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C] '삼성전자 첫 외국인 CDO' 포르치니, 밀라노 선언 잇는 디자인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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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로 포르치니 삼성전자 DX부문 CDO(사장) /사진=포르치니 SNS 캡처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마우로 포르치니를 디바이스경험(DX)부문 최고디자인책임자(CDO·사장)로 영입했다.

이는 최근 DX부문의 주요 사업들이 경쟁사와 중국 기업들의 추격으로 위상이 흔들리면서 디자인 혁신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연초부터 이재용 회장이 임원들에게 '사즉생' '독한 삼성인' 등을 역설하며 조직의 현주소에 대해 위기의식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하고, 특급 인재를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양성해야 한다고 발언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성별·국적 따지지 말라" 이재용 회장 주문에…첫 외국인 CDO 탄생

14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달 초 인사에서 포르치니 사장을 DX부문 CDO로 선임했다. 삼성전자가 디자인총괄에 외국인을 발탁한 것은 처음이다.

이탈리아 출생인 포르치니 사장은 밀라노공대에서 산업디자인 학사·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필립스에서 제품 디자이너 경력을 시작했다.

3M에 합류한 후에는 유럽사업부 디자인관리자(2002년), 글로벌전략디자인책임(2005년) 등 주요 직책을 거쳐 2010년 회사의 첫 CDO로 선임됐다. 특히 CDO로서 스카치테이프와 포스트잇 디펜서의 재디자인을 주도했고,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다수의 국제디자인상을 받기도 했다.

2012년에는 펩시코로 옮겨 펩시, 레이즈, 게토레이드 같은 브랜드의 디자인 혁신을 이끌었으며 같은 해 포춘 선정 '40세 이하 리더 40인'에 디자이너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2018년에는 전 세계에 이탈리아 디자인의 명예를 높인 공로로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공로훈장'을 받았다. 2022년에는 아메리칸디자인상을 수상했으며 2023년부터 3년 연속 콜매거진의 '세계에서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다.

마우로 포르치니 삼성전자 DX부문 CDO /사진=포르치니 SNS 캡처

이번 선임에 대해 포르치니 사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서 '삼성은 혁신을 향한 끊임없는 추진력, 탁월한 성장궤적, 혁신적 디자인의 힘을 믿어 제가 오랫동안 존경해온 기업'이라며 '특히 기술이 우리 삶의 모든 측면을 재편하는 시기에 놀라운 조직의 구성원이 되는 것은 깊은 영감을 주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저는 항상 제품혁신과 기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삼성에서 이 같은 다양한 경험을 활용해 1500명 이상의 훌륭한 디자이너와 비전 있는 비즈니스리더, 뛰어난 연구개발팀과 협력해 여정을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포르치니 사장의 합류로 모바일, TV, 생활가전 등 전 사업에 걸친 디자인 역량을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인간·사랑' 감성적 요소 중시…MZ세대 홀릴 뉴브랜드 선보이나

포르치니 사장은 향후 일명 '디자인싱킹(design thinking)'을 기업문화에 도입하는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간 '혁신의 인간적인 면모'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의 힘'이라는 자신의 저서들에서 인간중심적 접근법을 강조해왔다.

디자인싱킹은 삼성전자가 임직원 교육에서 강조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디자인 브랜드 페이지에서 '이미 글로벌 혁신 기업들은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솔루션을 제시하기 위해 각 기업의 특성과 문화를 반영한 고유한 디자인 싱킹을 정립하고 응용,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상 산업디자인은 △근본적인 가치관과 신념을 세우는 '디자인 철학' △철학을 시각적·감성적으로 구체화한 실천 기준인 '디자인 아이덴티티' 마련 △색상·폰트·소재·조형 스타일 등에 대한 세부 체계를 구현하는 '디자인 언어 시스템' 구축 △제품·서비스 적용 순으로 이어진다.

앞서 삼성은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1996년 신년사에서 그해를 '디자인 혁명의 해'로 선언한 후 디자인 조직 개편, 글로벌 디자인센터 설립, 디자인 전문인력 확충, 디자인 아이덴티티 수립 등에 나서왔다.

디자인 아이덴티티의 경우 2001년 '울림이 있는 단순함'으로 시작된 1.0전략부터 '밀라노 선언(2005년)' 이후 욕망·호기심·기쁨 등 정서적 요인을 내세운 2.0(2006년), 제품과 서비스를 통합해 가치를 창출하는 3.0(2011년), 과감한 혁신을 강조한 4.0(2019년) 등을 거쳐  '본질에 충실하고 혁신에 도전하며 삶과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이라는 5.0(2023년)으로 변화해왔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2005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확대사장단회의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이에 포르치니 사장은 삼성전자 디자인의 현위치를 냉정하게 진단하고 글로벌 브랜드 위상에 걸맞은 디자인 아이덴티티 6.0전략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또 디자인 조직 재정비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삼성전자 DX부문 디자인경영센터장은 노태문 모바일경험(MX)사업부장(사장)이 겸해왔지만 한종희 부회장의 별세로 노 사장이 DX부문장 직무대행을 맡으면서 물러나게 됐다.

특히 포르치니 사장에게 첫 외국인 CDO로서 독립된 지위가 부여되면서 디자인 조직 역시 위상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삼성전자는 한국, 일본, 미국, 영국, 이탈리아, 중국, 인도, 브라질 등에 글로벌 디자인연구소를 두고 있다.

일부에서는 삼성전자가 디자인 수장 교체를 계기로 MZ세대 등 새로운 소비층을 확보하기 위한 브랜드 개편에 나설지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주력사업인 스마트폰의 브랜드를 세분화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현재 갤럭시 스마트폰은 애플 아이폰에 밀려 국내의 젊은층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9년부터 모든 스마트폰에 갤럭시 브랜드를 사용하면서 Z, S, A, M, F 등 알파벳을 붙여 폴더블폰과 프리미엄폰, 중저가폰 등을 구분해왔다.

이에 10만~20만원대의 저가 제품부터 200만원이 넘는 최고급 모델까지 모두 갤럭시로 불리다 보니 프리미엄 제품만 판매하는 애플 아이폰과 브랜드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앞서 이영희 DX부문 브랜드전략위원(사장)은 지난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 "갤럭시에 너무 많은 라인업이 있어 혁신적 변곡점이 도래했을 때 새 이름을 기대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와 더불어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디자인 차별화가 점점 경쟁력으로 부각되고 있다"며 "세계적인 인재를 영입한 만큼 향후 디자인 정체성 수립과 각 사업부 내 역할 조정 등으로 글로벌 위상 강화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권용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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