다. 어른들의 타박을 감내하고 곱지 않은 시선을 피해가며 꿋꿋하게 만화를 보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됐습니다.


원기둥을 잘라낸 듯 요새같은 건물
‘조각케이크’, ‘소라빌딩’, ‘경리단 구겐하임’ 등 다양한 애칭을 가진 ‘그래픽’ 서점 전경. 종이 사전의 단면이 모티브가 됐다. 사진 C영상미디어

요즘 만화의 위상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2021년 우리나라 만화산업은 웹툰을 기반으로 성장해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년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웹툰산업 규모는 2017년 대비 2020년 1조 538억 원으로 40.5% 성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웹툰 원작을 기반으로 하는 영상물들이 큰 성공을 거두며 이를 필요로 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상 플랫폼들의 경쟁 구도까지 더해져 웹툰산업의 전망은 매우 밝습니다. 또 문체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표한 ‘2023 해외 한류 실태 조사’를 살펴보면 해외 시장에서 소비되는 한류 콘텐츠 1위가 웹툰일 만큼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웹툰 작가만 9000여 명을 넘어섰고 웹툰 지망생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져 이제 만화는 콘텐츠 산업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도 취향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서점 ‘그래픽’에 방문해보니 그렇습니다. 아무리 스마트기기가 발달하고 스낵컬처(snack culture, 과자를 먹듯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즐기는 웹툰이나 웹소설 등)가 확산돼도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는 만화책의 매력은 강렬한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어려서 만화를 보던 어른들이 죄다 그곳에서 여전히 만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주 당당히 숨어서 말입니다.

그래픽은 만화책만큼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핫플레이스 인증과도 같았던 ‘~리단길’의 원조인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조금 벗어난 주택가에 위치한 이곳은 외관부터 궁금증을 자아내기 충분했습니다. 네 겹의 원기둥을 4분의 1로 잘라낸 듯한 건물은 간판은 고사하고 창문 하나 없이 성곽처럼 내부를 꽁꽁 감싼 형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오가는 요새이자 아지트로 완벽한 어른들의 놀이터였습니다.


절판 도서·고가 서적 “마음 놓고 보세요”
천장에 난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채광이 내부 곳곳을 채운다. 사진 C영상미디어

2022년 3월에 정식으로 문을 연 그래픽은 유료 만화 도서관 겸 서점입니다. 혹자는 북 카페나 술 마시는 만화방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사실 그 경계가 모호합니다. 모든 성격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다 정확하게 소개하자면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전문 서점입니다. 그래픽 노블이란 그림(Graphic)과 소설(novel)의 합성어로,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취하는 작품입니다. 슈퍼 히어로물이 범람하던 미국 만화계에 문학성과 예술성이 강한 형식과 양식을 갖추고 나타난 만화를 가리킵니다. 일반 만화보다 철학적이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며, 스토리에 완결성을 가진 단행본 형식으로 발간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픽은 매달 공식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직원들이 직접 읽고 선택한 그래픽 노블 만화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번 9월 추천작을 살펴보면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한 잔혹하고 압도적인 무기의 역사를 다룬 <원자폭탄(글 디디에 알칸트·로랑 프레데릭-볼레, 그림 드니 로디에)>, 미묘한 사랑을 섬세하게 표현한 <염소의 맛(바스티앙 비베스)>, 절대악을 논하는 명작 <몬스터(우라사와 나오키)> 등으로 그래픽 노블을 중심으로 오직 작품성만을 고려해 선정합니다. 이밖에도 일반 만화책부터 다양한 장르의 사진이나 아트북, 그림책도 상당수 있습니다. 아트북 전문 출판사 타셴과 계약해 미술은 물론 건축이나 화보집 등 희소가치가 높은 아트북도 갖추고 있습니다. 또 절판된 도서는 물론 고가의 서적 등도 감상할 수 있어 책을 좀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선 일찌감치 명소로 소문이 나 있는 곳입니다. 특히 일반 서점에서는 비닐에 쌓여 있어 구입하지 않는 한 읽을 길 없는 만화책이나 아트북, 화보집 등을 그래픽에서는 마음껏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비닐에 쌓인 책이 없습니다.

그래픽은 총 3층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1층 바닥부터 천장까지 시원하게 트여 있는 내부는 창문 하나 없는 외관과 대비돼 마치 게임 속 숨어 있는 던전(게임에서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소굴)에 들어온 기분을 줍니다. 천장에 낸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자연광은 공간을 더욱 신비롭게 만듭니다. 거기에 19세 미만 청소년은 들어올 수 없다는 규정까지 더해지면서 극적인 재미가 가미됩니다. 만화 도서관을 자처하는 서점에서 미성년자 출입금지라니 의아할 것입니다. 만화광이자 애주가인 그래픽 대표는 건축가에게 ‘어른을 위한 술 마시는 만화방’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서점처럼 딱딱하지 않고 그렇다고 술집처럼 너무 자유분방하지도 않으며 그저 마니아들이 조용히 와서 그래픽 노블을 즐기는 제3의 유희공간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픽에서는 위스키와 와인, 생맥주 등 주류 주문이 가능합니다. 그래픽이 완벽한 어른 놀이터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취향 공유하는 제3의 문화 공간
절판 도서, 고가의 한정판이 전시된 공간으로 마음껏 꺼내서 볼 수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그래픽에는 20여 개의 테마로 분류된 총 5000여 권의 장서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직원들이 읽어보지 않고 비치한 책은 단 한 권도 없습니다. 그만큼 그래픽은 만화의 큐레이팅에 진심입니다. 그동안 저평가된 만화라는 장르를 새롭게 알리고 작품성 있는 책들을 발굴해 소개하겠다는 것입니다.

1층에는 일본 작가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비롯해 미술·건축·디자인, 마블&DC코믹스, SF, 영화·애니메이션·드라마 장르 서적과 판매용 도서를 소개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타로카드와 역동적인 파도 그림으로 유명한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고가의 한정판도 이곳에 전시돼 얼마든지 꺼내볼 수 있습니다.

2층에는 매월 SNS를 통해 선정하고 있는 추천도서들과 일상·힐링·성장, 모험·시대극·무협 등의 장르 서적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3층은 사진과 음악, 패션 매거진 등이 비치돼 있으며 공항 라운지 콘셉트의 음료 라운지와 바(Bar)가 있습니다. 일반 서점처럼 검색대는 없지만 직원들이 읽은 후 진열해놓았기 때문에 원하는 책이 있다면 직접 물어보면 됩니다. 그리고 이 역시 그래픽의 의도입니다. 차가운 비대면 시스템 대신 직원과 대면 소통을 통해 책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라니, 운영 방법마저 마니아들의 취향을 정조준합니다. 그래픽 노블이 낯설어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슬램덩크, 드래곤볼, 마블시리즈, 해리포터, 디즈니, 지브리 등 알 만한 만화책도 다 있습니다.

그래픽의 진심은 책을 읽는 가구와 의자에서 정점에 이릅니다. 그래픽 1층부터 3층까지 전 공간에는 통일된 의자나 탁자가 없습니다. 1층은 계단에 쪼그려 앉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2층은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안쪽에 반쯤 눕거나 완전히 누울 수 있는 소파가 있습니다. 마치 자기 집처럼 편하게 누워 책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이처럼 책을 읽는 사람들의 자세를 아홉 가지 유형별로 정리해 공간에 녹였습니다. 층마다 콘셉트와 분위기는 다르지만 저마다 취향대로 장소를 선택하고 책을 골라 가장 편한 자세로 읽는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멋진 의자에 편하게 기대앉아 맥주 한잔 하면서 좋아하는 시리즈의 만화를 탑처럼 쌓아놓고 읽는 것,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곳입니다. 발을 편하게 올려놓을 받침대, 포근하게 덮을 거리도 있습니다. 무엇을 원하든 그래픽은 ‘상상’을 응원합니다.

그래픽을 이용하려면 1만 50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이용시간 제한이 없고 음료(주류 별도)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오후 7시 이후 입장 시 1만원 할인, 주류 구매 시 무료입장 등 다양한 혜택이 있습니다.

그래픽은 전문 서점을 넘어 공간이 가진 힘을 충분히 활용해 작가 작품 전시나 고객 체험 행사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영감을 나누고 취향을 공유하며 재미있고 가치 있는 시간을 만들어가는 제3의 문화 공간, 그것이 그래픽이 최종적으로 도달하려는 목적지입니다.

강은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