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성의 메이저리그 도전과 포스팅 시스템

김혜성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키움 김혜성(25)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한다. 어제 포스팅이 요청됐고, 오늘 새벽 2시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이 요청을 받아들여 포스팅을 공시했다. 김혜성은 1월4일 오전 7시까지 30일 동안 모든 팀들과 자유롭게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

성장
김혜성은 2017년에 KBO리그 무대를 처음 밟았다. 이후 차곡차곡 경험을 쌓으면서 리그를 대표하는 내야수로 올라섰다. 국가대표 주장까지 맡은 바 있다.

김혜성은 항상 메이저리그에 대한 꿈이 있었다. 한솥밥을 먹었던 선배 김하성과 친구 이정후가 메이저리그에 나가는 걸 보면서 그 꿈을 키웠다. 평소 롤 모델이었던 김하성이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자 메이저리그는 더 가깝게 다가왔다.

김혜성이 타격에 눈을 뜬 건 2021년이다. 처음으로 3할 타자가 됐다(.304). 2022년에는 장타율 4할대를 넘겼고(.403) 2023년은 OPS 8을 돌파했다(0.842). 그 해 타율도 .335로 기량이 절정에 달했다. 올해는 시즌 초반 부상 때문에 살짝 흔들렸지만, 한 시즌 개인 최다 홈런(11개)을 때려내면서 메이저리그로 갈 준비를 마쳤다.

김혜성 최근 4년간 성적 변화

21 [타율] .304 3홈런 [OPS] .739
22 [타율] .318 4홈런 [OPS] .776
23 [타율] .335 7홈런 [OPS] .842
24 [타율] .326 11홈런 [OPS] .841


수준이 더 높은 리그로 가려면 현 리그에서 최정상급 성적을 보여줘야 한다. 소위 말하는 아웃라이어(outlier)가 되면서 눈에 확 띄어야 한다. 그래야 상위 리그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게 아니면 선천적인 재능으로 발전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

김혜성의 최근 3년 통산 타율 .326는 리그 4위였다(1위 에레디아 .343, 2위 이정후 .337, 3위 박건우 .331). 타석에서의 정확성이 뛰어난 타자였다. 그러나 순수 공격만으로 리그를 지배하지는 못했다. 같은 기간 <스탯티즈> 조정득점생산력은 128.6으로 리그 평균 이상이었지만, 그렇게 특출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이정후 162.1). 대신 김혜성은 공격과 수비, 주루가 전부 반영되는 승리기여도에서 강점을 보였다. 특화된 능력은 아쉬웠지만, 두루두루 잘하는 선수였다.

2022-24년 KBO리그 승리기여도

16.10 - 김혜성
15.26 - 홍창기
15.10 - 최정
14.66 - 양의지
14.32 - 오지환

*자료 출처 <스탯티즈>


일각에서는 김혜성이 메이저리그에 와서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망주 전문 매체 <베이스볼아메리카>는 작년부터 김혜성을 주목해야 할 유망주로 꼽았다. 타고난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 환경에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망주에 관해 공신력이 높은 매체에서 이 정도 평가를 내린 건 고무적이다.

포스팅
김혜성은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 계약을 노린다. 2012년 11월 류현진을 비롯해 강정호와 김하성, 이정후 등이 포스팅 시스템을 거쳤다.

포스팅 시스템이 생긴 건 일본 때문이다. 1995년 노모 히데오의 등장이 시발점이었다. 노모는 긴테츠 버팔로스에서 임의탈퇴를 하고 메이저리그로 건너갔다. 떠나는 순간에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지만, 1995년 13승6패 평균자책점 2.54로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자신의 선택이 맞았음을 증명했다. 노모의 성공을 본 선수들은 가슴 속에 메이저리그를 품었다.

노모 히데오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당시 메이저리그로 가려는 선수들에게 다리를 놓아준 인물은 '노모의 에이전트' 돈 노무라였다. 이라부 히데키와 알폰소 소리아노도 노무라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자 무분별하게 선수를 뺏긴다고 생각한 일본리그가 강력하게 항의했다. 버드 셀릭 커미셔너도 이 불만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수용했다. 그래서 탄생한 협정이 포스팅 시스템이다.

2000년 7월에 문서화된 포스팅 시스템은 KBO리그에도 적용됐다. 하지만 초반에는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다. 이상훈과 진필중, 임창용 등 만족할 만한 계약을 받지 못했다.

이 암흑기를 끝낸 선수가 바로 류현진이었다. 다저스는 류현진에게 2573만7737달러33센트를 써서 단독 협상권을 따냈고, 6년 3600만 달러 계약을 안겨줬다. 류현진의 성공 사례가 나온 데 이어 강정호도 KBO리그 출신 야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임팩트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원래 포스팅 시스템은 최고 입찰액을 쓰는 팀이 단독 협상하는 방식이었다. 자금력이 약한 구단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최대 2000만 달러 상한선을 정해뒀는데, 그러면 기존 구단에게 지불하는 포스팅 비용이 너무 줄었다. 결국 또 한 번 개정이 되면서 '선수 계약 규모에 따라 포스팅 비용이 달라지는 제도'가 완성됐다.

내용은 이전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선수 계약 규모가 2500만 달러 이하면 총액의 20%만 기존 구단에게 주면 된다. 하지만 2500만 달러가 넘어가면 추가 금액이 생긴다. 5000만 달러 이하는 2500만 달러의 20%인 '500만 달러'에, 2500만 달러와 5000만 달러 사이 초과한 금액의 '17.5%'를 더 얹어준다.

만약 계약 규모가 5000만 달러를 넘어서면 포스팅 비용은 또 달라진다. 2500만 달러의 20%인 '500만 달러', 2500만 달러와 5000만 달러 사이 붙는 17.5%의 최고액 '437만5000달러'가 기본으로 붙는다. 여기에 5000만 달러를 초과한 금액의 '15%'를 별도로 산정한다.

지난해 이정후는 1억1300만 달러 계약을 받음으로써 포스팅 비용이 '1882만5000달러'로 책정됐다. 이는 기본 최고액 937만5000달러(500만+437만5000달러)에 6300만 달러의 15%인 945만 달러가 더해진 금액이다.

물론, 포스팅 시스템 아래 1억 달러 계약은 매우 보기 드문 사례다. 김혜성의 포스팅 비용은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계산되지는 않을 것이다.

전망
김혜성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가시화되면서 가장 꾸준히 언급된 팀은 시애틀 매리너스다. <MLB네트워크> 존 모로시가 김혜성의 소식을 전하면서 시애틀과 궁합이 "환상적일 것(I think he’d be fantastic)"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호르헤 폴랑코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실제로 시애틀은 2루수가 필요하다. 야심차게 데려온 호르헤 폴랑코가 너무 실망스러웠다(118경기 타율 .213 16홈런). 2루수 팀 타율이 전체 세 번째로 낮았고, 2루수 팀 삼진율은 두 번째로 높았다. 내년 시즌을 대비해 보강이 이뤄져야 한다.

2024 2루수 팀 타율 최하위

.221 - 에인절스
.217 - 시애틀
.211 - 오클랜드
.206 - 미네소타

2024 2루수 팀 최고 삼진율

34.4% - 오클랜드
29.2% - 시애틀
27.8% - 미네소타


이러한 측면에서 김혜성은 시애틀에게 어울리는 유형이다. KBO리그에서 콘택트를 앞세운 타자였고, 데뷔 후 삼진율도 갈수록 떨어뜨렸다. 2017년 35.3%에서 2020년 17%, 올해는 10.9%였다. 또한 김혜성은 시애틀의 기동력을 높여줄 빠른 발도 가지고 있다. 단조로운 득점 방식을 벗어나야 하는 것도 시애틀의 고민 중 하나다.

다만, 김혜성의 계약 규모가 얼마나 클지는 미지수다. 김하성의 4년 2800만 달러 보장 계약을 기준으로 삼고 있지만, 김혜성은 김하성보다 파워가 떨어진다. 포지션도 2루수와 유격수는 분명 차이가 있다. 김혜성을 조명했던 <ESPN>과 <디애슬레틱>도 당장 메이저리그에서 김혜성의 입지는 '쏠쏠하게 쓸 수 있는 유틸리티 자원'으로 분류했다.

이번 스토브리그는 FA 2루수 시장이 그리 윤택하지 않다. 글레이버 토레스가 최대어로 여겨지는데, 매력적인 2루수가 별로 없다. 수요는 시장 상황도 영향을 미친다. 이미 한계를 노출한 선수들보다 잠재력이 남은 김혜성에게 관심을 보일 수 있다.

김하성은 지난해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면서 '아시아 내야수는 통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무너뜨렸다. 김하성의 활약은 메이저리그 팀들이 가성비를 더 따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김혜성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한다. 자신의 꿈이라고 밝힌 메이저리그로 나아가기 위한 운명의 한 달이 시작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듯, 김혜성의 의지가 메이저리그에 닿길 기대한다.

-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