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드라마 연출한 변영주 “배종옥의 연기가 나를 바꾸었다”

차형석 기자 2024. 10. 9.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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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변영주 감독(사진)의 첫 드라마 연출작이다. 영화 〈화차〉 이후 꽤 오랜만의 극 연출이다. 10월에는 새 드라마 〈사마귀〉 촬영에 돌입한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변영주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우상향’ 중이다. 1회 때 전국 시청률 2.8%(닐슨코리아 기준)에서 출발해 11회에서는 8.7%에 달했다. 분당 최고 시청률은 9.9%까지 올랐다. 2011년 2월 국내에 번역·출간된 원작 소설은 최근 전자책 구독서비스 ‘밀리의 서재’에서 다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변영주 감독은 “OTT를 많이 본다고 해도 여전히 영상 매체를 보는 가장 주요한 통로는 TV와 극장이다. 장 보러 밖에 나가면 ‘이번 드라마 재미있어요’ ‘(백설공주가 아니라) 신데렐라(웃음), 잘 보고 있어요’ 하는 말을 듣는다. 영화가 100만 관객을 넘었을 때 슬슬 나오는 반응과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따져보면 영화 〈화차〉(2012년) 이후 변 감독의 극 연출이 꽤 오랜만이다. 공백기가 10년이 훌쩍 넘었다는 게 뜻밖이다. 그사이 〈방구석 1열〉 〈당신이 혹하는 사이〉 등 방송 프로그램에 꾸준히 출연했고,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 활동 등 여러 사회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변영주 감독의 표현대로, “항상 뭘 해서 밥을 벌어먹고 사는지를 대중에게 공개하듯” 지내왔다. ‘극 연출’이라는 본업으로 돌아온 변 감독을 9월19일에 만났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10월 첫째 주 종영을 앞두고 있다.

변영주 감독은 “<화차>에서 시작된 변영주의 시즌 2가 <이유>에서 끝나게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

극 연출이 10여 년 만이다. 공백 기간이 왜 이렇게 길었나?

저같이 게으른 사람이 흔치 않다(웃음). 〈조명가게〉라는 영화 준비를 5년 넘게 했다. 투자가 될 때까지 고치겠다고 붙들고 있었는데, 결국 엎어졌다. 그 작업을 그만둔 후부터 외부에서 오는 대본을 받기 시작했다. 친분이 있던 제작사 대표에게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대본을 받았을 때는 캐스팅이 어느 정도 되어 있었다. 변요한, 권해효, 배종옥, 김미경 등 출연 배우들과는 꼭 한번 일을 같이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대본을 읽고 제작자에게 하나 물었다. 대사를 중심으로 또는 시추에이션을 중심으로 신을 추가하거나 대사를 붙여도 되느냐고. 가능하다고 해서 ‘오케이’했다.

첫 드라마 연출인데.

‘영화는 내가 쓰고, 드라마는 다른 사람이 쓴 대본으로 한다’는 원칙이 나에게 있었다. 나는 2시간 이상짜리를 쓸 능력이 없다. 장편소설 한 편을 썼다고 바로 대하소설을 쓸 수는 없다. 드라마는 너무 방대한 이야기라서, 내가 고칠 수는 있어도 설계하기는 어렵겠더라. 또 그런 작업이 즐거울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동안 드라마 연출 제안이 많았지만 거절해왔다.

그럼 이번에는 왜 하게 되었나?

이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작업을 하게 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낮은 목소리’ 3부작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20대 중·후반부터 ‘영화를 하겠다’고 결심하면서 ‘내 인생은 망했다’고 생각했다. 내 삶이 평탄치 않겠구나 싶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난해질 것이고, 집안의 대소사에 참여하면 친척들이 나를 걱정 어린 시선으로 보겠구나 싶었다. ‘영화로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지’ 해서 영화를 선택한 게 아니다. ‘저런 상황이 올 텐데, 그래도 영화를 하고 싶니?’ 하는 질문에 답한 것이다. 하고 싶은 영화를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 12가지를 하는 게 영화 일이었다. 나에게 영화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한다’의 영역이었다. 〈화차〉 이후에 많은 제안이 왔지만 거절한 이유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데’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MBC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한 장면.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원작 소설도 화제가 됐다. ⓒMBC 제공

어떤 변화였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대본을 받고 갑자기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내가 왜 이걸 하지’ 설명하지는 못하겠더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상태로 드라마를 시작했는데, 어느 날 배종옥 배우가 연기하는 걸 모니터로 보는데 ‘참 예쁘고 멋있고 훌륭하다’ 싶었다. 촬영에 들어가면서 누군가에게는 문어체적인 표현을 대사로 주고 싶었다. 문어체적으로 말하는 게 가능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배종옥 배우가 그 연기를 정말 잘했다. 극중 경찰서장(권해효)과 식당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그렇다. ‘난 저 사람이 젊은 시절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온 것도 본 적이 있는데, 저 훌륭한 배우를 왜 이제야 만난 거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또 (권)해효 형과 알고 지낸 게 20년인데 그동안 한 번도 작품을 같이 하지 못했다. 왜? 내가 워낙 작품을 안 했으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하고 싶은 거만 한다’를 넘어서 게을러진 것은 아닐까. 내가 이 좋은 배우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지금처럼 하면 10년 뒤에나 가능한데. 이제까지 해온 작업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연출을 하는데 즐겁고, 현장에 갈 때마다 두근두근했다. 배종옥 배우의 연기를 모니터로 본 그날 밤에 결심했다. ‘좋은 배우들과 즐겁게 무언가를 계속 만들자.’ 그다음 날부터 외부 작품 대본을 받기 시작했다.

드라마 연출을 계기로 삶의 태도, 작업 방식이 바뀌게 된 건가?

내가 사소한 거에 영향을 크게 받는 편이다. 뭔가 큰 사건 때문에 삶이 바뀌는 게 아니라, 생각이 좀 더 깊어지게 만드는 어떤 순간이 있다.

앞으로 변영주 감독의 작품 수가 많아지면 그게 다 배종옥 배우 덕분인가?

맞다. 배종옥, 김미경, 권해효 때문이다(웃음).

영화 연출과 드라마 연출에서 어떤 차이를 느꼈나?

영화는 어찌 됐든 2시간 안에 푼다. 1시간30분 지났을 때부터는 결론을 향해 치달으면 된다. 그런데 드라마는 1회부터 시작한 지 9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범인이 안 잡히고 있는 거다. 그래서 ‘고구마’라고 느끼는 분이 있을 거다. 영화와 달리 드라마에는 교집합이 필요하다. 1회와 2회, 1회와 2회와 3회, 1회와 2회와 3회와 4회 이런 식으로 각 회를 연결하는 교집합을 두어야 한다. 영화는 100m 달리기의 작품으로 직진한다. 뒤를 보여주지 않는다. 반면 드라마는 계속 지나온 길의 이면들을 보여주지 않으면 흥미롭지 않다. 드라마의 교집합, 그게 어려웠다.

변영주 감독은 10월 새 드라마 <사마귀> 촬영을 앞두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촬영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감독은 서사의 주체가 되는 배우와 동지가 되어야 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주인공 고정우 역할을 맡은 변요한 배우가 그랬다. 이번 촬영 현장에서는 특히 ‘어른 배우’들이 좋았다. (권)해효 형은 정말로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극 중 병무 아버지 역할을 맡은 차순배 배우는 아들(이태구)과 계속 이야기를 했다. 극 중 아들과 연기 동선을 짜고 리허설을 하고,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조언하더라. 연출부가 한 명 더 늘어난 것 같은 느낌이 때때로 들 정도였다.

드라마 종영이 얼마 안 남았다. 앞으로 남은 내용은 원작과 많이 다른가?

극 중 ‘빌런(악당)’들이 많이 다를 거다. 그리고 후반부에 특별 출연이 한 명 나올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다(웃음). 마지막 결말 부분에 노상철 형사(고준)가 고정우(변요한)에게 하는 어떤 말이 있다.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이 담긴 대사다. 고준 배우에게 뭔가 좋은 말을 해주는 어른인 것처럼 하지 말자고 했다. 마음속으로는 걱정스러워서 울고 있는데 말주변이 없는 ‘상남자’ 경찰이라서 다정하게 말하지는 못하고, 툴툴 내뱉듯이 말해달라고 했는데, 고준 배우가 그 연기를 무척 잘했다.

다음 작업 계획은?

10월부터 드라마 〈사마귀〉 촬영에 들어간다. 프랑스 드라마가 원작이다. 고현정 배우가 23년 전의 연쇄살인범으로 출연한다. 23년이 지나 모방범죄가 발생하고, 고현정이 형사인 아들(장동윤)과 공조해 범인을 잡는 내용이다. 〈사마귀〉를 준비하면서 아는 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영화 쪽에서 주로 활동해온 조영욱(음악감독), 박곡지(편집) 등이 같이한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에 나온 배우 몇 명도 참여한다. 2025년 7월, SBS에서 방영할 예정이다.

드라마 말고 영화 작업은?

역시 스릴러물이다. 웹툰 〈당신의 과녁〉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준비 중이다. 원작과는 많이 다를 거다. 내년에 캐스팅을 완료해 내년 하반기에는 작업에 들어가지 않을까.

변영주 감독은 <화차>(위)에 이어 다시 한번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이유>를 영화화할 예정이다. ⓒCJ E&M 제공

그리고 꼭 해야 할 작품이 있다. 얼마 전 〈화차〉 원작자인 미야베 미유키가 속한 회사 대표가 찾아왔다. 〈화차〉에 출연했던 고 이선균의 묘소에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 일본에서 발매된 〈화차〉 DVD를 묘 앞에 놓고 사진을 찍었더라. ‘미미 여사(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별명)’가 이선균 배우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날 밤에 울면서 〈화차〉를 다시 보았다고 했다. 그게 29번째 보는 거라며. 자신의 작품이 영화화된 것 중에 그 작품이 가장 좋았다며 그의 소설 〈이유〉의 영화화 판권을 주겠다고 했다. 사실 그전에 〈이유〉 판권을 샀는데, 〈조명가게〉 작업이 길어지고 하면서 그 판권 기간이 끝나 있었다. 다시 판권을 무상으로 준다는 말에 감동했는데, 그때 내가 한 말은 ‘기간은요?’였다(웃음). 그랬더니 미미 여사의 답은 ‘변영주가 이 작품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때까지’였다. 5년 안에는 〈이유〉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백설공주’ 때 결심하며 바뀐 내 마음의 최종 지점이 〈이유〉가 될 것 같다. 〈화차〉에서 시작된 변영주 영화의 시즌 2가 〈이유〉에서 끝나게 될 것 같다. 앞으로 한 5년은 죽어라 하고 작품만 만들려 한다. 안 놀고(웃음).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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